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김지예20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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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헤어진 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남자의 미니홈피에도 개점휴업 간판이 내걸렸다. ' 지난 2주간 게시물없음. '


 예전엔 컴퓨터만 켜면 제일 먼저 찾아가던 곳이었지만 이젠 가봤자 속상하기나 하구, 슬프기나 하구, 그게 아니면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기만 할 시련의 푸념이나 하게 될게 뻔했다.
 너무 힘들다, 슬프다, 가슴이 아프다.. 정말이지 남들처럼 그런 말 따위는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래서 헤어진 후, 남자는 단 한번 미니홈피에 들러 그저 사진들을 비공개로 돌리고 인사말 정도만 바꾸어 놓았다.

 '영원히 둘이서..'라는 말은 이제 너무 어울리지 않으므로 남자의 바뀐 인사말은 이것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
 정말 오랜만에 남자가 자기 홈피에 접속했을 때, 남자는 방명록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헤어진 그녀의 이름,
 남겨진 메세지는 이런 것이었다.

 '인사말 바뀌었네. 시간은 흐른다.. 좋은 말이네. 잘 지내지.?'

 겨우 괜찮은척 하고 있는데, 불쑥 찾아와서는 이따위 메세지나 남기는 마치 테러같은 행동. 

 남자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래서 아주 긴 답장을 썼다.


 '그래. 시간은 흐르지.. 근데 시간이 얼마나 상대적인진 너도 알고 있지.?

 비행길 탔는데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거 같애.

 양쪽에는 덩치 큰 남자 둘이 앉아서 둘다 내 팔걸이까지 차지해버렸어. 난 중간에 껴서 다리도 못편채로 이러고도 10시간을 더 날아가야돼.

 잠을 자볼까 했지만 그럴 수도 없어. 엄청난 소리로 한명은 코를 골고, 또다른 한명은 이를 갈고 있거든.

 비행기가 꽉 차서 자리를 바꿀 수도 없어.

 기차처럼 중간에 내릴 수도 없지.

 헤드폰을 쓰고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지만, 짜증이나서 영화의 내용이 보이지도 않아.

 이제 좀 시간이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면 겨우 5분 지났구,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일어나면 겨우 30분 지났어.

 인사말이 마음에 든다구.? 잘 지내냐구.?

 나 이렇게 지낸다. 나한테 시간,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

 넌.. 이런게 궁금했냐.?' 


 몇번이고 고쳐 쓴 남자의 글은 하지만 곧 지워졌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그렇게 혼자서 화내고 삭히는동안 덕분에 힘든 밤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에..
 대신 남자는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무심한듯한 짧은 답장을 남겼다. 다만 의문문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그리고 남자가 미니홈피에 걸어놓은 노래 하나,
『 .. ♬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지면, 지금은 너무 아픈 말들도 그때는 의미없이 가을 바람처럼 내곁을 스쳐가겠지.? 
 시간마져 희미해진 그 먼날, 사람들이 내게 너를 아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하겠지. 내 친구중 하나였다고..
 슬픔은 내 눈가에서 사라지겠지.? 내가 더 나이를 먹고 현명해진  그때쯤엔..
 When I'm old & wise.. ♪』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