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룬 왕자가 다시 식당에 찾아온 것은, 식당에 한참 손님이 많을 저녁 때였다. 덕분에 나나 아이린씨나 그런 그를 반겨줄 여유는 조금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대충 방의 위치를 듣고는 그는 커다란 짐 가방 하나 들고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 다. - 도와주고 싶기도 했지만 주문을 받을 손님들이 잔뜩 밀 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 오늘도 역시 손님들은 식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가득 차 있 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직업도 가지가지다. 용병, 모험자, 마법사, 시민, 성직자 등등…. 아마 이렇게 인기 좋은 식당은 수도 내 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안될지도 모른다. 하여튼 덕분에, 나 같은 종업원들은 작업량이 상대적으로 다른 식당에 비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도 각양각색이었다. 설거지하는 사람, 음식 만드는 요리사, 음식 나르고 메뉴판 가져다 주는 웨이터, -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 청소하는 사람 등등…. 작업량 이 많은 만큼 일하는 것도 세분화 되 있었던 것이다. 음식 나르고 메뉴판 가져다 준다는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엄청 힘들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그 만큼 많이, 그리고 빨리 음식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주문 받 을 때도, 한곳에서 어기적거리다가는 뒤에 손님이 더 오래 기 다리기 때문에, 재빠르고 신속하게 주문한 요리를 암기해서 적 은 다음,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힘들고, 체력 소모도 큰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고된 일이 끝나자, 역시 기르디와 함께 하는 즐거운 수련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특별히 자룬 왕자도 뒤에서 수련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은 더 긴장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내가 검을 휘두르면 기르디가 자세를 교정해 준다. 기 본적인 찌르기와 베기의 용법을 설명해 주고, 실전에서 유용하 게 써먹을 수 있는 수법도 알려준다. 그렇게 기본적인 훈련이 끝나면 곧장 대련을 시작한다. - 대련이라고 해봤자, 기르디 녀석의 일방적인 공격의 연속이지만. - 단순하게도 보이지만, 그만큼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일단 기초적인 것을 튼튼히 해야지, 더 고급스러운 것들도 배우기 쉽다는 것이 기르디 녀 석의 주장이었다. 일단 지금 이렇게 고생한 것이 나중에는 다 뼈가 되어서 기초를 형성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맞는 말 같았기 때문에, 나는 별 군말 없 이 기르디 녀석이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훈련을 하고 있는 형 편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조금 트러블도 있었긴 하지만, 근래 에 들어와서는 녀석의 엄청난 실력을 새삼 깨닫는 경우가 많 아서 고분고분 하라는 대로 하는 실정이었다. - 조금 굴욕스럽 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자룬 왕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내가 훈련하는 것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의식되기는 했지만, 뭐 그러려니 생각 하고 평소대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훈련이 끝났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나를 무시하고, 자룬 왕자는 기르디를 바라보며 드디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다시 대련 부탁합니다." 음, 가까이서 들어보니 의외로 밝은 목소리군. 하여튼 기르 디 녀석은 자룬 왕자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 하더니, 내가 사용하던 목검을 집어 던져 준 후, 그렇게 입을 열었다. "시작한다." 자룬 왕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그 둘 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자룬 왕자나 기르디 녀석이나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뱉 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여튼 이번에도 역시 둘의 대결은 싱 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룬 왕자의 몸이 잠시간 하늘로 솟아 오르다 바닥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르디는 힘겹게 자신 의 검을 막아낸 자룬 왕자의 몸을, 발을 사용해서 터프하게 걷 어차 버렸다. 그 힘에 못 이겨 왕자는 하늘에 별이 될 뻔하다 가, 중력의 원리로 다시 땅에 떨어진 것이다. 참으로 기르디다운 변칙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렇 게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 버렸으니 타격도 굉장히 심할 텐데 말이다. 새삼스럽게 자룬 왕자의 상태가 염려스러운 순간이었 다. - 그래도 일국의 왕자인데 저렇게 사정없이 걷어차 버려도 되는 것인가? - 하여튼, 자룬왕자는 기절한 모양인지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 …." 기르디녀석은 잠시 그런 자룬왕자의 몸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식당 안으로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 게 돌아가니, 내가 저 왕자의 몸을 부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젠장, 적당히 할 것이지." 이렇게 투덜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룬 왕자는 나보다 키가 더 컸었기 때문이다. 호리호리하고 긴 몸은 부축하기에 상당히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긴 했지만, 나는 겨우 겨우 무사히 왕자를 방에 옮길 수 있었다. 왕자의 방은 조금 깨끗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내 방과 별 차이는 있어 보이지 않았다. 자룬 왕자의 몸을 침대에 옮겨준 후, 나 역시 잠을 자기 위 해 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힘들게 운동하였으면, 몸 을 씻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오늘따라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방에 돌아가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묻고는, 그렇게 나는 잠들었다.
