범어사의 일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지고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이름난 건축물이랍니다. 다른 곳의 일주문은 지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활주를 세우는 곳이 많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기둥이 일렬로 되어 있어 일주문을 보려면 범어사로 가보라고 할 정도지요.
아래는 돌로, 위에는 나무 기둥으로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받치고 있는데 외국인들도 이렇게 서 있는 문이 어떻게 태풍에 견뎌내는지 신기하게 생각한답니다.
세 칸으로 나뉘어진 각각의 문 위에는 편액이 하나씩 걸려있는데 중앙에는 ‘曹溪門’(조계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 가섭존자, 달마 대사, 육조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전통 사찰임을 의미하고 있지요. 이런 이름 하나만 붙으면 얼마나 당당합니까?
오른쪽 문에 있는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 편액은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말하며. 왼쪽 문에는 ‘金井山梵魚寺’(금정산범어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어 산 이름과 절 이름을 말해주는, 집에서의 문패와 같은 역할이지요.
현재의 일주문은 1781년 백암 스님이 중건할 때 세운 것인데, 石柱(기둥)는 1718년 세울 때 그대로의 것이랍니다.
지반에서 1.45미터 정도 높이까지 배흘림을 가진 원통형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연속하여 세워서 만들고는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얹어 측면에서 풍판을 단 다포식 포작을 한 멋진 건축물이지요. 한마디로 깔끔하면서도 엄정한 기품이 느껴지는 건물이랍니다.
일주문을 들어선다는 것은 부처님 나라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랍니다. 그러니 엉뚱한 욕심이나 나쁜 마음들은 모두 벗어놓아야 한답니다. 여기는 부처님 나라니까 말이지요.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답니다. 천왕문이니 천왕들이 있겠지요. 각각의 천왕들 이름은 동-지국천왕, 서-남방천왕, 남-증장천왕, 북-다문천왕이랍니다.
이분들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세계를 수호하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지요. 불교가 확립한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우뚝 솟은 수미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利天(도리천)이라 불리는 신들의 세계(33개의 하늘이라고 三十三天이라한다. 수미산 사방에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마다 여덟 개의 하늘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쳐 삼십삼천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설날이 되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구나.)가 있고, 이 수미산의 중턱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사방에 사천왕의 세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도리천의 우두머리 신은 帝釋天(제석천:힌두교의 인드라)인데, 불교에서는 사천왕이 모두 제석천의 명을 받아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동작을 살펴 보고한다고 믿지요. 본래 사천왕의 형상을 표현하는 데 정해진 외모는 없었으나,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무장한 장군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답니다.
각 절의 사천왕문에서 보이듯 갑옷을 두르고 무기, 보탑, 비파, 용 등을 들고서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천왕의 발밑에 깔린 餓鬼(아귀)들의 모습이지요. 아귀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아귀도에 태어난 귀신을 일컫는데 염치없이 먹을 것을 탐내는 사람을 욕할 때도 아귀귀신라고 부른답니다.
이 아귀들은 너무 먹는 걸 밝히다가 부처님으로부터 목구멍이 아주 좁아지게 된 천벌을 받게 되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늘 배가 고프답니다. 우리가 늘 먹는 걸 밝히는 사람을 아귀귀신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이 아귀들은 스님들이 공양(식사)하고 난 후에 버리게 되는 마지막 건더기 국물을 먹으며 생명을 부지한답니다. 이 아귀귀신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 점심시간부터라도 음식물 남기지 말고 고기 음식 탐내지 않아야겠지요. 아직도 굶주림에 배고픈 나라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남을 위하여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천왕문을 들어설 땐 나쁜 마음을 먹고 온 사람이라면 몸이 움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사천왕 앞에선 다시는 죄짓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천왕문을 통과하고 나니 또 문이 나타나네요. 여느 절이라도 이 세 개의 문은 통과해야 한답니다. 작은 절에는 생략하기도 하지요. 여기 마지막 문은 不二門(불이문)이라 쓰여 있네요. 解脫門(해탈문)이라고도 쓰여진 절이 있답니다.
절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이 중생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는 한마음 으로 들어 올 것을 일깨우는 문이라면, 천왕문이 거기에서부터 사천왕의 수호를 받는 청정도량(깨끗하고 맑은 곳)임을 표시하여 몸가짐과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비해, 불이문(또는 해탈문)은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부처와 내가 다르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지 않으며, 우주 만물이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아주 철학적인 문이랍니다. 이런 분별심이 사라지면 곧바로 내가 해탈하는 것이랍니다. “나는 남자니까 밥은 못해.” “나는 여자니까 축구는 안할래요.” “여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등등 이런 분별된 마음으론 이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요. 그러니 이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은 그런 세속적인 분별심을 버린 사람들만 들어서야 하는 것이지요.
