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고

황래라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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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고 박남철 밤에 편지를 쓰지 마라 가장 진실한 말들이 튀어나와서 아침에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밤에 가장 고요하고 가장 진실한 순간에 쓴 편지는 낮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미친놈…… 하고 한번 씨익 웃을 뿐이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은 그 편지를 보내 온 사람을 경멸하게 된다 전달되지 않는다 편지란 계산과 계산이 뒤얽힌 낮에 쓸 일이고 가장 공격적인 사색과 방어적인 침묵이 태양과 함께 작열하는 낮에 쓸 일이고, 그리고 편지는 되도록 쓰지 않을 일이다 우리가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몇 줄 끄적거린 밤의 편지는 대체로 실패작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밤에 할 수 있는 일이란 편지를 쓰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토로하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벗기고 진실을 끌어안고 진실을 겁탈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밤의 편지가 전달되지 않는 이 낮의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는 일이다 그들의 가장 씩씩한 껍데기들을 조용히 조용히 지켜 보는 일이다 밤에 전화를 걸지 마라 특히 밤에 술에 취해서 전화를 걸지 마라 전화를 받던 사람은 그때 마누라를 더듬고 있었다 야 이 미친 개 같은 놈아 수화기가 부서져라 전화를 끊은 사람은 그 때 마누라와 결정적인 ―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또는 수화기를 아예 들어 보지 도 못한 바로 그 사람은 그 때 마누라에게 원산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이제 죽어도 죽어도 더 이상 같이 못 살겠어요……) 제기랄 밤에 밤에 라면을 끓여 먹지 마라 밤에 교차로의 신호등을 ― 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더라 ― 신호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섰지도 마라 어디로 가야 하니 이 길 잃은 시대의 밤에 별도 쳐다보지 마라 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애국자들이 밤에 여관 문을 힐끔 나오는 여자도 쳐다보지 마라 그 여자가 얼마나 부끄럽겠느냐 저것 봐라 저것 봐 저 안 부끄러운 척하고 내 옆을 토각토각 지나가는 것 좀 봐 이 밤에 밤에 정치 문제는 생각지 마라 밤에는 '4.19' 같은 것도 생각지 말고 밤에는 '유한계급론' 도 '마르쿠제' 도 읽지 마라 밤에는 싸구료 출판사에서 나온 '잠 못 이루는 너희들의 괴로움을 위하여' 를 읽어라 (읽고는 대단히 감명 깊게 읽었다고 생각하라) 밤에는 좀 더 ― 어디로 가야 하니 이 길 잃은 시대의 정신이여 밤에는 빨래도 하지 말고 밤에는 개처럼 밤에는 詩人처럼 詩도 쓰지 말고 제발 더 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밤에는 기도도 하지 말고 오 거 무엇이냐 밤에는 밤에는 좌우지간 밤에는 나자빠져서 '나도 기필코 결혼할 수 있다!' 라는 자기 암시나 부지런히 해 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