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부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호세가 결국에는 롯데 유니폼을 벗고 부산을 떠났다. 롯데는 11일 호세를 퇴출하고 대체 선수로 내야수 에두아르도 리오스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 퇴출 1호의 철퇴를 호세가 맞고 만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나는 호세지만, 그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추억을 남겼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호세는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 모으고,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은 특별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호세가 남긴 추억들을 되돌아본다.
① 역시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롯데는 1998년 첫 시행된 외국인선수 제도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백인 내야수 덕 브래디는 70경기에서 타율 0.258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1999년 롯데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외국인선수 덕을 본 팀 중 하나였다. 호세 때문이었다. 1999시즌을 앞두고 롯데가 호세 영입을 발표하자 많은 팬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호세는 1991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된 경력이 있는 특급선수였고, 그 위력을 입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세는 주위의 기대치에 그대로 부응하는 성적을 올렸다. 타율 0.327(9위)·36홈런(5위)·122타점(2위).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킬러 본능은 단순한 수치 그 이상이었고, 예부터 소총군단이었던 롯데의 오랜 거포 갈증도 호세로 인해 풀어졌다. 호세에 힘입은 롯데는 전 시즌 최하위에서 일약 전체 승률 2위로 발돋움했다.
② PS 사상 첫 역전 끝내기 홈런포
1999년 10월17일 사직구장. 경기장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롯데의 마지막 공격. 자고로 홈팀은 9회말에 야구를 해서는 안 된다. 9회말이 되자 관중들의 손에 쥐어진 신문지는 주인을 잃은 채 바람에 휘날려 정처 없이 나돌았다. 롯데는 시리즈 전적에서 1승3패로 뒤져있었고, 이 경기를 내주면 시즌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 법. 1사 1·2루 찬스에서 호세가 등장했다. 마운드에는 ‘애니콜’ 임창용. 페넌트레이스에서 호세는 임창용에 10타수 2안타 7삼진으로 유독 약했다. 때문에 호세는 더욱 집중력을 발휘했다. 볼카운트 2-2에서 호세는 임창용의 144km 직구를 그대로 때렸다. 호세는 공을 치자마자 펄쩍 펄쩍 뛰었다. 타구는 사직구장 좌중월을 가르더니 담장을 훌쩍 넘겼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사상 첫 역전 끝내기 홈런. 호세가 부산의 영웅이 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③ 사상 초유의 방망이 투척사건
1999년 10월21일 대구구장. 호세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롯데는 6차전마저 집어삼키고 시리즈를 3승3패 원점으로 되돌렸다. ‘5차전의 영웅’ 호세는 7차전에서도 0-2로 뒤지던 6회 반격의 솔로포를 가동했다. 그러나 홈런을 치고 3루 베이스를 돌고 있는 호세에게 대구 관중들은 맥주캔을 투척했다. 호세는 참았다. 그러나 덕아웃 앞에서도 오물들이 날아오는 데다 생수병이 급소를 강타하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격분했다. 호세는 1루 관중석을 향해 방망이를 집어던지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고, 대구구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호세는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이를 발판 삼아 롯데 선수들은 더욱 똘똘 뭉쳐 연장 11회 접전 끝에 6-5로 역전승했다. 비록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1승4패로 패퇴했지만, 그해 가을 호세는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④ 2001년 호세 ‘한국판 배리 본즈’
호세는 2000년 롯데에서 뛰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재진입에 대한 목표의식이 강했고, 실제로 뉴욕 양키스에서 잠시 동안 활약했다. 2001년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찾은 호세는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존재감은 1999년을 넘어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율 0.335(4위)·36홈런(2위)·102타점(공동3위). 특히 장타율(0.695)과 출루율(0.503)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출루율은 프로야구 역대 최고기록. 투수들은 호세를 피해가기에 바빴다. 이 덕분에 호세는 무려 127개에 볼넷을 얻어냈고, 62경기 연속출루라는 신기록까지 수립했다. 상대투수들의 극심한 견제 속에서도 호세는 타격 감각을 잃지 않았다. 맹수가 한 번 찍은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듯 실투를 용납하지 않은 것. 2001년 호세는 ‘한국판 배리 본즈’ 그 자체였다.