눈을 떠보자, 시아 녀석이 옆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 시아 녀석은 내가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자, 당황스럽다 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몸 괜찮아?" 내 질문에 녀석은,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녀 석의 손을 잡고, 그렇게 입을 열었다. "왜 말하지 않았던 거야? 여태까지 그렇게 아파왔으면서, 왜?" 녀석은 이제야 눈치 챈 것인지, 안색을 굳히며 그렇게 고개 를 돌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나는 집요하게 손을 사용 해 녀석의 고개를 돌려 버리고, 눈을 맞춘 후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아프고 괴로우면서…." "… …." 녀석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내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잡은 손의 힘을 풀자, 녀석은 재빠 르게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흐느끼는 소리도 줄어들었을 때, 천 천히 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프고 괴로워도 좋으니까." 아프면 같이 아파해 주고, 슬프면 같이 슬퍼해 준다. 그것으 로 고통은 줄어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나를 신용하 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렇게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싫다면, 아이린씨에게라도 말하…" "그게 아냐!" 녀석은 어느새 이불을 팽개쳐 버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잘랐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다. 내가 뭐라 고 말하기 전에 시아 녀석은 그렇게 외치듯 말했다.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내가 미워질까 봐 그런 거야. 괴 롭고 아파서 슬퍼질까 봐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미워질 꺼 같아서 그런 거야…."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내리고 큰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보라 고 욕해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렇게 입은 마법으로 달라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그런 거야." 그렇게 외치고는 녀석은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 는 그런 녀석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는다고 하는 거야? 내가 마음대로 죽게 놔둘 거 같아…. 바보야. 걱정마, 너는 절대 안 죽으니까. 그렇 게 오래 나 괴롭히며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젠장, 나도 한다면 하는 녀석이다. 지옥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 적어도 소중한 사람이 눈 앞에서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손가락 빨면서 보는, 그런 한심 한 녀석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말해도 되는 거란 말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해도 되는 거란 말이다. 네 녀석이 아프다고 미워지는 그런 머저리 같은 녀석은 아니니까, 나는….
녀석이 입을 연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 점심을 먹을 때쯤 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녀석은 구겨진 옷을 추스르며 입 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내가 어떻게 저 녀석의 괴로움을 알 수 있을까, 상처받은 마 음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직접 당 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알지 못하니까. 내가 녀석에게 위로 해 준다는 것도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녀석이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 수 있다면 상관 없다. 억지웃음이라도 지어 보이게 할 테니까. 시아 녀석은 그렇게 나를 등지고 침대 위에서 한껏 몸을 웅 크리며, 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팔로 목을 감싸 안았다. 녀석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 는 더욱더 팔에 든 힘을 세게 하며 녀석을 감싸 안아주었다. 작지만, 따스한 체온이 느껴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녀 석의 귀에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앞으로 또 한 번 이러면 진짜 미워할 꺼야." 점점 녀석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에는 그렇 게 안아달라고 성화더니, 이번에는 또 부끄러워하는군. 하여튼 녀석은 내 말에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녀석의 허리를 살짝 감싸 안아주었다. "어이, 밥 먹어야지! 언제까지 잘꺼야?" 갑작스레 들려온 아이린씨의 목소리에 나와 시아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아이린씨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 와 시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뜨끔(..)한 이유가 무 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야, 왜 그렇게 얼굴들이 빨게?" 시아 녀석은 그렇다고 쳐도, 내 얼굴이 빨갛다고? 손으로 살 짝 이마를 집어보니, 평소보다 더 뜨거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 었다. 나는 살짝 헛기침하고는 아이린씨에게 조금은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발 노크 좀 하고 들어오세요." "언제는 노크했다고 새삼스럽게?" 에휴 앓느니 죽지, 죽어. 하여튼 그렇게 나와 시아 녀석은 아이린씨의 손에 이끌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 * *
