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m - Careless Whisper (MV)

김상식200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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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m -  Careless Whisper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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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외국가수







멤버 : 
조지 마이클(리더), 앤드류 리즐리


 


 


조지 마이클....


 


 


1987년 6월 3일은, 조지 마이클이 왬(Wham!)을 떠나 본격적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의 행보에 나섰음을 알리는 히트 싱글 'I Want Your Sex'가 영국 BBC 방송국에서 방송 금지 처분을 당한 날이다. 영화 의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되었다가 싱글 커트 된 이 곡은 지금으로써는 그다지 선정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 노래말과 뮤직 비디오가 동시에 화제가 되었고 같은 해 발표된 첫 솔로 앨범 [Faith]에도 삽입되었으나 국내 반에서는 심의에 걸려 삭제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물며 영국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곡이니 국내에서 무사했을 리 없다.
1963년 6월 25일생인 조지 마이클은 블루 아이드 소울의 기수로 평가 받으며 'Faith', 'One More Try', 'Father Figure', 'Monkey’등의 No.1 싱글 외에도 국내 팬들에게 크게 사랑 받은 애청 발라드넘버 'Kissing A Fool’등을 연이어 히트 시켰다. 1990년에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을 내 놓으면서 보다 진지한 음악 세계로의 변신을 보여 준 그는 No. 1 싱글 'Praying For Time’외에 'Freedom '90’등이 히트했으나 전작이 보인 센세이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후로도 깔끔하고 단정한 펑키 소울 트랙들과 매력적인 발라드 넘버들을 자유 자재로 엮어 내 비평가들에게 호평 받았으나 다소 난해한 음악적 성향으로 인해 미국 및 아시아 시장에서의 대중적인 인기는 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퀸과 함께 한 [Five Live](1993년), [Older](1996년), 베스트 앨범 [Ladies & Gentlemen](1998년)을 내놓았으며 그간 음반사와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이는 되려 조지 마이클 개인의 음악적 역량이 표출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일 수 있다. 그가 음악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빚진 20세기 대중 음악계가 낳은 산물들을 그 나름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소화한 [Songs From The Last Century]가 이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소울 적이고 재지한 분위기가 물씬한 가운데 상업성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음악관에 투철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편, 이제 보컬리스트로 뿐 아니라 작곡가로 또 프로듀서로 절정기를 구가할 준비를 마친 그가 오랜 침묵 끝에 [유니버설 UK]로 이적해 출시한 싱글들인 'Freeek!'와 'Shoot The Dog' 등이 예상외의 부진을 거두어, 정규 앨범 출시 여부가 불확실해진 상태다.


oimusic 2003년 06월 양중석


사실 현재 조지 마이클의 모습에 그의 올드 팬들은 당혹감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폴 매카트니, 엘튼 존의 뒤를 잇는 영국 국가 대표급 '멜로디 메이커'로서 재능을 과시했던 과거사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듀오 왬!(Wham!)은 물론이고 'Faith(4주)', 'Father Figure(2주)', 'One More Try(3주)', 'Monkey(2주) 등 무려 4곡의 빌보드 1위를 쏟아냈던 솔로 데뷔작 [Faith](1987), 한층 깊어진 동시에 여유로운 느낌을 담아내며 800만장을 팔아치운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1990)에서 들려준 그의 선율은 매혹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급격히 변화된 시점은 [소니]와의지루한 법정 공방부터였다. 아티스트의 자율성에 대해 깊이 각성한 그는 '고의적으로' 비 대중적 곡들을 쓰기 시작했다. 비록 3집 [Older](1996)를 통해 영국 내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맛은 예전만 못했다. 대신 오랜 기간 천착해왔던 흑인 필을 대폭 주입시켰다.
이런 그의 음악적 방향타는 4번째 솔로 앨범이자 재즈 커버들만으로 채운 [Songs From The Last Century]로 결실을 맺었다. 본격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임을 선언한 것. 재즈 클래식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폴리스의 'Roxanne', 유투 멤버들이 제작한 'Miss Sarajevo' 등을 통해 강한 변신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제 2의 'I Want Your Sex'라 부를만한 싱글 'Freeek!'을 내놓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셉 칸이 연출한 뮤직 비디오가 특히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조지 마이클은 고난 끝에 획득한 아티스트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음악 여정을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내면 속에는 마치 결코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물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oimusic 2002년 12월


