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조춘화2007.05.09
조회178
이집트문명과 관련된 신들의 신화

1. 눈 - 카오스, 신의 아버지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눈(Noun)은 카오스(그리스 신화에서, 우주의 발생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 우주는 이 상태에서 생겨났다고 함)이며 창조에 앞서서 모든 것, 생물의 근원을 품고 있는 원초의 대양이며 몇몇 문헌에서는 이것을 '신의 아버지' 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지적인 관념에 그치고 사원도 숭배자도 없었으며 흔히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위로 뻗친 팔로 그 자신에게서 탄생한 신들을 받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2. 아툼 - 아툼 라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아툼(Atoum)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가득 차 있다'를 뜻하는 어원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처음에는 헬리오폴리스의 지방신이었는데 여기서는 성스러운 동물, 즉 므네비스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헬리오폴리스의 사제들은 이것을 위대한 태양신 라와 동일 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에 앞서 원초의 대양인 눈 속에 아툼이라고 불리는, 온갖 실재를 내포하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정령이 살아 있고, 그것이 어느 날 '아툼 라' 라고 자칭하며 신들과 인간들, 그 밖의 모든 존재를 낳았다고 한다. 훨씬 뒤에 아툼은 가라앉는 태양과 일출 전의 태양의 인격화가 되어 그에 대한 제사는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라의 제사와 더불어 상당히 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아툼은 항상 왕의 쌍관 '푸스칸트'를 쓴 남자의 머리 부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신이며 여자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몸에서 최초의 신 한 쌍을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하나 또는 두 배우자를 연관시키게 된 것을 훨씬 훗날에 가서였다. 예컨대 멤피스에서는, 그는 쥬사스 또는 네베트호텝과 동일시되며, 슈와 테프네트의 쌍동이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3. 라 - 태양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라(Ra)는 '창조자' 라는 뜻이며, 하늘의 절대적 지배자인 태양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그의 성소(聖所)는 북부 이운에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 도시의 사제들은, 태양신 라는 벤벤이라는 돌에 오벨리스크의 형태로 처음으로 몸소 구현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은 헤트 벤벤, 즉 오벨리스크관(館)이라는 사원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사제들의 말에 따르면 본래 태양신은 원초의 대양인 '눈'의 품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얀 연꽃 속에 숨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위에 우뚝 일어서서 '라' 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났던 것이다. ‘라’는 젊고 활력 넘치던 시절에는 신들이나 인간들을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젊음과 건강은 빛을 잃어갔다. 그가 떨리는 입언저리에서 줄곧 침을 흘리는 노인으로 묘사된 기록도 남아있다.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훨씬 뒤에 ‘라’가 노쇠해지자 이시스가 ‘라’의 신비로운 이름을 물려받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태양신이 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 이후, 그는 거기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낮의 열 두 시간을 쪽배를 타고 그의 적 아포피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그의 제국을 누빈다. 아포피스는 하늘의 나일강에 사는 거대한 구렁이인데, 그가 태양의 배를 뒤엎을 때가 바로 일식(日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포피스는 언제나 ‘라’의 부하들에게 몰매를 맞고 결국 지옥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라’에게 있어서 밤의 열 두 시간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 위험에서 벗어나 동굴에서 동굴로, 그의 빛을 필요로 하는 저승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암흑의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다. 라는 매일 아침 어린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설도 있다. 그는 낮 열 두시 까지는 성인이 되었다가 점차 노인이 되어 밤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탄생한지 얼마 안 되는 연꽃 위에 있는 왕자의 모습으로, 불을 토하면서 신의 적을 무찌르는 성스러운 독사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여 태양의 원반을 머리에 얹고 앉아 있거나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는 밤을 누비며 다니는, 죽은 태양을 상징하는 양의 머리를 지닌 남자의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역시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에 둘러싸인, 원반을 머리에 얹은 매의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로도 묘사된다. 그것이 바로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이집트의 지배자 ‘라’ 하라크티이다.
그 밖에 ‘라’의 모습이나 수는 매우 많으며 ‘라’ 자신이 그것을 자칭하고 있다. 왕의 분묘 입구에 태양에 대한 기도문에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름이 75개나 된다. 창조자로서, 세계의 지배자로서 널리 알려진 ‘라’는 다른 신들까지 차례차례 동화시켜 고왕국 시대 이후 국왕들로부터 가장 숭배 받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국왕들은 스스로 '라의 아들' 로 자처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루디트디디트라는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다시 그 자신이 태어났다. 루디트디디트는 제5왕조 초기의 세 왕의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라’는 그 왕이며 아들이기도 했다. 즉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서 왕비와 결혼할 때마다 국왕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 ‘라’는 헬리오폴리스의 멋진 성소에서 돌로 표시된 태양의 광선, 즉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모습으로 예배를 받고, 성스러운 소 므네비스로도 변신했으며, 때로는 베누라는 새로도 변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폐허와 제‘12왕조의 세누세르트 1세에 의해서 세워진 오벨리스크 뿐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4. 슈 - 공기의 신, 공허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슈(Shou)는 쌍동이인 누이동생 테프네트와 헬리오폴리스 신화 가운데 최초의 부부로 되어있다. 그의 이름은 '높이다'를 나타내는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들어올리는 것' 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처럼 하늘의 기둥이지만, ‘라’의 명령을 따라 두 어린 대지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때까지도 게브와 누트는 꼭 붙어 있었는데, 슈가 누트를 들어올려 두 팔을 뻗친 자세로 공중을 떠받들어 그 둘을 떼어놓았다. 슈는 또한 공기의 신이며 성스러운 공허의 신이다.