한 사람이 더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썰 렁한 식사 시간이다. 자룬왕자는 그렇게 격식을 차리거나 하는 식사 예법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묵묵히 자기가 먹을 양의 음식을 담아서, 아무 말 없이 음식을 입에 넣은 후 씹어서 먹 을 뿐이었다. 왕자라고 해서 굉장히 사치스러운 성격일 것이라 고 추측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예상외로 자룬 왕자 는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으세요?" 아이린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왕자에게 질문했 다. 왕자는 그런 아이린을 살짝 바라보며 시선을 맞춘 후, 조 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 보아도 이곳의 음식은 맛있다. 그렇지 않다면, 손님이 많이 모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비스도 중요 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역시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맛 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비싼 돈 주고 음식을 사 먹는데, 맛이 없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린씨의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식당 안은 다시 침묵 속 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나, 기르디 녀석이나, 시아 녀석이나 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 다. 자룬 왕자는 우리 세 사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 는 인간이니까, 썰렁한 식사 시간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인 것이다. 하여튼 아이린씨도 포기한 모양인지 음침한 표정으로, 그렇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조금 불쌍스럽기도 하 다고 느껴져 왔지만, 그래도 뭐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고칠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음침한 식사 시간이, 말 많고 시끌벅적한 식사시 간보다 더 좋으니까 말이 다. - 내가 생각해 봐도 마이너스적인 사고관이다. - 그렇게 썰렁한 식사가 끝나자, 나는 잠시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오늘까지 합해서 삼 일 동안 은 휴일이었다. 시험 덕분에 무리해서 공부를 한 것도 사실이 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천천히 집에서 쉬고 싶긴 하지만…. 자룬 왕자는 밥을 먹은 후,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린씨나 시아 녀석은 무엇이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기는 한 데, 끼여들기가 조금은 애매한 상황이다. 하여튼 빈둥거리기 위해 천천히 방으로 돌아가는 순간, 갑작 스런 떠들썩한 소리에 나는 다시 식당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 오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는 마법의 속성이 담긴 은은한 빛의 구체가 둥둥 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건 빛(light)주문 아냐? 대낮부터 왜 이런 주문을?" 내 말에 아이린씨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더듬거리며 대꾸했 다. "내, 내가 한 게 아니야! 시아가 사용한 거라고!" 지금 저 아이린씨가 뭐라고 말한 건가. 마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멀쩡한 꼬맹이가 어떻게 마법을 쓴다는 거야? 더워서 더위를 먹은 거 아냐? "… 두어 달 동안 내가 심심할 때마다 가르쳐 주었기는 했 지만." 두 달 동안 배워서 마법을 쓴다고 하면, 개나 소나 마법사 한다고 하겠다. 재능있다고 소리 꽤나 들은 나도 첫 번째 단계 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거의 이 년 동안이나 미치도록 연 습해야만 했는데.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떻게 두 달만에 배 워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인가? "… …." 하여튼 아이린씨가 더위를 먹지 않은 이상, 헛소리를 할 사 람은 아니었다. 그럼 정말로 저 시아 녀석이 주문을 사용한 것 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요." 내가 말한 것이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마법사가 성장이 늦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재능이 있는 자라 고 해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성장이 느릴 수밖에 없다. 시아 녀석이 몇 년 동안 꾸준히 연습을 한 것이라면 모를까.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인간이." 마법사는 세계에 불규칙적으로 떠돌아다니는 마나(Mana)를 이용해서 주문을 사용하지만, 드래곤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강대한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 그리 고 자라면서 그것을 꾸준하게 조금씩 축적해 나간다고 한다. 드래곤들은 용언(龍言)을 이용해, 현실 세계의 강제력을 행 사한다. 고룡 같은 경우에는, 먼 과거의 고대의 마법들도 기억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지도 모 르지만, 용들의 머리 속에는 그렇게 계승되어 나가는 것이었 다. - 그것은 인간에 비교해서, 무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수명을 가진 드래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 …." 시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나와 아이린씨는, 그 모습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린씨와 나는 그렇게 가운데에 시아를 앉혀놓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음, 글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아는 드래곤과 약간 유 사한 점이 있어. 주문을 몸 안에 기억한다고 할까?" 주문을 몸속에 기억한다고? 그게 가능한 것인가? 내가 날카 롭게 바라보자 아이린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시아가 마법을 쓰는 것은 바람직 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잘못하면 수명을 단축할지도 모르는 일 이고…." 시아는 인간이 아니라고 아이린씨는 전에 말했다. 마법 생명 체, 고대에서부터 전해지는 지금은 사라진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난 납득할 수 없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아이가, 벌 레 하나도 제대로 못 죽일 것 같은 아이가 무식한 골렘 같은 마법 생명체라니. "이런 속도로 마법을 배운다면, 정말 엄청난 마법사가 될지 도…." 아이린씨는 짐짓 대단하듯이 말하고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마법을 배우는 것도 오래 살아야 가능한 것이다. 습득력이 빠르다고 해도 몇 년 살지도 못하고 죽을 바 에는,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수명을 단축시키는 계기가 될 바 에는 배우지 않는 편이 백 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아 녀석을 바라보며, 가능한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 었다. "이제 내 허락없이는 절대로 마법을 쓰지 마. 알았지?" 