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w.사이드의 유명한 저서 을 보면 18세기 유럽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어떻게 아시아(특히 아랍권) 지역을 '동양'으로 구분하고 그들을 대했는지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즉 '그들'을 약하고 문명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며 자발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선진국인 '우리'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여 보살펴주고 '우리'처럼 잘 살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이룬 고대의 찬란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야만적이기 때문에) 훨씬 뛰어난 '우리'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며 '그들' 역시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렀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은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18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동양적'인 것들에 대한 열풍을 말하는 것이지만 '서양'과 '동양'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아시아인들에 대한 비하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에드워드 w. 사이드는 이러한 '서양'인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꼬집은 것이다. 결국 아시아인들을 일종의 미개인으로 취급하고 지배를 해야한다는 대상으로 봤다는 것이고,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제국주의가 된다. 일본 역시 영국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가져와서 조선과 청나라를 지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한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가 막내린 지금의 시기에도 오리엔탈리즘은 계속 드러났다. 특히 그들의 사고방식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문화'의 영역 안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충분히 우리들을 기분나쁘게 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에 대한 한국인 비판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놓고 보면 서부터 로 이어지는 일종의 보물찾기 액션 활극은 다 오리엔탈리즘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작품들이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자기네들의 정신사고를 조금씩 비판해 왔다. 사이드의 은 거의 처음으로 위의 맥락을 정확히 집어낸 대표적인 자기반성이다. 영화 역시 그러하다. 특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를 보면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외교관이 그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한 여장남자 중국 스파이에게 완전 낚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물론 그 둘이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2년 전에 등장한 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리엔탈리즘과는 정 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 제국의 수장 살라딘과 정신적인 존경을 보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모습 때문에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웅담이 될 수 없었던 것이며, 그래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일까.
잭 스나이더 감독의 은 어떨까.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슬람 문화권에 계신 분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즉각적인 반응 하나가 있다. 이란은 영화 을 두고 미국이 직접적인 선전포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크게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서 '적'군인 그들을 보라. 인간인가, 괴물인가, 귀신인가. 은 워낙 단순한 내용이라 스토리를 분석하고 어쩌고 할 거리가 없다.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적군, 즉 페르시아 군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이다.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주술같은 미신 따위로 무장한 페르시아 군들이 감히 제대로된 초절정 근육질 전사들인 스파르타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0명의 떼죽음은 영웅적인 죽음으로 포장된다. 그렇다, 그들은 '영웅'적으로 죽는다.
여기서 또 하나. 헐리우드 액션 영웅 영화들의 연보를 살펴보면 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다. 80년대 근육질 액션 영화들과 그 당시 대통령인 레이건 정권과의 연관성을 파헤친 수잔 제퍼드의 란 책에 따르면, 레이건은 자신의 집권하기 전 대통령인 카터를 '약한 미국'이라고 규정하고 자신은 새롭게 '강한' 미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선거 포스터도 윗통을 벗은 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레이건의 모습을 담고 있었고, 레이건은 배우의 경력을 살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유치한 영웅들의 마지막 한마디를 연설 문구에 종종 넣기도 했다. 어쨌든 대중들은 이러한 레이건에 환호했으며 그는 80년대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 당시 미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헐리우드에서는 , 같은 근육질 액션 영화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응답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90년대에는 여권신장과 함께 여성적인 면모가 들어간 영웅들이 등장했으며(, ) 팍스 아메리카나의 분위기를 쫓아가 예전 하드 바디 영웅들이 공존하기도 했다(, ). 그리고 9/11 테러 이후로는 고뇌하는 영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무식한 영웅담으로는 현 상황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영웅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정말 착한 영웅이 아니라 악마와 결탁하기도 하는 안티-영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 , , 등). 더 나아가 초능력 영웅들이 이방인 취급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는 영화도 있다().
물론 과 , , 같은 노골적인 영웅 찬양 영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부시 정권에 대한 양분된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다. 즉, 액션영화 주인공들의 고뇌하는 모습은 부시 정권으로 인한 미국의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듯 하고, 아니면 다시 80년대로 퇴보하여 명쾌한 액션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현 부시 정권을 찬양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스파르타를 배신한 캐릭터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캐릭터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스파르타를 지키기 위한 마음 만큼은 다른 스파르타 전사들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지만, 왕은 그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그 캐릭터는 페르시아 제국을 찾아가게 되고,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 둘러쌓인 미장센과 함께 300명을 떼죽음으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그 캐릭터는 오히려 페르시아에 속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동화되어 버린다. 그 캐릭터는 스파르타의 기준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며, 이는 80년대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들 스파르타 '하드 바디'들은 건강하고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어야만 하고, 그와 반대되는 페르시아 적군은 유색인종, 장애인, 여성, 뚱뚱한 사람 등 '소프트 바디'로써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은 특수효과만 화려하게 덧칠했을 뿐 80년대 돌프 룬드그렌이나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유치한 근육질 액션 영화와 너무 많은 비슷함을 안겨준다.
