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페트 [2권] 2-2

홍한석2007.04.17
조회18

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애니, 소설 보러 오세요^ - ^]

 

어디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새소리에 난 고개를 들어 올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 피곤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생
 각 없이 오랫동안 눈을 감은 탓인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을
 잔 모양이다.
 
 "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무엇. 회색의 털이 많고, 일반 개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크기가 큰 감이 없지 않게 있었다.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볼을 간질이는
 한줄기 바람의 느낌은 현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
 명했다.
 그것의 타오르는 램프의 빛과 같은 날카로운 두 눈은 나의
 몸을 향하고 있었다.
 
 '느, 늑대?! 늑대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참 바보 같은 생각이군. 늑대니까 숲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 젠장!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순간 내가 몸을 일으키자 조금 움찔거리며 뒷걸음질하는 늑
 대처럼 생긴 그 '무엇'. 괜히 적대적인 반응을 하는 것도 안
 좋은 판단이겠고, 또 갑자기 달아나는 것도 바보짓이 될 테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난 머리를 굴러야해 했다.
 
 '일단 침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늑대처럼 생긴 녀석이 워낙 '존재감'넘치는 모습
 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내가 백전노장의 용병도 아니
 고, 이런 상황에서 겁먹고 주저앉지 않으면 다행이지. '무슨
 탁월한 임기웅변으로 늑대를 쫓아내다!'라는 것은 꿈과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조금씩 떨려오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고, 난 그렇게 늑대
 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맛있는 먹이 감을 바라보는 탐
 욕에 젖은 눈, 같은 것은 아니고 그냥 신기하다는 바라보는
 눈이라는 느낌이랄까. - 눈빛으로 동물의 생각을 읽는 그런
 거짓말 같은 능력은 내게 있을 리 없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말 것.'
 
 카이츠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물론 그런 약속 따위보다
 야 목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젠장."
 
 조금 시간이 흘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상스러
 운 말이 자연스럽게 입가를 맴돌았다. 그냥 도망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들이차서, 무엇하나 냉철하게 생각할
 여유 같은 것은 개미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지겨워 지는 느낌도 들었다. 무슨 저 녀석이 침을
 뚝뚝 흘리며 이빨을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모르겠다. 잡아먹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
 
 그렇게 반쯤 자포자기하고 어금니를 꽉 물며 녀석을 노려보
 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녀석이 조금 더 날 바라보더니, 그냥 나무 사이로 슥 사라
 지는 것이다.
 
 "뭐, 뭐지?"
 
 나 자신도 어리둥절해서, 늑대가 사라진 맨 땅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내 모습이 무서워 도
 망간 것은 아닐 테고. 신기해서 좀 살펴보다가 흥미가 떨어져
 그냥 가던 길 마저 간 모양이다.
 순간 힘이 딱하고 풀려서 한숨을 쉬며 그렇게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긴장을 꽤 심하게 했던 모양인지 갑작스레 피곤함이
 온 몸을 엄습하는 듯 했다.
 
 
 
 
 언제 다시 잠이 들은 모양인지, 카이츠가 살짝 내 어깨를
 흔들자 화들짝 놀라 난 몸을 일으켰다.
 
 "아, 미안. 놀라게 한 것 같군."
 "괜찮습니다."
 
 조금 가위를 눌린 모양인지 식은땀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스
 치고 지나갔다. 내 굳은 표정을 조금은 근심스레 바라보며 카
 이츠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거짓말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늑대처럼 생긴… 그런 것이 나타나서."
 "늑대라고?"
 
 조금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카이츠가 대답했다.
 
 "깜박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회색 빛의 무엇인가 눈앞
 에 아른거리더군요."
 "그게 늑대였나 보군."
 
 늑대는 원래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점심 무렵, 그것도 마을에 인접한 곳을 어슬렁거리는 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내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면 그건 분
 명히 늑대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턱에 손을 집으며 고민
 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하는 카이츠. -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
 르자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대충 짐작 가는 엘프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짐작 가는 엘프? 설마 그것이 진짜 늑대가 아니라 엘프였던
 말인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자,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
 지으며 카이츠는 입을 열었다.
 