시아 녀석은 조금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일단, '그분'하고 상의해 봐야겠어." 아이린씨는 한 손으로 고개를 집으며, 잠시 그렇게 생각하더 니 입을 열었다. 나는 전부터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사실을 물 어보기 위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도대체 그분이 누구죠?" 아이린씨는 내 말에 잠시 인상을 굳히더니, 조금은 당혹스러 운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음, 알 거 없어. 그나저나 이제 저녁 먹을 때가 된 거 아 냐?" "점심 먹은 지, 방금인데요." 역시 무엇인가 화제를 돌리는 것을 보아서는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하여튼 말하고 싶지 않는 것 같으니, 뭐 천천히 알아내야겠군. "그보다 심심하니까, 잠시 도서관이라도 다녀올 생각인데 요." 저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많이 남은 것 같으니까 내가 잠시 식당을 비워도 큰 무리는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린씨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린씨는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가 시아 녀석의 손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살짝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 대신에 이 녀석 좀 같이 데리고 가라고. 돌아올 때에는 장 좀 봐주고 말이야." 쳇, 귀찮으니까 나한테 다 떠넘기려고 드는군. 어쨌든 시아 녀석이랑 학교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뭐 별다르게 무리는 있 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천천히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일단 전부터 느낀 것이 있다면, 역시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 리는 학생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이 피 하는 장소라고 할까? 그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지금 학교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평소보다 훨씬 적은 학생들만이 있을 확률이 높 다. 일단 휴일 첫째 날부터 학교에 다시 간다는 것은, 왠지 모 르게 귀찮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탓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다시 내려와 보니, 시아 녀석은 아직 준비를 덜 한 모양이었다. 손님 하나 없이 썰렁한 식당 안이 다. 심심한 나머지 의자에 앉아서 생각도 좀 해보고, 몸도 이 리저리 움직여 보고, 바보같이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지겹다고 느낄 무렵, 시아 녀석은 반강제로 아이린씨의 손에 내 앞으로 끌려왔다. "… 왜 또?" 시아 녀석은 저번 때와 비슷하게 잘 가려지지도 않는 아이 린 등 뒤에 숨어서, 그렇게 살짝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막 분노 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초인적인 자제심으로 자제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안 잡아먹어." "자자, 어서 오빠 손잡고 다녀와." 음, 또 새 옷을 사온 모양이지? 저 아이린씨는 이상하게 옷 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니까. 역시 엘프라서 그런 건 가? 하여튼, 시아 녀석이 내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가는 것만 해 도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 괜히 쑥스러워하는 바람에 말이다. 아이린씨는 필요한 음식 재료를 메모해 둔 쪽지와, 쓸 돈을 건네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주방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끄러워하는 듯, 얼굴을 붉히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시아 녀석은 굉장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머리와 묘하게 매치되어서 말이다. 녀석은 그렇게 반강제로 내 손길에 이끌려 천천히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 다. 얼마 가지도 않았을 때에 갑작스레 시아 녀석이 내 등 뒤로 몸을 잔뜩 붙이고는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후훗, 녀석아. 그건 니가 업어 가고 싶을 정도로 귀여우니까 그런 거라고. 역시 이 녀석은 굉장히 이중적인 녀석이라니까, 묘하게 대범하면서 소심하고 말이야. 하여튼 나는 안심시켜 주 기 위해서 살짝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만큼 귀여우니까 그런 거야." "… …." 녀석은 믿기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리고, 천천히 고개를 땅으로 내리고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 다. "나 같은 녀석은 하나도 귀엽지 않아." 막 웃음이 터져 나오라고 하는 것을 간신히 자제할 수 있었 다. 그래도 녀석이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데 소리 내어서 웃 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점이 귀여운 거다, 바보야." 녀석은 내가 핀잔주자, 조금은 상심한 얼굴을 하고 시무룩해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태어난 것을 뭐 어떻게 하라고? 물 론 '이쁜 값'을 하는 사람은 질색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저 렇게 시무룩해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보다는, 그 편이 자신에게는 더 편할 텐데 말이지. 하여튼 그렇게 걸음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 학교라고 해도 평민이든 누구든 출입이 자유적으로 가능한 편이었다. 대신에 물론, 혜택은 학생들만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책을 빌리 는 것은 역시 학생들만의 특권인 것이다.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도 없는 편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아 녀석은 사방에 둘러 싸인 책들을 보고, 굉장히 놀라워하는 표정이다. 도서관같이 책 많은 곳은 가보지 않은 것인가? 하여튼, 나는 녀석을 의자 에 앉혀놓고는 조금은 엄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려. 책을 골라올 테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책을 찾기 위해서 책장들을 향해서 걸음을 움직였다.
[1권] 금단의페트 - Chapter 6. 왕자와 묘인족 소녀.
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애니, 소설 보러 오세요^ -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Chapter 6. 왕자와 묘인족 소녀.