80년대보다 더한 복근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전사 300명이 이슬람 백만명과 맞짱뜨는 내용. 적군 '이슬람'이라는 것은 이라크를 비롯한 이란 등 소위 '중동'을 상징하는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은 이라크에서 계속 삽질하고 있는 부시 정권에게 충성하는 진짜 300명의 전사 같은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서 영웅스럽게 죽어간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압박에 시달리며 정권을 민주당에게 내주어야 할 판인 현 부시 정권에게 같은 영화는 가뭄의 단비 같은 반가운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아시아인'으로써 은 대단히 기분나쁜 영화이고, 또 헐리우드 영화의 진행 과정의 맥락에서 살펴봐도 퇴보한 영화에 속한다. 영화적으로도 은 참 볼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을 쓸데없는 슬로모션으로 두 시간 이상으로 불려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를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진 건 몸과 용기밖에 없는 무모하고도 멍청한 사람들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사실. 심지어 그들의 근육 조차 징그러워 페르시아의 임모탈들보다 더욱 징그러웠다고 하는 사람도 봤으니.
하지만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직 미국인들은 부시 같은 사람들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도 1억달러 넘게 흥행에 성공하고, 같은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재미있다. 과연 부시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는 끝났어도, 현실 정치는 아직 진행중이다.
추가 : 사실 한국에서의 의 흥행 성공은 부시 정권 어쩌구 하는 것 보다는 한국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화끈함을 대리만족시켜주었다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한국 액션 영화 주인공들의 하나같이 찌질하고 비참한 모습은 이제 질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극을 좋아하고 비장미를 즐기는 한국영화관객이라지만, 이제는 쿨하고 단순하면서도 멋진 액션영화 주인공들이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에서의 굵은 근육은 사양하고 싶다.
잭 스나이더 <300>과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하드 바디
에드워드 w.사이드의 유명한 저서 을 보면 18세기 유럽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어떻게 아시아(특히 아랍권) 지역을 '동양'으로 구분하고 그들을 대했는지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즉 '그들'을 약하고 문명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였으며 자발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선진국인 '우리'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여 보살펴주고 '우리'처럼 잘 살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이룬 고대의 찬란한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우리'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야만적이기 때문에) 훨씬 뛰어난 '우리'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며 '그들' 역시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렀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은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18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동양적'인 것들에 대한 열풍을 말하는 것이지만 '서양'과 '동양'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아시아인들에 대한 비하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에드워드 w. 사이드는 이러한 '서양'인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꼬집은 것이다. 결국 아시아인들을 일종의 미개인으로 취급하고 지배를 해야한다는 대상으로 봤다는 것이고,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제국주의가 된다. 일본 역시 영국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가져와서 조선과 청나라를 지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영국이 이집트를 점령한 과정을 기록한 문서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국주의 시대가 막내린 지금의 시기에도 오리엔탈리즘은 계속 드러났다. 특히 그들의 사고방식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문화'의 영역 안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충분히 우리들을 기분나쁘게 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에 대한 한국인 비판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놓고 보면 서부터 로 이어지는 일종의 보물찾기 액션 활극은 다 오리엔탈리즘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작품들이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자기네들의 정신사고를 조금씩 비판해 왔다. 사이드의 은 거의 처음으로 위의 맥락을 정확히 집어낸 대표적인 자기반성이다. 영화 역시 그러하다. 특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를 보면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외교관이 그의 뿌리깊은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한 여장남자 중국 스파이에게 완전 낚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물론 그 둘이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2년 전에 등장한 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리엔탈리즘과는 정 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 제국의 수장 살라딘과 정신적인 존경을 보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모습 때문에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웅담이 될 수 없었던 것이며, 그래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일까.
잭 스나이더 감독의 은 어떨까.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슬람 문화권에 계신 분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즉각적인 반응 하나가 있다. 이란은 영화 을 두고 미국이 직접적인 선전포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크게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서 '적'군인 그들을 보라. 인간인가, 괴물인가, 귀신인가. 은 워낙 단순한 내용이라 스토리를 분석하고 어쩌고 할 거리가 없다.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적군, 즉 페르시아 군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이다.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주술같은 미신 따위로 무장한 페르시아 군들이 감히 제대로된 초절정 근육질 전사들인 스파르타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0명의 떼죽음은 영웅적인 죽음으로 포장된다. 그렇다, 그들은 '영웅'적으로 죽는다.