그러나 다른 위대한 자연신들처럼 제사를 받지 않으며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보통 머리 위에 독특하게 타조의 깃을 달고 있는데, 그것은 슈의 표의문자이다. 라의 후계자로서, 지상의 주인으로서 그는 아버지인 라와 마찬가지로 그 권력의 성쇠를 맛보았다. 즉 아포피스의 자식들이 음모를 꾸며 아트 누브에 있는 궁전에서 그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슈는 그들과 싸워 이겼지만 그가 병이 들자, 충실한 신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다

5. 테프네트 - 이슬의 여신, 비의 여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테프네트(Tefnet)는 현실적인 인간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인 본질로 생각된다. 헬리오폴리스에서 그녀는 슈의 누이동생이며 아내인 여성으로 되어 있다. 테프네트는 이슬의 여신 또는 비의 여신이었지만, 그녀 역시 태양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암사자의 모습이나 사자의 머리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숭앙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리스 인들은 아르테미스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테프네트는 여러 문서를 통해서 슈의 창백한 묘사(描寫)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녀는 슈를 도와서 하늘을 받치고 태양이 동쪽 산에서 떠오를 때 그와 더불어 갓 태어난 어린 태양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6. 게브 - 대지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게브(Geb)는 누트와 함께 헬리오폴리스신화 가운데 제2의 부부이며 플루타르코스에 의해서 크로노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사실 게브는 대지의 신이며 이 세상의 근원적인 기반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제사다운 제사를 거의 받지 않았던 것 같다. 게브는 슈에 의해서 그의 아내이며 누이동생인 하늘의 여신 누트와 떨어졌기 때문에 그 후로는 비탄에 잠겨 그 울음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때때로 게브는 슈의 발밑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는 슈로 부터 그의 아내를 지키려는 헛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쪽 팔꿈치와 한쪽 무릎으로 몸을 들어 올린 자세는 그의 몸이 나타내는 산이나 땅의 높낮이를 상징하는데 때론 그 위에 나무가 그려져 있다.
대체로 게브는 특정한 부속물을 갖지 않는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의 표의문자인 거위를 머리에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어떤 전설에는 '위대한 수다장이'리는 별명이 붙은 숫거위로 되어 있고 그 거위의 암컷이 태양의 알을 낳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게브와 누트는 오시리스의 신들을 낳아, 게브에게는 '신들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게브는 3대째의 신의 왕으로서 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비교적 파란만장한 통치를 했다. 어떤 성소(聖所)의 유물을 빛내고 있는 한 기록에는, 게브는 그의 면전에서 성스러운 뱀 우라에누스가 갇혀 있는 황금 상자를 열게 했는데 그 뱀은 다시 살아나 게브의 신화들을 순식간에 물어 죽이고 게브 자신도 심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되어 있다. 우라에누스는 너무나 위험한 부적이기 때문에 라가 그의 지팡이와 한줌의 수염과 함께 왕국의 동쪽 변경에 있는 성곽 속에 놓아두었었는데 오직 라의 그 수염 다발만이 게브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수염은 훨씬 뒤에 물에 빨기 위해 아트 누브 호수에 넣었을 때 금방 악어로 변했다는 것이다. 게브는 건강을 회복하자 그 왕국을 훌륭히 통치하고 이집트 전역의 상태를 아주 세심하게 정리했다. 이어서 그는 그 권력을 장남인 오시리스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은둔하여, 거기서 때때로 토트 대신 라의 군사(軍使)가 되고 또 신들의 지배자가 되었다.

7. 누트 - 하늘의 여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누트(Nout) 는 하늘의 여신으로서 역사 시대에는 제사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녀는 대지의 신 게브와 쌍동이인 누이동생이었는데, 라를 배반하고 무의식 중에 오빠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한 신은 슈로 하여금 그 둘을 떼어놓게 한 다음, 누트에게는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토트가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달과 내기 장기를 여러 번 두어 마침내 달의 72번째 빛을 손에 넣어 닷새 동안을 간직했는대 그 5일간의 정력(正歷)으로는 계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누트는 연달아 그녀의 다섯 아이(오시리스, 하로에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때때로 손발을 쭉 편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있으며,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녀는 배가 슈에 의해 받쳐져 공중에 떠서 하늘의 궁륭(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그 네 발에 각각 신(神)을 하나씩 두어 그 발을 받치도록 하였다. 한편 슈는 그녀의 배를 받쳤다. 그래서 그 배가 하늘이 되고 라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그 배에 별과 성좌(星座)를 박아 놓았다. 가끔 라의 딸의 자격으로 누트 역시 태양의 어머니로 대접받기도 한다. 태양은 아침마다 여러가지 형태로 그녀의 가슴으로 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누트는 한 마리의 암소로 표현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반역을 겪은 다음 원초의 대양인 눈의 명령으로 대지를 떠날 결심을 한 아버지 라를 등에 업고 갔을 때, 그녀는 암소의 모습을 했었기 때문이다. 누트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될 때 간혹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둥근 항아리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 또한 그녀는 죽은 자의 수호 여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돌로 만든 관 위 뒷면에는 여신이 미이라 위에 별처럼 찬란한 몸을 펼치고 우아한 자태로 죽은 자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

