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 2003/03/13일자 38면- [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 고대 한글 바위]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경산=정철수기자 csjung@
훈민정음은 단군조선의 옛글자에서 비롯되었다.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한글의 원형 글자가 있었다.
정작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인 세종대왕은 “ 옛 글자를 본떴다 ”고 말했다. 또 위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신경준이 지은 (1750년)에는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 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한문 외에도 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 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백성을 위해서 언어를 연구했던 세종대왕이 세간에서 사용되던 이런 문자들를 참고하였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이는 최만리 등의 반대상소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자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양반계급에 속한 최만리는 언문을 왜 새로 만드냐며, 하물며 옛 글자와 똑같은 것을 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냐고 세종대왕에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에게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옛 글자가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글’이나 ‘속용문자’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서로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4000여년 전 단군시대의 가림토 문자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28자)과 단군조선시대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가림토 문자(38자)를 비교해보자. 모음이나 자음의 모양이 두루 비슷하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가림토 문자는 가히 한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글자는 옛글을 본떴다 ’고 한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실제로 가림토 문자의 38자 중에서 10자를 빼면 훈민정음 28자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한경대전』(임균택 저, 충효예출판사 2001년)이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 『징심록』의 가림토문에서 취해졌다”
가림토 문자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184년전 단군시대 때,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 불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단군세기」 와 『단기고사』의 기록이 동일하다).
한글과 가림토 문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민족사학자의 글 및 언론과 방송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1996년 한글날에 방영된 Q채널의 「한글, 그 비밀의 문」도 그중의 하나)
학자에 따라서는,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 X, M, P, H 및 I, O 등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에 주목하기도 한다(참고로 알파벳의 역사는 3000년이다).
그밖에도 중국의 갑골문자와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등이 단군시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참고로 알타이어의 사용범위는 터키, 몽고, 티벳,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다)
세계문자역사의 종주는 바로 우리 배달민족
앞으로 우리 나라 상고사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 우리 한민족이 세계 문자 역사의 종주국이며, 배달국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가졌던 일등 문명국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일본에서 한글로 토속신 모신다.
일본 시코쿠 도쿠시바시 야마시로 마을에서 사용하고 있는 토속신 `에비스'의 계시록에 한글이 적혀 있다. 고대 한글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
고대 한국인이 건너가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면서 한글도 전한 것으로 추정.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제558돌 한글날을 나흘 앞둔 가운데 일본에서 한글 부적을 사용하며 토속신을 모시는 신사(神社)와 마을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부산외대 김문길(金文吉) 교수에 따르면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시 야마시로라는 마을에는 신사와 집집마다 이 지역의 토속신인 `에비스(エビス)'를 섬기고 찬양하자는 내용의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다. 또 이 마을 주민들은 에비스신 축제와 경조사 때 에비스신이 직접 적어줬다는 이 부적을 일본어로 낭독하고 있으나 한글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이 '에비스' 라는 신은 고대한국인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들을 가르친 사람으로 보임.
일본인들에게 신으로까지 추앙받은 한국인으로 보임. 사실 많은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음. 그 시기를 일본에서는 '신대' 즉 '신들의 시대' 라 하고 한글을 '신대 문자' 라 함.)
주민들은 특히 115페이지 분량의 `계시록'을 갖고 있는데 이 계시록의 제목도 `가이ㅣㅏ아(카미야마.神山)의 계시록'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 교수는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계시록에는 생활법규와 신의 계시 등을 담고 있어 주민들은 이 책을 기독교의 성경처럼 여기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지역 외에도 오카야마 비전시 가가도와 후쿠오카 히예신사, 나고야신사, 관서지방의 한 역사자료관 등에도 토속신은 다르지만 이들 신을 찬양하는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거나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계 언어학자치고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한글은 과연 다른 문자와 비교하여 얼마나 우수한 문자일까, 위대한 문자일까?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ㅐ, ㅒ, ㅚ'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옛글을 재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재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둥 애만 태웠다.
샹폴리옹은 그러나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 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Ω)이다. 각각 'ㅏ', 'ㅗ'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 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소'할 때 'ㅅ' 소리가 나니까 '소'를 그려 놓고 이를 'ㅅ'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영주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ㄱ, ㅋ]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ㄱ, ㅋ, ㄲ]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ㅋ, ㅌ, ㅍ, ㅎ]에서 보듯이 기본자 [ㄱ, ㄷ, ㅁ, ㅇ]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ㅡ],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ㅡ]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ㅣ]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ㅣ, ㅡ]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ㅏ]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ㅓ]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점'을 찍은 것이다. [ㅗ, 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ㅗ]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ㅜ]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 왜?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과 [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타,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부용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ㅅ'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ㅍ'을 써서 '잎'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 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은 '이것'과 '을'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의 '천, 만'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
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천'은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을 재창제한 세종대왕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첫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둘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쥐나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재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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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진정한 주인
최초로 문자를 만든 것은 동이족
▶ 한자의 원조인 갑골문은 중국이 아닌 동이족의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한문은 중국인이 만든 중국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의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들은 사마천의 를 비롯하여 주나라 때부터야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즉 주나라 이전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골문자의 발굴로 중원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기록과 물증이 없어 전설 속의 왕조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저 유명한 사마천도 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은왕조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입니다.
은나라의 건국시조도,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거기서 나온 한문 또한 동이족의 문자였습니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중국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습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배달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입니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 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한문은 중국의 고리타분한 글자요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비판 속에서, 진짜 기원도 모르면서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온 것은 두 가지 문자의 발명국 후손으로써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한자는 우리 글이다'[2001년 7월 2일자 경향신문 기사]
음성언어로서 한국어와 중국어, 문자언어로서 한자와 우리 글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연구서 2권이 출간되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다른 어족에 속한다거나 한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내용이다.
