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시각장애인이 영어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해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주인공은 지난 1월 30일, 2007년 충청남도 임용시험 영어과에 최종 합격한 최유림씨다. 시각장애인이 특수교육과가 아닌 일반 과목의 임용고시에 합격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 이 놀랍고 대단한 소식의 주인공 최유림씨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속 깊은 母子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임용고시 합격으로 학창시절 꿈 이뤘어요”
화제의 주인공 최유림씨(24)를 만나기 위해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가를 찾았다. “찾느라고 힘들지 않았느냐”며 기자 일행을 맞는 최유림씨와 그의 어머니 이경희씨(50). 둘은 참 많이 닮았다.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 마음 씀씀이까지도 똑같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쏙 빼닮은 것이리라.
“어머니는 성격이 아주 밝으세요. 사교성도 좋으시구요. 어머니의 이런 성격을 100% 닮았어야 했는데, 저는 1/3 정도만 닮은 것 같아요. 그걸 2/3로 끌어올리고, 100%에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데….”
어머니를 닮아 무척 밝은 것 같다는 말에 최유림씨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어머니를 닮으려면 아직 멀었다며 쑥스러워했다.
먼저 축하인사를 건넸다. ‘시각장애인의 일반과목 임용고시 합격’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더 뜻 깊을 것 같았다.
“유림이가 시험을 보고 온 날, 유림이 표정을 보니까 잘본 것 같더라구요.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유림이 아버지도 엄청 좋아하세요.”
어머니 이경희씨의 얼굴엔 합격의 기쁨과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반면에 아들은 그저 담담해 보였다.
“부모님이 공부하는 동안 많이 걱정하셨는데, 이렇게 합격을 안겨드리게 돼서 기뻐요. 교사 발령을 받아서 학교에 나가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책임감이 무척 커요.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최유림씨는 이번 임용고시 합격으로 학창시절 간직했던 꿈을 이뤘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수업이 재미있어 영어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던 그.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어요. 영어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거죠. 하지만 영어 과목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복수전공을 하게 됐어요.”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맹학교를 다녔던 최유림씨에게 일반 대학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맹학교와는 환경이 많이 다르죠. 강의실과 다른 건물들을 찾아가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처음 20여 일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길을 익혔어요. 그 뒤부터는 익숙해져서 혼자 다니는 데도 문제가 없었구요.”
수업 교재도 커다란 문제였다. 점자책으로 된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교재를 점자책으로 변환해야 했다. 그러나 수강 과목의 모든 교재를 점자책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전공 서적만 점자책으로 만들었다.
“수강 신청 기간에 강의 일람표가 뜨면 강의를 결정하고, 담당 교수님께 어떤 교재를 사용할 것인지를 여쭤봤어요. 그 교재를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맡기면 점자 출력 서비스를 통해 제가 공부할 수 있는 파일 형태로 만들어줍니다. 나머지 과목은 수업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시각장애인용 PDA인 브레일 노트(Braille Note)로 정리했어요. 녹음 내용을 몇 번씩 다시 들으면서 말이에요.”
최유림씨는 한 번의 낙방을 거쳐 올해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1년의 재수기간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을까? 그는 자신도 여느 수험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노력한 것에 비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힘이 들었다고. 그는 독하게까진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유림아, 사랑한다! 걱정 끝, 행복 시작이구나~”
선천성 시신경 위축 망막증. 최유림씨의 병명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유림이를 낳았을 때는 유림이 눈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갖가지 모빌도 갖다 붙여놓고 그랬거든요. 백일이 훨씬 지난 뒤쯤 유림이를 업고 동네에 나간 날이었어요. 한 아주머니가 유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결국 병원에서 유림이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때 심정은 말로 표현을 못하죠.”
어머니 이경희씨의 말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어떠한 징후도 느끼지 못했기에 그 결과는 청천벽력 같았다. 그러나 아들은 마치 어머니의 슬픔을 보상해주려는 듯 바르고, 씩씩하게 커주었다.
“유림이 별명이 뭔지 아세요? ‘똘똘이’예요. 사실은 ‘똑똑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내 자식 자랑하는 거 같아서 ‘똘똘이’라고 바꿔 부른 거죠(웃음). 유림이는 유치원 때부터 맹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 한 달 동안은 같이 다녔는데, 버스나 전철이 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거예요. 청각이 발달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릴 적부터 아주 똑똑했어요.”
최유림씨는 유치원 때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왕복 1시간 40여 분의 거리를 혼자서 다녔다. 일반인들은 그게 뭐 대단하랴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유림씨가 시각장애인임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차비가 70원이었어요. 유림이가 동전을 구별할 수 없어서 제가 테이프로 동전을 붙여줬어요. 그걸 눈여겨본 자원봉사자가 집에 같이 와 유림이에게 돈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그 자원봉사자들과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더라구요.”
이경희씨는 유림씨 밑으로 동생을 두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유림이가 자식에 대한 모든 바람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라는 동안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는 아들이기에 그저 고맙기만 하단다.
