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손녀 효은이와 관조

김종명20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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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과 며느리가 손녀 효은이를 데리고 내 집을 찾아오기를 기다릴 때가 많아졌다. 내가 아들과 며느리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며 손녀 효은이를 기다리는 것은 효은이의 재롱을 보기 위해서다.

효은이의 눈은 산살구처럼 동그랗다. 산살구가 효은이의 눈을 닮았는지 효은이의 눈이 산살구를 닮았는지 모를 일이다

효은이는 출생한지 15개월이 되었다. 그러니 돌을 지나고 석 달이 되었는데 그동안 자라오며 내게 많은 재롱을 보여 주었다. 내게 효은이의 재롱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효은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내게는 재롱으로 보였다.

 

태어난 지 다섯 달이 되자 효은이는 제 혼자 앉아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하잘 것 없는 짓도 할아버지인 내게는 귀엽기 짝이 없는 재롱이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산살구처럼 동그란 눈을 가지고 제 혼자 앉는 것도 기특한데 장난감까지 만지니 귀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일곱 달이 되자 배밀이를 하였고, 아홉 달이 되자 이 방 저 방으로 기어다니며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흩으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돌이 가까워지자 아장아장 걷는 것이었다. 제 어머니가 신겨준 앙증맞게 작은 운동화를 신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동화에서 뿅뿅 소리를 내며 걷는 것이었다. 무슨 업무를 보기 위해선지 그 산살구처럼 동그란 눈을 가지고 거실 큰방 작은방 거칠것없이 돌아 다녔다. 지금껏 누워 있거나 기어다니던 녀석이 지구를 밟고 돌아다니며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는 순간이었다.

지구의 이 새로운 주인은 그렇게 돌아다니며 물 그릇을 쏟고 반찬 그릇을 뒤집는 고약한 행차를 많이 다녔다. 그럴 때마다 “그건 어비다. 그건 지지다” 아무리 겁을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제 할머니는 효은이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자장가를 불러주며 잠을 재웠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 뜰과 뒷동산의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 구슬 금 구슬을 보내는……”

 

이 자장가를 들려주며 잠을 재우곤 하였는데 요즈음은 이 노래를 제 할머니가 혼자 부르면 효은이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제 나름의 춤을 춘다. 이 춤은 태어난 지 15개월이며 키 69cm, 체중 9kg의 하늘색 유아 원피스를 입은 작은 천사의 춤이다.

그러면 나는 효은이를 부르며 말한다.

“효은아 할아버지와 ‘치카치카’ 하자”

‘치카치카’는 효은이와 내가 서로 상대편의 귀를 두 손으로 잡고 서로의 이마를 문지르며 인사하는 방법을 뜻하는 우리들만의 은어이다.

나의 부름을 받은 효은이는 내게로 아장아장 걸어와서 그 짧은 두 팔을 내밀어 내 귀를 잡는다. 나도 두 손으로 효은이의 귀를 잡는다. 그리고는 우리 둘은 서로 이마를 문지른다. 서로 코를 문질러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마를 문질러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효은이와 나 둘 뿐일 것이다.

사실 이런 인사를 나눌 때이거나 효은이의 귀여운 움직임을 볼 때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럴 적 마다 나의 마음 한 쪽에 어떤 걱정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인생은 고해(苦海)라 했는데 효은이가 앞으로 이 세상의 세파(世波)를 어떻게 헤쳐갈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효은이가 남자아이로 태어났더라면 이 같은 걱정은 없을 것이다. 수 십년 전, 내가 철이 들 무렵 나의 어머님께서는 “사람 한 평생 살기 어렵고 무섭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귀에 군살이 박히도록 나에게 일러 주셨다.

어머님의 말씀은 옳았다. 지난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어렵게 살던 시절, 그래도 우리는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월남전에 참전하여 돈을 벌며 살았고, 중동의 사막에서 남의 나라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며 돈을 벌어 살았다. 남자이었기 때문에 그런 고난을 겪어낼 수 있었다. 여자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제는 한국도 많이 발전 하였다. 또 지난날에 비해 여권(女權)도 많이 신장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자로 살아가기에는 곳곳에 장애가 가로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권은 모두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고 사회의 모든 중요한 자리는 거의 모두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따금 여자의 몸으로 높은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그것이 사회의 관행으로 보편화되기에는 아직 요원한 일인 것 같다.

나는 효은이가 입지적인 인물로 크게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면서 일생을 지내기를 바란다. 이것은 무사안일을 택하라는 말은 아니다. 인생은 작은 일에서도 큰 보람을 캐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직업 가운데는 이전투구도 고사해야 하는 직업이 많다.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 인생을 이전투구로 보낼 이유는 조금도 없다.