경희대 강사인 김지형 박사(국문학)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박이정)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시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는 몽골, 만주 터키와 같은 알타이어족, 중국은 한장(漢藏)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김박사는 "상고시대 이전에 6개의 언어 집단이 한국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중 일부가 중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한자어 213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재구(이론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해 한국어 300여 개 단어와 비교했다. 예를 들어 '人(인)'자의 중국 상고시대 발음은 '니인'(njin)으로 우리말 '놈''님''남'과 같은 어두자음인 'n' 음가를 갖는다. 또 '河'(하)의 상고시대 재구형 '가르'(gar)도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비슷하다.
김박사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어족을 가르는 차이는 어순과 성조(높낮이)인데 이는 한자가 전래된 상고시대(BC 1세기) 이후의 일이여 음성언어 단계에서는 같은 말로 볼 만한 발음상의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정,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 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 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학계에서도 유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 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날숨과 들숨을 뜻하는 호흡(呼吸)의 경우 우리말로는 소리가 분명히 나가고 들어가지만 중국발음 '후시'는 모두 새는 소리가 되고 만다. 출입(出入)도 중국 발음은 '츄루'로 본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김지형, 박문기씨의 주장은 지금까지 중국문자인 한자를 우리가 빌려 썼다는 일방적인 차용의 관점을 탈피해 두 문화 사이의 영향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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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이지만 상식의 오해 를 몇가 지 풀어드리죠. 지금의 개천절이10월3일 맞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 다. 우리 의 역사는 환>> 배달>>조선으로 옵니다. 그 중에서도 실질적인 시작은 배 달 부터입 니 다
즉 배달의 한웅시대에 우리가 시작되 고 조선의 단군시대를 지나 면면히 지금까지 이 어온 것입니다. 뭐 우리 한민족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것은 아실테고 그 에 따라 우 리는 이미 다민족국가가 된 것도 이해하실겁니다. 진짜 개천절은 음력 10월3일입니 다 그리고 우리가 단기로 따져서 5000년역사라 하는데 이건 맞을까요??? 정답은 역 시 '아니다'입니다. 배달부터 시작되니 배달의 한웅시대1650년간을 고려해야 하니 정 확한 역사는 한기 7000 년이상입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왜제35년간 왜놈들이 우리의 고서20 만종 을 불태우고 왜곡 하며 자신들이 훔쳐간데 기인하죠. 뭐 문화재나 기타의 것들 은 말 안 해도 알겠죠.
거기에다 하나의 팩션(사실과 픽션의 합성어)인 삼국사기와 불경의 우화등을 각색한 삼국유사만 남겨놓고 '니들은 원래 이것밖에 없었어'하고 날 조한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그냥 조작해도 화가 나는데 우리의 정사들을 없애거나 숨기고 혹은 여 러 소설들을 결합한 팩션을 만들어내는 교묘한 짓을 벌였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한웅과 단군을 헷갈려하며 곰족과 호랑이족의 같은 한민족들을 무슨 우화 처 럼 만든 것이죠. 자 그러면 한글날은 10월9일이 맞을까요??? 역시 정답은 '아니 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자의 원형인 신시문자와 가림토를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은조선의 갑골문자 보 다 더 오래된 내몽골지역의 홍산문명(배달)에서 신시문자의 형 태의 증거를 찾았 다 는 지 나학자가 고백을 한적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가 아니라 해서 짱 골라들 이 그 유물 들을 도로 숨기고 그 유적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하여 아무 도 접 근 못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누가 증거를 들이대라 하지만 과거 우리 영토를 빼 앗긴 상태 니 가서 보고 확인할 수도 없죠
우리가 다시 고토를 되찾을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훈민정 음 즉 한글 을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시면서 이러한 얘기를 합니다.'엣 전자를 모 방해 서 만들 었 다' 이것이 가림토죠. 뭐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상상이 필요합니 다. 끊임없 는 외세 에 의해 거의 대부분의 사서나 유적,문화재가 파괴되었는데 물론 지금 도 진 행되고 있 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문자와 글에 대해서 유추해보면 과거 공 식적인 문서나 문학작 품, 여러 경서(이론,논설)는 신시문자가 쓰이고 일반 회화는 가림토를 쓰지 않았 나 생각됩니 다. 그리고 한 자란 원 래 한(韓)자이죠. 그러나 우리의 역사마저 빼앗기 면서 한(漢)자 가 된 겁니다. 뭐 이 (夷)가 뜻이 변해 오랑캐가 된 것과 같은 맥락입니 다. 가림토는 주로 대화위주 다 보 니 글을 남겨도 별로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 론 그 이전에 모든 것들이 외세에 의해 전화되었다는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과거에도 사람들이 문학작품이나 경서를 다 룰 때, 아무래도 가림토보다는 신시(녹도)문자가 더 잘 쓰였지 않았나 싶습 니다. 왜냐하면 문학이나 예술은 그 속에 수많은 뜻이 담겨 야 각각이 감상의 폭의 여 지를 넓 힐 수 있 거든요. 뭐 지금의 시를 보면 쉽게 느낄 수 있겠죠. 그리고 소설 역 시 이런 중의적인 개념을 도 입해야 복선을 깔기도 편했을 테니...... 물론 불경이나 도덕경 등의 형이상학적인 글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진정한 한글의 날은 10월9일이 아니며 세종대왕이 모두 혼자 만든 것도 아니죠. 그가 가림토를 본받아 한글창제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명령을 했을지 모르나 직접적으로 되살려낸 것은 그 아래의 학자들과 세종대왕의 공동연구에 기인합니다. 세종대왕의 훌륭한 점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옛 것을 기반으로 다시 새롭게 재창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한글은 국한혼용체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한글로 다 되는데 왜 가림토 는 그렇지 못 했나 하면 안 됩니다. 가림토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얼 핏 못 알아듣는 순우리말의 형태에 가까우니까요.
보너스로 두개 더!!!
먼저 하나!