여기서 또 하나. 헐리우드 액션 영웅 영화들의 연보를 살펴보면 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다. 80년대 근육질 액션 영화들과 그 당시 대통령인 레이건 정권과의 연관성을 파헤친 수잔 제퍼드의 란 책에 따르면, 레이건은 자신의 집권하기 전 대통령인 카터를 '약한 미국'이라고 규정하고 자신은 새롭게 '강한' 미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선거 포스터도 윗통을 벗은 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레이건의 모습을 담고 있었고, 레이건은 배우의 경력을 살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유치한 영웅들의 마지막 한마디를 연설 문구에 종종 넣기도 했다. 어쨌든 대중들은 이러한 레이건에 환호했으며 그는 80년대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 당시 미국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헐리우드에서는 , 같은 근육질 액션 영화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응답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90년대에는 여권신장과 함께 여성적인 면모가 들어간 영웅들이 등장했으며(, ) 팍스 아메리카나의 분위기를 쫓아가 예전 하드 바디 영웅들이 공존하기도 했다(, ). 그리고 9/11 테러 이후로는 고뇌하는 영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무식한 영웅담으로는 현 상황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영웅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정말 착한 영웅이 아니라 악마와 결탁하기도 하는 안티-영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 , , 등). 더 나아가 초능력 영웅들이 이방인 취급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는 영화도 있다().
물론 과 , , 같은 노골적인 영웅 찬양 영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부시 정권에 대한 양분된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다. 즉, 액션영화 주인공들의 고뇌하는 모습은 부시 정권으로 인한 미국의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듯 하고, 아니면 다시 80년대로 퇴보하여 명쾌한 액션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현 부시 정권을 찬양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스파르타를 배신한 캐릭터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캐릭터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스파르타를 지키기 위한 마음 만큼은 다른 스파르타 전사들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지만, 왕은 그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그 캐릭터는 페르시아 제국을 찾아가게 되고,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 둘러쌓인 미장센과 함께 300명을 떼죽음으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그 캐릭터는 오히려 페르시아에 속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동화되어 버린다. 그 캐릭터는 스파르타의 기준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며, 이는 80년대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들 스파르타 '하드 바디'들은 건강하고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어야만 하고, 그와 반대되는 페르시아 적군은 유색인종, 장애인, 여성, 뚱뚱한 사람 등 '소프트 바디'로써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은 특수효과만 화려하게 덧칠했을 뿐 80년대 돌프 룬드그렌이나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유치한 근육질 액션 영화와 너무 많은 비슷함을 안겨준다.
80년대보다 더한 복근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전사 300명이 이슬람 백만명과 맞짱뜨는 내용. 적군 '이슬람'이라는 것은 이라크를 비롯한 이란 등 소위 '중동'을 상징하는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은 이라크에서 계속 삽질하고 있는 부시 정권에게 충성하는 진짜 300명의 전사 같은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서 영웅스럽게 죽어간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압박에 시달리며 정권을 민주당에게 내주어야 할 판인 현 부시 정권에게 같은 영화는 가뭄의 단비 같은 반가운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아시아인'으로써 은 대단히 기분나쁜 영화이고, 또 헐리우드 영화의 진행 과정의 맥락에서 살펴봐도 퇴보한 영화에 속한다. 영화적으로도 은 참 볼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을 쓸데없는 슬로모션으로 두 시간 이상으로 불려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를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진 건 몸과 용기밖에 없는 무모하고도 멍청한 사람들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사실. 심지어 그들의 근육 조차 징그러워 페르시아의 임모탈들보다 더욱 징그러웠다고 하는 사람도 봤으니.
하지만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조금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직 미국인들은 부시 같은 사람들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도 1억달러 넘게 흥행에 성공하고, 같은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재미있다. 과연 부시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는 끝났어도, 현실 정치는 아직 진행중이다.
추가 : 사실 한국에서의 의 흥행 성공은 부시 정권 어쩌구 하는 것 보다는 한국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화끈함을 대리만족시켜주었다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한국 액션 영화 주인공들의 하나같이 찌질하고 비참한 모습은 이제 질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극을 좋아하고 비장미를 즐기는 한국영화관객이라지만, 이제는 쿨하고 단순하면서도 멋진 액션영화 주인공들이 등장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에서의 굵은 근육은 사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