 "누군가 폴리모프한 것 같아. 미숙한 것을 보면 꼬맹이들
 중에 하나일 것 같군."
 "어떻게 미숙한 지 알 수 있습니까?"
 "그냥 살펴보는 정도라면 늑대로 폴리모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새라던 지, 작은 짐승으로 폴리모프하는 편이 더 나
 을 테니까 말이야."
 
 확실히 그의 말 대로다. 늑대같이 눈에 확 뜨이는 것을 선
 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이다.
 
 "엘프라는 종족이 워낙 장수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지 그래
 서 몰라도, 인간으로 따지자면 기숙사 비슷한 곳이 있단다.
 인간으로 따지면 거의 지금 네 나이 정도의 또래들이 생활하
 는 곳이지. 내 생각에는 그곳의 꼬맹이들 중 하나일 것 같은
 데 말이야."
 
 엘프가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과 묘인족을 제외하자면,
 대륙에서 제일 넓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디에선가
 들어 알고 있었다. 여하튼 조금 무책임한 면모도 있는 듯 했
 다. 아무리 뭐라 그런들 자신의 아이를 남겨두고 여행이라니
 말이다. - 내 아버지 같은 경우는 조금 특수한 케이스니 그냥
 넘어 간다고 해도.
 '아들아, 난 여행을 다녀오마.'하고 휘리릭- 사라져 버린다
 는 것은 조금은 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숙사는 어디죠?"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그다지 없는 거 같아서 의
 아해했었는데. 기숙사 구경도 할 겸 한번 놀러 가는 것도 나
 쁘지 않을 것 같아 난 그렇게 질문했다.
 
 "마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야."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대충 바라보며 살짝 고개
 를 끄덕였다. '그리 멀지 않다면 오늘이라도 한번 가보는 것
 이 좋겠다'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아, 기숙사요? 에린언니가 다니고 있어서 확실히 알고 있
 기는 하지만…."
 
 아직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에 조금은 이른 시간, 세레스녀
 석이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말끝을 흐리는 것도 같아서 난
 다시 질문했다.
 
 "에린언니는 누구지?"
 "저희 둘보다 먼저 태어난, 말 그대로 언니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고요."
 "꼭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거야?"
 "돌봐줘야 할 엘프가 마을에 없는 이상 100%겠죠.'
 
 음, 대충 무엇인가 알 것 같기도 하다. '장수'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다. - 부모인 이상 자식을 기
 르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백
 년 동안 자식 교육만 시켜라'라고 말한다면, 비웃어 줄 것이
 틀림없다.
 
 "저희 둘도 곧 기숙사 생활을 하겠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악순환 아닌가. 어려서 구속받고 자란
 것을 성인이 되어 충족하는 것, 그것이 반복되어 어느새 당연
 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그리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또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엘프들의 문화에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못되겠지만.
 
 "흐음."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런 면
 에서는 조금 민감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인상을 찡그
 리며 끙끙-거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마주 바라보더니, 티레
 스녀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기숙사에 대해 묻는 거야?"
 "아, 한번 가볼까 해서…. 뭐 이곳에 관광 온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가만히 방에서 궁상떠는 것보다는 여러 군데 돌아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조금 얼버무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니
 까. 굳이 '그 곳의 어떤 아이가 폴리모프해서 날 몰래 홈쳐보
 려다 걸렸어'하고, 말할 필요성은 없겠지.
 
 "그럼 그 기숙사로 안내해 줄래?"
 "일단 델리만 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기숙사
 는 외부인 출입 금지라서 말이야."
 
 건성으로 대답하는 티레스녀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는, 곧장 쌍둥이들의 방을 빠져나오는 나였다. 늦장 부리는
 것보다는 어두워지기 전에 한번 기숙사에 놀러 가볼 생각이었
 던 것이다.
 
 
 
 
 보통 집보다 두어 배정도 큰 듯 하긴 했지만, 카이리온 기
 사양성학교에 있는 기숙사에 비하면 굉장히 아담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뭐 이 마을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지는 않을 듯 싶지만.
 
 '마음대로 해.'
 