한민족은 고대 부터 태음력과 태양력 을 같이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인 것 은 태음력을 사용하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는 태양력을 사용했습니다. 지 금도 절기는 태양력이죠. 혹시 음력 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유목,기마민족이면서도 농 경민족인 한민족은 별이나 달,태양 등을 관찰할 필요성으 로 고대로부터 천문학이 발 달하였죠. 한민족의 수많은 지류가 있으니, 그 수많은 한 민 족 의 갈래들 하나씩이 모 여야 비로소 한민족을 이해할 수 있 겠죠. 시작은 단일민 족이 나 세월이 흘러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지니 이미 오래전부 터 한민족 은 다민족국가입니다 과거 거대한 영토를 가졌을 때도 하나의 나 라가 아닌 많은 제후를 거느린 연방국가였 습니다. 부모와 형제 는 하나 에서 시작되 었지만 시간이 흘러 먼 친척이 되고 다시 남 남이 되어 서로 부둥 켜안고 사 는 지금 의 세상처럼....
그리고 천문학이 발달했다는 말은 수학에 강했다는 말이 됩니 다. 그 래서 외적의 침입 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는 고 구려의 성의 건축이 뛰 어난 것이 며, 각 시대마다 훌륭한 고분이나 왕묘가 있었던 것 입니다. 물론 석굴암과 같은 대단 한 문화재를 남 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의 피라미드 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 초도 같은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불가사의라 여겨 질만큼 말이지요. 한글은 쉽습 니다. 하지 만 한국어는 어렵죠. 그러나 외국어는 한국 어만큼이나 어렵습 니다. 모든 것은 투자 한 만큼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외국것이라 다 믿지 말고 우리 것이라 무조 건 배격해서 도 안 됩니다. 언제나 균형되고 공정하게 대하며 신중히 생각해 과감 하게 행 동해야 하겠습 니다 그래야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겠죠
참고 로 몽골이나 선비 등 흉노 계는 대 분분 유목인족이 죠. 하지만 부여나 고구려 등의 동 이계는 유목과 농경을 함 께 한 반 농반목민족입니 다. 배달과 조선 이후로 대륙동북 을 경계로 배달쥬신족이 크게 두 부 류로 나누어집니 다 어쨌든 그들 모두는 배달쥬신족의 후예입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여야 배달쥬신족 이 됩니다. 어느 하나가 그 전체를 대변한다는 무식한 일반화의 오류는 안 했으면 합 니다. 전체와 부분을 함께 고려해야 그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도 알 수 있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의 앞면,뒷면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을 비롯한 내 면 등 모든 면을 고려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처럼....그 사람의 얼굴만 보 아서는 그가 키가 큰지 어떤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다음 둘!
사람들은 태극,팔괘,사방신이 쥐나에서 건너온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거짓이죠. 쥐나에서는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중앙(황제)라 하는데 이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원래 사방신은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중앙(곰)이다. 우리 민족의 한 상징인 곰이 빠지고 황제를 집어넣어 자기 것이라 짱골라들이 우기는데 정말 웃기는 일이죠. 하물며 공손헌원(황제헌원)마저 우리 민족인 동이인이니 말 다 한것이죠. 팔괘는 복희씨가 만들었는데 복희씨 역시 우리 민족 사람이며 조상인 것이죠.
삼태극은 배달시대부터 사용되어왔는데 삼태극 , 천지인 , 치화 교화 조화 ,삼족오 등 우리의 사상의 상징을 뜻하죠. 우리의 일반 생활에 3이란 숫자가 도처에 녹아있는 것도 마찬가지. 환>>>배달>>>조선로 이어져 오다가 조선이 무너지면서 부여,돌궐,흉노 등으로 한민족이 흩어지게 되는데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오고, 고구려에서 백제 거란(요),말갈(여진,만주족>>>금,청),대진국(발해)가 나옵니다. 서돌궐은 서쪽으로 가 지금의 터키(투르크)가 되고 흉노 중 일부는 유럽으로 가 훈족이라 불리며 아틸라의 지휘아래 헝가리의 마자르족을 이루죠, 동돌궐에서는 몽골이 나오고, 백제에서 왜가 나옵니다.
배달,조선,고구려는 삼태극(적,청,금)을 그대로 쓰고 몽골은 푸른 초원의 영향과 곰의 민족으로 자각을 가지고 금태극을 쓰게 됩니다. 백제는 적태극을 사용하고 백제의 후예인 왜 역시 적태극을 사용해 지금의 왜국기인 중앙의 붉은 태양의 적태극 왜장기를 쓰게 된 것이죠. 고대로부터 백두산을 영산으로 여겨왔으며 청 역시 이를 지켜왔죠. 그래서 청은 백두산의 천지를 연상하는 청태극을 쓰게 됩니다. 고려는 삼태극과 양태극을 혼용해서 사용했으며 이씨조선은 양태극을 사용하였죠. 지금의 대한민국은 팔괘 중 사괘와 양태극을 사용하여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태극이란 말이 쥐나에서는 송나라때 [태극도설]이란 책에서 나왔는데 우리는 신라,고려시대의 절이나 제단, 북 등 그나마 얼마 없는 자료, 유적에서 발견되니 남아 있는 것으로 따져도 이미 고대로 올라가지 않아도 태극이 원래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죠.
한웅배달국이나 곰족,호랑이족 모두 한민족을 나타내는 상징과 국가들이며, 이미 사방신이나 단군왕검조선국의 검이나 칸,선우 등에서 곰이란 말이 내포되어 있죠. 이 '곰'이란 것이 의미가 매우 중의적인데, 우리가 신성시하는 영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임금이나 하늘신 혹은 지도자를 나타내는 '군'이 변화발음된 결과물이죠.
'군'이 '김,검,곰,금' 등으로 변음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사방신에서 보면 우리의 지도자 하늘신인 '곰'이 중앙을 차지하고
북 현무, 남 주작, 동 청룡,서 백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중앙의 '곰' 역시 중의적이죠. 영수인 곰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을 가리키기도 하는 한마디로 동음이의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한웅은 한신(韓神)으로, 단군 역시 단신(檀神)으로, 웅녀는 신녀(神女)로 할 수 있죠.
왜국에서는 신을 뜻하는 '곰,검' 등을 '가미'라 합니다.