그 문의 주련(기둥에 쓰인 글귀)에 東山 스님이 써놓으신 글귀를 읽으면 아예 입을 닫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시네요. ‘이 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혜롭다고 말하지 말라.’는 入此門來莫存知解(입차문래막존지해)란 글귀를 읽으면 “내가 잘 낫다.” “너는 하는 꼴이 왜 그 모양이냐?” “나는 이 만큼이나 많이 알고 잘 사는 사람이니 좀 폼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싹 사라져버리지요. 깨달음이란 세속적인 잘난 체로는 해결되는 성질이 아니니까요. 그게 선찰대본산이라는 범어사의 전통이지요. 以心傳心(이심전심)으로 살아봅시다.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가요?
불이문을 통과하면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마침내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려나 봅니다. 普濟樓(보제루)라는 전각이 떡 버티고 서 있네요. 普濟(보제)란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여러 분은 어떤 댓가도 없이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고마움과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까?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아끼는 마음과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여기가 곧 부처님 나라겠지요.
보제루에선 보통 아침, 저녁으로 하는 예불이나 법요식, 신도들의 모임 등이 행하여진답니다. 절에 따라선 萬歲樓(만세루), 九光樓(구광루)라고 써놓은 곳도 있지요.
여기 보제루는 막히지 않아서 마루 밑을 통하여 대웅전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막아놓아 종루 쪽으로 돌아서 대웅전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놓았답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접근방식과 같은 원리가 되었네요.
종루로 들어서 볼까요.
지금 이 종루는 사용하지 않아서 그냥 관찰용이 되었네요. 보제루로 오르기 전에 바깥 담장에 현재의 종루가 있어 그곳에서 사물을 친답니다. 종루에는 네 가지 물건이 있답니다. 보통 四物이라고 부르지요. 한번 살펴볼까요.
사물은 법고(북), 운판, 목어, 범종의 네 가지를 일컫는답니다.
法鼓(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으로서 쇠가죽(소의 가죽)으로 만드는데 보통 암컷과 수컷을 각각 한 쪽 면에 붙여서 만들지요. 짐승을 깨우치기 위하여 북을 치는데 마음 心자를 그리며 두드린 다네요.
雲板(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중국의 선종 사찰에서 부엌에 달아 놓고 사람들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는데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답니다.
木魚(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를 두드려서 소리를 냅니다. 목어를 치는 까닭은 물에 사는 물고기를 제도하기 위해서지요.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러니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물고기처럼 늘 깨어 있는 채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梵鐘(범종)은 아침저녁 예불과 사찰의 큰 행사 때 사용합니다.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치지요. 범종을 치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랍니다.
왜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이 치냐고요?
28번 타종하는 것은 28천(天)으로 이루어진 모든 하늘세계에 두루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발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33번 타종하는 것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도리천의 선견궁을 비롯한 33궁에 종소리가 두루 울려 퍼지기를 발원하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여기서 잠시 공부 좀 해볼까요. 28천이란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합치면 28천이 되지요. 욕계 6천에는 사천왕증천, 33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 등이고, 색계 18천에는 범증천, 범보천, 대범천… 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는 범천이랍니다.
33번 종을 친다는 것은 곧 ‘욕계(욕심의 세계) 6天’에 나오는 33天을 두드린다는 이야기고, 그 33天 중에 도리천이 있어 그 도리천의 우두머리 신이 제석천이지요.
우리가 일주문을 들어선다는 뜻은 하늘나라(곧 부처님 나라)의 첫 번째 관문인 사천왕증천으로 들어선다는 뜻이랍니다. 또한 천왕문을 들어선다는 뜻은 33천을 들어선다는 뜻이고요. 불이문으로 들어선다는 뜻은 야마천으로 들어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문 하나마다 통과할 때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랍니다.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요? 물론입니다. 대웅전의 부처님이지요. 이는 깨달음의 4성(悟界(오계) 4성)중 가장 높은 자리인데 마침내 깨달음은 얻었다는 究境覺(구경각)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좀 어려워졌네요. 다음주에는 범어사 각 殿閣(전각)에 대하여 공부 좀 해볼까요.