왬(Wham!)이란 도발적인 이름으로 팝 신에 뛰어들어, 지난 1982년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를 발표하던 때만 해도, 그 둘에게는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바지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섹스 어필하는 '배드 보이'의 이미지가 짙었다. 하지만, 점차 스포트라이트가 핀 업 보이 앤드루 리즐리 대신 싱어 송라이터 조지 마이클에게로 옮겨가면서 급기야 1986년 '천국의 가장자리에' 이른 이들은 해체를 결심하게 되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믿을 것은 얼굴 뿐, 정작 기타 코드 하나 제대로 못 잡았던 앤드루는 이제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예견된 솔로행을 진행한 조지 마이클은 1987년 [Faith] 앨범을 발표해, 타이틀 트랙을 필두로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I Want Your Sex'과 같은 넘버 원 싱글을 낳았다. 국내에서는 그윽한 재지(jazzy) 발라드 'Kissing A Fool'이 각별히 사랑받았다.
하지만 어쿠스틱 주의를 표방하며 포크를 결합한 그 만의 사운드를 들고 컴백한 2집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은 'Praying For Time'과 'Freedom 90' 등이 거둔 히트에도 불구하고 판매고나 상업적 성공 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앨범 홍보와 관련된 일체의 활동에 관여치 않을 것을 천명하면서, 뭔가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Vol. 2] 앨범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었고, 조지 마이클은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버진(Virgin)]으로의 이적을 단행했다. 영국 소울의 첨병임을 자처하며 1996년 [Older] 앨범을 발표하지만 영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의 인기는 미 대륙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 했다.
대신 1998년 4월, 뜻밖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LA에 위치한 공원 화장실에서 부적절한 행위 도중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coming-out)을 단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1999년 말에는 스탠더드 재즈 고전과 팝 히트 넘버들을 재해석한 [Songs From The Last Century] 앨범을 발표해 평단의 찬사와 일반 팝 대중의 냉담한 반응을 동시에 얻어냈다. 공창(公娼)을 그린 싱글 'Roxanne'의 뮤직 비디오가 일부 국가에서 방영 금지 소동이 일어난 일도 화젯거리였다. 그 밖에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든가 혹은 휘트니 휴스턴과 듀엣 곡 'If I Told You That'을 발표한 것 그리고 싸구려 팝 스타들로 물들어가는 영국 팝 음악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신문 기고문과 관련된 소식도 입수되었지만, 정작 신보를 갈망하는 팬들의 갈증은 쉽게 풀릴 줄 몰랐다.
하지만 존 레넌이 1971년 'Imagine'을 작곡하는 데 사용했던 피아노가 경매 시장에 나돌자 조지 마이클이 200만 달러 이상의 거금을 지불해 사들여 다시 리버풀에 있는 비틀즈 박물관에 기증한 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가 스타인웨이(Steinway) 피아노를 사용해 신곡을 하나 녹음한 후, 돌려주기로 했던 일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중동(靜中動)'이라고 무언가 꾸준히 작업을 하고는 있었던 것이다.

2001년이 다 접어들 무렵 돌기 시작한, 조지 마이클이 [유니버설]로의 이적을 단행하리라는 혹은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라는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보다 정확히는 [유니버설] 산하의 레이블 [Polydor UK]로 소속사를 옮겼다. 올 상반기에 엄청난 파장을 낳을 싱글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이요, 한국계로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쌓은 뮤직 비디오 감독 조셉 칸(Joseph Khan)과 손잡고 LA의 모 스튜디오에 칩거하며 300만 달러짜리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18일, 드디어 그 가공할 만한 위력의 새 싱글 ‘Freeek!’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미 불법 유출된 MP3 음원을 통해 매력적인 펑키(funky)댄스 넘버의 맛을 보고, 파격적인 가사에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개된 뮤직 비디오 클립은 클린 버전만으로도 이미 하드코어 포르노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 뮤직 비디오 출연을 제외하면 올 가을께 발표할 정규 스튜디오 앨범 발매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일체 얼굴 드러내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장담이 있은 탓에 그만큼 주목도도 컸다.