참고로 그리스 로마 신화도 학자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신의 이야기를 지어서 적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민족의 지도자의 이름이나 혹은 그 민족의 이름을 신화에 대입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즉 역사로 남겼지만 그 후손 중 누가 그것을 더 위대하게 보이려고 말을 더하고 짓고 하는 중에 신화라 치부된 것이죠.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트로이의 존재는 그냥 신화의 일부나 호머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어 지금도 진실이 아닌 허구로 여겨졌겠죠. 그리고 일반사람들이 우리고대사가 거짓이라 치부하는데 그것은 짱골라나 왜의 방해 때문에 우리의 유적을 조사하지 못 해서일뿐이죠. 연구나 조사할 노력조차도 안 해 놓고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식민사학자들이 실증주의를 주장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우리의 유적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실증사학에 위배되는 짓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승자박이죠. 그리고 지금의 국사에 나오는 고구려의 지도나 설명도 그동안 과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많은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실제로 밝혀져서 1980년대초쯤 일부나마 찾아 개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고구려,백제의 일부의 역사만 국사에 개정되어 실렸을 뿐.. 그 전체의 역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 영역들도 여전히 축소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쨌든 그나마 조금이라도 찾지 못했다면 짱골라의 동북,서북,서남공정에 더 쉽게 당했을 지도 모르죠.
배달겨레의 고대 피라미드군이 3군데 있죠. 하나가 만주북서부(동몽골)에 홍산문 명으 로, 또 하나는 배달조선왕조 중 하나인 주나라의 호경(서안,장안)에, 나머지 하 나는 배달겨레 흉노계통의 강(티벳)족들이 살고 있는 티벳지역. 이 지역은 러시아 학자들 이 발견했죠. 짱골라보다 과학적인 러시아 학자들에 의해....만주 북서부의 홍산문명 쪽은 독일학자들이 발견했죠.
스웨덴,독일,러시아,미국 등 여러 학자들의 유적개방요구를 했지만 짱골라들이 묵살하고, 오히려 유적에 나무를 심거나 수몰을 시키는 등 여러 방 법으로 파괴하며 군사들로 통제하여 아무도 못 들어가도록 막고 있소. 전에 만주 집안 에 있는 부여,고구려 등의 피라미드나 왕묘,고분 등도 수몰(물에 수장)시켰다가 독일학회의 종용으로 수몰전의 사진 몇 장을 마지못해 독일학회에 제출했소. 물론 어거지를 써 가 며 발뺌하는 짱골라들의 만행.....치가 떨린다...... 이 유적들에 관한 것은 중앙일보와 오마이뉴스에서 다룬 기사입니다
그동안 식민사학계는 동몽골(만주 북서부 적봉시)의 조선의 전신인 배달제국(홍산배달문명)을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자강 부근의 장강문명이 배달민족의 또 다른 갈래가 이루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죠. 하기사 양심을 판 학자들을 비롯 짱골라들은 배달민족의 홍산배달문명과 장강문명의 영향을 받아 황하문명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죠.
배달민족은 배달제국 후에 쥬신을 비롯한 동쪽의 이(동이)와 중원대륙 에 퍼져 있는 나머지 여덟 이(회이,견이 등등)으로 나누어지고, 북쪽 역시 배달민족 갈래 흉노가 나옵니다. 이 흉노가 후에 강(티벳)족,선비,오환,거란,몽골 등으로 나누 어지죠.
태호복희,신농염제,공손헌원,요순임금 등 삼황오제는 모두 배달민족들이죠. 조 선, 하,은,주,춘추전국 모두 배달의 왕조들입니다. 공자,묵자,항우,맹자 등도 배달의 후예 죠. 이것은 청나라 역사서 [시화전서]뿐만 아니라 대륙의 많은 배달갈래왕조들 각각의 역사서 25사 곳곳에 나와 있죠.
진시황 역시 배달갈래 흉노계통이죠. 우리 역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단국대 윤내현교수나 서울대 신용화,박성범 교수 중앙대 김종서 교수 연변대 심백강 교수 고려대 박원길 교수 명지대 임승국 교수 등의 설도 참고했으 면 하네요
재야사학자라고 몰아부치며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는 식민사관학자들의 억지는 6,70 년대까지나 통하던 일이죠. 그러면 저 위의 여러 강단사학자(대학교수)들마저 재야 학 자라고 몰아부치며 일반인들을 오도할 것인지...계속해서 진실된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강단사학자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옛고토를 회복하지도 못 하고 오히려 이렇게 반도분단국가로 된 지금,파괴되고 있는 우리 유적들을 보호하거나 조사할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쥐나가 숨기고 있는 우리의 여러 사서나 자료들과 왜왕실에 아직도 잠들고 있는 여러 문화재 를 비롯 사서 등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알 수가 어렵다는 사실이 슬플 뿐입니다. 그 사서 등을 포함한 여러 자료들을 입수할 수만 있더라도 좋을텐데...아무리 밥그릇이 진실보다 중요하다지만, 자국의 역사를 축소하고 진실을 오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
위대한 한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우리것을 새로이 재창조 한 것입니다.
한글은 단군조선의 옛글자에서 비롯되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백성들은 이미 한글(언문)을 쓰고 있었다.
고조선때부터 한글이 있었다
1번이 고대한글인 가림토
2번이 훈민정음
3번이 고대한글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조금 변형된 신대문자
훈민정음(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
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것이다.
한편 언어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한글이 어떻게 한 개인의 연구에 의해 단기단에 창제될수 있는가?'
세계 문자 역사상 그런 경우는 단 한건도 없기 때문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
KBS역사스페셜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1999.10.9방영)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있다.
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년만에
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재위 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실직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등 일곱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과 동국정운(1447)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친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혔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등이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언문은 본래 다 예글자 이고 새로운 글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예글자를 모방햇다고 하나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은 옛글자와 달라서 실로 근거한바가 없사옵니다"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
* 전조선(고조선)때 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한자를 써야 할 때인데 어찌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 언문은 한자와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것들이 쓰는 말일뿐이옵니다.
(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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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종대왕은 한글을 [훈민정음] 이라고 발표했지 [언문]이라고 한 적이 없다.