 문득,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대충 한 손을 휘저으며 말하
 는 델리만의 모습이 떠올랐다. - 생각 외로 쉽게 승낙해서 조
 금 무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춤하긴 했다.
 여하튼 다시 꼬맹이들의 방으로 돌아가서 귀찮아하는 녀석
 들 손을 부여잡고, 기숙사의 앞까지 터덜터덜 난 도달할 수
 있었다.
 기숙사의 문 근처에는 때마침 누군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고 했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그 엘프가 뒤를 돌아보며 나와
 쌍둥이들을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선생같이 생긴 중년 엘프였다. 그는 천천히 우
 리 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 왔다는 인간들 중 하나인가 보군. 이 기숙사
 에는 무슨 볼일이 있는 거냐?"
 "아뇨, 단순히 구경을 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내 또래의 엘프들을 보고 싶어서 온 거였지만
 말이다. 그 폴리모프를 한 엘프를 발견한다면 더 좋겠지만,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테니. -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기에, 큰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
 음먹었다. 뭐 내 얼굴을 물어뜯은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만
 하고 간 것인데. 얼굴이 닳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성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음. 뭐 델리만 님에게 허락을 받은 거라면 상관은 없겠
 지."
 
 이곳에 오기 전에 델리만에게 미리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 듯, 그 중년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라 오너라."
 
 그의 등을 쫓아서 나와 쌍둥이 기숙사의 안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현관을 지나 걸음을 움직이자 단순하지만 세련미가 느껴지
 는 거실이 보였다. 그 중년엘프는 "이곳에서 기다려라."라고
 간단하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휙 사라졌기에, 썰렁한 거실 안
 에서 나와 쌍둥이들은 멍하니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자야하는데."
 
 티레스가 졸립다는 듯 푸념했다. 어제 초저녁에 잠들어서
 오늘 아침에 겨우 일어난 것 같았는데. 참 곰돌이란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잠을 좋아하는 아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마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중년 엘프와 내 또래 정도라고
 생각되는 네 명의 엘프들이 접근했다.
 아마 생김새는 내 또래라고 해도, 실제로는 거의 백 살 정
 도는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 이것도 어느 정도 엘프들과
 생활하다 생긴 경험이다. 100%정확하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할 정도는 될 자신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 정중한 인사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하는 네 명의
 엘프들. 그 중에서 한 엘프소녀가 네 옆에 나란히 서있는 쌍
 둥이들을 바라보며 당황스레 입을 열었다.
 
 "세레스, 티레스!?"
 
 이 엘프소녀가 바로 쌍둥이들이 말했던 그 에린이란 엘프인
 가 보다. 조금은 웨이브 진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단정한 모
 습이,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너희들이 왜 이곳에?"
 "이 인간 오빠가 기숙사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둘이
 안내해 준거야."
 
 세레스가 대답하자, 그제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에린이란 이름의 엘프소녀.
 
 '쌍둥이들이 자라면 저 모습과 비슷하게 될지도….'
 
 성격이나 분위기는 영 딴판이었지만, 솔직히 생김새는 매우
 닮았기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물론 쌍둥이들이
 저 정도 모습으로 자랄 나이가 되면, 나는 거의 할아버지가
 될 테지만. 적어도 상상하는 것은 자유니까 말이다. 이곳에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엘프가 없는 이상 괜찮은 것이겠지.
 
 "무엇을 더 구경하고 싶으냐?"
 
 중년 엘프가 잡생각에 빠진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내 또래의 엘프들도 구경했으니, 더 무엇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뭐해서.
 
 "이제 충분합니다."
 
 하고 말하며 쌍둥이들을 손을 부여잡고, 기숙사를 빠져나오
 는 나였다.

 

어디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새소리에 난 고개를 들어 올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 피곤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생
 각 없이 오랫동안 눈을 감은 탓인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을
 잔 모양이다.
 
 "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무엇. 회색의 털이 많고, 일반 개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크기가 큰 감이 없지 않게 있었다.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볼을 간질이는
 한줄기 바람의 느낌은 현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
 명했다.
 그것의 타오르는 램프의 빛과 같은 날카로운 두 눈은 나의
 몸을 향하고 있었다.
 
