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다에게 보낸 편지 1815년 초, 킨스키 왕자가 생전에 베토벤에게 후원키로 했던 약속을 그 상속인들이 지키기로 함으로써 연금이 나왔습니다. 따자서 베토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친구 헤링의 도움이로 영국 출판사업자들과의 작품 판매도 제법 잘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지휘자 겸 바이올린 주자로서 활동하던 잘로몬은 베토벤의 작품들, 즉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그리고 '웰링톤의 승리'등의 판매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답니다. 베토벤은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인간적으로 외로웠습니다. 그런 심정은 오랜 친구였던 아메다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멘다에게! 자네의 친구 카이설링 백작이 나를 방문하여 자네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네. 자네는 아이들도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라네...... 나는 정말 이 거대한 도시에서 홀로이며, 재가 사랑하는 또는 나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서 떨어져 살고 있다네...... 나의 좋은 친구여! 때때로 자네의 친구를 생각 해 주려나? 루드비히 판 베토벤 이편지에는 가정이 있는 한 친구의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지요. 니이테, "자연은 그에게 음식과도 같다" 6월 초에 친구 헤링은 영국의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였던 나이터를 베토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훌륭한 교향곡 작곡가로부터 배우고 싶어 비엔나를 찾아온 니이테였습니다. 당시 80세의 그에게 베토벤은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직접 가르칠 수는 없지만 나의 스승인 푀르스터를 소개해 드리지요. 그리고 당신의 곡을 내가 검토해 줄 수 있어요." 그 뒤 니에터는 베토벤을 거의 매일 만날 수가 있었어요. "나는 베토벤처럼 자연을 즐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꽃에서 구름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서 강력한 기쁨을 표현하였다. 자연은 그에게 음식과도 같다. 그는 참으로 자연과 함께 사느 것처럼 보인다. 산책을 하다가 초록 둑에 거리낌없이 앉는다." 니이테의 이 말 속에 베토벤의 자연에 태한 지극한 사랑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자연에 대한 사랑은 베토벤의 작곡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니이테가 밝힌 재미있는 사실도 있어요. 베토벤은 길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굴이 붉어지면서 발걸음이 빨리지다 못 해 뛰다시피 하였답니다. 또한 니이테는 베토벤에 대해 늘 우며가 넘쳤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니이테가 베토벤에게 그의 소나타 32중주곡을 이 영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그 넌더리나는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벼렸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해 니이테가 놀랐다고 합니다. '전원 교향곡'에 대해서는 "나는 작곡할 때 항상 마음에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들려주었고요. 첼로음악의 '신약 성서' 5편 작곡 11월에 베토벤의 동생인 칼(Carl)이 숨졌습니다. 이후 그아들 칼(Karl)의 양육권을 싸고 지루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베토벤
아멘다에게 보낸 편지
1815년 초, 킨스키 왕자가 생전에 베토벤에게 후원키로 했던 약속을 그 상속인들이 지키기로 함으로써 연금이 나왔습니다. 따자서 베토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친구 헤링의 도움이로 영국 출판사업자들과의 작품 판매도 제법 잘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지휘자 겸 바이올린 주자로서 활동하던 잘로몬은 베토벤의 작품들, 즉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그리고 '웰링톤의 승리'등의 판매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답니다.
베토벤은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인간적으로 외로웠습니다.
그런 심정은 오랜 친구였던 아메다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멘다에게!
자네의 친구 카이설링 백작이 나를 방문하여 자네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네. 자네는 아이들도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라네...... 나는 정말 이 거대한 도시에서 홀로이며, 재가 사랑하는 또는 나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서 떨어져 살고 있다네...... 나의 좋은 친구여! 때때로 자네의 친구를 생각 해 주려나?
루드비히 판 베토벤
이편지에는 가정이 있는 한 친구의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지요.
니이테, "자연은 그에게 음식과도 같다"
6월 초에 친구 헤링은 영국의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였던 나이터를 베토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훌륭한 교향곡 작곡가로부터 배우고 싶어 비엔나를 찾아온 니이테였습니다. 당시 80세의 그에게 베토벤은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직접 가르칠 수는 없지만 나의 스승인 푀르스터를 소개해 드리지요. 그리고 당신의 곡을 내가 검토해 줄 수 있어요."
그 뒤 니에터는 베토벤을 거의 매일 만날 수가 있었어요.
"나는 베토벤처럼 자연을 즐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꽃에서 구름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서 강력한 기쁨을 표현하였다. 자연은 그에게 음식과도 같다.
그는 참으로 자연과 함께 사느 것처럼 보인다. 산책을 하다가 초록 둑에 거리낌없이 앉는다."
니이테의 이 말 속에 베토벤의 자연에 태한 지극한 사랑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자연에 대한 사랑은 베토벤의 작곡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니이테가 밝힌 재미있는 사실도 있어요. 베토벤은 길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굴이 붉어지면서 발걸음이 빨리지다 못 해 뛰다시피 하였답니다.
또한 니이테는 베토벤에 대해 늘 우며가 넘쳤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니이테가 베토벤에게 그의 소나타 32중주곡을 이 영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그 넌더리나는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벼렸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해 니이테가 놀랐다고 합니다. '전원 교향곡'에 대해서는 "나는 작곡할 때 항상 마음에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들려주었고요.
첼로음악의 '신약 성서' 5편 작곡
11월에 베토벤의 동생인 칼(Carl)이 숨졌습니다. 이후 그아들 칼(Karl)의 양육권을 싸고 지루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