 

내가 효은이를 귀여워하는 또 다른 점은 모든 유아들이 그러하듯 효은이의 마음이 티없이 맑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나는 유모차에 태어난 지 15개월이며 키 69cm, 체중 9kg의 효은이를 태우고 집 부근의 공원으로 갔다. 오백 평 규모의 근린 공원이다. 나무가 우거지게 심어진 공원이다.  공원 한 가운데는 연못이 있고, 연못 한 가운데는 분수대가 있어 물을 쉴 사이 없이 뿜어 올린다. 공원 한 쪽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네며 미끄럼틀 같은 것들이 있는 놀이터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노인들을 위한 게이트볼장이 있다. 공원 너머 한 건물 옥상에는 대형 TV 수상기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유모차를 밀며 분수대 앞의 느티나무 그늘이 내린 정자 아래로 들어갔다. 정자에는 게이트볼을 치다 햇살을 피해 나온 듯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나보다 두어 살 위의 칠순 가까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효은이를 보며 미소를 보냈다. 모든 노인들은 유아의 앳된 얼굴을 보면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렇게 늙은 몸이 되었는데 너는 어리디 어린 몸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뜻의 유아에게 보내는 찬사일 것이다. 정자 아래의 노인의 미소를 나는 예의 노인들의 미소로 받아들이며 나도 노인에게 수인사를 보냈다. 그러자 노인이 효은이를 보며 불쑥 한 마디 말했다.

“예쁘다. 너희들이 살 세상은 지난 세상과 다를 것이다”

한 마디 말을 던진 노인은 자기가 볼을 칠 차례가 되었는지 총총이 게이트볼장으로 가버렸다.

순간 나는 효은이가 살 세상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바뀐다’ 그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려니 생각하며 건너편 건물 위의 대형 TV 수상기에 시선을 주었다.

TV에서는 내가 팬인 A 팀이 B 팀과 혈전을 벌리고 있었다. A 회사 가족치고 A 팀의 팬이 아닌 사람이 있으랴. 나는 A 팀이 이기면 승리에 도취하고 A 팀이 지면 오랫동안 좌절감에 젖어 헤맨다.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기는 9회 초인데 양팀은 4대4 동점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야구경기를 볼 때 A 팀이 극적인 득점의 기회를 맞거나 실점의 위기를 맞으면 눈을 살짝 감아버렸다가 그 극적 장면이 지난 다음 몇 박자 늦게 사실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그 아슬아슬하며 숨막히는 장면을 차마 눈을 뜨고 볼 만큼 심장이 담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팀은 9회말가지 점수를 내지 못해 경기는 10회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10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A 팀의 이 아무개 선수가 타석에 들었섰다. 이 아무개 선수는 2 스트라이크 1볼까지 가는 위기에 몰렸다. 다음 순간 B 팀 투수는 공을 던졌고, 이 아무개 선수는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허공을 날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몇 초 후 눈을 뜨니 홈런이었다. 뒤이어 10회말 현대의 공격이 있었지만 B팀의 세 타자는 모두 범타에 그쳐 경기는 A 팀의 승리로 끝났다. A 팀의 승리에 편승하여 나는 승자의 성취감에 도취 되었다. 나는 대리만족감에 흠뻑 젖어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생각해 보면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나는 생존 경쟁에서 승리만을 추구했다. 지금도 나는 인간사회는 경쟁에서 이긴 승자가 지배하며 패자는 패배의 대가를 처절히 치루며 살아간다고 믿고있다. 뿐만 아니라 승자는 인간사회의 역사까지도 엮어 만들어 내려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떻든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고 볼 일이야" 나는 나 혼자 되뇌었다.

나는 A 팀의 승리에 도취되어 좀 교만한 마음으로 유모차안의 효은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효은이는 연못의 물과 분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경쟁의 승패와는 무관한 표정이었다. 효은이로서는 태어나 처음 보는 많은 물과 분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표정이 수도승의 표정처럼 보여서 나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15개월짜리 유아가 수도승의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유아의 속성상 모든 유아는 득도한 스님의 마음과 같다.

내 머리에는 관조(觀照)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호수처럼 고요히 가지면 우리 마음에는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받아들여 진다. 우리가 생존경쟁이나 약육강식의 의식을 가지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여 마음에 풍랑이 일어난다. 우리 마음에 풍랑이 일어나면 사물의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에 나타나지 않는다.

효은이의 할아버지인 내가 인간 사회의 승부에 인생의 전부를 걸고 있는 동안 출생한지 15개월, 키 69㎝, 체중 9㎏의 손녀는 사물을 관조하며 아름다운 것을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관조의 뜻을 배운 것은 오십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 교과서에서였다.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눈앞의 이익이나 사회적 직위 쟁탈에 매달리면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가르침의 글이었다.  그때 나는 ‘앞으로 이러한 마음을 지니고 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생존경쟁에만 매달려 왔을 뿐 관조의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아서 얻은 것도 없다. 나는 내가 살아온 지난 날의 내 과거를 후회했다. 그리고 이제는 관조의 마음도 갖기로 했다.

 

경기에서 지고 비를 흠뻑 맞은 닭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도 선전에 대한 박수를 보내련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인생이라는 거친 세파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보련다.

패배 주의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성공이다. 인생은 성공을 위한 투쟁이다. 사람은 성공을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패배한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으로 노력한 것을 인정해 주며 살겠다는 것이다.

권투경기에서 상대편에 어퍼컷, 라이트, 레프트 펀치를 날려 상대를 KO시킨 승자에게만 박수를 보내지 않고 쓰러져 매트위에 누운 패자에게도 온정의 눈길을 보내련다.

 

“효은아, 너도 그렇게 살아라” 나는 효은이의 얼굴을 보며 눈으로 그렇게 말하며 유모차를 밀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나는 ‘너희들이 살 세상은 지난 세상과 다를 것이다’라고 말한 게이트볼을 치는 노인의 말을 효은이가 살 세상은 관조의 심성이 넘쳐나며 패자에게도 온정을 주는 따뜻한 세상이 온다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