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전 세계를 통 털어 가장 우아한 도시 중의 하나인 이스탄불은 두 개의 대륙인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는 동시에 2천여년간 두 大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던 지구상에 있는 유일한 땅이다. 다양한 문화와 유산을 가진 이스탄불은 지구를 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든다.
문화, 예술, 역사, 무역 그리고 비즈니스면에서 세계에서 앞서가는 대도시로 여겨지는 이스탄불은 기원전 2000년 말에 리고스라고 불리는 어업을 주로 하는 공동사회로써 역사의 무대에 처음 나타났다. 기원전 7세기에 비자스라는 사람이 이끄는 뱃 사람들이 에게해의 메가레라는 곳에서 이곳에 왔고 그들은 지도자의 이름을 따라 도시이름을 비잔티움이라고 명명했다.
이스탄불은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서 상업과 군대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천연 항구인 할리치와 골든 혼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가 있었다. 수 백년동안 이스탄불은 많은 나라와 제국들 그리고 아나톨리아 땅을 통치하는 국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4세기초에 이스탄불은 로마황제인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동부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도시 이름은 '콘스탄틴의 도시'란 뜻의 콘스탄티노플로 바뀌게 되었다.
11세기부터 시작된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함께 아나톨리아에는 터키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명인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부터 아나톨리아의 방대한 땅 전역에 걸쳐서 그들은 고도로 높은 문명을 일으켰고, 많은 작은 나라들을 건성 했으며, 후에는 세계적인 제국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오토만 터키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발칸반도까지 확장하고, 비잔틴을 위협하기 시작할 무렵,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 제국의 유일한 본거지로 남아 있었다. 1453년 오토만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 통치에 막을 내리면서 이들은 이 도시를 이스탄불이라고 재 명명하였다.
파리, 로마, 런던처럼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흥미있는 야외 박물관중의 하나이다. 며칠 만에 도시를 다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3일간 터키여행이지만 두 번째날엔 비행기와 버스로 카파도키아 여행이 끼어 있어 사실상 이스탄불에서는 2일간뿐이어서 오전부터 관광을 시작하였다.
터키의 남대문 시장 그랜드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 입구
이스탄불에서의 쇼핑이라면 당연히 그랜드 바자르로 간다. 입구에 카팔리차르쉬 그랜드 바자르(Kaplicarsi Grand Bazaar)라는 표시가 보인다. ‘카팔리차르쉬’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란다. 그랜드 바자르는 지붕을 갖춘 실내 재래시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최대다.부지 1200여평(4000㎡)에 점포가 5000여개로 2만5000여명이 일한다.출입구만 18개나 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자칫 길을 잃기 일쑤라지만 복잡할 것 같은 이곳도 알고 보면 단순하다. '저 골목은 가죽, 이 골목은 양탄자, 저 너머는 은제품'하는 식의 나름대로의 세분화가 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남대문시장과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지붕이 덮여있기 때문인지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지나다니지 않는 데다 호객행위도 심하지 않아서 번잡하지 않다.
이 곳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 물건 값을 깍지 못하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이곳 상인들은 일본인은 부르는 게 값, 한국인은 70%, 중국인은 절반 값에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바퀴 돌아다녔지만 도무지 무엇을 사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금세공품부터 가죽제품, 터키석으로 만든 악세사리...... 결국 가이드가 소개한 그랜드 바자르 출입구 앞 터키석 악세사리 가게에서 아내와 딸에게 선물할 목걸이와 팔찌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게 터키인 주인은 한국 여행객 전문인양 물건파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곧잘 했다.
톱카프 궁전 (Topkapi Palace)
그랜드 바자르 쇼핑을 끝내고 톱파프 궁전으로 이동하였다. 오토만 제국의 술탄 마호멧은 부의 극치를 이룬 톱카피 궁을 건립하였다. 1465년에 완공된 이 궁은 보물로 잔뜩 치장 되었으며 복합 구조물에는 하렘까지 있고, 약 400년간 오토만 제국의 권력 중심이 되었다한다.
