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 자막이 없었다면 영화를 본 후의 가슴에 이는 파문이 그리 크고 깊지는 않았을 것 같고 덕분에 첨에도 두 번째 영화를 본 직후에도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북받침에 흐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 같다.
엔딩 자막은 문득 장자의 우화 호접몽을 떠올리게 했고
자아와 삶의 무상에 대한 깨달음의 비유인 호접몽처럼..
정상과 정신병의 경계 정신병과 성인의 경계가 백짓장 한 장의 차이보다도 미세하고 미묘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차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세상은
감각과 의식에 의해 신경체계에 인식되는 결과물일 뿐
객관적인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쩜 그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감독이 점차 초인이 되어가는 태석(재희)을 움직여 선화(이승연)과 같이 고립되고 상처 입은 관객들에게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영화는 보는 내내
의학적인 처방과 다른 주술사와 같은 마법적인 치유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part2. - 재희(태석)-투명인간의 병리성을 초월한 치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어린 시절 꾸어보는 투명인간의 꿈...
투명인간은 삶 속에 원치 않는 부분에 반(反)하여 기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의 욕구를 은밀하고 철처하게 탐닉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재희가 쓰는 투명인간은 마술처럼 타인에게는 아예 보이지 않고 자신만 볼 수 있는 일방적이고 관음적 투명인간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며 원치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선 숨어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눈에는 서로 보이고 소통하는 한단계 진화된 투명인간을 보여준다.그리하여 관객들로 하여 행위자인 태석이 되어 스스로에 대한 능동적 치료자가 되게 함과 동시에 또 피행위자인 인 선화가 되어 가슴속에 억눌러져 있던 마음의 짐들 풀어놓을 수 있게 하고
또 그런 이중적인 심리치료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찝찝한 병리성을 초월한 묘한 카타르시의 시원한 치유의 에너지를 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태석의 치유 행위는 처음엔 그들의 부재 시 주변 사물과 공간에 시도하는 소극적 행위자에서
선화에 대한 내적 결속(?)으로 수감시 내공(?)을 높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진화한다.
또한 태석은 출소 후 경찰 반장에게 자신이 받은 만큼의 부적인 행위를 돌려줌으로써 그저 긍정적이고 선하기만 하여 공격적 욕구를 억누르는 종교적 치유 행위와는 다른, 받은 만큼 돌려주는 아니 한대 쥐어박기라도 해서 속에 남은 앙금을 또 다시 처리할 필요가 없게 함으로써 범인(凡人)인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3. epilogue
어쨌든 빈집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태석과 선화의 캐릭의 입체적인 진화와 더불어 엔딩 크래딧을 통해
점차 차올라 다시는 기울지 않는 절정의 보름달에서
그만큼의 꽉 찬 감동을 주고 끝이 나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종교적 구원(?치유)를 이야기하는 듯한 봄여름가을그리고 봄과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라..그리고 열고 소통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선화(이승연)와 같은 현재 각자 자신의 내면에서 태석(재희)과 같은 또다른 힘을 끌어올려
자가치유라는
인간적인 구원을 느끼게 주는 빈집이란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와 내공에 대해 감독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치유의 공간으로의 초대
part1. 빈집 - 의식과 감각의 이면을 통한 치유
영화를 본 후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남는 부분은 엔딩 직전의 자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였다..
만약 그 자막이 없었다면 영화를 본 후의 가슴에 이는 파문이 그리 크고 깊지는 않았을 것 같고 덕분에 첨에도 두 번째 영화를 본 직후에도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북받침에 흐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 같다.
엔딩 자막은 문득 장자의 우화 호접몽을 떠올리게 했고
자아와 삶의 무상에 대한 깨달음의 비유인 호접몽처럼..
정상과 정신병의 경계 정신병과 성인의 경계가 백짓장 한 장의 차이보다도 미세하고 미묘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차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세상은
감각과 의식에 의해 신경체계에 인식되는 결과물일 뿐
객관적인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쩜 그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감독이 점차 초인이 되어가는 태석(재희)을 움직여 선화(이승연)과 같이 고립되고 상처 입은 관객들에게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영화는 보는 내내
의학적인 처방과 다른 주술사와 같은 마법적인 치유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part2. - 재희(태석)-투명인간의 병리성을 초월한 치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어린 시절 꾸어보는 투명인간의 꿈...
투명인간은 삶 속에 원치 않는 부분에 반(反)하여 기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불어 자신의 욕구를 은밀하고 철처하게 탐닉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재희가 쓰는 투명인간은 마술처럼 타인에게는 아예 보이지 않고 자신만 볼 수 있는 일방적이고 관음적 투명인간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며 원치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선 숨어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눈에는 서로 보이고 소통하는 한단계 진화된 투명인간을 보여준다.그리하여 관객들로 하여 행위자인 태석이 되어 스스로에 대한 능동적 치료자가 되게 함과 동시에 또 피행위자인 인 선화가 되어 가슴속에 억눌러져 있던 마음의 짐들 풀어놓을 수 있게 하고
또 그런 이중적인 심리치료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찝찝한 병리성을 초월한 묘한 카타르시의 시원한 치유의 에너지를 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태석의 치유 행위는 처음엔 그들의 부재 시 주변 사물과 공간에 시도하는 소극적 행위자에서
선화에 대한 내적 결속(?)으로 수감시 내공(?)을 높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진화한다.
또한 태석은 출소 후 경찰 반장에게 자신이 받은 만큼의 부적인 행위를 돌려줌으로써 그저 긍정적이고 선하기만 하여 공격적 욕구를 억누르는 종교적 치유 행위와는 다른, 받은 만큼 돌려주는 아니 한대 쥐어박기라도 해서 속에 남은 앙금을 또 다시 처리할 필요가 없게 함으로써 범인(凡人)인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3. epilogue
어쨌든 빈집은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태석과 선화의 캐릭의 입체적인 진화와 더불어 엔딩 크래딧을 통해
점차 차올라 다시는 기울지 않는 절정의 보름달에서
그만큼의 꽉 찬 감동을 주고 끝이 나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종교적 구원(?치유)를 이야기하는 듯한 봄여름가을그리고 봄과 더불어
자신을 사랑하라..그리고 열고 소통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선화(이승연)와 같은 현재 각자 자신의 내면에서 태석(재희)과 같은 또다른 힘을 끌어올려
자가치유라는
인간적인 구원을 느끼게 주는 빈집이란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와 내공에 대해 감독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