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의 회귀: 귀향

배소영20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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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의 회귀: 귀향

페넬로페 크루즈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톰 크루즈가 니콜 키드먼과 결별한 뒤 맞은 새 연인(지금 톰 크루즈는 케이티 홈즈와 즐겁겠지만 여튼!)이라는 몇 년 전의 가십을 제외하니 별로 내가 아는 것이 없는 배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귀향]을 다운받아 본 지 며칠 후의 뉴스였고 나는 그태껏 [귀향]의 아우라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특이한 영화다. 내용을 글로 써서 설명하려니 황당무계해지고 만다. 죽었다 믿은 어머니의 유령은 돌아오고 시체를 냉장고에 숨기려니 악전분투하고 마을에는 미신과 노래가 떠돌아다니고. 그런 면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은 여전한가? 영화 평론가들은 그를 보고 악동이라고 했다. 원색이 뿜어내는 강렬함, 폭력적인 정체성들을 자신의 모든 영화들에서 열심히 가지고 노는 알모도바르 감독. 나는 그의 영화를 이것까지 합해 두 편 반밖에 보지 못했고(반편은, 말 그대로 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데다가 사분의 삼 정도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악동이라니 그냥 그런가보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측이지만- 이 영화는 ‘악동’이라기보단 ‘돌아온 탕자’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여전히 화면은 빨강 노랑 원색을 도발적으로 비추어주지만,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상처를 쓰다듬는 치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무기력한 남자와 강한 여자. 부성을 갖추지 못한 남자들은 무기력하다. 라이문다의 남편은 의붓딸을 성폭행하려 하고, 라이문다의 동생의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도망친다. 그러나 모성을 갖춘 여자들은 용감하다! 라이문다는 엉망인 가정을 어떻게든 추스르는 억척주부이고 동생 솔레는 무허가 미용실을 운영한다. 대마초 중독자인 아우구스티나는 치매 노인인 파울라 숙모를 꿋꿋이 돌보고 있다. 감독은 여성을 찬미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소설들이, 음악들이 찬양하는 여성의 미는 말 그대로 섹슈얼리티였다. 아름다운 성으로서의 여성을 그렸고 욕망했다. 그러나 감독은 여성의 끈질긴 삶의 의지, 참담한 상황을 극복하는 낙천성을 섹슈얼리티가 배제된 순수한 모성으로서, 위대함으로서 숭상한다. 감독이 커밍아웃한 것과도 관계가 있을까.

비현실과 현실은 뒤뚱거리며 교차하고, 죽음과 삶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한다. 그리고 모녀는 화해한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거기서, 왜 평론가들이 이 영화는 치유다, 모성의 승리다, 부르짖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과연 얼마나 지독한 악동이었든간에, 그는 영화를 통해 치료받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악동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 같았다고, 끼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