자룬 왕자가 다시 식당에 찾아온 것은, 식당에 한참 손님이
많을 저녁 때였다. 덕분에 나나 아이린씨나 그런 그를 반겨줄
여유는 조금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대충 방의 위치를 듣고는
그는 커다란 짐 가방 하나 들고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
다. - 도와주고 싶기도 했지만 주문을 받을 손님들이 잔뜩 밀
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
오늘도 역시 손님들은 식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가득 차 있
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직업도 가지가지다. 용병, 모험자, 마법사,
시민, 성직자 등등…. 아마 이렇게 인기 좋은 식당은 수도 내
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몇 안될지도 모른다. 하여튼 덕분에,
나 같은 종업원들은 작업량이 상대적으로 다른 식당에 비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도 각양각색이었다. 설거지하는 사람,
음식 만드는 요리사, 음식 나르고 메뉴판 가져다 주는 웨이터,
-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 청소하는 사람 등등…. 작업량
이 많은 만큼 일하는 것도 세분화 되 있었던 것이다.
음식 나르고 메뉴판 가져다 준다는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엄청 힘들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그
만큼 많이, 그리고 빨리 음식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주문 받
을 때도, 한곳에서 어기적거리다가는 뒤에 손님이 더 오래 기
다리기 때문에, 재빠르고 신속하게 주문한 요리를 암기해서 적
은 다음,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힘들고,
체력 소모도 큰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고된 일이 끝나자, 역시 기르디와 함께 하는 즐거운
수련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특별히 자룬 왕자도 뒤에서
수련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은 더
긴장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내가 검을 휘두르면 기르디가 자세를 교정해 준다. 기
본적인 찌르기와 베기의 용법을 설명해 주고, 실전에서 유용하
게 써먹을 수 있는 수법도 알려준다. 그렇게 기본적인 훈련이
끝나면 곧장 대련을 시작한다. - 대련이라고 해봤자, 기르디
녀석의 일방적인 공격의 연속이지만. - 단순하게도 보이지만,
그만큼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일단 기초적인 것을 튼튼히
해야지, 더 고급스러운 것들도 배우기 쉽다는 것이 기르디 녀
석의 주장이었다. 일단 지금 이렇게 고생한 것이 나중에는 다
뼈가 되어서 기초를 형성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맞는 말 같았기 때문에, 나는 별 군말 없
이 기르디 녀석이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훈련을 하고 있는 형
편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조금 트러블도 있었긴 하지만, 근래
에 들어와서는 녀석의 엄청난 실력을 새삼 깨닫는 경우가 많
아서 고분고분 하라는 대로 하는 실정이었다. - 조금 굴욕스럽
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자룬 왕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내가 훈련하는 것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의식되기는 했지만, 뭐 그러려니 생각
하고 평소대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훈련이 끝났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나를 무시하고, 자룬 왕자는
기르디를 바라보며 드디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다시 대련 부탁합니다."
음, 가까이서 들어보니 의외로 밝은 목소리군. 하여튼 기르
디 녀석은 자룬 왕자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
하더니, 내가 사용하던 목검을 집어 던져 준 후, 그렇게 입을
열었다.
"시작한다."
자룬 왕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그 둘
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자룬 왕자나 기르디 녀석이나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뱉
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여튼 이번에도 역시 둘의 대결은 싱
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룬 왕자의 몸이 잠시간 하늘로 솟아
오르다 바닥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르디는 힘겹게 자신
의 검을 막아낸 자룬 왕자의 몸을, 발을 사용해서 터프하게 걷
어차 버렸다. 그 힘에 못 이겨 왕자는 하늘에 별이 될 뻔하다
가, 중력의 원리로 다시 땅에 떨어진 것이다.
참으로 기르디다운 변칙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렇
게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 버렸으니 타격도 굉장히 심할 텐데
말이다. 새삼스럽게 자룬 왕자의 상태가 염려스러운 순간이었
다. - 그래도 일국의 왕자인데 저렇게 사정없이 걷어차 버려도
되는 것인가? - 하여튼, 자룬왕자는 기절한 모양인지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 …."
기르디녀석은 잠시 그런 자룬왕자의 몸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식당 안으로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
게 돌아가니, 내가 저 왕자의 몸을 부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젠장, 적당히 할 것이지."
이렇게 투덜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룬 왕자는 나보다
키가 더 컸었기 때문이다. 호리호리하고 긴 몸은 부축하기에
상당히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긴 했지만, 나는 겨우 겨우 무사히 왕자를 방에
옮길 수 있었다. 왕자의 방은 조금 깨끗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내 방과 별 차이는 있어 보이지 않았다.