 '느, 늑대?! 늑대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참 바보 같은 생각이군. 늑대니까 숲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 젠장!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순간 내가 몸을 일으키자 조금 움찔거리며 뒷걸음질하는 늑
 대처럼 생긴 그 '무엇'. 괜히 적대적인 반응을 하는 것도 안
 좋은 판단이겠고, 또 갑자기 달아나는 것도 바보짓이 될 테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난 머리를 굴러야해 했다.
 
 '일단 침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늑대처럼 생긴 녀석이 워낙 '존재감'넘치는 모습
 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내가 백전노장의 용병도 아니
 고, 이런 상황에서 겁먹고 주저앉지 않으면 다행이지. '무슨
 탁월한 임기웅변으로 늑대를 쫓아내다!'라는 것은 꿈과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조금씩 떨려오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고, 난 그렇게 늑대
 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맛있는 먹이 감을 바라보는 탐
 욕에 젖은 눈, 같은 것은 아니고 그냥 신기하다는 바라보는
 눈이라는 느낌이랄까. - 눈빛으로 동물의 생각을 읽는 그런
 거짓말 같은 능력은 내게 있을 리 없지만.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말 것.'
 
 카이츠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물론 그런 약속 따위보다
 야 목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젠장."
 
 조금 시간이 흘러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상스러
 운 말이 자연스럽게 입가를 맴돌았다. 그냥 도망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들이차서, 무엇하나 냉철하게 생각할
 여유 같은 것은 개미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지겨워 지는 느낌도 들었다. 무슨 저 녀석이 침을
 뚝뚝 흘리며 이빨을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모르겠다. 잡아먹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
 
 그렇게 반쯤 자포자기하고 어금니를 꽉 물며 녀석을 노려보
 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녀석이 조금 더 날 바라보더니, 그냥 나무 사이로 슥 사라
 지는 것이다.
 
 "뭐, 뭐지?"
 
 나 자신도 어리둥절해서, 늑대가 사라진 맨 땅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내 모습이 무서워 도
 망간 것은 아닐 테고. 신기해서 좀 살펴보다가 흥미가 떨어져
 그냥 가던 길 마저 간 모양이다.
 순간 힘이 딱하고 풀려서 한숨을 쉬며 그렇게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긴장을 꽤 심하게 했던 모양인지 갑작스레 피곤함이
 온 몸을 엄습하는 듯 했다.
 
 
 
 
 언제 다시 잠이 들은 모양인지, 카이츠가 살짝 내 어깨를
 흔들자 화들짝 놀라 난 몸을 일으켰다.
 
 "아, 미안. 놀라게 한 것 같군."
 "괜찮습니다."
 
 조금 가위를 눌린 모양인지 식은땀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스
 치고 지나갔다. 내 굳은 표정을 조금은 근심스레 바라보며 카
 이츠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거짓말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늑대처럼 생긴… 그런 것이 나타나서."
 "늑대라고?"
 
 조금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카이츠가 대답했다.
 
 "깜박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회색 빛의 무엇인가 눈앞
 에 아른거리더군요."
 "그게 늑대였나 보군."
 
 늑대는 원래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점심 무렵, 그것도 마을에 인접한 곳을 어슬렁거리는 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내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면 그건 분
 명히 늑대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턱에 손을 집으며 고민
 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하는 카이츠. -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
 르자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대충 짐작 가는 엘프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짐작 가는 엘프? 설마 그것이 진짜 늑대가 아니라 엘프였던
 말인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자,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
 지으며 카이츠는 입을 열었다.
 
 "누군가 폴리모프한 것 같아. 미숙한 것을 보면 꼬맹이들
 중에 하나일 것 같군."
 "어떻게 미숙한 지 알 수 있습니까?"
 "그냥 살펴보는 정도라면 늑대로 폴리모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새라던 지, 작은 짐승으로 폴리모프하는 편이 더 나
 을 테니까 말이야."
 
 확실히 그의 말 대로다. 늑대같이 눈에 확 뜨이는 것을 선
 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이다.
 
 "엘프라는 종족이 워낙 장수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지 그래
 서 몰라도, 인간으로 따지자면 기숙사 비슷한 곳이 있단다.
 인간으로 따지면 거의 지금 네 나이 정도의 또래들이 생활하
 는 곳이지. 내 생각에는 그곳의 꼬맹이들 중 하나일 것 같은
 데 말이야."
 
