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나라에 의 영화가 해금(解禁)되어, 그의 위대한 걸작 [모던 타임즈(Modern Times)]가 개봉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상영관인 [호암 아트홀]로 향했고, 어김없이 영화 팜플렛을 구입하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팜플렛에 적혀 있는 의 일대기중 1950년대 매카시 선풍(旋風)에 휘말려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미국과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 물론 1972년 아카데미가 준비한 특별상을 받기위해 미국 땅을 한번 더 밟고 미국과 화해를 하게 됩니다.. - 내용이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희대의 영화천재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중 한명인 을 추방할 정도로 '매카시 선풍' 이란 것이 대단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과 궁금증이 제 머리를 온통 뒤덮고 말았으며, 저는 '매카시 선풍'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도서관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1950년 상원의원에 의해 전 미국을 광풍(狂風)에 휩쓸리게 만든 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은 한마디로 '집단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주고 있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적색분자(공산주의자)를 공직과 기업 등에서 몰아내자는 이 숙청 작업은 일파만파 확대되어 문화예술인들에게 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과 대기업의 독점자본에 대해 냉소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또한 공산주의자로 몰아 결국 그를 미국에서 떠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극작가 또한 이 당시 매카시 선풍의 희생자이며, 이 사건 이후 '매카시즘'에 대한 풍자와 고발을 위해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하여 이 연극 [시련(The Crucible)]의 극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지 미국의 어두웠던 '역사적 실화'를 연극으로 재구성했다기 보다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생각에 따라,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1692년.. 17세기 말...
영국 청교도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의 세일럼 마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10대 소녀들이 집단적인 광기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장난 아니면, 집단 히스테리나 간질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청교도'들이 모여살고있던 세일럼 마을에서는 이런 현상을 '초자연적'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귀신들림, 악마의 장난, 마귀에 씌어버린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곧 이 마을을 광기(狂氣)에 휩싸이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을 주민 모두 서로가 서로를 고소하고, 고발하며 '마녀'로 몰아 이웃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사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자행되었던 마녀사냥이 17세기 말에 버젓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마을주민 20여명이 사형 당하게 되고, 미국 문명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연극을 보면서 과연 미국에서만 있었던 일인지, 그들만의 이야기인지 자문(自問) 하게 됩니다.
집단적인 광기에 의한 이런 사례는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의 근 현대사에서도 종종 겪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보다도 몇 배 더 이데올로기로 인한 대립이 치열했던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란 '절대악'이나 마찬가지 존재였으며, 바로 그 빨갱이를 가려내기 위한 작업은 미국의 '매카시 선풍'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내고는 했던 것입니다.
특히 서슬 퍼렇던 60~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는 부도덕한 정권의 유지를 위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숱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을 못 이겨 없는 죄를 자백하든지, 누군가를 고발하든지, 또는 자신의 결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순교자'와 같은 길을 걸었으며, 마치 이 연극처럼 마녀사냥과 같은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현대판 '마녀사냥'은 비단 이때 뿐 아니라 그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여서 '집단의 광기' 속에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자칫 이런 광풍에 휩싸이게 되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가게 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속의 주인공인 의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에 신념이 흔들리고, 진실에 대한 갈망을 잠시 접어버릴까 고뇌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내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명예와 진실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선택은 분명 쉽지 않으며, 세상 누구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고, 지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명성황후]로 한국의 뮤지컬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은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와 그가 예전에 발표하려다 '국가'에 의해 저지당했던 이 작품 [시련]을 마치 한풀이 하듯 너무나도 훌륭하게 완성하였습니다.
배우들 하나하나의 대사와 동작, 무대에서의 동선은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어 불필요한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변환되는 무대장치는 너무나 정교하여 관객들의 찬사를 절로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하였습니다.
완벽하게 몰입된 의 모습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서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았으며, 고저완급(高低緩急)이 잘 조절된 그의 대사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그 외 , , , 등 다른 배우들도 극의 감상에 무리 없는 좋은 연기를 펼쳐 작품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糊塗)한다 하더라도,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진실은 낱낱이 밝혀지게 마련이고, 올바른 행동과 신념은 결국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사족(蛇足)...
약 10년 전 와 주연의 영화 [크루서블(The Crucible)]이 개봉되었는데 바쁜 일 때문에 극장에서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연극 [시련(The Crucible)]을 보고....
제가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9년...