최만리등의 말에서 보이듯이 [훈민정음창제] 이전에 이미 예로부터 전해오는 [언문]이라는 것이 있었고
백성들이 그 [언문]을 쓰고 있었으며
[훈민정음] 즉 한글은 그 언문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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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께서 상소문을 다 보시고 최만리 들에게 말씀 하셨다.
" 그대들이 말하기를 (훈민정음의) 소리를 사용하는 법이나 글자의 조합 방법이 옛것과 다르다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소리가 다르지 않더뇨?"
(上覽& #18429;謂萬里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吏讀亦非異音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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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용문자(俗用文字) - 신경준의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 韻解)]에 의하면 동방에는 예로부터 속용문자 (백성들 사이에 쓰이던 문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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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고조선 시대부터 써왔다는 언문 즉 [고대한글]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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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이전 한글 "가림토" 발견
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서
ㅅ ㅈ ㅠ 자모 뚜렷 학계 관심
- 부산일보 2003/03/13일자 38면-
[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 고대 한글 바위]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경산=정철수기자 csjung@
훈민정음은 단군조선의 옛글자에서 비롯되었다.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한글의 원형 글자가 있었다.
정작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인 세종대왕은 “ 옛 글자를 본떴다 ”고 말했다. 또 위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신경준이 지은 (1750년)에는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 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한문 외에도 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 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백성을 위해서 언어를 연구했던 세종대왕이 세간에서 사용되던 이런 문자들를 참고하였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이는 최만리 등의 반대상소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자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양반계급에 속한 최만리는 언문을 왜 새로 만드냐며, 하물며 옛 글자와 똑같은 것을 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냐고 세종대왕에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에게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옛 글자가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글’이나 ‘속용문자’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서로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4000여년 전 단군시대의 가림토 문자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28자)과 단군조선시대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가림토 문자(38자)를 비교해보자. 모음이나 자음의 모양이 두루 비슷하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가림토 문자는 가히 한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글자는 옛글을 본떴다 ’고 한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실제로 가림토 문자의 38자 중에서 10자를 빼면 훈민정음 28자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한경대전』(임균택 저, 충효예출판사 2001년)이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 『징심록』의 가림토문에서 취해졌다”
가림토 문자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184년전 단군시대 때,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 불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단군세기」 와 『단기고사』의 기록이 동일하다).
한글과 가림토 문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민족사학자의 글 및 언론과 방송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1996년 한글날에 방영된 Q채널의 「한글, 그 비밀의 문」도 그중의 하나)
학자에 따라서는,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 X, M, P, H 및 I, O 등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에 주목하기도 한다(참고로 알파벳의 역사는 3000년이다).
그밖에도 중국의 갑골문자와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등이 단군시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참고로 알타이어의 사용범위는 터키, 몽고, 티벳,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다)
세계문자역사의 종주는 바로 우리 배달민족
앞으로 우리 나라 상고사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 우리 한민족이 세계 문자 역사의 종주국이며, 배달국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가졌던 일등 문명국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일본에서 한글로 토속신 모신다.
일본 시코쿠 도쿠시바시 야마시로 마을에서 사용하고 있는 토속신 `에비스'의 계시록에 한글이 적혀 있다. 고대 한글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
고대 한국인이 건너가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면서 한글도 전한 것으로 추정.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제558돌 한글날을 나흘 앞둔 가운데 일본에서 한글 부적을 사용하며 토속신을 모시는 신사(神社)와 마을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부산외대 김문길(金文吉) 교수에 따르면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시 야마시로라는 마을에는 신사와 집집마다 이 지역의 토속신인 `에비스(エビス)'를 섬기고 찬양하자는 내용의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다. 또 이 마을 주민들은 에비스신 축제와 경조사 때 에비스신이 직접 적어줬다는 이 부적을 일본어로 낭독하고 있으나 한글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이 '에비스' 라는 신은 고대한국인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들을 가르친 사람으로 보임.
일본인들에게 신으로까지 추앙받은 한국인으로 보임. 사실 많은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음. 그 시기를 일본에서는 '신대' 즉 '신들의 시대' 라 하고 한글을 '신대 문자' 라 함.)
주민들은 특히 115페이지 분량의 `계시록'을 갖고 있는데 이 계시록의 제목도 `가이ㅣㅏ아(카미야마.神山)의 계시록'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 교수는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계시록에는 생활법규와 신의 계시 등을 담고 있어 주민들은 이 책을 기독교의 성경처럼 여기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지역 외에도 오카야마 비전시 가가도와 후쿠오카 히예신사, 나고야신사, 관서지방의 한 역사자료관 등에도 토속신은 다르지만 이들 신을 찬양하는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거나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youngkyu@yna.co.kr
(끝)
이하 일본에 있는 신대문자
-고대한글이 건너간 것
#위대한 한글의 우수성
전세계 언어학자치고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한글은 과연 다른 문자와 비교하여 얼마나 우수한 문자일까, 위대한 문자일까?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ㅐ, ㅒ, ㅚ'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옛글을 재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재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둥 애만 태웠다.
샹폴리옹은 그러나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 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Ω)이다. 각각 'ㅏ', 'ㅗ'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 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소'할 때 'ㅅ' 소리가 나니까 '소'를 그려 놓고 이를 'ㅅ'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영주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ㄱ, ㅋ]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ㄱ, ㅋ, ㄲ]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ㅋ, ㅌ, ㅍ, ㅎ]에서 보듯이 기본자 [ㄱ, ㄷ, ㅁ, ㅇ]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ㅡ], 사람은 서 있으니까, [ㅣ],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ㅡ]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ㅣ]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ㅣ, ㅡ]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ㅏ]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ㅓ]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점'을 찍은 것이다. [ㅗ, 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ㅗ]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ㅜ]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
왜?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과 [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타,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부용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ㅅ'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ㅍ'을 써서 '잎'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 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은 '이것'과 '을'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의 '천, 만'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
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천'은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을 재창제한 세종대왕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첫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둘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쥐나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재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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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진정한 주인
최초로 문자를 만든 것은 동이족
▶ 한자의 원조인 갑골문은 중국이 아닌 동이족의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한문은 중국인이 만든 중국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의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들은 사마천의 를 비롯하여 주나라 때부터야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즉 주나라 이전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골문자의 발굴로 중원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기록과 물증이 없어 전설 속의 왕조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저 유명한 사마천도 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은왕조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입니다.