 엘프가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과 묘인족을 제외하자면,
 대륙에서 제일 넓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디에선가
 들어 알고 있었다. 여하튼 조금 무책임한 면모도 있는 듯 했
 다. 아무리 뭐라 그런들 자신의 아이를 남겨두고 여행이라니
 말이다. - 내 아버지 같은 경우는 조금 특수한 케이스니 그냥
 넘어 간다고 해도.
 '아들아, 난 여행을 다녀오마.'하고 휘리릭- 사라져 버린다
 는 것은 조금은 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숙사는 어디죠?"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그다지 없는 거 같아서 의
 아해했었는데. 기숙사 구경도 할 겸 한번 놀러 가는 것도 나
 쁘지 않을 것 같아 난 그렇게 질문했다.
 
 "마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야."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대충 바라보며 살짝 고개
 를 끄덕였다. '그리 멀지 않다면 오늘이라도 한번 가보는 것
 이 좋겠다'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아, 기숙사요? 에린언니가 다니고 있어서 확실히 알고 있
 기는 하지만…."
 
 아직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에 조금은 이른 시간, 세레스녀
 석이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말끝을 흐리는 것도 같아서 난
 다시 질문했다.
 
 "에린언니는 누구지?"
 "저희 둘보다 먼저 태어난, 말 그대로 언니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고요."
 "꼭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거야?"
 "돌봐줘야 할 엘프가 마을에 없는 이상 100%겠죠.'
 
 음, 대충 무엇인가 알 것 같기도 하다. '장수'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다. - 부모인 이상 자식을 기
 르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백
 년 동안 자식 교육만 시켜라'라고 말한다면, 비웃어 줄 것이
 틀림없다.
 
 "저희 둘도 곧 기숙사 생활을 하겠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악순환 아닌가. 어려서 구속받고 자란
 것을 성인이 되어 충족하는 것, 그것이 반복되어 어느새 당연
 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그리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또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엘프들의 문화에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못되겠지만.
 
 "흐음."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이런 면
 에서는 조금 민감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인상을 찡그
 리며 끙끙-거리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마주 바라보더니, 티레
 스녀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기숙사에 대해 묻는 거야?"
 "아, 한번 가볼까 해서…. 뭐 이곳에 관광 온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가만히 방에서 궁상떠는 것보다는 여러 군데 돌아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조금 얼버무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니
 까. 굳이 '그 곳의 어떤 아이가 폴리모프해서 날 몰래 홈쳐보
 려다 걸렸어'하고, 말할 필요성은 없겠지.
 
 "그럼 그 기숙사로 안내해 줄래?"
 "일단 델리만 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기숙사
 는 외부인 출입 금지라서 말이야."
 
 건성으로 대답하는 티레스녀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는, 곧장 쌍둥이들의 방을 빠져나오는 나였다. 늦장 부리는
 것보다는 어두워지기 전에 한번 기숙사에 놀러 가볼 생각이었
 던 것이다.
 
 
 
 
 보통 집보다 두어 배정도 큰 듯 하긴 했지만, 카이리온 기
 사양성학교에 있는 기숙사에 비하면 굉장히 아담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뭐 이 마을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지는 않을 듯 싶지만.
 
 '마음대로 해.'
 
 문득,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대충 한 손을 휘저으며 말하
 는 델리만의 모습이 떠올랐다. - 생각 외로 쉽게 승낙해서 조
 금 무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춤하긴 했다.
 여하튼 다시 꼬맹이들의 방으로 돌아가서 귀찮아하는 녀석
 들 손을 부여잡고, 기숙사의 앞까지 터덜터덜 난 도달할 수
 있었다.
 기숙사의 문 근처에는 때마침 누군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고 했다. 내가 인기척을 내자 그 엘프가 뒤를 돌아보며 나와
 쌍둥이들을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선생같이 생긴 중년 엘프였다. 그는 천천히 우
 리 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 왔다는 인간들 중 하나인가 보군. 이 기숙사
 에는 무슨 볼일이 있는 거냐?"
 "아뇨, 단순히 구경을 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내 또래의 엘프들을 보고 싶어서 온 거였지만
 말이다. 그 폴리모프를 한 엘프를 발견한다면 더 좋겠지만,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테니. -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기에, 큰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
 음먹었다. 뭐 내 얼굴을 물어뜯은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만
 하고 간 것인데. 얼굴이 닳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성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음. 뭐 델리만 님에게 허락을 받은 거라면 상관은 없겠
 지."
 