⑤ 몸은 떠났어도 부산의 영웅
2001년을 끝으로 호세는 다시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롯데와 재계약을 약속해놓곤 애리조나와 이중계약을 해버린 것. 호세에게 배신감을 느낀 롯데 구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영구제명을 신청했다. 호세의 배신 아닌 배신에도 부산 팬들에게 호세는 영웅이었다. 험상궂은 외모의 호세는 다혈질인데다 악동이었다. 방망이 투척사건에다 2001년 9월18일 마산 삼성전에서는 상대 투수 배영수의 얼굴에 주먹까지 날렸다. 하지만 화끈하고 정열적인 호세는 근성 없으면 시체인 부산 팬들에게 어필하기에 딱 좋았다. 부산에서 호세는 어딜 가나 칙사 대접을 받았다. 택시·식당·술집 등 모두 공짜였다. 이에 호세는 자신의 방망이를 선물로 보답했다. 사직구장에서 호세가 길 건너편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리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그만큼 그는 인기가 좋았다.
⑥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 그리움
호세가 떠난 후 롯데는 길 잃은 갈매기처럼 표류했다. 특히 2002년과 2003년은 롯데 역사에서 찢고 싶은 페이지로 남아있다.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었던 부산 팬들도 사직구장을 야구의 성지가 아닌, 폐허로 바라볼 정도였다. 그 때마다 롯데 팬들에게 불현듯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호세였다. 그들은 오매불망 생각했다. ‘호세가 있었더라면’ 하고. 실제로 이 기간 동안 롯데에는 거포다운 거포가 없었다. 외국인 타자들은 족족 실패했다. 처음 영입할 때는 ‘제2의 호세’라며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롯데가 실패하고 추락할수록 호세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롯데 구단도 불과 1년 만에 KBO에 호세 영구제명을 철회해줄 것으로 요구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의 잔재는 여전히 롯데를 맴돌고 있었다.
⑦ 5년만의 ‘돌아왔다 부산항에’
매년 겨울 롯데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다 이내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호세 영입작전은 2005년 12월, 드디어 빛을 보는데 성공했다. 2001년 롯데를 떠난 후 롯데는 매년 호세에게 추파를 던졌다. 롯데 구단뿐만 아니라 부산 팬들도 호세를 향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그리고 2006년 1월31일, 호세는 마침내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5년 만이었다.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 호세는 곧장 사직구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사직구장은 천연잔디를 새로 깔기 위해 공사 중이었고, 호세는 공사 모습을 배경 삼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활짝 웃었다. 메이저리그·독립리그·멕시칸리그 등 수많은 리그에서 활약한 호세에게도 사직구장은 가장 편한 곳이었다. 설마 설마하며 호세의 컴백을 기다리던 부산 팬들도 호세의 사직구장 등장에 마침내 목 놓아 환호했다.
⑧ 실력·성질 ‘썩어도 준치였다’
5년만의 복귀 시즌에서 호세는 더 이상 과거의 위압감을 보이지 못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호세는 쇠약해져 있었다. 호세가 떠난 사이 국내투수들도 경쟁력이 상당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호세는 호세였다. 여기저기서 ‘한 물 갔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호세는 2006년 외국인 타자 중 가장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타율 0.277(22위)·22홈런(2위)·78타점(4위).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에서도 호세는 쏠쏠한 방망이 솜씨를 뽐냈다. 악동 기질도 여전했다. 5월12일 대전 한화전에서 심판에게 욕설을 하다 퇴장 당하는가하면 8월5일 문학 SK전에서는 난투극을 일으켰다. 또한, 호세는 기록 제조기로도 나섰다. 1965년 5월2일생의 호세는 지난해부터 최고령 출장기록을 써갔고, 특히 8월31일 잠실 두산전에서 맷 랜들을 상대로 최고령 만루홈런 기록(41세3개월29일)까지 세웠다.