톱카피 궁에 영주하였던 첫번째 술탄은 쉴레이만 대왕으로 그는 이스탄불의 지평선을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장대하고 음향학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쉬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장식하였다. 이 모스크는 그의 우두머리 건축가였던 천재 시난에 의해 16세기 중반에 건립 되었다. 시난은 이스탄불에만도 각종 건축물 290채 이상을 건축했다 한다.
15 세기 부터 19세기 말까지 술탄들이 살던 이 궁전은 지금은 오토만 제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각종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 되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미로와 같이 이어져 있으며, 호화로운 궁전 안에서 술탄과 그 부하들이 생활하며 통치하여 왔다. 궁전의 외측, 제 1정원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곳은 수목으로 무성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제 2정원의 오른쪽 사이프러스와 플라터너스의 그늘로 드리워진 장소가 일찍이 궁전의 조리동이 있으며 현재는 제국의 크리스탈, 은, 중국 도자기를 컬렉션한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은 술탄의 많은 처들과 그리고 자식들이 생활하여 온 바 있는 방이 남아있는 할렘으로 몇세기를 걸쳐 온 밀회의 여운이 이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의 마음을 불가사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여준다.
지금에 와서는 제3정원에는 알현의 공간, 아흐멧 3세의 도서관을 비롯 술탄과 그 가족들의 의상, 보물, 중세의 세밀화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이 성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성의의 공간이 있으며 오스만제국이 이슬람의 카리프제도를 확립시켰을 때에 이스탄불을 찾아온 바 있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유적이 모셔져 있다.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 86캐럿의 다이아몬드,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멧의 치아와 수염, 그리고 그가 입던 망토, 메카의 신전 열쇠,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손, 다윗 의 칼, 요셉의 모자와 모세의 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히 훌륭한 도자기들이 너무 많아 '톱카프 궁전에간다'는 말을 바로 '도자기를 보러 간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 '보석 전시관'이 인기가 있다. 수많은 에머런드가 박혀 있는 단검이 현란하다.
톱카프 궁전은 신시가지가 건너 다 보이는 골든혼과 마르마다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식당은 궁전 안 마르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터키 이스탄불 맛보기
터키와 전 세계를 통 털어 가장 우아한 도시 중의 하나인 이스탄불은 두 개의 대륙인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는 동시에 2천여년간 두 大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던 지구상에 있는 유일한 땅이다. 다양한 문화와 유산을 가진 이스탄불은 지구를 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든다.
문화, 예술, 역사, 무역 그리고 비즈니스면에서 세계에서 앞서가는 대도시로 여겨지는 이스탄불은 기원전 2000년 말에 리고스라고 불리는 어업을 주로 하는 공동사회로써 역사의 무대에 처음 나타났다. 기원전 7세기에 비자스라는 사람이 이끄는 뱃 사람들이 에게해의 메가레라는 곳에서 이곳에 왔고 그들은 지도자의 이름을 따라 도시이름을 비잔티움이라고 명명했다.
이스탄불은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서 상업과 군대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천연 항구인 할리치와 골든 혼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가 있었다. 수 백년동안 이스탄불은 많은 나라와 제국들 그리고 아나톨리아 땅을 통치하는 국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4세기초에 이스탄불은 로마황제인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동부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도시 이름은 '콘스탄틴의 도시'란 뜻의 콘스탄티노플로 바뀌게 되었다.
11세기부터 시작된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함께 아나톨리아에는 터키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명인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부터 아나톨리아의 방대한 땅 전역에 걸쳐서 그들은 고도로 높은 문명을 일으켰고, 많은 작은 나라들을 건성 했으며, 후에는 세계적인 제국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오토만 터키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발칸반도까지 확장하고, 비잔틴을 위협하기 시작할 무렵,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 제국의 유일한 본거지로 남아 있었다. 1453년 오토만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 통치에 막을 내리면서 이들은 이 도시를 이스탄불이라고 재 명명하였다.
파리, 로마, 런던처럼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흥미있는 야외 박물관중의 하나이다.
며칠 만에 도시를 다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3일간 터키여행이지만 두 번째날엔 비행기와 버스로 카파도키아 여행이 끼어 있어 사실상 이스탄불에서는 2일간뿐이어서 오전부터 관광을 시작하였다.