8. 토트 - 지혜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토트(Thot)는 제프티의 그리스,로마 시대의 명칭인데, 그리스인들은 그를 하늘의 사자(使者) 헤르메스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집트 전역에서 달의 신, 편지, 과학, 발명, 지혜의 우두머리, 신들의 대변자, 기록 보관자로서 숭배받고 있었다. 제프티란 '제프트의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제프트는 하이집트의 옛 이름으로서 그 수도 헤르모폴리스 팔봐는 상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 마그나에 토트의 신전이 건립될 때까지는 토트 숭배의 요람지였음에 틀림없다. 토트는 보통 따오기나 초승달 위에 앉아 있는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종종 따오기 종류의 새로 변신했는데, 때로는 원숭이로 변신하는 일도 있었다. 그 유래는 까마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것은 각각 개와 원숭이로 표현된 두 사람의 달의 신성(神性)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혼동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헤르모폴리스의 신탁자들의 말에 의하면, 토트는 우주의 참다운 조화의 신이므로, 헤르모폴리스 마그나에서 세계의 알을 부화시킨 따오기야말로 토트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은 것도 가르쳤다. 토트가 천지창조의 대과업을 완성했을 때, 혼돈 속에서 일어나 입술을 벌리고 말하자 그 음성이 네 명의 남신과 이어서 네 명의 여신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중에 헤르모폴리스는 크무누(khmounou), 즉 '여덟 신의 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뚜렷한 개성이 없는 신은 소리(음성)를 내어 영원한 것을 만들어 냈다. 몇몇 문서에 의하면, 그들은 태양이 계속 움직이도록 아침 저녁으로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피라밋의 여러 기록을 보면 토트는 태양신 라의 장남이 되기도 하고, 게브와 누트의 자식이 되었다가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의 형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오시리스의 가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저 오시리스의 착한 재상이자 왕국의 성스러운 서기로 알려져 있다. 토트는 마법의 주문(呪文)을 외는 목소리를 가졌는 데, 그가 충실히 모시던 주인 오시리스가 살해되자 그 목소리를 이용하여 주인을 다시 살리고 그 육체를 회복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를 도와 고아인 호루스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켰으며, 특히 신들의 명령을 받은 그가 전갈에 물린 호루스의 몸에서 독액을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후에는 호루스와 세트와의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싸움을 말리고, 자기의 침을 뱉어 둘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팽팽히 맞선 호루스와 세트가 헤르모 폴리스에서 열린 신들의 법정에 나갔을 때는 우푸레부이, 즉 '두 사람의 싸움을 판가름하는 자'라는 칭호에 어울리게 적대자들에게 판결을 내려서, 세트에게 왕위를 조카에게 돌려주라고 선고했다고 한다. 토트는 오시리스의 재상이었듯이 호루스의 재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호루스가 왕좌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토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왕좌에 올라 3226년 동안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 토트는 학문과 예술을 발명했다. 산술, 측량술, 시하학, 천문학, 점술, 주술, 의술, 외과술, 현악기나 관악기등을 이용한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적으론는 문자의 발명을 들 수 있다. 상형문자의 발명자로서 '신의 말의 구세주'라 불리는 토트는 또 최초의 주술자로서 셈수(Semsou), 즉 선인(先人)으로도 불린다. 그의 제자들은 선인이 그 마법의 책을 감추어두었던 지하 예배당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그책을 통해 '자연의 모든 힘을 누르고 신들까지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매우고자 애썼다.  이렇게 신자들이 바치는 무한한 강대성으로 토트, 즉 그것조다 세 배 이상이나 크다는 명칭이 그에게 주어졌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트라고 풀이했다. 오랫동안 지상을 통치한 후 하늘 나라에 오른 토트는 거기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았다. 우선 그는 달의 신이자 달의 호위를 맡는 신이었다. 왜냐하면 달은 '아'의 이름을 같는 독자적 존재로 되어 있기 때문이며, 어떤 전설에 의하면 토트가 내기로 달의 72번째 빛을 땄다고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트는 그 빛으로 에파고메노스 ('첨가되었다'라는 그리스어. 이집트인의 360일에 5일의 윤날을 첨가함을 뜻함)의 5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달은 호루스의 왼쪽눈에 해당하며 그 밤을 지키는 자는 원숭이 또는 따오기라고도 전해진다. 그 대신 사자의 서의 어떤 구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즉 태양신 라는 그가 '지하 세계의 축복받은 자들을 비추는' 동안 토트에게 자기 대신 하늘을 지배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태양이 가라앉으면 즉시 달이 나타나 그 매를 타고 밤의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달은 매달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조금씩 뜯어먹히지만, 그들은 달의 충실한 병사들에 의해서 곧 그것을 토해내게 된다. 토트는 달의 신으로서 시간을 재는 신이기도 하다. 그는 달을 나누어 최초의 달에 자기 자신의이름을 붙여 주고, 또 해를 나누어서 각각 일년을 세계절로 나누었다. 또한 신의 훌륭한 계산자인 토트는 모든 계산이나 시록을 해냈다. 따라서 에드푸의 신전에 있는 3인조(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에게 장부를 바치는 토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장부에는 국가의 규모, 오아시스의 수와 더불어 그 나라의 지리적 구분에 관한 모든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바하리에는 푼트에서 바다 건너 이집트의 신들에게 보낸 보물의 목록을 상세하게 작성하는 토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신들의 기록 보관자로서 역사의 보호자이기도 했으며, 여왕들과 하늘의 부인 사이에서 태어날 미래 국왕의 이름을 헬리오폴리스의 성스러운 나뭇잎에 적어놓는 등 왕위 계승에 대한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토트는 신들이 왕에게 허락한 축복받은 통치기간을 관란수(棺欄樹)의 새싹에 새겨놓기도 했다. 토트는 신들의 사자로서 기록하는 일도 맡았다. 이집트의 유적을 보면 '라는 말했다. 토트는 그것을 기록했다.'는 문구를 종종 몰 수 있으며, 오시리스 앞에서 행해지는 심판에서 영혼의 계량을 조사하는 토트는, 죄가 없다고 인정되는 자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것을 비석에 기록했다고 한다. 신들의 신임이 두터워 조정자로 선택된 토트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호루스의주장을 인정하여 세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적어도 신왕국 시대 이후가 되면, 토트는 세력을 잃은 세트 대신 대관식과 제식(祭式)을 행했던 것이다. '스마 타우이'의 의식 등이 그것이다. 몇몇 문서에는 토트의 아내로서 진실과 정의의 여신 마트가 등장하곤 했으나 어떤 신전에도 두 신이 함께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대신 두 아내 세스헤트와 네마우트가 보인다. 그들은 '사악을 제거하는 자'라고 불리며 토트와의 사이에서 한쪽은 호르누웁 한쪽은 네페르 호르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그 신의 주된 제전은 토트의 달(이집트의 달력으로 1월) 19일, 새해초의 만월(滿月)에서 며칠이 지난 후에 행해졌다. 그날 사람들은 '감미로움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벌꿀, 무화과 등 달콤한 것을 선물로 교환했다고 한다.