 이곳에 오기 전에 델리만에게 미리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 듯, 그 중년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라 오너라."
 
 그의 등을 쫓아서 나와 쌍둥이 기숙사의 안을 향해 걸음을
 움직였다.
 현관을 지나 걸음을 움직이자 단순하지만 세련미가 느껴지
 는 거실이 보였다. 그 중년엘프는 "이곳에서 기다려라."라고
 간단하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휙 사라졌기에, 썰렁한 거실 안
 에서 나와 쌍둥이들은 멍하니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자야하는데."
 
 티레스가 졸립다는 듯 푸념했다. 어제 초저녁에 잠들어서
 오늘 아침에 겨우 일어난 것 같았는데. 참 곰돌이란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잠을 좋아하는 아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마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중년 엘프와 내 또래 정도라고
 생각되는 네 명의 엘프들이 접근했다.
 아마 생김새는 내 또래라고 해도, 실제로는 거의 백 살 정
 도는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 이것도 어느 정도 엘프들과
 생활하다 생긴 경험이다. 100%정확하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할 정도는 될 자신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 정중한 인사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하는 네 명의
 엘프들. 그 중에서 한 엘프소녀가 네 옆에 나란히 서있는 쌍
 둥이들을 바라보며 당황스레 입을 열었다.
 
 "세레스, 티레스!?"
 
 이 엘프소녀가 바로 쌍둥이들이 말했던 그 에린이란 엘프인
 가 보다. 조금은 웨이브 진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단정한 모
 습이,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너희들이 왜 이곳에?"
 "이 인간 오빠가 기숙사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둘이
 안내해 준거야."
 
 세레스가 대답하자, 그제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에린이란 이름의 엘프소녀.
 
 '쌍둥이들이 자라면 저 모습과 비슷하게 될지도….'
 
 성격이나 분위기는 영 딴판이었지만, 솔직히 생김새는 매우
 닮았기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물론 쌍둥이들이
 저 정도 모습으로 자랄 나이가 되면, 나는 거의 할아버지가
 될 테지만. 적어도 상상하는 것은 자유니까 말이다. 이곳에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엘프가 없는 이상 괜찮은 것이겠지.
 
 "무엇을 더 구경하고 싶으냐?"
 
 중년 엘프가 잡생각에 빠진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내 또래의 엘프들도 구경했으니, 더 무엇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뭐해서.
 
 "이제 충분합니다."
 
 하고 말하며 쌍둥이들을 손을 부여잡고, 기숙사를 빠져나오
 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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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 빨리 글 올리고 밥을 먹어야..


제  목: 38회 - http://chungeoram.com/zero/view.php?id=f_angryman&no=38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58)
 
 
 
 
 
 
 
 
 vol.058 promise
 
 
 "에린언니 이쁘지 않아?"
 "아, 그렇군."
 
 뭐 엘프 치고 얼굴이 단정하지 않은 케이스는 보기 힘든 것
 이 사실이었지만. 확실히 쌍둥이들의 언니라고 하는 에린이란
 엘프는, 그런 엘프 중에서도 확연히 눈에 뜨일 정도로 예쁘게
 생긴 것 같았다. 그런 것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나조차 가
 슴이 뜨끔했을 정도니.
 
 "후훗."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그런 날 바라보며, 세레스녀석이
 조금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는 것 같았기에 조금 분노가 솟
 구쳐 올랐다.
 저런 꼬맹이녀석 말에 발끈해서 화를 낸다는 것도 좀 뭐 해
 서, 대충 안 본 셈치고 무시했지만 말이다. - 쉽게 보인다는
 것도 싫긴 했지만. 일일이 신경 쓰며 화내는 그런 피곤한 성
 격이라 오해받는 것은 죽어도 사양이니.
 