터키의 남대문 시장 그랜드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 입구
이스탄불에서의 쇼핑이라면 당연히 그랜드 바자르로 간다.
입구에 카팔리차르쉬 그랜드 바자르(Kaplicarsi Grand Bazaar)라는 표시가 보인다.
‘카팔리차르쉬’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란다.
그랜드 바자르는 지붕을 갖춘 실내 재래시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최대다.부지 1200여평(4000㎡)에 점포가 5000여개로 2만5000여명이 일한다.출입구만 18개나 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자칫 길을 잃기 일쑤라지만 복잡할 것 같은 이곳도 알고 보면 단순하다.
'저 골목은 가죽, 이 골목은 양탄자, 저 너머는 은제품'하는 식의 나름대로의 세분화가 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남대문시장과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지붕이 덮여있기 때문인지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지나다니지 않는 데다 호객행위도 심하지 않아서 번잡하지 않다.
이 곳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 물건 값을 깍지 못하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이곳 상인들은 일본인은 부르는 게 값, 한국인은 70%, 중국인은 절반 값에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바퀴 돌아다녔지만 도무지 무엇을 사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금세공품부터 가죽제품, 터키석으로 만든 악세사리...... 결국 가이드가 소개한 그랜드 바자르 출입구 앞 터키석 악세사리 가게에서 아내와 딸에게 선물할 목걸이와 팔찌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게 터키인 주인은 한국 여행객 전문인양 물건파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곧잘 했다.
톱카프 궁전 (Topkapi Palace)
그랜드 바자르 쇼핑을 끝내고 톱파프 궁전으로 이동하였다. 오토만 제국의 술탄 마호멧은 부의 극치를 이룬 톱카피 궁을 건립하였다. 1465년에 완공된 이 궁은 보물로 잔뜩 치장 되었으며 복합 구조물에는 하렘까지 있고, 약 400년간 오토만 제국의 권력 중심이 되었다한다.
톱카피 궁에 영주하였던 첫번째 술탄은 쉴레이만 대왕으로 그는 이스탄불의 지평선을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장대하고 음향학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쉬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장식하였다.
이 모스크는 그의 우두머리 건축가였던 천재 시난에 의해 16세기 중반에 건립 되었다. 시난은 이스탄불에만도 각종 건축물 290채 이상을 건축했다 한다.
15 세기 부터 19세기 말까지 술탄들이 살던 이 궁전은 지금은 오토만 제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각종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 되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미로와 같이 이어져 있으며, 호화로운 궁전 안에서 술탄과 그 부하들이 생활하며 통치하여 왔다. 궁전의 외측, 제 1정원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곳은 수목으로 무성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제 2정원의 오른쪽 사이프러스와 플라터너스의 그늘로 드리워진 장소가 일찍이 궁전의 조리동이 있으며 현재는 제국의 크리스탈, 은, 중국 도자기를 컬렉션한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은 술탄의 많은 처들과 그리고 자식들이 생활하여 온 바 있는 방이 남아있는 할렘으로 몇세기를 걸쳐 온 밀회의 여운이 이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의 마음을 불가사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여준다.
지금에 와서는 제3정원에는 알현의 공간, 아흐멧 3세의 도서관을 비롯 술탄과 그 가족들의 의상, 보물, 중세의 세밀화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이 성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성의의 공간이 있으며 오스만제국이 이슬람의 카리프제도를 확립시켰을 때에 이스탄불을 찾아온 바 있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유적이 모셔져 있다.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 86캐럿의 다이아몬드,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멧의 치아와 수염, 그리고 그가 입던 망토, 메카의 신전 열쇠,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손, 다윗 의 칼, 요셉의 모자와 모세의 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히 훌륭한 도자기들이 너무 많아 '톱카프 궁전에간다'는 말을 바로 '도자기를 보러 간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오히려 '보석 전시관'이 인기가 있다. 수많은 에머런드가 박혀 있는 단검이 현란하다.
톱카프 궁전은 신시가지가 건너 다 보이는 골든혼과 마르마다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식당은 궁전 안 마르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