자룬 왕자의 몸을 침대에 옮겨준 후, 나 역시 잠을 자기 위
해 방으로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힘들게 운동하였으면, 몸
을 씻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오늘따라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방에 돌아가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묻고는, 그렇게 나는 잠들었다.
눈을 떠보자, 시아 녀석이 옆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
시아 녀석은 내가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자, 당황스럽다
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몸 괜찮아?"
내 질문에 녀석은,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녀
석의 손을 잡고, 그렇게 입을 열었다.
"왜 말하지 않았던 거야? 여태까지 그렇게 아파왔으면서,
왜?"
녀석은 이제야 눈치 챈 것인지, 안색을 굳히며 그렇게 고개
를 돌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나는 집요하게 손을 사용
해 녀석의 고개를 돌려 버리고, 눈을 맞춘 후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아프고 괴로우면서…."
"… …."
녀석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내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잡은 손의 힘을 풀자, 녀석은 재빠
르게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흐느끼는 소리도 줄어들었을 때, 천
천히 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프고 괴로워도 좋으니까."
아프면 같이 아파해 주고, 슬프면 같이 슬퍼해 준다. 그것으
로 고통은 줄어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나를 신용하
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렇게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싫다면, 아이린씨에게라도 말하…"
"그게 아냐!"
녀석은 어느새 이불을 팽개쳐 버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잘랐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다. 내가 뭐라
고 말하기 전에 시아 녀석은 그렇게 외치듯 말했다.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내가 미워질까 봐 그런 거야. 괴
롭고 아파서 슬퍼질까 봐 그런 거야. 그래서 내가 미워질 꺼
같아서 그런 거야…."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내리고 큰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보라
고 욕해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렇게 입은 마법으로 달라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그런 거야."
그렇게 외치고는 녀석은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
는 그런 녀석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는다고 하는 거야? 내가 마음대로 죽게
놔둘 거 같아…. 바보야. 걱정마, 너는 절대 안 죽으니까. 그렇
게 오래 나 괴롭히며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젠장, 나도 한다면 하는 녀석이다. 지옥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 적어도 소중한 사람이 눈
앞에서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손가락 빨면서 보는, 그런 한심
한 녀석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말해도 되는 거란 말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해도 되는 거란 말이다. 네
녀석이 아프다고 미워지는 그런 머저리 같은 녀석은 아니니까,
나는….
녀석이 입을 연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 점심을 먹을 때쯤
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녀석은 구겨진 옷을 추스르며 입
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내가 어떻게 저 녀석의 괴로움을 알 수 있을까, 상처받은 마
음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직접 당
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알지 못하니까. 내가 녀석에게 위로
해 준다는 것도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녀석이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 수 있다면 상관
없다. 억지웃음이라도 지어 보이게 할 테니까.
시아 녀석은 그렇게 나를 등지고 침대 위에서 한껏 몸을 웅
크리며, 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팔로 목을 감싸 안았다. 녀석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
는 더욱더 팔에 든 힘을 세게 하며 녀석을 감싸 안아주었다.
작지만, 따스한 체온이 느껴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녀
석의 귀에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앞으로 또 한 번 이러면 진짜 미워할 꺼야."
점점 녀석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에는 그렇
게 안아달라고 성화더니, 이번에는 또 부끄러워하는군. 하여튼
녀석은 내 말에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녀석의 허리를 살짝 감싸 안아주었다.
"어이, 밥 먹어야지! 언제까지 잘꺼야?"
갑작스레 들려온 아이린씨의 목소리에 나와 시아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아이린씨는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
와 시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뜨끔(..)한 이유가 무
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야, 왜 그렇게 얼굴들이 빨게?"
시아 녀석은 그렇다고 쳐도, 내 얼굴이 빨갛다고? 손으로 살
짝 이마를 집어보니, 평소보다 더 뜨거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
었다. 나는 살짝 헛기침하고는 아이린씨에게 조금은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발 노크 좀 하고 들어오세요."
"언제는 노크했다고 새삼스럽게?"
에휴 앓느니 죽지, 죽어. 하여튼 그렇게 나와 시아 녀석은
아이린씨의 손에 이끌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 * *
한 사람이 더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썰
렁한 식사 시간이다. 자룬왕자는 그렇게 격식을 차리거나 하는
식사 예법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묵묵히 자기가 먹을 양의
음식을 담아서, 아무 말 없이 음식을 입에 넣은 후 씹어서 먹
을 뿐이었다. 왕자라고 해서 굉장히 사치스러운 성격일 것이라
고 추측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예상외로 자룬 왕자
는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으세요?"