4. 범어사 그, 천년의 고찰을 찾아서 - 2
범어사의 일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지고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이름난 건축물이랍니다. 다른 곳의 일주문은 지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활주를 세우는 곳이 많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기둥이 일렬로 되어 있어 일주문을 보려면 범어사로 가보라고 할 정도지요.
아래는 돌로, 위에는 나무 기둥으로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받치고 있는데 외국인들도 이렇게 서 있는 문이 어떻게 태풍에 견뎌내는지 신기하게 생각한답니다.
세 칸으로 나뉘어진 각각의 문 위에는 편액이 하나씩 걸려있는데 중앙에는 ‘曹溪門’(조계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 가섭존자, 달마 대사, 육조 혜능 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전통 사찰임을 의미하고 있지요. 이런 이름 하나만 붙으면 얼마나 당당합니까?
오른쪽 문에 있는 ‘禪刹大本山’(선찰대본산) 편액은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말하며. 왼쪽 문에는 ‘金井山梵魚寺’(금정산범어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어 산 이름과 절 이름을 말해주는, 집에서의 문패와 같은 역할이지요.
현재의 일주문은 1781년 백암 스님이 중건할 때 세운 것인데, 石柱(기둥)는 1718년 세울 때 그대로의 것이랍니다.
지반에서 1.45미터 정도 높이까지 배흘림을 가진 원통형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연속하여 세워서 만들고는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얹어 측면에서 풍판을 단 다포식 포작을 한 멋진 건축물이지요. 한마디로 깔끔하면서도 엄정한 기품이 느껴지는 건물이랍니다.
일주문을 들어선다는 것은 부처님 나라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랍니다. 그러니 엉뚱한 욕심이나 나쁜 마음들은 모두 벗어놓아야 한답니다. 여기는 부처님 나라니까 말이지요.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답니다. 천왕문이니 천왕들이 있겠지요. 각각의 천왕들 이름은 동-지국천왕, 서-남방천왕, 남-증장천왕, 북-다문천왕이랍니다.
이분들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세계를 수호하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지요. 불교가 확립한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우뚝 솟은 수미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利天(도리천)이라 불리는 신들의 세계(33개의 하늘이라고 三十三天이라한다. 수미산 사방에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마다 여덟 개의 하늘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쳐 삼십삼천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설날이 되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구나.)가 있고, 이 수미산의 중턱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사방에 사천왕의 세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도리천의 우두머리 신은 帝釋天(제석천:힌두교의 인드라)인데, 불교에서는 사천왕이 모두 제석천의 명을 받아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동작을 살펴 보고한다고 믿지요. 본래 사천왕의 형상을 표현하는 데 정해진 외모는 없었으나,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무장한 장군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답니다.
각 절의 사천왕문에서 보이듯 갑옷을 두르고 무기, 보탑, 비파, 용 등을 들고서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천왕의 발밑에 깔린 餓鬼(아귀)들의 모습이지요. 아귀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아귀도에 태어난 귀신을 일컫는데 염치없이 먹을 것을 탐내는 사람을 욕할 때도 아귀귀신라고 부른답니다.
이 아귀들은 너무 먹는 걸 밝히다가 부처님으로부터 목구멍이 아주 좁아지게 된 천벌을 받게 되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늘 배가 고프답니다. 우리가 늘 먹는 걸 밝히는 사람을 아귀귀신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이 아귀들은 스님들이 공양(식사)하고 난 후에 버리게 되는 마지막 건더기 국물을 먹으며 생명을 부지한답니다. 이 아귀귀신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 점심시간부터라도 음식물 남기지 말고 고기 음식 탐내지 않아야겠지요. 아직도 굶주림에 배고픈 나라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남을 위하여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천왕문을 들어설 땐 나쁜 마음을 먹고 온 사람이라면 몸이 움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사천왕 앞에선 다시는 죄짓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천왕문을 통과하고 나니 또 문이 나타나네요. 여느 절이라도 이 세 개의 문은 통과해야 한답니다. 작은 절에는 생략하기도 하지요. 여기 마지막 문은 不二門(불이문)이라 쓰여 있네요. 解脫門(해탈문)이라고도 쓰여진 절이 있답니다.
절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이 중생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오로지 진리를 구하는 한마음 으로 들어 올 것을 일깨우는 문이라면, 천왕문이 거기에서부터 사천왕의 수호를 받는 청정도량(깨끗하고 맑은 곳)임을 표시하여 몸가짐과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비해, 불이문(또는 해탈문)은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부처와 내가 다르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지 않으며, 우주 만물이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아주 철학적인 문이랍니다. 이런 분별심이 사라지면 곧바로 내가 해탈하는 것이랍니다. “나는 남자니까 밥은 못해.” “나는 여자니까 축구는 안할래요.” “여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등등 이런 분별된 마음으론 이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고요. 그러니 이 문을 통과하려는 사람은 그런 세속적인 분별심을 버린 사람들만 들어서야 하는 것이지요.
