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의 사랑은 그 불길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다른 어떤 정열보다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 힘은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 만큼 강력하다.
사랑에 빠져 목숨을 바친 젊은 베르테르나 야곱, 혹은 올티스 같은 사람들은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흔히 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랑 때문에 고뇌한 흔적은 신문이나 잡지의 가십 거리로 간략하게 보도 될 뿐이고, 그들이 죽은 후에는 구청 호적계 직원의 손에 의해 간단하게 말소 처리될 뿐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보다 사랑의 정열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둘만의 행복을 확신하면서 왜 사회적 관습을 과감하게 끊지 못하고 죽어서 자신들이 그토록 확신했던 행복을 저버리는가 하는 점이다. 사랑은 그 처럼 목숨과 바꿀 만큼 일생의 중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에 사랑에 관한 많은 격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내린 정의는 신화나 우화 혹은 훈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것도 주로 그리스인들에 관해서만 썼다.
루소의 사랑론은 미흡한 데다가 설명이 잘못 되었으며, 칸트는 겉만 훑고 지나간 데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완전 문외한이라고 할만큼 불확실하다. 스피노자의 정의는 아주 간단하므로 여기서 인용해보겠다. "남녀간의 사랑은 외적 원인을 통해서 얻게된 쾌락에 불과하다'"
나는 선배 철학자가 한 말을 논평할 입장이 못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은 피하겠다. 그러나 연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기들 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멋진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사랑을 별나라의 수식어로 찬미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내리는 정의가 너무 형이하학적이라고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내 결론은 절대적이며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이 목숨과 바꿀 만큼 일생의 중대한 사건일까?
사랑은 없다
-쇼펜 하우어-
*사랑이 목숨과 바꿀 만큼 일생의 중대한 사건일까?
남녀간의 사랑은 그 불길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다른 어떤 정열보다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 힘은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 만큼 강력하다.
사랑에 빠져 목숨을 바친 젊은 베르테르나 야곱, 혹은 올티스 같은 사람들은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흔히 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랑 때문에 고뇌한 흔적은 신문이나 잡지의 가십 거리로 간략하게 보도 될 뿐이고, 그들이 죽은 후에는 구청 호적계 직원의 손에 의해 간단하게 말소 처리될 뿐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보다 사랑의 정열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둘만의 행복을 확신하면서 왜 사회적 관습을 과감하게 끊지 못하고 죽어서 자신들이 그토록 확신했던 행복을 저버리는가 하는 점이다. 사랑은 그 처럼 목숨과 바꿀 만큼 일생의 중대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에 사랑에 관한 많은 격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내린 정의는 신화나 우화 혹은 훈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것도 주로 그리스인들에 관해서만 썼다.
루소의 사랑론은 미흡한 데다가 설명이 잘못 되었으며, 칸트는 겉만 훑고 지나간 데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완전 문외한이라고 할만큼 불확실하다. 스피노자의 정의는 아주 간단하므로 여기서 인용해보겠다. "남녀간의 사랑은 외적 원인을 통해서 얻게된 쾌락에 불과하다'"
나는 선배 철학자가 한 말을 논평할 입장이 못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은 피하겠다. 그러나 연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기들 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멋진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사랑을 별나라의 수식어로 찬미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내리는 정의가 너무 형이하학적이라고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내 결론은 절대적이며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