⑨ 의욕이 부른 화 그리고 노쇠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롯데는 고민에 빠졌다. 호세와의 재계약 여부 때문이었다. 장고를 거듭한 롯데는 호세와 재계약했다. 호세는 올해 외야 수비까지 보겠다며 일찍부터 몸을 만들었고 체중을 쫙 뺀 채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이 사단을 일으켰다. 그만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만 것. 지난해 시즌 막판에도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고생을 했던 호세에게 부상 재발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개막전에서 제외된 호세는 개막 일주일 후에야 1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예전의 그 호세가 아니었다. 아킬레스건 탓에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한 채 상체로만 스윙을 했고 파워는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5월6일 사직 삼성전에서 8회 오승환을 상대로 정타를 때려냈으나 타구는 뻗지 못했다. 오승환은 맞는 순간 홈런인줄 알고 마운드에서 주저앉았지만 타구는 힘없이 떨어져 중견수 박한이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⑩ 마수걸이 홈런이 작별 홈런으로
2007년 5월10일 문학구장. SK에게 0-1로 뒤진 롯데의 3회 공격이었다. 1사 1루에서 호세가 타석에 들어섰다. SK 투수는 사이드암 이영욱. 볼카운트 0-1에서 던진 이영욱의 139km 직구가 바깥쪽으로 높게 형성됐다. 실투였다. 호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잡아당겼다. 비거리 125m짜리 우중월 홈런. 올 시즌 23경기만의 첫 홈런이었다. 마수걸이 홈런을 친 호세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수걸이 홈런이 작별 홈런이 되고 말았다. 호세는 바로 다음날, 퇴출 통보를 받았다. 타율 0.256·1홈런·12타점. 의심의 여지없는 퇴출 성적이었고, 호세도 담담히 퇴출을 받아들였다. 이날 호세가 인천 밤하늘에 쏘아 올린 홈런포는 역대 최고령 홈런(42세8일)으로 남았으며, 호세의 최고령 출장기록도 이날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호세의 한국시계는 멈췄고 출장기록도 이제는 명이 다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고 이제는 한국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여러 추억들은 야구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롯데팬들, 퇴출 호세에 "사랑해요, 고마워요" 플래카드
그는 갔어도 팬들의 가슴속과 뇌리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13일 LG와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외야 한 켠에 지난 11일 전격 퇴출된 '검은 갈매기' 호세(42)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놔 눈길을 끌었다. 롯데팬들은 플래카드에 호세의 홈런 세리머니 사진과 함께 'Te Amo, Gracias!, Saludos~ Y besos'(사랑해요 고마워요! 안녕, 키스)라고 스페인어로 적어 놓고 한국무대를 떠난 호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마디로 호세는 롯데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플래카드였다. 호세는 떠났지만 호세와 함께 지난 날들은 롯데팬들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무대에 진출한 호세는 그동안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다운 뛰어난 방망이 실력을 보여주며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2001년 한 시즌 최다 4구 128개라는 신기록. 62경기 연속출루 신기록. 더욱 놀라운 대기록은 출루율이 무려 0.503 ... 한국프로야구 사상 초유로 출루율 5할이 넘었다. 앞으로도 출루율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것이다. 한국판 배리 본즈 '펠릭스 호세' 이젠 한국프로야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전설로 남은 "역대 최고의 용병 펠릭스 호세"
추억을 남긴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42).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부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호세가 결국에는 롯데 유니폼을 벗고 부산을 떠났다. 롯데는 11일 호세를 퇴출하고 대체 선수로 내야수 에두아르도 리오스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 퇴출 1호의 철퇴를 호세가 맞고 만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나는 호세지만, 그는 그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추억을 남겼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호세는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 모으고,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은 특별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호세가 남긴 추억들을 되돌아본다.