9. 마트 - 정의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마트(Maat)는 똑바로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로 표현되는데, 그녀의 머리에는 타조의 깃이 얹혀 있다. 마트는 그녀의 이름 그대로 권리와 진실과 정의의 여신이었으며, 몇몇 문서에는 그녀가 라의 총해를 받은 계집 또는 심복이며 '마트의 주인'이라 불리는 신들의 심판자 토트의 아내로도 되어 있다. 그녀는 오시리스의 시녀에 속한다. 오시리스가 심판을 하는 방이 '이중으로 된 정의의 방'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방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똑같은 두 여신이 마트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마트 자신도 죽은 자의 영혼을 달아보는 저울의 반대쪽 접시에 올라앉아 그 영혼이 진실한 것인가, 아니면 죄 때문에 가벼워졌는가를 검사하는 것이다. 사실 마트는 신격화된 추상적 관념에 불과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들은 정의와 진실을 자신들의 양식(養食)으로 하기를 즐겼다. 그런 이유로 제의(祭儀) 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마트였다. 그래서 모든 신전에 왕이 제의 도중에 도착해서 그 자신이 만든 마트의 작은 조각상을 신에게 바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 공물은 비록 호사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공물보다 훨씬 더 신들의 마음에 들었다.

10. 세스헤트 - 기록과 역사의 여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세스헤트(Seshet)는 토트의 첫번째 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기록과 역사의 여신으로서 토트와 동일한 어원에서 변화한 이름이다. 본래 그녀는 '비서'를 뜻하는 그녀 이름의 표의문자인 긴 깃털 두개를 달고 별이 박힌 초승달을 머리 위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조각가에 의해 초승달이 나지막하게 휜 두 개의 뿔로 바뀌었다. 거기에서 세페크트 아부이, 즉 '두개의 뿔을 가진 자' 또는 '두 개의 뿔을 높이 든 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린 것이다. 세스헤트도 시간의 계측에 힘을 쓴 신성(神星)이었는데, 토트와 더불어 문자의 발명자로 되어 있어서 '책방의 여주인'이라 불렸다. 그녀는 또한 '건축가의 여주인' 으로도 불려 여러 신전의 건립자로 모셔졌다. 그녀는 왕을 돕고 별에 의해 건축의 방위를 정하고 말뚝 넷을 이용하여 건물의 초석의 위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역사의 신, 즉 신들의 기록계로서 그녀 혼자서 또는 토트와 더불어 성스러운 나뭇잎에 지배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관란수의 기다란 잎에 왕들의 통치 기간을 기록하며, 50년마다 제전의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녀는 서기들의 우두머리로서 왕이 적을 무찔렀을 때 전리품들을 판자위에 기록했다. 제 18왕조의 뛰어난 여왕 하트쇼프수트가 푼트에 파견한 원정대가 테베에 귀환했을 때, 가지고 온 보물류의 목록을 작성한 것도 바로 세스헤트였다. 또한 "토트가 그 양을 기록하고, 세스헤트가 그 액수를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11. 오시리스 - 죽은 자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어의 우시르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를 그들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특히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연의 신이요 식물의 정(精)의 변신으로서, 수확기에 죽고 곡식의 배아와 더불어 다시 살아난다고 믿어지는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신으로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았다. 그는 그런 자격 때문에 이집트의 많은 신 가운데 제 1위에 속해 있는 것이다. 히에로글리프로 된 여러 문헌에는 오시리스의 지상 생활과 관련된 사건이나 그의 신상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전설에 관해서 잘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플루타르코스 덕분인 것이다. 오시리스는 게브와 누트의 장남으로 상이집트에 테베에서 360일 이외의 제5일 중 첫날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신비스런 목소리로 '세계의 주인' 이라고 선언하여, 그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기쁨의 탄성을 올렸다. 그러나 이윽고 그를 위협하는 불행을 깨달았을 때 그 탄성은 통곡 소리와 슬픈 노래로 변했다. 라는 그 선언을 듣자 앞서 누트에게 저주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의 손자인 오시리스를 불러 그의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오시리스는 큰 체격에 미남이었다, 아버지인 게브가 하늘로 은둔한 후, 그는 이집트 왕위를 계승하고 누이동생인 이시스와 결혼했다. 이 새 지배자의 최초의 관심사는 거의 미개 상태로 있는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사람 고기를 먹는 습관을 없애고 들판을 경작하는 도구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와 맥주 따위의 음식물이 되는 보리나 포도를 생산시키는 일이었다. 오시리스는 그때까지 행해지지 않았던 신들에 대한 경배를 명령하여 사원을 세우고 최초의 신의 모습을 조각 하였으며 의식의 항목을 자세히 정하고 이어 제전의 합창 반주로 쓰이는 플루트 두 종류를 발명하기까지 했다. 그 후 오시리스는 여러 도시를 건설하고 주민들에게 올바른 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그는 4대째의 신왕(神王)으로서의 이름 우노프리스, 즉 '착한 존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그는 이집트를 계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올바른 정치를 전세계에 미치게 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이시스에게 통치를 맡기고 재상 토트, 지휘관 아누비스, 오포이스등을 데리고 아시아 정복의 길에 나섰다. 어떤 폭력에도 반대하는 오시리스는 오직 자애로써 이 나라 저 나라를 정복해 나갔다. 그는 노래와 온갖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주민들의 마음을 풀고 그 무장을 풀게 했다. 그는 온 지상을 누비며 도처에 문명을 보급시킬 때까지는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이집트에 돌아온 오시리스는 그의 왕국이 자신이 없는 사이에도 아내인 이시스에 의해 현명하게 통치되어 완전한 상태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그의 권력을 시기하는 동생 세트가 꾸민 음모에 말려들게 되었다. 이집트를 통치한지 28년 되던 해에 '착한 존재'로 불리우던 오시리스는 반역자에 의해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충실한 아내가 남편의 시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게브가 주재하는 신들의 법정에서 세트의 비난에 대하여 오시리스가 억울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시 살아난 뒤에 죽음으로부터 보호받기로 된  오시리스는 왕좌에 다시 올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치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상을 버리고 '극락정토'에 안주하기를 원했으며, 거기에서 바르게 살다 온 영혼을 맞아 죽은 자들을 통치했다.
