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불후의 시어(詩語)였다는 극찬을 받고 있는 고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작품중 하나..너무 아름다운 시라 어쩐지 마음에 슬픈 느낌마저 든다.
일찌기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수차례거론되었지만 미당 시인 특유의 그 감칠맛 나는 서정적 언어의 묘미를 해치지 않고 외국어로 번역할 재주가 있는 문인이 전 한국을 통털어, 근대를 통털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번번히 좌절을 하곤 한다는 서강대 모 교수의 발언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정말 미당 시인의 시적 재능은 하늘로부터 선사받은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일제시대때 다른 대다수 기득권층처럼 (사실 독립투쟁을 하신 분들은 당시에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정도차가 있었을뿐, 공개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 - 적극적 친일 매국행위는 아니라 해도 - 했다고 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당 시인도 그 유명세로 인하여 일제 총독부의 요주의 인물이 되어 제국을 위해 발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마음 여리고, 시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 특히 정치 돌아가는 것엔 관심 없던 철없던 미당 시인이 두고두고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빚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당 시인은 훗날 나라가 독립하고 난 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참회하고 사죄를 구했다. 당시 미당보다 더 앞장서 매국 친일에 앞장섰던 조정 대신들이나 권력층은 사과는 커녕 일찌감치 일본이나 미국으로 재산 챙겨 이 땅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토속 된장과 김치와 신라 가시내와 한국의 산과 들과 물과 꽃을 좋아하던 미당은 어디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갈 마음도 없던 미당은 그런 자들에 비하면 그 유명세때문에 오래 친일시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고통 받았지, 그들보다 죄값이 커서는 결코 아니라고 한다.
개인의 굴욕이 시대의 비극과 무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나, 남보다 빼어난 재주를 타고난 이들은 어쩌면 그로 인해 그저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들보다 일거수 일투족에 더 분에 넘친 찬사를 받기도 하고, 비난의 촛점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문명이 진실로 개화된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인간의 생애를 어느 일단면만 잘라서 그가 선이다, 악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처럼 단세포적인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어린 시절 친일시인이니 혹은 애국시인이니 뭐니 하는 구분도 알기 이전에 처음 미당이나 혹은 그 반대지점에 서 있는 만해 한용운 시인이나, 이육사 시인, 윤동주 시인등의 시를 접했을때 오직 시 그 자체로만 감동에 겨웠던 그 첫느낌 그대로, 시인은 그저 시로써만 평가받을 수 있는, 아니 평가란 말보다 사랑받고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 시대가 우리에게도 하루속히 완전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서정주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미당 서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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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불후의 시어(詩語)였다는 극찬을 받고 있는 고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작품중 하나..너무 아름다운 시라 어쩐지 마음에 슬픈 느낌마저 든다.
일찌기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수차례거론되었지만 미당 시인 특유의 그 감칠맛 나는 서정적 언어의 묘미를 해치지 않고 외국어로 번역할 재주가 있는 문인이 전 한국을 통털어, 근대를 통털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번번히 좌절을 하곤 한다는 서강대 모 교수의 발언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정말 미당 시인의 시적 재능은 하늘로부터 선사받은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일제시대때 다른 대다수 기득권층처럼 (사실 독립투쟁을 하신 분들은 당시에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정도차가 있었을뿐, 공개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 - 적극적 친일 매국행위는 아니라 해도 - 했다고 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당 시인도 그 유명세로 인하여 일제 총독부의 요주의 인물이 되어 제국을 위해 발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마음 여리고, 시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 특히 정치 돌아가는 것엔 관심 없던 철없던 미당 시인이 두고두고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빚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당 시인은 훗날 나라가 독립하고 난 후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참회하고 사죄를 구했다. 당시 미당보다 더 앞장서 매국 친일에 앞장섰던 조정 대신들이나 권력층은 사과는 커녕 일찌감치 일본이나 미국으로 재산 챙겨 이 땅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토속 된장과 김치와 신라 가시내와 한국의 산과 들과 물과 꽃을 좋아하던 미당은 어디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갈 마음도 없던 미당은 그런 자들에 비하면 그 유명세때문에 오래 친일시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고통 받았지, 그들보다 죄값이 커서는 결코 아니라고 한다.
개인의 굴욕이 시대의 비극과 무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나, 남보다 빼어난 재주를 타고난 이들은 어쩌면 그로 인해 그저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들보다 일거수 일투족에 더 분에 넘친 찬사를 받기도 하고, 비난의 촛점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문명이 진실로 개화된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 인간의 생애를 어느 일단면만 잘라서 그가 선이다, 악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처럼 단세포적인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어린 시절 친일시인이니 혹은 애국시인이니 뭐니 하는 구분도 알기 이전에 처음 미당이나 혹은 그 반대지점에 서 있는 만해 한용운 시인이나, 이육사 시인, 윤동주 시인등의 시를 접했을때 오직 시 그 자체로만 감동에 겨웠던 그 첫느낌 그대로, 시인은 그저 시로써만 평가받을 수 있는, 아니 평가란 말보다 사랑받고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 시대가 우리에게도 하루속히 완전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