은나라의 건국시조도,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거기서 나온 한문 또한 동이족의 문자였습니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중국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습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배달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입니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 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한문은 중국의 고리타분한 글자요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비판 속에서, 진짜 기원도 모르면서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온 것은 두 가지 문자의 발명국 후손으로써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한자는 우리 글이다'[2001년 7월 2일자 경향신문 기사]
음성언어로서 한국어와 중국어, 문자언어로서 한자와 우리 글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연구서 2권이 출간되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다른 어족에 속한다거나 한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내용이다.
경희대 강사인 김지형 박사(국문학)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박이정)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시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는 몽골, 만주 터키와 같은 알타이어족, 중국은 한장(漢藏)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김박사는 "상고시대 이전에 6개의 언어 집단이 한국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중 일부가 중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한자어 213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재구(이론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해 한국어 300여 개 단어와 비교했다. 예를 들어 '人(인)'자의 중국 상고시대 발음은 '니인'(njin)으로 우리말 '놈''님''남'과 같은 어두자음인 'n' 음가를 갖는다. 또 '河'(하)의 상고시대 재구형 '가르'(gar)도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비슷하다.
김박사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어족을 가르는 차이는 어순과 성조(높낮이)인데 이는 한자가 전래된 상고시대(BC 1세기) 이후의 일이여 음성언어 단계에서는 같은 말로 볼 만한 발음상의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정,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 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 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학계에서도 유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 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날숨과 들숨을 뜻하는 호흡(呼吸)의 경우 우리말로는 소리가 분명히 나가고 들어가지만 중국발음 '후시'는 모두 새는 소리가 되고 만다. 출입(出入)도 중국 발음은 '츄루'로 본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김지형, 박문기씨의 주장은 지금까지 중국문자인 한자를 우리가 빌려 썼다는 일방적인 차용의 관점을 탈피해 두 문화 사이의 영향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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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이지만 상식의 오해 를 몇가 지 풀어드리죠. 지금의 개천절이10월3일 맞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 다. 우리 의 역사는 환>> 배달>>조선으로 옵니다. 그 중에서도 실질적인 시작은 배 달 부터입 니 다
즉 배달의 한웅시대에 우리가 시작되 고 조선의 단군시대를 지나 면면히 지금까지 이 어온 것입니다. 뭐 우리 한민족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것은 아실테고 그 에 따라 우 리는 이미 다민족국가가 된 것도 이해하실겁니다. 진짜 개천절은 음력 10월3일입니 다 그리고 우리가 단기로 따져서 5000년역사라 하는데 이건 맞을까요??? 정답은 역 시 '아니다'입니다. 배달부터 시작되니 배달의 한웅시대1650년간을 고려해야 하니 정 확한 역사는 한기 7000 년이상입니다. 이런 오류가 벌어진 이유는 왜제35년간 왜놈들이 우리의 고서20 만종 을 불태우고 왜곡 하며 자신들이 훔쳐간데 기인하죠. 뭐 문화재나 기타의 것들 은 말 안 해도 알겠죠.
거기에다 하나의 팩션(사실과 픽션의 합성어)인 삼국사기와 불경의 우화등을 각색한 삼국유사만 남겨놓고 '니들은 원래 이것밖에 없었어'하고 날 조한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그냥 조작해도 화가 나는데 우리의 정사들을 없애거나 숨기고 혹은 여 러 소설들을 결합한 팩션을 만들어내는 교묘한 짓을 벌였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한웅과 단군을 헷갈려하며 곰족과 호랑이족의 같은 한민족들을 무슨 우화 처 럼 만든 것이죠. 자 그러면 한글날은 10월9일이 맞을까요??? 역시 정답은 '아니 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자의 원형인 신시문자와 가림토를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은조선의 갑골문자 보 다 더 오래된 내몽골지역의 홍산문명(배달)에서 신시문자의 형 태의 증거를 찾았 다 는 지 나학자가 고백을 한적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가 아니라 해서 짱 골라들 이 그 유물 들을 도로 숨기고 그 유적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하여 아무 도 접 근 못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누가 증거를 들이대라 하지만 과거 우리 영토를 빼 앗긴 상태 니 가서 보고 확인할 수도 없죠
우리가 다시 고토를 되찾을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훈민정 음 즉 한글 을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시면서 이러한 얘기를 합니다.'엣 전자를 모 방해 서 만들 었 다' 이것이 가림토죠. 뭐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상상이 필요합니 다. 끊임없 는 외세 에 의해 거의 대부분의 사서나 유적,문화재가 파괴되었는데 물론 지금 도 진 행되고 있 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문자와 글에 대해서 유추해보면 과거 공 식적인 문서나 문학작 품, 여러 경서(이론,논설)는 신시문자가 쓰이고 일반 회화는 가림토를 쓰지 않았 나 생각됩니 다. 그리고 한 자란 원 래 한(韓)자이죠. 그러나 우리의 역사마저 빼앗기 면서 한(漢)자 가 된 겁니다. 뭐 이 (夷)가 뜻이 변해 오랑캐가 된 것과 같은 맥락입니 다. 가림토는 주로 대화위주 다 보 니 글을 남겨도 별로 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 론 그 이전에 모든 것들이 외세에 의해 전화되었다는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과거에도 사람들이 문학작품이나 경서를 다 룰 때, 아무래도 가림토보다는 신시(녹도)문자가 더 잘 쓰였지 않았나 싶습 니다. 왜냐하면 문학이나 예술은 그 속에 수많은 뜻이 담겨 야 각각이 감상의 폭의 여 지를 넓 힐 수 있 거든요. 뭐 지금의 시를 보면 쉽게 느낄 수 있겠죠. 그리고 소설 역 시 이런 중의적인 개념을 도 입해야 복선을 깔기도 편했을 테니...... 물론 불경이나 도덕경 등의 형이상학적인 글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진정한 한글의 날은 10월9일이 아니며 세종대왕이 모두 혼자 만든 것도 아니죠. 그가 가림토를 본받아 한글창제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명령을 했을지 모르나 직접적으로 되살려낸 것은 그 아래의 학자들과 세종대왕의 공동연구에 기인합니다.