아이린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왕자에게 질문했
다. 왕자는 그런 아이린을 살짝 바라보며 시선을 맞춘 후, 조
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 보아도 이곳의 음식은 맛있다. 그렇지
않다면, 손님이 많이 모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비스도 중요
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역시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맛
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비싼 돈 주고 음식을 사 먹는데, 맛이
없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린씨의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식당 안은 다시 침묵 속
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나, 기르디
녀석이나, 시아 녀석이나 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
다. 자룬 왕자는 우리 세 사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
는 인간이니까, 썰렁한 식사 시간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인 것이다. 하여튼 아이린씨도 포기한 모양인지 음침한
표정으로, 그렇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조금 불쌍스럽기도 하
다고 느껴져 왔지만, 그래도 뭐 타고난 성격을 어떻게 고칠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음침한 식사
시간이, 말 많고 시끌벅적한 식사시 간보다 더 좋으니까 말이
다. - 내가 생각해 봐도 마이너스적인 사고관이다. -
그렇게 썰렁한 식사가 끝나자, 나는 잠시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오늘까지 합해서 삼 일 동안
은 휴일이었다. 시험 덕분에 무리해서 공부를 한 것도 사실이
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천천히 집에서 쉬고 싶긴 하지만….
자룬 왕자는 밥을 먹은 후,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린씨나 시아 녀석은 무엇이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기는 한
데, 끼여들기가 조금은 애매한 상황이다.
하여튼 빈둥거리기 위해 천천히 방으로 돌아가는 순간, 갑작
스런 떠들썩한 소리에 나는 다시 식당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
오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는 마법의 속성이 담긴 은은한 빛의 구체가 둥둥
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건 빛(light)주문 아냐? 대낮부터 왜 이런 주문을?"
내 말에 아이린씨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더듬거리며 대꾸했
다.
"내, 내가 한 게 아니야! 시아가 사용한 거라고!"
지금 저 아이린씨가 뭐라고 말한 건가. 마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멀쩡한 꼬맹이가 어떻게 마법을 쓴다는 거야? 더워서
더위를 먹은 거 아냐?
"… 두어 달 동안 내가 심심할 때마다 가르쳐 주었기는 했
지만."
두 달 동안 배워서 마법을 쓴다고 하면, 개나 소나 마법사
한다고 하겠다. 재능있다고 소리 꽤나 들은 나도 첫 번째 단계
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거의 이 년 동안이나 미치도록 연
습해야만 했는데.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떻게 두 달만에 배
워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인가?
"… …."
하여튼 아이린씨가 더위를 먹지 않은 이상, 헛소리를 할 사
람은 아니었다. 그럼 정말로 저 시아 녀석이 주문을 사용한 것
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요."
내가 말한 것이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마법사가
성장이 늦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재능이 있는 자라
고 해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성장이 느릴 수밖에 없다.
시아 녀석이 몇 년 동안 꾸준히 연습을 한 것이라면 모를까.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인간이."
마법사는 세계에 불규칙적으로 떠돌아다니는 마나(Mana)를
이용해서 주문을 사용하지만, 드래곤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강대한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 그리
고 자라면서 그것을 꾸준하게 조금씩 축적해 나간다고 한다.
드래곤들은 용언(龍言)을 이용해, 현실 세계의 강제력을 행
사한다. 고룡 같은 경우에는, 먼 과거의 고대의 마법들도 기억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지도 모
르지만, 용들의 머리 속에는 그렇게 계승되어 나가는 것이었
다. - 그것은 인간에 비교해서, 무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수명을 가진 드래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 …."
시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나와 아이린씨는, 그 모습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린씨와 나는 그렇게 가운데에 시아를 앉혀놓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음, 글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시아는 드래곤과 약간 유
사한 점이 있어. 주문을 몸 안에 기억한다고 할까?"
주문을 몸속에 기억한다고? 그게 가능한 것인가? 내가 날카
롭게 바라보자 아이린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시아가 마법을 쓰는 것은 바람직
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잘못하면 수명을 단축할지도 모르는 일
이고…."
시아는 인간이 아니라고 아이린씨는 전에 말했다. 마법 생명
체, 고대에서부터 전해지는 지금은 사라진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난 납득할 수 없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아이가, 벌
레 하나도 제대로 못 죽일 것 같은 아이가 무식한 골렘 같은
마법 생명체라니.
"이런 속도로 마법을 배운다면, 정말 엄청난 마법사가 될지
도…."
아이린씨는 짐짓 대단하듯이 말하고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마법을 배우는 것도 오래 살아야 가능한
것이다. 습득력이 빠르다고 해도 몇 년 살지도 못하고 죽을 바
에는,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수명을 단축시키는 계기가 될 바
에는 배우지 않는 편이 백 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아
녀석을 바라보며, 가능한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
었다.
"이제 내 허락없이는 절대로 마법을 쓰지 마. 알았지?"
시아 녀석은 조금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일단, '그분'하고 상의해 봐야겠어."