 "흐음."
 
 예쁜 것은 예쁜 것이니까 말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번 축제 때, 자룬왕자와 춤을 추던
 공주님이란 사람과 비슷한 정도? 내 눈이 100% 주관적이라고
 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첫 인상에 확연히 가슴에 '무엇인
 가' 와 닿게 하는 그런 케이스는 굉장히 드문 것이다.
 요즘 들어서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는 것도 같아서 저절로
 한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 조금은 변명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주위 환경 탓이 크다. 식당이나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아이린 씨나 엘리, 리체녀석도 정말 단정하게 생긴 편
 인 듯 하고. 방학마저 엘프들 천지인 곳에 와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궁시렁거리며 무엇인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내 얼굴을, 세레
 스녀석이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내 주위에는 잘난 녀석들뿐이구나, 하는 생각."
 "베리오빠도 꽤 귀엽게 생겼는걸. 너무 그렇게 좌절하지 말
 라구."
 
 윽, 저 녀석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다니…! 화를 내야 하
 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 생각 같아
 서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남자가 소심하게 그런
 것 가지고 화를 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사내녀석이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건, 어찌 보면 안 좋은 것
 아닌가. 특히 자신보다 정신연령이 어린 녀석에게 그런 소리
 를 듣는 다는 건 말이다. - 여자아이라면 몰라도 남자에게 귀
 엽다는 칭호는, 내가 고전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 인지 몰라
 도 참 듣기 거북했다.
 
 "헤헷, 난 거짓말 안 하니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져도 될
 꺼야."
 
 딜레마에 빠진 나를 그렇게 다시 한번 좌절의 수렁으로 몰
 아넣는 녀석의 결정타.
 
 "티레스는 어떻게 생각해?"
 
 세레스녀석만 보는 눈이 이상한 거야, 당연히 난 이렇게 생
 각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인간이란 종족에 대해 동경을 가
 지고 있었던 엘프니까 말이다. 적어도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
 지진 못했으니, '그렇구나'하고 납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응…. 귀여워."
 "… …."
 
 저 녀석이 하도 졸려서 지금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한 것이
 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수긍하며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같이 가-! 귀.여.운 베리오빠-."
 
 헛것을 듣고 있는 거다. 아니 설령 저것이 환청이 아니라고
 해도 저 녀석들이 날 가지고 노는 것이다! - 아니, 설령 그것
 이 사실이라고 해도 난 절대 믿지 않을 테다. 저런 근거 없는
 잡소리에 흔들릴 내가 아니다.
 … 그렇게 암시하듯 수없이 중얼거리며,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는 나였다.
 
 
 
 
 "눈이 많이 차분해 졌구나."
 "그런가요? 별로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자, 언제나처럼 미소지은 얼
 굴로 대꾸하는 카이츠 씨.
 
 "아직 자신이 느낄 수는 없을 테지."
 "으음, 그런가요…."
 
 뭐 특별히 눈에 뜨이게 변한 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래도 어느 정도 몸이 가벼워 진 것은 사실이었다.
 기르디녀석이 육체적인 강함을 추구한다면 하면, 카이츠는
 무엇인가 정신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할까. 여하튼 조금은 그
 런 느낌이 들었다. - 지금은 확실히 뭐라 말할 수는 없겠지
 만, 역시 강함이란 것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개인차가 있는 것
 같았다.
 
 '벌써 꽤 시간이 흘렀군.'
 
 어느새 이 숲에 온 지도 열흘 정도 지난 것 같았다. 엉뚱한
 곳에 텔레포트해서 고생할 때만 해도 식당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지금은 뭐 돌아간다고 해도 그만, 가지
 못한다고 해도 그만인 듯 하다.
 
 "시아라는 아이는 언제 돌아온다고 했지?"
 "아마도 내일인가…. 그런 것 같군요."
 
 이틀 전인가, 시아녀석이 한밤중에 내 방에 찾아와서 이렇
 게 말했던 것 같다.
 
 '잠시 며칠 간 다녀올 곳이 있어요. 위험한 곳이 아니니 걱
 정하지 마세요.'
 