세종대왕의 훌륭한 점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옛 것을 기반으로 다시 새롭게 재창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한글은 국한혼용체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한글로 다 되는데 왜 가림토 는 그렇지 못 했나 하면 안 됩니다.
가림토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얼 핏 못 알아듣는 순우리말의 형태에 가까우니까요.
보너스로 두개 더!!!
먼저 하나!
한민족은 고대 부터 태음력과 태양력 을 같이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인 것 은 태음력을 사용하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는 태양력을 사용했습니다. 지 금도 절기는 태양력이죠. 혹시 음력 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유목,기마민족이면서도 농 경민족인 한민족은 별이나 달,태양 등을 관찰할 필요성으 로 고대로부터 천문학이 발 달하였죠. 한민족의 수많은 지류가 있으니, 그 수많은 한 민 족 의 갈래들 하나씩이 모 여야 비로소 한민족을 이해할 수 있 겠죠. 시작은 단일민 족이 나 세월이 흘러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지니 이미 오래전부 터 한민족 은 다민족국가입니다 과거 거대한 영토를 가졌을 때도 하나의 나 라가 아닌 많은 제후를 거느린 연방국가였 습니다. 부모와 형제 는 하나 에서 시작되 었지만 시간이 흘러 먼 친척이 되고 다시 남 남이 되어 서로 부둥 켜안고 사 는 지금 의 세상처럼....
그리고 천문학이 발달했다는 말은 수학에 강했다는 말이 됩니 다. 그 래서 외적의 침입 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는 고 구려의 성의 건축이 뛰 어난 것이 며, 각 시대마다 훌륭한 고분이나 왕묘가 있었던 것 입니다. 물론 석굴암과 같은 대단 한 문화재를 남 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의 피라미드 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 초도 같은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불가사의라 여겨 질만큼 말이지요. 한글은 쉽습 니다. 하지 만 한국어는 어렵죠. 그러나 외국어는 한국 어만큼이나 어렵습 니다. 모든 것은 투자 한 만큼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외국것이라 다 믿지 말고 우리 것이라 무조 건 배격해서 도 안 됩니다. 언제나 균형되고 공정하게 대하며 신중히 생각해 과감 하게 행 동해야 하겠습 니다 그래야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겠죠
참고 로 몽골이나 선비 등 흉노 계는 대 분분 유목인족이 죠. 하지만 부여나 고구려 등의 동 이계는 유목과 농경을 함 께 한 반 농반목민족입니 다. 배달과 조선 이후로 대륙동북 을 경계로 배달쥬신족이 크게 두 부 류로 나누어집니 다 어쨌든 그들 모두는 배달쥬신족의 후예입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여야 배달쥬신족 이 됩니다. 어느 하나가 그 전체를 대변한다는 무식한 일반화의 오류는 안 했으면 합 니다. 전체와 부분을 함께 고려해야 그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도 알 수 있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한 인간을 평가할 때 그의 앞면,뒷면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을 비롯한 내 면 등 모든 면을 고려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처럼....그 사람의 얼굴만 보 아서는 그가 키가 큰지 어떤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다음 둘!
사람들은 태극,팔괘,사방신이 쥐나에서 건너온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거짓이죠.
쥐나에서는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중앙(황제)라 하는데 이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원래 사방신은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중앙(곰)이다. 우리 민족의 한 상징인 곰이 빠지고 황제를 집어넣어 자기 것이라 짱골라들이 우기는데 정말 웃기는 일이죠. 하물며 공손헌원(황제헌원)마저 우리 민족인 동이인이니 말 다 한것이죠.
팔괘는 복희씨가 만들었는데 복희씨 역시 우리 민족 사람이며 조상인 것이죠.
삼태극은 배달시대부터 사용되어왔는데 삼태극 , 천지인 , 치화 교화 조화 ,삼족오 등 우리의 사상의 상징을 뜻하죠.
우리의 일반 생활에 3이란 숫자가 도처에 녹아있는 것도 마찬가지.
환>>>배달>>>조선로 이어져 오다가 조선이 무너지면서 부여,돌궐,흉노 등으로 한민족이 흩어지게 되는데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오고, 고구려에서 백제 거란(요),말갈(여진,만주족>>>금,청),대진국(발해)가 나옵니다.
서돌궐은 서쪽으로 가 지금의 터키(투르크)가 되고 흉노 중 일부는 유럽으로 가 훈족이라 불리며 아틸라의 지휘아래 헝가리의 마자르족을 이루죠, 동돌궐에서는 몽골이 나오고, 백제에서 왜가 나옵니다.
배달,조선,고구려는 삼태극(적,청,금)을 그대로 쓰고 몽골은 푸른 초원의 영향과 곰의 민족으로 자각을 가지고 금태극을 쓰게 됩니다. 백제는 적태극을 사용하고 백제의 후예인 왜 역시 적태극을 사용해 지금의 왜국기인 중앙의 붉은 태양의 적태극 왜장기를 쓰게 된 것이죠. 고대로부터 백두산을 영산으로 여겨왔으며 청 역시 이를 지켜왔죠.
그래서 청은 백두산의 천지를 연상하는 청태극을 쓰게 됩니다. 고려는 삼태극과 양태극을 혼용해서 사용했으며
이씨조선은 양태극을 사용하였죠. 지금의 대한민국은 팔괘 중 사괘와 양태극을 사용하여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태극이란 말이 쥐나에서는 송나라때 [태극도설]이란 책에서 나왔는데 우리는 신라,고려시대의 절이나 제단, 북 등 그나마 얼마 없는 자료, 유적에서 발견되니 남아 있는 것으로 따져도 이미 고대로 올라가지 않아도 태극이 원래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죠.
