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이야기를 접하고도 한동안 기사를 읽지 않았다

박순형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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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이야기를 접하고도 한동안 기사를 읽지 않았다. 30명 넘게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조승휘라는 친구의존재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가 왜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 죄를 절대 용서 받을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봐서는 정말 슬픈일이 아닐수 없다. 그 친구와 같이 미국에 이민자의 신분으로 (지금은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살아가야하는 1.5세의 아픔을 반영하는 단적인 예일수도있다.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손가락질을 할수도 있지만, 우리 이민자 그리고 1.5세들이 격는 고충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버지가 걱정스레 얼바인에서 전화를 하셧다. 난 미국친구들과 잘 지낸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말은 했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로써 그런 걱정을 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자신들과 자식들을 위해 먼 이민길에 오르신 부모님들이, 또 유학을 보내고 가슴졸이고 있을 부모님들이, 어쩌면 지금 막심한 후회를 하고 계실지도 모를일이다. 어떤 고충이 우리에게 존재하냐고 묻는다면, 난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미국에 이민온지 10년. 정체성의 혼란을 가슴으로 삼키며 오직 성공만이 내가 갈 길이다 라고 생각하고, 책속에 일에 학교에 도서관에 파 뭍혀 지낸다. 쓰지 않는 한국말은 자꾸 그 단어들과 어휘와 풍습과 한국인으로써의 어떤것들이 희미해져가고, 완벽한 영어, 미국 문화를 소화하지 못하는. 쉽게 말하면, 한국말도 미국말도 어느것하나 완벽한것이 없다. 조승휘라는 그 친구와는 다르게 난 잘 지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그 친구의 아픔이다. 부모님들은 자식들 뒷바라지에 인성보다는 성공의 문턱으로 가는 교육에 더 열을 올릴수 밖에 없었지 싶다. 그 친구는 (어떤 정신적 문제가 존재하엿든) 얼마나 외로웠을까. 예술이라는 직업을 가진 나로써도, 정말 감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로써는, 그 친구의 외로움이 갑자기 내 슬픔으로 밀려와서, 기사를 읽는 동안 주책맞게도 눈물이 그렁거렸다. 우린 외롭다. 부모와 형제와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다. 이것들이 그 친구의 죄, 그리고 그 타당성을 말하고자 하는것은 절대 아니다. 그 친구는 잘못을 했고, 미국정부는 그 원인규명을 위해 뛰고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우리 이민자들의 고충과 외로움을 서로가 보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친구로인해 희생된 많은 버지니아 TECH.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Bra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