① 역시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롯데는 1998년 첫 시행된 외국인선수 제도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백인 내야수 덕 브래디는 70경기에서 타율 0.258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1999년 롯데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외국인선수 덕을 본 팀 중 하나였다. 호세 때문이었다. 1999시즌을 앞두고 롯데가 호세 영입을 발표하자 많은 팬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호세는 1991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된 경력이 있는 특급선수였고, 그 위력을 입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세는 주위의 기대치에 그대로 부응하는 성적을 올렸다. 타율 0.327(9위)·36홈런(5위)·122타점(2위).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킬러 본능은 단순한 수치 그 이상이었고, 예부터 소총군단이었던 롯데의 오랜 거포 갈증도 호세로 인해 풀어졌다. 호세에 힘입은 롯데는 전 시즌 최하위에서 일약 전체 승률 2위로 발돋움했다.
② PS 사상 첫 역전 끝내기 홈런포
1999년 10월17일 사직구장. 경기장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롯데의 마지막 공격. 자고로 홈팀은 9회말에 야구를 해서는 안 된다. 9회말이 되자 관중들의 손에 쥐어진 신문지는 주인을 잃은 채 바람에 휘날려 정처 없이 나돌았다. 롯데는 시리즈 전적에서 1승3패로 뒤져있었고, 이 경기를 내주면 시즌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 법. 1사 1·2루 찬스에서 호세가 등장했다. 마운드에는 ‘애니콜’ 임창용. 페넌트레이스에서 호세는 임창용에 10타수 2안타 7삼진으로 유독 약했다. 때문에 호세는 더욱 집중력을 발휘했다. 볼카운트 2-2에서 호세는 임창용의 144km 직구를 그대로 때렸다. 호세는 공을 치자마자 펄쩍 펄쩍 뛰었다. 타구는 사직구장 좌중월을 가르더니 담장을 훌쩍 넘겼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사상 첫 역전 끝내기 홈런. 호세가 부산의 영웅이 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③ 사상 초유의 방망이 투척사건
1999년 10월21일 대구구장. 호세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롯데는 6차전마저 집어삼키고 시리즈를 3승3패 원점으로 되돌렸다. ‘5차전의 영웅’ 호세는 7차전에서도 0-2로 뒤지던 6회 반격의 솔로포를 가동했다. 그러나 홈런을 치고 3루 베이스를 돌고 있는 호세에게 대구 관중들은 맥주캔을 투척했다. 호세는 참았다. 그러나 덕아웃 앞에서도 오물들이 날아오는 데다 생수병이 급소를 강타하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격분했다. 호세는 1루 관중석을 향해 방망이를 집어던지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고, 대구구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호세는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이를 발판 삼아 롯데 선수들은 더욱 똘똘 뭉쳐 연장 11회 접전 끝에 6-5로 역전승했다. 비록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1승4패로 패퇴했지만, 그해 가을 호세는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④ 2001년 호세 ‘한국판 배리 본즈’
호세는 2000년 롯데에서 뛰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재진입에 대한 목표의식이 강했고, 실제로 뉴욕 양키스에서 잠시 동안 활약했다. 2001년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찾은 호세는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존재감은 1999년을 넘어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율 0.335(4위)·36홈런(2위)·102타점(공동3위). 특히 장타율(0.695)과 출루율(0.503)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출루율은 프로야구 역대 최고기록. 투수들은 호세를 피해가기에 바빴다. 이 덕분에 호세는 무려 127개에 볼넷을 얻어냈고, 62경기 연속출루라는 신기록까지 수립했다. 상대투수들의 극심한 견제 속에서도 호세는 타격 감각을 잃지 않았다. 맹수가 한 번 찍은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듯 실투를 용납하지 않은 것. 2001년 호세는 ‘한국판 배리 본즈’ 그 자체였다.