 어디를 가는 것이라고 말 하지조차 않았는데 걱정하지 말라
 니. 물론 나도 같이 동행하려고 했으나 예상외로 녀석이 화내
 며 반항한 덕분에 결국 말싸움까지 하게 되었다. - 녀석의 고
 집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억세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응, 그래 잘 다녀와'하고 순순히 보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국 델리만에게 어느 정도 사정을 들은 후에 녀석을 보내
 줄 수 있었다. 예전에 녀석에게 심한 말을 한 것도 사과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말싸움을 해서 사이가 더 벌어진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속이 깊은 아이니까 나중
 에 잘 말하면 괜찮아 지겠지'하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휴…."
 
 시아녀석만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 했
 다. 녀석이 무엇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
 었지만, 요즘 들어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하는 나 자신
 이 한심했다.
 '나 같은 존재는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말 따위를 하고 있
 는 시아녀석은 정말 싫다. 설령 남들이 비겁하다고 욕 할 지
 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진심이었
 다.
 녀석과 나는 근본적인 가치관부터 다른 것 같다. 착하고 순
 수한 것도 좋지만 자신을 위해서 어느 정도 이기적으로 행동
 하는 것이 나는 더 바른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몰라도 자신의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면서 남을 도우려 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래서 내가 친구를 사귀기 힘든 거일지도.'
 
 뭐 내 인생 남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순 없겠지만, 그래도 수동적으로 남에게 맞춰서
 사는 건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잘 되겠지."
 
 무엇인가 착잡한 기분에 한숨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
 는 나였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 시아녀석이 돌아오고 다시 며칠이 지
 난 어느 날 아침. 쌍둥이들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델리
 만 님이 불러'라고 귀찮다는 듯 내게 말했다.
 사실 나와 시아를 돌봐주는 한 여자 엘프가 있는 듯 했지만
 말이다. 급한 볼일이 생겼을 때 나에게 말을 전해주는 임무는
 쌍둥이들의 몫인 것이다. - 간혹 이렇게 아침에 졸린 눈으로
 전달사항을 말하는 녀석들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해서. '뭐 나
 중에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조그만 선물이라도 들고 와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여하튼 그 노인네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대충 옷을 갈
 아입고 털레털레 걸음을 움직였다.
 간만에 몸을 조금 움직인 까닭에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삐거덕거리며 성화였다. 하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사실 어제부터 조금이지만 카이츠에게 검술을 배울 수 있었
 다. 그냥 기본 적인 동작일 뿐이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
 다는 천국이라고 말할 만큼 좋은 게 사실이었다.
 
 "음, 왔군."
 
 노크를 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델리만이 보던 책을 한
 쪽에 치우더니 날 바라보며 주름살 가득한 입을 열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가?"
 "네, 괜찮습니다."
 
 내 에로사항을 알기 위해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이 늙은이
 가 성격답지 않게 얼어죽을 안부냐. 뭐 인사치레지만 나를 걱
 정해주는 것이니 고맙게 여겨야겠지만 말이다. 조금 뜸을 들
 이더니 곧 한숨쉬며 입을 여는 델리만.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도 좋다."
 "네?"
 
 그 곳이라면, 다시 수도에 있는 식당에 돌아가도 된다는 이
 야기인가. 방학 내내 이 숲에서 지내는 것을, 마음속으로 거
 의 확정하다시피 했기에 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싫은가?"
 "아뇨, 이렇게 일찍 보내줄 것이라 생각지 못해서."
 "볼일도 다 끝난 것 같은데, 더 붙잡아봤자 뭐에다 쓰겠
 나…."
 
 하긴 나 같은 녀석 더 오래 잡아둬 봤자 쓸모 없는 것이 사
 실이지. 뭐 힘이 센 것도 아니고, 특별히 쓸모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 조금 자학적인 것도 사실이지
 만, 적어도 난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할 만큼 바보는 아니
 다.
 
 "네, 그럼 오늘 돌아가는 것입니까?"
 "마음대로 하게. 언제든 돌아가고 싶으면 내게 찾아오면 되
 니까."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고는 한 쪽에 치워두었던 책을 집
 어 드는 델리만.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가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