oimusic 2002년 04월 양중석


1963년 6월 25일 영국에서 태어난 조지 마이클(본명:Georgios Kyriacos Panaylotou)은 공식 앨범으로만 왬 시절에 3장(FANTASTIC, MAKE IT BIG,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1990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솔로작으로 라이브 앨범과 베스트 앨범 포함 5장(FAITH,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 FIVE LIVE, OLDER, LADIES & GENTLEMEN)을 내놓았으며 왬 시절 이후 7곡의 빌보드 팝 싱글 차트 넘버 원곡(Wake me up before you go-go, Careless whisper, Faith, One more try, Father figure, Monkey, Praying for time)을 배출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슈퍼스타이다. 완전한 솔로이스트로 우뚝 선 조지 마이클이 그간 음반사와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최근에는 수난을 겪어 왔고, 또한 음악적으로도 가장 최고의 대중적인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FAITH('87) 앨범 이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해 1996년작인 OLDER부터는 음악이 너무 난해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이는 조지 마이클 개인의 음악적인 욕심이 점점 표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흑인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착, 특히 소울 지향적인 조지 마이클의 취향이 나타난 결과였다. 그런 그가 다시 심판대에 올랐다. 작년에 내놓은 베스트 앨범 이후 1년만에, 정식 앨범으로는 OLDER 이후 3년만에 신작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gmv 1999년 12월 서동인


'63년 6월 25일 영국 출생으로 본명이 'Georgios Kyriacos Panayiotou'(부친이 그리스 출신)인 그는 '80년대 왬이라는 전설적인 듀엣을 거치고 그 명성을 뛰어 넘어 솔리스트로서도 최고의 명성을 누려왔다(왬 시절부터 10개의 빌보드 팝 싱글 차트 넘버 원곡과 2개의 그래미상('88년도 앨범 FAITH로 '올해의 앨범'과 싱글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올해의 R&B 남자가수' 부문 수상), 그리고 '89년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세 개의 트로피를 거머쥠).
최근 불미스런 사건으로 위상을 손상시키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얼마 전 OLDER라는 신작을 선보이며 새 보금자리에서 새 출발을 시작했던 조지 마이클이 몸담고 있던 와의 마지막 작품으로 자신의 음악을 총정리하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다

gmv 1998년 11월 서동인


1963년 6월-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Georgeios Kyriacos Panayiotou.
1975년 9월-부셰이 미즈 컴프리헨시브(Bushey Meads Comprehensive) 스쿨 시절 앤드루 리즐리(Andrew Ridgeley)를 만났다.
1979년 11월-단명(短命) 스카 밴드 이그제큐티브(The Executive)를 결성하기도 했다.
1982년 4월-데뷔 싱글 Wham! rap을 발표했지만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1982년 10월-Young guns(Go for it)이 영국 차트 3위에 올랐다.
1983년 7월-데뷔 앨범 Fantastic이 발표됐으며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1984년 6월-미국 최초 1위곡 Wake me up before you go-go가 발표됐다.
1984년 8월-조지 마이클의 솔로 싱글 Careless whisper가 의 첫 밀리언 셀러가 됐다.
1984년 12월-왬의 첫 월드 투어가 휘틀리 베이 아이스 링크(Whitley Bay Ice Rink)에서부터 시작됐다.
1985년 3월-왬이 영국 팝 밴드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공연에 나섰다.
1985년 12월-마이클과 앤드루가 왬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2월-왬이 브릿 어워즈에서 브리티시 뮤직에 기여한 공로상을 수여받다.
1986년 4월-조지 마이클의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가 발표됐다. 이 곡은 왬의 공식적인 해체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86년 6월-왬의 웸블리 구장 고별 공연에 72,000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1987년 6월-왬 공식 해체 후 내놓은 첫 싱글 I want your sex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87년 10월-첫 솔로 앨범 Faith가 발표됐다.
1988년 1월-과 재계약을 맺었다.
1988년 2월-제 7회 브릿 어워즈 베스트 남성 아티스트상을,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Album of the year'부분을 거머쥐었다.
1991년 2월-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으로 브릿 어워즈 베스트 앨범상 수상.
1992년 10월-소니와의 길고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1994년 6월-2년간 지속된 판정은 결국 그의 패소로 끝났다.
1994년 12월-판결에 대해 굴복할 수 없다며 항소 신청.
1995년 7월-2년 뒤의 재판 날짜를 기다리며 고뇌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나타난 사는 분쟁을 해결해 주었다. 그는 // 팀과 계약을 맺었고 사는 조지 마이클을 내놓는 대신 사로부터 4천만 달러 정도를 받아냈다(최근에 국내에 발매된 왬의 베스트 앨범은 이 때 당시 의 계약 조건에 의한 것이었다).
1996년 5월-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의 역사적인 첫 앨범인 Older가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