드디어 우리나라에 의 영화가 해금(解禁)되어, 그의 위대한 걸작 [모던 타임즈(Modern Times)]가 개봉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상영관인 [호암 아트홀]로 향했고, 어김없이 영화 팜플렛을 구입하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팜플렛에 적혀 있는 의 일대기중 1950년대 매카시 선풍(旋風)에 휘말려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미국과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 물론 1972년 아카데미가 준비한 특별상을 받기위해 미국 땅을 한번 더 밟고 미국과 화해를 하게 됩니다.. - 내용이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희대의 영화천재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중 한명인 을 추방할 정도로 '매카시 선풍' 이란 것이 대단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과 궁금증이 제 머리를 온통 뒤덮고 말았으며, 저는 '매카시 선풍'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도서관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야 말았습니다.
1950년 상원의원에 의해 전 미국을 광풍(狂風)에 휩쓸리게 만든 이 대대적인 숙청 작업은 한마디로 '집단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주고 있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적색분자(공산주의자)를 공직과 기업 등에서 몰아내자는 이 숙청 작업은 일파만파 확대되어 문화예술인들에게 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과 대기업의 독점자본에 대해 냉소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또한 공산주의자로 몰아 결국 그를 미국에서 떠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극작가 또한 이 당시 매카시 선풍의 희생자이며, 이 사건 이후 '매카시즘'에 대한 풍자와 고발을 위해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하여 이 연극 [시련(The Crucible)]의 극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단지 미국의 어두웠던 '역사적 실화'를 연극으로 재구성했다기 보다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생각에 따라,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1692년.. 17세기 말...
영국 청교도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의 세일럼 마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10대 소녀들이 집단적인 광기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장난 아니면, 집단 히스테리나 간질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청교도'들이 모여살고있던 세일럼 마을에서는 이런 현상을 '초자연적'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귀신들림, 악마의 장난, 마귀에 씌어버린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곧 이 마을을 광기(狂氣)에 휩싸이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을 주민 모두 서로가 서로를 고소하고, 고발하며 '마녀'로 몰아 이웃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사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자행되었던 마녀사냥이 17세기 말에 버젓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마을주민 20여명이 사형 당하게 되고, 미국 문명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연극을 보면서 과연 미국에서만 있었던 일인지, 그들만의 이야기인지 자문(自問) 하게 됩니다.
집단적인 광기에 의한 이런 사례는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의 근 현대사에서도 종종 겪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보다도 몇 배 더 이데올로기로 인한 대립이 치열했던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란 '절대악'이나 마찬가지 존재였으며, 바로 그 빨갱이를 가려내기 위한 작업은 미국의 '매카시 선풍'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 내고는 했던 것입니다.
특히 서슬 퍼렇던 60~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는 부도덕한 정권의 유지를 위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숱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을 못 이겨 없는 죄를 자백하든지, 누군가를 고발하든지, 또는 자신의 결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순교자'와 같은 길을 걸었으며, 마치 이 연극처럼 마녀사냥과 같은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현대판 '마녀사냥'은 비단 이때 뿐 아니라 그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여서 '집단의 광기' 속에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자칫 이런 광풍에 휩싸이게 되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가게 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속의 주인공인 의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에 신념이 흔들리고, 진실에 대한 갈망을 잠시 접어버릴까 고뇌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내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과연 누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명예와 진실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선택은 분명 쉽지 않으며, 세상 누구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고, 지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명성황후]로 한국의 뮤지컬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은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와 그가 예전에 발표하려다 '국가'에 의해 저지당했던 이 작품 [시련]을 마치 한풀이 하듯 너무나도 훌륭하게 완성하였습니다.
배우들 하나하나의 대사와 동작, 무대에서의 동선은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어 불필요한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변환되는 무대장치는 너무나 정교하여 관객들의 찬사를 절로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기하였습니다.
완벽하게 몰입된 의 모습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서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았으며, 고저완급(高低緩急)이 잘 조절된 그의 대사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그 외 , , , 등 다른 배우들도 극의 감상에 무리 없는 좋은 연기를 펼쳐 작품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糊塗)한다 하더라도,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진실은 낱낱이 밝혀지게 마련이고, 올바른 행동과 신념은 결국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사족(蛇足)...
약 10년 전 와 주연의 영화 [크루서블(The Crucible)]이 개봉되었는데 바쁜 일 때문에 극장에서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연극을 보고 나니 영화 [크루서블]이 너무나 보고 싶어지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