“뉴스에서 장애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안 좋은 일을 벌이곤 하는 일들이 방송되곤 하잖아요. 언젠가 유림이에게 물어봤어요. 괴롭지 않느냐고, 혹시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느냐고요. 그런데 유림이가 아주 강력하게 ‘그런 생각 한 적 없다. 살고 싶다’고 말하더라구요. 유림이는 절망적인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강한 아이예요.”
아들을 키우면서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고 말하는 이경희씨. 단, 아들에게 멋있는 경치를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도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유림씨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삶을 즐기기를 바랄뿐. 더 이상의 바람은 아들에 대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유림씨는 재주가 많다. 안마도 수준급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안마와 침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래 실력도 뛰어나다. 유치원 원장님이 가수 시켜도 될 정도라고 칭찬했었다고. 사실 그는 대학교 시절, 교내 대학가요제인 ‘웅진가요제’에서 3등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가수 토이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그는 가요제에서 토이 3집의 ‘바램’이라는 노래를 불렀었다고 떠올렸다. 어머니 이경희씨는 가끔 노래방에서 유림이의 노래를 들으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며 웃어 보였다.
“타인과의 비교는 금물, 내가 삶의 중심이다”
최유림, 이 사람 참 장하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봐도 우울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눈이 안 보이는데, 어쩜 이리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저라고 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겠어요. 목표한 만큼 되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뒤처질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그때마다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려요. ‘보통 사람들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간다. 항상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한다.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아라. 설사 일이 잘 안 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해라. 그 모든 게 궁극적인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라는 글이에요. 힘이 들 때마다 이 구절을 되새기곤 한답니다.”
최유림씨는 며칠 전 임용고시를 통과한 신규 교사들을 위한 연수에 다녀왔다. 교과 지도, 인성 지도, 생활 지도, 행정 업무 처리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함이다. 교사 발령을 앞두고 있는 그는 “천안이나 공주 쪽으로 발령이 났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비췄다.
그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 궁금했다. 그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면 판서를 대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대형 텔레비전에 컴퓨터를 연결해 미리 준비한 수업 내용을 보여주는 식이다.
“지난 2005년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어요. 그때도 대형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이용한 방식으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그 당시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웠었어요. 학생들 이름을 불러가면서 수업했더니 학생들도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유난히 발달한 청각. 그 청각 덕분에 최유림씨는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에게 장애는 조금의 불편일 뿐, 그 이상의 단점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선생님으로서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즐거워야 학생들도 즐거울 수 있을 테니까요. 재미있게 수업하고, 학생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최유림씨가 1급 시각장애인임을 눈치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마음이 병든’ 일반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가 한없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시각장애딛고 영어교사 합격한 감동사연
1급 시각장애인이 영어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해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주인공은 지난 1월 30일, 2007년 충청남도 임용시험 영어과에 최종 합격한 최유림씨다. 시각장애인이 특수교육과가 아닌 일반 과목의 임용고시에 합격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 이 놀랍고 대단한 소식의 주인공 최유림씨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속 깊은 母子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임용고시 합격으로 학창시절 꿈 이뤘어요”
화제의 주인공 최유림씨(24)를 만나기 위해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가를 찾았다. “찾느라고 힘들지 않았느냐”며 기자 일행을 맞는 최유림씨와 그의 어머니 이경희씨(50). 둘은 참 많이 닮았다.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 마음 씀씀이까지도 똑같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쏙 빼닮은 것이리라.
“아무래도 맹학교와는 환경이 많이 다르죠. 강의실과 다른 건물들을 찾아가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처음 20여 일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길을 익혔어요. 그 뒤부터는 익숙해져서 혼자 다니는 데도 문제가 없었구요.”
“어머니는 성격이 아주 밝으세요. 사교성도 좋으시구요. 어머니의 이런 성격을 100% 닮았어야 했는데, 저는 1/3 정도만 닮은 것 같아요. 그걸 2/3로 끌어올리고, 100%에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데….”
어머니를 닮아 무척 밝은 것 같다는 말에 최유림씨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어머니를 닮으려면 아직 멀었다며 쑥스러워했다.
먼저 축하인사를 건넸다. ‘시각장애인의 일반과목 임용고시 합격’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더 뜻 깊을 것 같았다.
“유림이가 시험을 보고 온 날, 유림이 표정을 보니까 잘본 것 같더라구요.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유림이 아버지도 엄청 좋아하세요.”
어머니 이경희씨의 얼굴엔 합격의 기쁨과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반면에 아들은 그저 담담해 보였다.
“부모님이 공부하는 동안 많이 걱정하셨는데, 이렇게 합격을 안겨드리게 돼서 기뻐요. 교사 발령을 받아서 학교에 나가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책임감이 무척 커요.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최유림씨는 이번 임용고시 합격으로 학창시절 간직했던 꿈을 이뤘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수업이 재미있어 영어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던 그.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어요. 영어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거죠. 하지만 영어 과목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복수전공을 하게 됐어요.”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맹학교를 다녔던 최유림씨에게 일반 대학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수업 교재도 커다란 문제였다. 점자책으로 된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교재를 점자책으로 변환해야 했다. 그러나 수강 과목의 모든 교재를 점자책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전공 서적만 점자책으로 만들었다.