아이린씨는 한 손으로 고개를 집으며, 잠시 그렇게 생각하더
니 입을 열었다. 나는 전부터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사실을 물
어보기 위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도대체 그분이 누구죠?"
아이린씨는 내 말에 잠시 인상을 굳히더니, 조금은 당혹스러
운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음, 알 거 없어. 그나저나 이제 저녁 먹을 때가 된 거 아
냐?"
"점심 먹은 지, 방금인데요."
역시 무엇인가 화제를 돌리는 것을 보아서는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하여튼 말하고 싶지 않는 것 같으니,
뭐 천천히 알아내야겠군.
"그보다 심심하니까, 잠시 도서관이라도 다녀올 생각인데
요."
저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많이 남은 것 같으니까 내가
잠시 식당을 비워도 큰 무리는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린씨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린씨는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가 시아 녀석의 손을 내
손에 쥐어주고는, 살짝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 대신에 이 녀석 좀 같이 데리고 가라고. 돌아올 때에는
장 좀 봐주고 말이야."
쳇, 귀찮으니까 나한테 다 떠넘기려고 드는군. 어쨌든 시아
녀석이랑 학교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뭐 별다르게 무리는 있
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천천히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일단 전부터 느낀 것이 있다면, 역시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
리는 학생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이 피
하는 장소라고 할까? 그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지금 학교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평소보다 훨씬 적은 학생들만이 있을 확률이 높
다. 일단 휴일 첫째 날부터 학교에 다시 간다는 것은, 왠지 모
르게 귀찮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탓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다시 내려와 보니, 시아 녀석은 아직
준비를 덜 한 모양이었다. 손님 하나 없이 썰렁한 식당 안이
다. 심심한 나머지 의자에 앉아서 생각도 좀 해보고, 몸도 이
리저리 움직여 보고, 바보같이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지겹다고 느낄 무렵, 시아 녀석은 반강제로 아이린씨의 손에
내 앞으로 끌려왔다.
"… 왜 또?"
시아 녀석은 저번 때와 비슷하게 잘 가려지지도 않는 아이
린 등 뒤에 숨어서, 그렇게 살짝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막 분노
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초인적인 자제심으로 자제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안 잡아먹어."
"자자, 어서 오빠 손잡고 다녀와."
음, 또 새 옷을 사온 모양이지? 저 아이린씨는 이상하게 옷
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니까. 역시 엘프라서 그런 건
가? 하여튼, 시아 녀석이 내 손을 잡고 식당을 나가는 것만 해
도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 괜히 쑥스러워하는 바람에
말이다.
아이린씨는 필요한 음식 재료를 메모해 둔 쪽지와, 쓸 돈을
건네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주방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끄러워하는 듯, 얼굴을 붉히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시아
녀석은 굉장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머리와
묘하게 매치되어서 말이다. 녀석은 그렇게 반강제로 내 손길에
이끌려 천천히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
다.
얼마 가지도 않았을 때에 갑작스레 시아 녀석이 내 등 뒤로
몸을 잔뜩 붙이고는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후훗, 녀석아. 그건 니가 업어 가고 싶을 정도로 귀여우니까
그런 거라고. 역시 이 녀석은 굉장히 이중적인 녀석이라니까,
묘하게 대범하면서 소심하고 말이야. 하여튼 나는 안심시켜 주
기 위해서 살짝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만큼 귀여우니까 그런 거야."
"… …."
녀석은 믿기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리고, 천천히 고개를 땅으로 내리고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
다.
"나 같은 녀석은 하나도 귀엽지 않아."
막 웃음이 터져 나오라고 하는 것을 간신히 자제할 수 있었
다. 그래도 녀석이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데 소리 내어서 웃
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점이 귀여운 거다, 바보야."
녀석은 내가 핀잔주자, 조금은 상심한 얼굴을 하고 시무룩해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태어난 것을 뭐 어떻게 하라고? 물
론 '이쁜 값'을 하는 사람은 질색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저
렇게 시무룩해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보다는,
그 편이 자신에게는 더 편할 텐데 말이지.
하여튼 그렇게 걸음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 학교라고 해도 평민이든 누구든 출입이 자유적으로
가능한 편이었다. 대신에 물론, 혜택은 학생들만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책을 빌리
는 것은 역시 학생들만의 특권인 것이다.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도 없는 편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아 녀석은 사방에 둘러
싸인 책들을 보고, 굉장히 놀라워하는 표정이다. 도서관같이
책 많은 곳은 가보지 않은 것인가? 하여튼, 나는 녀석을 의자
에 앉혀놓고는 조금은 엄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려. 책을 골라올 테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책을 찾기
위해서 책장들을 향해서 걸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