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왔는데...

최용일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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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살리기?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왔는데...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17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과 만나 노동과 기업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기업이 해외투자를 늘리고 국내 공장을 축소하는 추세여서 제조업 공동화와 구조조정이 만만치 않아 민주노총도 고민”이라며 기업에는 해외투자를 삼가 달라는 요청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에 앞서 경북지역 공장들을 돌아보면서는 “앞으로 현장 여론과 다른 중앙 차원의 파업은 자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민주노총 이 위원장의 이러한 입장변화를 환영하고 나섰지만 시각은 매우 까칠해 보인다. 하긴 그간의 노조 행태를 보아 그런 박절한 대접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법 하긴 하지만.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붉은 머리띠’와 ‘총파업 투쟁’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민주노총 위원장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한편으로 의아하면서도 참으로 반갑다”고 했다. 그냥 반갑다고 하면 될 것을 웬 사족이 그리 긴 것인가 모르겠다. 한국의 강성노조와 생산성을 웃도는 높은 임금 때문에 제조업의 해외 탈출 러시가 많이 진행됐고 외자(外資)도 발길을 돌렸는데, 제조업 공동화 위기의식이 매우 늦었다고 질책했다. 그리고 제조업 공동화를 재촉한 큰 책임이 있는 민주노총이 지금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제조업을 살려낼 수 없고 민주노총의 생존마저도 어렵다고 경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작년에만 7차례의 총파업과 70여 차례의 결의대회, 민중대회 등을 벌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반대 총파업을 하는가 하면 노사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반미반전(反美反戰)에 자주통일 구호를 외쳤다면서 노동단체가 아니라 사회변혁운동 단체처럼 보인다고 폄하했다. 아울러 “그러한 민주노총의 운동은 대다수 근로자의 복지나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실업청년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한국노총은 일자리 확충에 목표를 두고 저만치 앞서 간다. (그래서) 노조 조직률은 세계 최하위인데 대기업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가 줄을 잇고 있으며, 코오롱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무파업 선언으로 박수를 받고 있다”는 등 한국노총과 비교를 통해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행태로 일관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역시 그러한 까칠한 시각은 다르지 않았다. 민노총의 변신이 옳은 인식이라면서도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게 해외투자 자제를 요청하겠다. 제조업 공동화를 풀기 위해 정부와 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자”고 했다는 이 위원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비자(국민)에게 먼저 묻는 것이 순서인데, 상대를 잘못 잡았다고 비아냥거린다.


비싼 월급 받는 한국 노동자가 만든 자동차와 싼 월급 받는 중국 노동자가 만든 같은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똑같이 경쟁한다는 도식으로 중국 노동자가 생산성도 높은데, 소비자가 질은 좋고 값은 싼 ‘중국산 한국차’를 선호하니 공장을 중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국내 노동자들의 파업, 잔업 기피, 높은 노조 전임자 및 대의원 비율에 있다면서 한국 공장의 설비를 돌릴까, 아니면 중국공장 설비를 돌릴까를 결정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논법이다.


그러면서 민노총과 민노총 산하 노조들이 ‘주차장엔 공장 만들 수 없다’, ‘2교대는 안 된다’고 회사를 상대로 벌이는 투쟁은 상대를 잘못 잡은 것이고,  이런 노조가 만든 제품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이며,  아무리 강한 노조도 소비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몸뚱이 전체가 죽어가는 데 허파나 심장이 혼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섬뜩한 표현에 실어 회사가 문을 닫고 공장이 외국으로 나가면 노조와 노조원도 기댈 게 없어진다고 경고한다.


매일경제는 어찌 다르겠는가? “이런 모습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지금까지 강경 노조의 투쟁일변도 노동운동이 국내 제조업 공동화에 한몫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따라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거론할 때는 스스로 성찰과 반성을 우선하지 않으면 노동계의 제조업 공동화 거론은 자칫 자본가와 경영자 공격용 빌미로 들릴 수 있다”는 논법으로 몰아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경제지답게 일방적으로 여론 뒤에 숨어 까칠하게 홀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낸 것이 괜찮았다.


2010년 위기론을 주장하는 이 위원장이 조만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만나 국내 투자 확대와 국외투자 자제 등을 요청할 것이라고도 한 점을 들면서, 기업들은 이윤과 시장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게 당연하므로  국내 기업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 탓할 게 아니라 외국 기업들이 국내로 들어오도록 감세 등을 통한 투자유인 체계를 구축하고 규제 완화나 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노조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지적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하고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말을 아끼면서 저비용 구조 정착에 노조도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지만 그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노조만의 책임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 2월 이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민주노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미 FTA 비준 저지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히는 등 아직 미덥지 못한 대목도 있으니 시대를 잘못 읽는 운동은 당장 중단하는 것이 옳다는 당부를 했을 뿐이다.


문화일보는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대기업의 역할이 괄목할 만함에도 대기업에 대한 국내 시각, 특히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 기조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같은 날 김병배 공정위 부위원장이 총액 제한제에 대해 독립·중소기업의 성장·발전을 저해한다고 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대기업 투자는 수천억 내지 수조원 규모로 중소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영역임은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문제점과 이 위원장의 고용위기론을 엮어서 노동계도, 정부도 ‘누가 일자리를 만드는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민주노총의 변신은 아직 FTA반대 입장을 접지 않고 있으며, 하부 단위까지의 파업자제까지 선언한 점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흡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수 일간지가 보여준 여론재판식 사설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국 노동계를 양분해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변신이 주목된다. 한국노총은 지난해부터 정부의 해외 투자설명회에 적극 참여하며 외국 투자자들에게 ‘바이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민노총 또한 올해 들어 온건파인 이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연례행사처럼 지속되던 춘투를 하지 않는 등 ‘강성 노조’ 이미지를 걷어내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온건파로 변신을 꾀해온 한국노총에 이어 강성노조로서 시민단체인지 정치결사체인지 모를 정도이던 민주노총마저 여하튼 변신을 꾀하고 있으니 정치권이 나서서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한다면 한국경제의 부활에 필요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경제가 다시 뛰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Paradigm Shift)는 점에서 문화일보나 매일경제와 같은 대안제시가 필요한 것이지 경제공동화니 소비자 선택이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과거 잘못을 먼저 인정하라며 까칠하게  닦아 세우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기업은 해외로 이익을 따라 가는 것 당연하고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에 따라 선택하는 것 당연하지만 그에 따른 공동화는 국민의 부담이고 정치인의 몫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이 노동계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늘자 헤럴드 경제에도 나왔지만 최근 ‘거꾸로 가는 민주노총’이라는 책을 펴낸 김혜준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은 “불법투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법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방관적 또는 온정적인 법 집행에 따른 노조의 법 경시 풍조 때문”이라며 “정부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노동 관련 3대 법규만 제대로 지켜도 노사불안 체감도는 현격히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방관자적이고 온정적인 법집행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정치인들의 개입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정치권이 공을 가졌을 때는 바로 그 온정적이고 시혜적인 [노조 달래기]였다면 다시 넘어온 공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글의 제목에도 "공이 다시 넘어왔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정치권이 할 일은 바로 이러한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을 지원하는 것이지 노조 위원장을 만나서 악수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론도 바로 그런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해야지 여론에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