“수강 신청 기간에 강의 일람표가 뜨면 강의를 결정하고, 담당 교수님께 어떤 교재를 사용할 것인지를 여쭤봤어요. 그 교재를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맡기면 점자 출력 서비스를 통해 제가 공부할 수 있는 파일 형태로 만들어줍니다. 나머지 과목은 수업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시각장애인용 PDA인 브레일 노트(Braille Note)로 정리했어요. 녹음 내용을 몇 번씩 다시 들으면서 말이에요.”
최유림씨는 한 번의 낙방을 거쳐 올해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1년의 재수기간 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을까? 그는 자신도 여느 수험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노력한 것에 비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힘이 들었다고. 그는 독하게까진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유림아, 사랑한다! 걱정 끝, 행복 시작이구나~”
이경희씨는 유림씨 밑으로 동생을 두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유림이가 자식에 대한 모든 바람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라는 동안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는 아들이기에 그저 고맙기만 하단다.
선천성 시신경 위축 망막증. 최유림씨의 병명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유림이를 낳았을 때는 유림이 눈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갖가지 모빌도 갖다 붙여놓고 그랬거든요. 백일이 훨씬 지난 뒤쯤 유림이를 업고 동네에 나간 날이었어요. 한 아주머니가 유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결국 병원에서 유림이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때 심정은 말로 표현을 못하죠.”
어머니 이경희씨의 말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어떠한 징후도 느끼지 못했기에 그 결과는 청천벽력 같았다. 그러나 아들은 마치 어머니의 슬픔을 보상해주려는 듯 바르고, 씩씩하게 커주었다.
“유림이 별명이 뭔지 아세요? ‘똘똘이’예요. 사실은 ‘똑똑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내 자식 자랑하는 거 같아서 ‘똘똘이’라고 바꿔 부른 거죠(웃음). 유림이는 유치원 때부터 맹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 한 달 동안은 같이 다녔는데, 버스나 전철이 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거예요. 청각이 발달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릴 적부터 아주 똑똑했어요.”
최유림씨는 유치원 때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왕복 1시간 40여 분의 거리를 혼자서 다녔다. 일반인들은 그게 뭐 대단하랴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유림씨가 시각장애인임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차비가 70원이었어요. 유림이가 동전을 구별할 수 없어서 제가 테이프로 동전을 붙여줬어요. 그걸 눈여겨본 자원봉사자가 집에 같이 와 유림이에게 돈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그 자원봉사자들과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더라구요.”
“뉴스에서 장애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안 좋은 일을 벌이곤 하는 일들이 방송되곤 하잖아요. 언젠가 유림이에게 물어봤어요. 괴롭지 않느냐고, 혹시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느냐고요. 그런데 유림이가 아주 강력하게 ‘그런 생각 한 적 없다. 살고 싶다’고 말하더라구요. 유림이는 절망적인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강한 아이예요.”
아들을 키우면서 크게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고 말하는 이경희씨. 단, 아들에게 멋있는 경치를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도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안타깝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유림씨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삶을 즐기기를 바랄뿐. 더 이상의 바람은 아들에 대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유림씨는 재주가 많다. 안마도 수준급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안마와 침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래 실력도 뛰어나다. 유치원 원장님이 가수 시켜도 될 정도라고 칭찬했었다고. 사실 그는 대학교 시절, 교내 대학가요제인 ‘웅진가요제’에서 3등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가수 토이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그는 가요제에서 토이 3집의 ‘바램’이라는 노래를 불렀었다고 떠올렸다. 어머니 이경희씨는 가끔 노래방에서 유림이의 노래를 들으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며 웃어 보였다.
“타인과의 비교는 금물, 내가 삶의 중심이다”
“저라고 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겠어요. 목표한 만큼 되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일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뒤처질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그때마다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려요. ‘보통 사람들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간다. 항상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한다.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아라. 설사 일이 잘 안 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해라. 그 모든 게 궁극적인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라는 글이에요. 힘이 들 때마다 이 구절을 되새기곤 한답니다.”
최유림, 이 사람 참 장하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봐도 우울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눈이 안 보이는데, 어쩜 이리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최유림씨는 며칠 전 임용고시를 통과한 신규 교사들을 위한 연수에 다녀왔다. 교과 지도, 인성 지도, 생활 지도, 행정 업무 처리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함이다. 교사 발령을 앞두고 있는 그는 “천안이나 공주 쪽으로 발령이 났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비췄다.
그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 궁금했다. 그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면 판서를 대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대형 텔레비전에 컴퓨터를 연결해 미리 준비한 수업 내용을 보여주는 식이다.
“지난 2005년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어요. 그때도 대형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이용한 방식으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그 당시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웠었어요. 학생들 이름을 불러가면서 수업했더니 학생들도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유난히 발달한 청각. 그 청각 덕분에 최유림씨는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에게 장애는 조금의 불편일 뿐, 그 이상의 단점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선생님으로서 즐겁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즐거워야 학생들도 즐거울 수 있을 테니까요. 재미있게 수업하고, 학생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최유림씨가 1급 시각장애인임을 눈치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마음이 병든’ 일반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가 한없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