그 문의 주련(기둥에 쓰인 글귀)에 東山 스님이 써놓으신 글귀를 읽으면 아예 입을 닫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시네요. ‘이 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혜롭다고 말하지 말라.’는 入此門來莫存知解(입차문래막존지해)란 글귀를 읽으면 “내가 잘 낫다.” “너는 하는 꼴이 왜 그 모양이냐?” “나는 이 만큼이나 많이 알고 잘 사는 사람이니 좀 폼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싹 사라져버리지요. 깨달음이란 세속적인 잘난 체로는 해결되는 성질이 아니니까요. 그게 선찰대본산이라는 범어사의 전통이지요. 以心傳心(이심전심)으로 살아봅시다.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가요?
불이문을 통과하면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마침내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려나 봅니다. 普濟樓(보제루)라는 전각이 떡 버티고 서 있네요. 普濟(보제)란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여러 분은 어떤 댓가도 없이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 놓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고마움과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까?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아끼는 마음과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여기가 곧 부처님 나라겠지요.
보제루에선 보통 아침, 저녁으로 하는 예불이나 법요식, 신도들의 모임 등이 행하여진답니다. 절에 따라선 萬歲樓(만세루), 九光樓(구광루)라고 써놓은 곳도 있지요.
여기 보제루는 막히지 않아서 마루 밑을 통하여 대웅전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막아놓아 종루 쪽으로 돌아서 대웅전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놓았답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접근방식과 같은 원리가 되었네요.
종루로 들어서 볼까요.
지금 이 종루는 사용하지 않아서 그냥 관찰용이 되었네요. 보제루로 오르기 전에 바깥 담장에 현재의 종루가 있어 그곳에서 사물을 친답니다. 종루에는 네 가지 물건이 있답니다. 보통 四物이라고 부르지요. 한번 살펴볼까요.
사물은 법고(북), 운판, 목어, 범종의 네 가지를 일컫는답니다.
法鼓(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으로서 쇠가죽(소의 가죽)으로 만드는데 보통 암컷과 수컷을 각각 한 쪽 면에 붙여서 만들지요. 짐승을 깨우치기 위하여 북을 치는데 마음 心자를 그리며 두드린 다네요.
雲板(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중국의 선종 사찰에서 부엌에 달아 놓고 사람들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는데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답니다.
木魚(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를 두드려서 소리를 냅니다. 목어를 치는 까닭은 물에 사는 물고기를 제도하기 위해서지요.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러니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물고기처럼 늘 깨어 있는 채로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梵鐘(범종)은 아침저녁 예불과 사찰의 큰 행사 때 사용합니다.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치지요. 범종을 치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랍니다.
왜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이 치냐고요?
28번 타종하는 것은 28천(天)으로 이루어진 모든 하늘세계에 두루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발원하는 뜻이 담겨 있고, 33번 타종하는 것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도리천의 선견궁을 비롯한 33궁에 종소리가 두루 울려 퍼지기를 발원하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여기서 잠시 공부 좀 해볼까요. 28천이란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합치면 28천이 되지요. 욕계 6천에는 사천왕증천, 33천, 야마천, 도솔천, 낙변화천, 타화자재천 등이고, 색계 18천에는 범증천, 범보천, 대범천… 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는 범천이랍니다.
33번 종을 친다는 것은 곧 ‘욕계(욕심의 세계) 6天’에 나오는 33天을 두드린다는 이야기고, 그 33天 중에 도리천이 있어 그 도리천의 우두머리 신이 제석천이지요.
우리가 일주문을 들어선다는 뜻은 하늘나라(곧 부처님 나라)의 첫 번째 관문인 사천왕증천으로 들어선다는 뜻이랍니다. 또한 천왕문을 들어선다는 뜻은 33천을 들어선다는 뜻이고요. 불이문으로 들어선다는 뜻은 야마천으로 들어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문 하나마다 통과할 때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랍니다.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요? 물론입니다. 대웅전의 부처님이지요. 이는 깨달음의 4성(悟界(오계) 4성)중 가장 높은 자리인데 마침내 깨달음은 얻었다는 究境覺(구경각)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좀 어려워졌네요. 다음주에는 범어사 각 殿閣(전각)에 대하여 공부 좀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