  이것이 오시리스의 전설인데, 그 전설의 기원이 확실하다면 오시리스는 어떤 정복족(征服部族)의 물신(物神)으로 볼 수 있다. 그 부족은 처음에는 하이집트 지방의 부시리스의 자리에 모셔졌는데, 안치의 형태와 이름까지 그대로 써버렸다. 이어서 훨씬 뒤에 상이집트의 아비도스에 거처를 정했는데, 여기서 테엔스의 지하 묘소와 낭신(狼神) 켄트투, 서방인들의 우두머리, 즉 태양이 지는 땅에 거처를 갖는 죽은 자들의 우두머리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오시리스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 식물의 정령으로서 보리, 포도, 수목을 상징했다. 또한 해마다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나일강이나 해질 무렵에 암흑 속으로 가라 앉았다가 새벽에 다시 빛나는 태양의 빛을 상징했다. 두 형제, 오시리스와 세트 사이의 다툼은 기름진 땅과 사막, 식물과 건조한 바람, 불모와 넘쳐 흐르는 물, 암흑과 광명과의 투쟁인 것이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진실로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죽은 자의 신으로서였다. 왜냐면 그는 신자들에게 저승에서 올바르고 선량한 왕 밑에서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자신과 3인조를 이루고 있는 아내 이시스, 그리고 아들 호루스와 더불어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를 받았다. 오시리스의 그 장엄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자나, 적어도 자기의 이름을 새긴 비를 세우게 할 수 있었던 자는 행복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내세에 '착한 왕'이라는 위치를 보증받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몸에 꼭 끼는 가늘고 흰 줄무늬 옷을 입고 서있거나 왕좌에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초록 빛이 감도는 그 얼굴에는 타조의 깃 두 개를 단 높고 흰 사교관(司敎冠), 즉 '아테프'라 불리는 것을 얹고 있다. 목에는 붉은 끈을 매고 수의에 나와 있는 두 손은 가슴 위에, 회초리와 홀(忽), 즉 지상권을 나타내는 갈고리 모양의 왕홀(王忽)을 엇갈리게 얹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이나 속칭은 너무 많아서 "사자의 서"에 있는 기도문 안에는 그 수가 100개나 된다. 오시리스는 다른 많은 신성(神性)과 마찬가지로 변신하길 즐기며 소(牛) 오누피스, 멘데스와 성양(聖羊), 베누 따위의 동물뿐만 아니라 단순한 주물 (呪物)에 불과한 '제드' 같은 것으로까지 변신했다. 그것은 그가 선사시대의 숭배자를 전쟁으로 끌어넣고 있던 당시 최초의 형태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전나무나 그 밖의 소나무과(科) 식물의나무가지를 늘어뜨린 것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고전기가 되면 '제드' 는 - 유명한 부시리스의 성소에 보전되고 있듯이 - 네 개의 기둥머리가 있는 돌기둥 모양으로 서술되어 전해지고 있다. 오시리스의 위난(危難)의 날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올려진 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여지는 거의 없어졌다. 그 축전에서는 사제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의 수난과 부활을 모방하여 그 신비한 자취를 재현해 보였던 것이다.

12. 이시스 - 오시리스의 아내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이시스(Isis)는 그리스어의 이세트에 해당하는 말로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데메테르, 헤라, 셀레네 등과 동일시되며 후에 이시스와 하토르가 혼동되자 아프로디테와도 동일시되었다. 이시스 신앙은 후세에 매우 대중적이 되어 다른 여신들의 자격을 거의 합해 버릴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나일강 델타 지대의 극히 얌전한 여신이었으며 부시리스 북방에 있는 페르 헤베트의 여주인이었다고 한다. 이 패르 헤베트에는 인접한 도시의 자연의 신 오시리스의 아내로 불렀고,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호루스와 더불어 오시리스의 3인조를 구성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이야기해주는 그녀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이시스는 게브와 누트의 장녀로서 에파고메노스의 4일째 델타 지방의 저습지에서 태어났다. 오빠인 오시리스의 아내로 택해진 그녀는 그녀와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좌에 앉아 오시리스의 개화 사업을 도와, 여자들에게 곡식을 빻고 삼으로 실을 만들어 옷감을 짜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그녀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결혼시켜 가정 생활을 하게 했다.