한웅배달국이나 곰족,호랑이족 모두 한민족을 나타내는 상징과 국가들이며, 이미 사방신이나 단군왕검조선국의 검이나 칸,선우 등에서 곰이란 말이 내포되어 있죠.
이 '곰'이란 것이 의미가 매우 중의적인데, 우리가 신성시하는 영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임금이나 하늘신 혹은 지도자를 나타내는 '군'이 변화발음된 결과물이죠.
'군'이 '김,검,곰,금' 등으로 변음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사방신에서 보면 우리의 지도자 하늘신인 '곰'이 중앙을 차지하고
북 현무, 남 주작, 동 청룡,서 백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중앙의 '곰' 역시 중의적이죠. 영수인 곰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을 가리키기도 하는 한마디로 동음이의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한웅은 한신(韓神)으로, 단군 역시 단신(檀神)으로, 웅녀는 신녀(神女)로 할 수 있죠.
왜국에서는 신을 뜻하는 '곰,검' 등을 '가미'라 합니다.
참고로 그리스 로마 신화도 학자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신의 이야기를 지어서 적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민족의 지도자의 이름이나
혹은 그 민족의 이름을 신화에 대입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즉 역사로 남겼지만 그 후손 중 누가 그것을 더 위대하게 보이려고
말을 더하고 짓고 하는 중에 신화라 치부된 것이죠.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트로이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트로이의 존재는 그냥 신화의 일부나 호머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어 지금도 진실이 아닌 허구로 여겨졌겠죠.
그리고 일반사람들이 우리고대사가 거짓이라 치부하는데 그것은 짱골라나 왜의 방해 때문에 우리의 유적을 조사하지 못 해서일뿐이죠.
연구나 조사할 노력조차도 안 해 놓고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식민사학자들이 실증주의를 주장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우리의 유적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실증사학에 위배되는 짓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승자박이죠.
그리고 지금의 국사에 나오는 고구려의 지도나 설명도 그동안 과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많은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실제로 밝혀져서 1980년대초쯤 일부나마 찾아 개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고구려,백제의 일부의 역사만 국사에 개정되어 실렸을 뿐..
그 전체의 역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 영역들도 여전히 축소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쨌든 그나마 조금이라도 찾지 못했다면 짱골라의 동북,서북,서남공정에 더 쉽게 당했을 지도 모르죠.
배달겨레의 고대 피라미드군이 3군데 있죠. 하나가 만주북서부(동몽골)에 홍산문 명으 로, 또 하나는 배달조선왕조 중 하나인 주나라의 호경(서안,장안)에, 나머지 하 나는 배달겨레 흉노계통의 강(티벳)족들이 살고 있는 티벳지역. 이 지역은 러시아 학자들 이 발견했죠. 짱골라보다 과학적인 러시아 학자들에 의해....만주 북서부의 홍산문명 쪽은 독일학자들이 발견했죠.
스웨덴,독일,러시아,미국 등 여러 학자들의 유적개방요구를 했지만 짱골라들이 묵살하고, 오히려 유적에 나무를 심거나 수몰을 시키는 등 여러 방 법으로 파괴하며 군사들로 통제하여 아무도 못 들어가도록 막고 있소. 전에 만주 집안 에 있는 부여,고구려 등의 피라미드나 왕묘,고분 등도 수몰(물에 수장)시켰다가 독일학회의 종용으로 수몰전의 사진 몇 장을 마지못해 독일학회에 제출했소. 물론 어거지를 써 가 며 발뺌하는 짱골라들의 만행.....치가 떨린다...... 이 유적들에 관한 것은 중앙일보와 오마이뉴스에서 다룬 기사입니다
그동안 식민사학계는 동몽골(만주 북서부 적봉시)의 조선의 전신인 배달제국(홍산배달문명)을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자강 부근의 장강문명이 배달민족의 또 다른 갈래가 이루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죠. 하기사 양심을 판 학자들을 비롯 짱골라들은 배달민족의 홍산배달문명과 장강문명의 영향을 받아 황하문명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죠.
배달민족은 배달제국 후에 쥬신을 비롯한 동쪽의 이(동이)와 중원대륙 에 퍼져 있는 나머지 여덟 이(회이,견이 등등)으로 나누어지고, 북쪽 역시 배달민족 갈래 흉노가 나옵니다. 이 흉노가 후에 강(티벳)족,선비,오환,거란,몽골 등으로 나누 어지죠.
태호복희,신농염제,공손헌원,요순임금 등 삼황오제는 모두 배달민족들이죠. 조 선, 하,은,주,춘추전국 모두 배달의 왕조들입니다. 공자,묵자,항우,맹자 등도 배달의 후예 죠. 이것은 청나라 역사서 [시화전서]뿐만 아니라 대륙의 많은 배달갈래왕조들 각각의 역사서 25사 곳곳에 나와 있죠.
진시황 역시 배달갈래 흉노계통이죠. 우리 역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단국대 윤내현교수나 서울대 신용화,박성범 교수 중앙대 김종서 교수 연변대 심백강 교수 고려대 박원길 교수 명지대 임승국 교수 등의 설도 참고했으 면 하네요
재야사학자라고 몰아부치며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는 식민사관학자들의 억지는 6,70 년대까지나 통하던 일이죠. 그러면 저 위의 여러 강단사학자(대학교수)들마저 재야 학 자라고 몰아부치며 일반인들을 오도할 것인지...계속해서 진실된 우리 역사를 찾으려는 강단사학자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옛고토를 회복하지도 못 하고 오히려 이렇게 반도분단국가로 된 지금,파괴되고 있는 우리 유적들을 보호하거나 조사할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쥐나가 숨기고 있는 우리의 여러 사서나 자료들과 왜왕실에 아직도 잠들고 있는 여러 문화재 를 비롯 사서 등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알 수가 어렵다는 사실이 슬플 뿐입니다. 그 사서 등을 포함한 여러 자료들을 입수할 수만 있더라도 좋을텐데...아무리 밥그릇이 진실보다 중요하다지만, 자국의 역사를 축소하고 진실을 오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