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건축가 김원은 이 땅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도질 것만 같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환경과 인간관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애정 어린 안목”이 결여된 우리 건축문화를 향한 안타까움이었을 게다. 당장이라도 스러져 갈 것만 같은 오래된 건물을 그리는 작가 정재호의 시선도 여기에 닿아 있는 듯하다. 모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올라가는 휘황찬란한 주상복합아파트에 군침을 흘리는 지금,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옛 건물들을 찾아내는 촉수를 지녔다. 그래서일까. 낡은 아파트나 건물의 ‘정면’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그의 그림에는 우리가 잊고 살던 아련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정재호의 옛 건물이 인상적인 건 그가 붓과 먹을 재료로 삼는 동양화가라는 데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도식에서 한발 비껴나 있는 그의 그림은 ‘소속’을 꼬치꼬치 따지는 우리 화단의 풍토를 감안할 때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는 데 있어 동양화면 어떻고, 서양화면 어떠냐 라는 작가의 고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때마침 오늘날의 미술 역시 평면과 입체, 그리고 영상으로 단순화되고 있으니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정재호 한지에 채색 170×259cm 2007 사진 _ 네오룩닷컴
2007년 봄, 그는 명동과 소공로, 그리고 창신동에 남아있는, 아니 숨어있는 낡은 건물을 널찍한 화폭에 담아냈다. 한지를 파고드는 먹물 사이사이로 과슈와 목탄이 어우러져 더욱 산뜻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그 자체가 수직으로 솟아 있는 아파트나 건물과 달리 대지에 바짝 밀착해 있는 창신동의 주택들을 아파트처럼 쌓아올려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 하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이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그리 엉뚱한 상상만은 아닐 듯하다.
정재호 한지에 채색 182×227cm 2007 사진 _ 네오룩닷컴
정재호의 그림은 마치 ‘7080 가요’를 듣는 듯한 애잔함을 안겨준다. 어떤 이는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구조의 소외된 공간을 발견한 그의 눈썰미를 예찬하지만, 나는 그저 어린 시절 내가 뛰어놀던 동네를 떠오르게 만든 그 느낌이 더욱 좋다. 오직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의 ‘정신’이 아름다울 뿐이다. 온통 욕망의 덩어리로 가득한 도시의 이데올로기를 첨예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도시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아니던가. 정재호가 번쩍거리는 새 건물이 아닌, 퇴락한 공간에 눈길을 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오! 황홀한 공간
오! 황홀한 공간
- 정재호의 '낡은 건물'에 깃든 아름다움
정재호 한지에 채색 130×260cm 2007 사진 _ 네오룩닷컴
언제였던가. 건축가 김원은 이 땅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도질 것만 같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환경과 인간관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애정 어린 안목”이 결여된 우리 건축문화를 향한 안타까움이었을 게다. 당장이라도 스러져 갈 것만 같은 오래된 건물을 그리는 작가 정재호의 시선도 여기에 닿아 있는 듯하다. 모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올라가는 휘황찬란한 주상복합아파트에 군침을 흘리는 지금,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옛 건물들을 찾아내는 촉수를 지녔다. 그래서일까. 낡은 아파트나 건물의 ‘정면’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그의 그림에는 우리가 잊고 살던 아련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정재호의 옛 건물이 인상적인 건 그가 붓과 먹을 재료로 삼는 동양화가라는 데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도식에서 한발 비껴나 있는 그의 그림은 ‘소속’을 꼬치꼬치 따지는 우리 화단의 풍토를 감안할 때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는 데 있어 동양화면 어떻고, 서양화면 어떠냐 라는 작가의 고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때마침 오늘날의 미술 역시 평면과 입체, 그리고 영상으로 단순화되고 있으니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정재호 한지에 채색 170×259cm 2007 사진 _ 네오룩닷컴
2007년 봄, 그는 명동과 소공로, 그리고 창신동에 남아있는, 아니 숨어있는 낡은 건물을 널찍한 화폭에 담아냈다. 한지를 파고드는 먹물 사이사이로 과슈와 목탄이 어우러져 더욱 산뜻해 보인다.
흥미로운 건 그 자체가 수직으로 솟아 있는 아파트나 건물과 달리 대지에 바짝 밀착해 있는 창신동의 주택들을 아파트처럼 쌓아올려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 하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이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 그리 엉뚱한 상상만은 아닐 듯하다.
정재호 한지에 채색 182×227cm 2007 사진 _ 네오룩닷컴
정재호의 그림은 마치 ‘7080 가요’를 듣는 듯한 애잔함을 안겨준다. 어떤 이는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구조의 소외된 공간을 발견한 그의 눈썰미를 예찬하지만, 나는 그저 어린 시절 내가 뛰어놀던 동네를 떠오르게 만든 그 느낌이 더욱 좋다. 오직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의 ‘정신’이 아름다울 뿐이다. 온통 욕망의 덩어리로 가득한 도시의 이데올로기를 첨예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도시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아니던가. 정재호가 번쩍거리는 새 건물이 아닌, 퇴락한 공간에 눈길을 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 윤동희 _ 미술전문기자,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 ceohee02@nate.com
* 사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