  오시리스가 세계를 평화적으로 제패하기 위해 떠난 후 이시스는 이집트의 통치자로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왕국을 현명하게 지배했다. 그런데 그들의 형제, 즉 난폭한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였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시스의 비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은 다음 '착한 존재'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관(棺)을 찾으러 나섰다. 반역자들은 그 관을 나일강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나일강의 지류인 타니스의 하구로부터 바다로 흘러든 그 관은 파도를 타고 페니키아의 해안에 있는 타마리스크(버드나무의 일종) 밑에 닿았다. 놀라운 속도로 자라는 그 나무는 그 관을 줄기 속에 완전히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나무는 뷔블로스의 왕 마르칸드로스의 명령으로 베어져 그의 궁전의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신비스런 나무는 야릇한 향기를 뿜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시스는 곧 그 까닭을 알게 되어 그 즉시 페니키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시스는 아스타르테 여왕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왕자에 대해 근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시스는 그 왕자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왕자의 몸을 깨끗이 하게 하기 위해 불로 목욕시키는 것을 본 여왕이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주문의 힘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시스는 여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곳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런 다음 궁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타마리스크의 신비스런 기둥을 넘겨받아 거기서 남편의 관을 꺼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후 이집트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세트의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관을 부토의 저습지에 감추었는데 세트는 우연히 자기 형의 시체를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열 네 토막을 내어 사방에 뿌렸다. 이시스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그 귀중한 잔해를 여기 저기서 찾아내어 거의 다 모았다. 이시스는 시체 토막을 교묘히 이어 붙여서 오시리스의 몸을 본래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어서 누이동생 네프티스, 조카 아누비스, 죽은 오시리스의 재상 토트, 그리고 아들 호루스의 도움을 얻어 죽은 시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의식을 처음으로 행했다. 이어서 그녀는 세트의 노여움을 피하고, 또 아들 호루스를 세트에게 복수할 수 있을 만큼 키우기 위해 부토의 저습지에 숨어 살았다. 어머니의 주문 덕분으로 호루스는 어떤 위험한 재난이라도 면할 수 있었다. 사실 이시스는 뛰어난 주술사였기 때문에 신들까지도 그 저주를 면할 수 없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태양신 라의 시중을 드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을 때, 그녀는 라에게 그 신비스런 이름을 물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태양신은 이미 늙고 쇠약하여 머리가 흔들리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이시스는 그 점을 이용해서 침이 밴 흙으로 독사 한마리를 만들어 태양신이 다니는 길목에 놓았고 독사는 태양신 라를 심하게 물었다. 그 뱀의 유래를 모르는 라는 그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몰라 이시스의 주문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이시스는 그 독액을 좀처럼 제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신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그 신비스런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다른 신이 모르는 사이에 라의 몸에서 이시스의 몸으로 옮겨갔다. 오시리스의 신화에서 이시스는 매년 나일강의 범람에 의해 기름지게 되는 이집트의 토양을 상징하고 있으며 나일강을 나타내는 오시리스나 기름진 토양인 이시스와는 정반대인 세트는 사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스 신앙은 점차 널리 퍼져 마침내는 다른 여신에 대한 신앙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신앙은 이집트 밖으로까지 퍼져 그리스,로마 시대의 상인들처럼, 뱃사람들은 바다의 별이며 항해자의 보호자인 이시스에 대한 숭배를 라인강 연안까지 전파시켰다. 나일강 유역에서는 이시스 숭배가 기독교의 전성기까지 계속되었다. 이집트의 최남단에 있는 이시스의 주요한 성소 필라에의 사원이 폐쇄되고 기독교의 교회로 바뀐 것은 6세기 중엽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치하에 까지 와서였다. 이시스를 위해 일년에 두 번(봄과 가을) 거행되는 대축전이나 그때 행해진 화려한 행렬 등에 관해서는 이시스교의 비의(秘儀)를 전수받은 아프레이우스가 그것을 전하고 있다. 이시스는 흔히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왕좌를 머리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때로는 두 개의 깃을 달고 - 달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쇠뿔 사이에 원반을 얹은 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때로는 인체에 쇠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뿔이나 동물의 머리는 당시 사람들이 이시스와 하토르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대체로 이시스는 조각이나 그림에는 오시리스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죽은 자들에게 대하듯 오시리스를 그 날개가 붙은 손으로 어루만져 떠받들고 있거나 돌로 만든 관 밑에서 울거나 혹은 항아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빈번히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어머니로서 호루스를 키우는 모습과 나중에는 호루스를 데리고 세트와 싸우는 묘사도 있다.

13. 세트  - 악의 신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그리스인이 티폰이라고 부른 세트(Set)는 오시리스의 아우에게 주어진 멸시의 호칭이며 드디어는 악의 정령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선의 정령에 대립되는 존재가 되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세트는 게브와 누트의 아들로서 에파고메노스 3일에 출산 예정일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찢고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난폭하고 잔인한 그는 흰 살결과 붉은 털을 지녔었다. 그 붉은 털은 이집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나귀의 털에 비유했다.
형인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남모르게 왕관을 탐낸 세트는 왕위를 빼앗기 위해, 원정을 나갔던 오시리스의 개선을 축하하는 뜻으로 멤피스에서 거행된 대축전을 이용했다. 세트는 공범자 72명의 결심을 확인한 후 오시리스를 그 향연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세트는 화려하기 이를 대 없는 관(棺)을 가져오게 하여, 그 관에 꼭 알맞게 들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오시리스는 세트의 흉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 상자에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공범자들은 재빨리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한 후 그것을 나일강에 던졌다. 상자는 파도를 타고 뷔블로스까지 흘러갔고 이시스는 그것을 찾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 그런데 세트는 델타의 늪 지대에서 달빛 아래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형의 시체임을 확인하자 그것을 열 네 토막으로 잘라 들판에 뿌렸던 것이다.
세트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왕국의 주인 자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내인 네프티스에게 버림받은 것만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의 가족편이 되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신들도 제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세트의 잔인성을 피해 각각 동물의 몸  속에 숨어 있었다.
그 동안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는 델타의 저습지에서 성장하여 아버지 오시리스의 살해자 세트에게 복수하고, 그에게서 왕좌를 빼앗게 되었다. 세트는 오시리스 신화 중에서도 비옥한 토지, 관개수, 빛 따위와 대립되는 불모의 사막, 건조, 암흑 등을 인격화한 영원한 적대자로 표현되고 있다.
모든 창조와 선은 오시리스로부터 생겨나고, 모든 파괴와 악은 세트와 연결된다. 그러나 원시시대에는 그 신의 악한 성격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피라밋에 남아 있는 옛 문서에는 그가 오시리스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노(老)호루스의 형제로 되어 있으며, 그들 둘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 싸움은 신들의 판가름을 받게 되어 승리는 호루스에게로 돌아가고 세트는 사막으로 추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세트가 호루스의 형제가 아니라 그의 숙부이며 오시리스의 영원한 적이 된 것은 훨씬 후대에 가서 오시리스 전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고, 두 호루스가 혼동된 이후의 일이다.
세트는 처음에는 상이집트의 지방신이었던 것 같으며, 이윽고 매[鷹:응] 신의 숭배자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두 형제신의 싸움이라는 신화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고왕국 및 중왕국 시대의 부조는 왕 밑에서 나란히 포로를 끌고 가는 세트와 호루스의 모습, 또는 결합의 관념을 뜻하는 부호의 둘레를 상하 두 이집트의 여러 식물로 결합시키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한 모습에 의해 스마 타우이, 즉 두 나라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힉소스(시리아 지방의 종족으로, 기원전 1750년경 이집트에 침입하여 약 200년간 지배했음)의 점령기에 세트는 새 지배자에 의해서 그들의 주신인 스테크와 동일시 하게 되어 그 수도인 아바리스에 신전이 세워졌다. 또한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 라메스 2세의 부왕은 세트, 즉 '세트의 집안' 으로 자칭하고 라메스 2세 자신은 서슴치 않고 '세트의 사랑을 받은 자' 라고 자칭하기에 이르렀다. 오시리스의 숭배자들은 '착한 존재' 의 살해자에 대한 신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묘의 벽면에 새겨진 세트라는 저주받은 모습을 모두 없애고, 스스로를 세트의 집안이 아닌 오시리스의 집안으로 자칭했다.
오시리스의 살해자가 그 벌을 정말로 받게 되는 것은 기원전 10세기 중엽 제 22왕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세트의 모습을 한 조각상은 파괴되고, 부조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애 버렸다. 드디어 세트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서도 내쫓겨 사악의 신이 되어 과거 상이집트의 지방신은 신들의 적, 일종의 악마로까지 몰락해버렸다.
나귀, 영양 등 사막의 동물들은 악어, 돼지, 전갈, 하마 따위와 더불어 세트를 따르는 자로 되어 있으며, 이 동물들의 몸속에 사악의 신이나 그 부하가 승리자 호루스의 습격을 피하려고 숨어 들어가려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일찍이 세트가 호루스의 눈에 상처를 입힌 것도, 또 오시리스의 혼이 숨어 있다는 달을 매달 습격하여 뜯어먹는 것도 검은 돼지탈을 쓰고 하는 짓이라 한다. 세트는 우뚝 서서 앞부분이 네모지게 잘린 귀, 길고 꼬부라진 코, 끝 부분이 둘로 갈라져 도저히 도로 붙일 수 없는 딱딱한 꼬리를 가진 공상적 동물로 표현되었다. 보통 그것을 '티폰의 동물' 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깨 위에 네발 짐승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14. 네프티스 - 세트의 아내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네프티스(Nepthys)는 그리스어로는 네프트 헤트로, 플루타르코스에 의해 텔레우테, 아프로디테, 네케라 불리고 있다. 네프티스는 그 이름, 즉 '성의 여주인'을 뜻하는 두 개의 상형 문자를 머리 위에 가진 여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성의 부호 위에 광주리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죽은 자들의 신이었지만 오시리스의 전설은 그녀를 게브와 누트의 둘째딸로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오빠인 세트와 아내가 되었으나 큰 오빠인 오시리스와의 사이에 자식을 갖길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시리스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그가 모르는 사이에 품안에 품어 아누비스가 태어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네프티스는 사막의 한 주변부, 즉 보통 때는 불모지이지만 나일강의 물이 한층 불었을 때는 비옥해지는 땅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세트가 형인 오시리스를 죽였을 때, 네프티스는 남편이 두려워 남편을 버리고오시리스를 지키는 자들의 편이 되었다. 그녀는 언니 이시스를 도와 교대로 장송가를 부르며 살해된 오시리스의 시체를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장송가는 한 장의 파피루스에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종종 쌍동이 자매로 일컬어지는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오빠의 미이라를 지켰듯이, 죽은 자들을 지키는 일도 맡았다. 온갖 의식을 거친 죽은 자는 말하자면 오시리스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 뚜껑이나 돌로 된 관의 옆면에 이시스와 네프티스 자매가 긴 날개가 달린 손을 펼쳐 수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15. 호루스 - 오시리스의 아들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호루스(Horus)는 일종의 태양신의 명칭이며 줄곧 아폴로와 동일시되어 왔다. 그리고 한 마리의 매나 매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인들은 '하늘'을 표현하는 말과 같은 음인 호르(Hor)의 이름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높이 나는 매를 나타내고, 하늘을 좌우로 하여 태양과 달의 눈을 갖고 있는 한 마리의 매를 보았던 것이다. 매 신의 추종자들이 정착한 곳에서는 호루스에 대한 신앙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 신의 역할이나 권한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각의 성소에 변화해서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는 호루스 신이 스물이나 될 정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늙은 호루스, 즉 '하로에리스' 나 기타의 태양신 계통의 매 신인 호르 베레데티, 에드푸의 호루스와 오시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 즉 아버지의 복수자인 '하르에시스'와 구별하는 것이다. 이시스가 오시리스를 소생시키면서 주문의 힘으로 호루스를 잉태하여 부토와 가까운 케므니스의 섬에서 낳은 사정은 오시리스의 전설에 나온다. 이 호루스의 유년 시대, 즉 그것은 호르 파 케르드(어린 호루스)라 불렀고 거기에서 하르포클라테스의 이름이 생겨났다. 하르포클라테스는 벌거숭이 아니면 보석류를 몸에 달았을 뿐 관자놀이에 늘어뜨린 땋은 머리 이외에는 머리가 거의 없는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때때로 그 아기는 젖을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그 동작은 그리스인들이 겸손의 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지만, 훨씬 후세에 가서 침묵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세트의 음모를 염려하여 고독 속에서 키워진 이시스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몹시 허약했지만 어머니의 마법 덕택에 여러 가지 위험이나 난폭한 동물들의 습격, 불, 전갈과 병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그 기록은 주술자들이 병자를 고치기 위해 사용한 주문의 문장을 만드는 법이나 쓰는 법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는 동안에 점차 성장한 호루스 앞에 종종 오시리스가 나타나 싸우는 법을 가르치며, 어서 빨리 세트와 싸워서 그 왕위 계승권을 되찾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영광스러운 복수 행위에서 하렌도테스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복수자 호루스'를 뜻하는 호로 네지 이테프의 그리스어식 발음인 것이다. 호루스가 오시리스와 살해자 세트와 싸우는 모습은 에드푸의 신전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이 에드푸의 주신 베헤데티는 그 시대에는 이시스의 아들과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세트도 태양의 영원한 적 아포피스와 혼동되어 있었다. 그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띠 부분에는 호루스가 하르토메스(찌르는 사람 호루스)의 이름 아래 그 창을 상대방에게 찌르는 한편, '호루스의 추종자들'은 악어나 하마나 영양이나 그 밖의 다른 티폰의 동물들 속에 숨으려고 도망치는 '세트의 추종자들'을 칼로 마구 찌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신들은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그 판가름의 마당에 두 적대자를 출두시켰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아들이라는 그의 조카가 서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자기 출생의 정당함을 떳떳이 증명했다. 그래서 신들의 왕위를 빼앗은 자에게 그 계승권을 돌려주라고 판결을 내린 후 호루스를 상하 두 이집트의 주인으로 선고했다. '두 나라를 합치는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 스마타우이의 음역(音譯)인 하르솜투스와 '두 땅의 주인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파 네브 타우이 등의 명칭이 생긴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렇게 해서 호루스는 곳곳에 많은 신전을 세웠으며 그 신전에서 그는 원수 세트의 추종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 탈을 썼던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이집트 전체를 평화적으로 통치하고 국가신(國家神), 즉 국왕들의 선조로서 이집트에 영원히 머물렀다. 그리하여 국왕들은 '살아 있는 호루스'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오시리스와 어머니 이시스와 함께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는 호루스는 많은 성소의 3인조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되어, 혹은 왕자로서, 혹은 신의 아들로 표시되었다. 예를 들어 에드푸와 온보스에서는 호루스가 주신으로서 아내 하토르를 갖고 있었지만, 덴데라에서는 하토르가 어엿한 여주인이고 호루스는 여왕의 남편이라는 자격으로 주신이 된 데에 불과했다. 여러 신전에 나타나 있는 조건이나 그림의 표현 중에서는 신왕국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호루스는 세트와 협력해서 왕에게 왕관을 쓰도록 하고, 왕의 시중을 들거나 성소로 안내하는가 하면 두 나라가 통합하도록 하고 있다. 호루스는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오시리스 앞으로 안내하여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6. 아누비스 - 죽은 자의 인도자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인푸(Inpou)가 그리스어 화한 아누비스(Anubis)는 저승으로 죽은 자를 안내하는 헤르메스와 동일시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저승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 바로 아누비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폭신폭신한 꼬리를 가진 검은 늑대의 모습이나, 어깨 위에 황금빛이 나는 이리와 같은 모습이나, 개의 머리를 얹은 거무스름한 피부의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그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아누비스 신앙의 중심 도시를 키노폴리스 (개(犬)의 도시)라 불렀던 것이다. 초기 왕조 이래로 시체를 보존하는 일을 맡은 것이 아누비스였고, 시체를 땅에 묻을 때의 기원문은 항상 아누비스를 우두머리로 하여 그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여러 문서에서는, 아누비스는 '라의 네 번째 아들'로 되어 있으며 케베후트, 즉 '순결한 여신'이라는 딸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그는 오시리스의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이시스의 동생 네프티스가 오시리스와의 사이에 낳은 불의의 자식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네프티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큰어머니인 이시스의 따뜻한 손길로 키워졌다고 한다. 성인이 된 아누비스는 세계 제패의 길에 오른 오시리스를 따라 나섰으며,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에는 태양신 라의 명령을 받아 이시스와 네프티스를 도와 오시리스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누비스가 장례 절차의 여러 의식을 생각해 내고, 또 오시리스의 미라에 천을 감아서 공기가 닿지 않도록 하여 썩지 않게 한 것도 바로 그 때인 것이다, 그가 '모시[細布]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후로 그는 장례를 계속 관장하게 되어 죽은 자의 미라를 보존하는 방법을 계속 행동에 옮기고, 묘지의 문에서 죽은 자를 마중하고 또 묘지 속에는 유족들이 바치는 공물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아누비스는 저승 세계인 오시리스 궁정의 안내인으로서 죽은 자의 손을 잡고 심판의 왕 앞으로 인도하여 그 앞에서 영혼의 계량을 행한다. 이와 같이 아누비스는 죽은 자들의 신으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앙은 널리 전파되었다. 또한 오시리스 전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숭배자는 후대에까지 내려와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그리스의 헤르메스와 동일시되어 헤르마누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프레이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시스를 위한 제전의 행렬에 있어서 맨 앞에 자리한 것은 바로 개의 머리를 하고 손에 지팡이를 든 아누비스였다.

17. 하토르 - 호루스의 아내
여행기부록-이집트의 神

태양의 신인 라(Ra)의 딸이자 역시 태양신으로 숭배받는 호루스(Horus)의 아내이다.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Aphrodite:로마신화의 비너스)와 동일시된다. 하늘·사랑·기쁨·결혼·춤·아름다움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여신으로 표현되는데, 보통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숭배받는다.

본래 '호루스의 집'으로 해석해 태양과 동일시되는 호루스가 밤에 머무는 천공(天空)이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호루스가 매일 저녁이면 찾아와 그녀의 가슴 속에 몸을 파묻고 쉬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태어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 하토르 숭배의 첫 중심지는 상(上)이집트의 단다라 및 아프로디트폴리스였다. 때로 명계(冥界)의 여왕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는데, 묘지가 많은 테베로 옮겨지면서는 지하묘지의 수호신이 되었다. 보통 2개의 뿔 사이에 태양원반(太陽圓盤)을 달고 있는 여신, 또는 암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밖에 사악한 정령들을 물리치는 악기의 방울로 묘사되기도 하고, 이집트 이외의 비블로·스시나이·푼트 등지에서도 숭배를 받았다. 하토르는 태양이 지는 곳, 죽은 자들이 매장되는 곳으로서 서쪽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죽음이 곧 재생이라는 신화론적 탄생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