⑤ 몸은 떠났어도 부산의 영웅
2001년을 끝으로 호세는 다시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롯데와 재계약을 약속해놓곤 애리조나와 이중계약을 해버린 것. 호세에게 배신감을 느낀 롯데 구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영구제명을 신청했다. 호세의 배신 아닌 배신에도 부산 팬들에게 호세는 영웅이었다. 험상궂은 외모의 호세는 다혈질인데다 악동이었다. 방망이 투척사건에다 2001년 9월18일 마산 삼성전에서는 상대 투수 배영수의 얼굴에 주먹까지 날렸다. 하지만 화끈하고 정열적인 호세는 근성 없으면 시체인 부산 팬들에게 어필하기에 딱 좋았다. 부산에서 호세는 어딜 가나 칙사 대접을 받았다. 택시·식당·술집 등 모두 공짜였다. 이에 호세는 자신의 방망이를 선물로 보답했다. 사직구장에서 호세가 길 건너편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리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그만큼 그는 인기가 좋았다.
⑥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 그리움
호세가 떠난 후 롯데는 길 잃은 갈매기처럼 표류했다. 특히 2002년과 2003년은 롯데 역사에서 찢고 싶은 페이지로 남아있다.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었던 부산 팬들도 사직구장을 야구의 성지가 아닌, 폐허로 바라볼 정도였다. 그 때마다 롯데 팬들에게 불현듯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호세였다. 그들은 오매불망 생각했다. ‘호세가 있었더라면’ 하고. 실제로 이 기간 동안 롯데에는 거포다운 거포가 없었다. 외국인 타자들은 족족 실패했다. 처음 영입할 때는 ‘제2의 호세’라며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롯데가 실패하고 추락할수록 호세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롯데 구단도 불과 1년 만에 KBO에 호세 영구제명을 철회해줄 것으로 요구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의 잔재는 여전히 롯데를 맴돌고 있었다.
⑦ 5년만의 ‘돌아왔다 부산항에’
매년 겨울 롯데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다 이내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호세 영입작전은 2005년 12월, 드디어 빛을 보는데 성공했다. 2001년 롯데를 떠난 후 롯데는 매년 호세에게 추파를 던졌다. 롯데 구단뿐만 아니라 부산 팬들도 호세를 향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그리고 2006년 1월31일, 호세는 마침내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5년 만이었다.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 호세는 곧장 사직구장으로 달려갔다. 마침 사직구장은 천연잔디를 새로 깔기 위해 공사 중이었고, 호세는 공사 모습을 배경 삼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활짝 웃었다. 메이저리그·독립리그·멕시칸리그 등 수많은 리그에서 활약한 호세에게도 사직구장은 가장 편한 곳이었다. 설마 설마하며 호세의 컴백을 기다리던 부산 팬들도 호세의 사직구장 등장에 마침내 목 놓아 환호했다.
⑧ 실력·성질 ‘썩어도 준치였다’
5년만의 복귀 시즌에서 호세는 더 이상 과거의 위압감을 보이지 못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호세는 쇠약해져 있었다. 호세가 떠난 사이 국내투수들도 경쟁력이 상당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호세는 호세였다. 여기저기서 ‘한 물 갔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호세는 2006년 외국인 타자 중 가장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타율 0.277(22위)·22홈런(2위)·78타점(4위).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에서도 호세는 쏠쏠한 방망이 솜씨를 뽐냈다. 악동 기질도 여전했다. 5월12일 대전 한화전에서 심판에게 욕설을 하다 퇴장 당하는가하면 8월5일 문학 SK전에서는 난투극을 일으켰다. 또한, 호세는 기록 제조기로도 나섰다. 1965년 5월2일생의 호세는 지난해부터 최고령 출장기록을 써갔고, 특히 8월31일 잠실 두산전에서 맷 랜들을 상대로 최고령 만루홈런 기록(41세3개월29일)까지 세웠다.
⑨ 의욕이 부른 화 그리고 노쇠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롯데는 고민에 빠졌다. 호세와의 재계약 여부 때문이었다. 장고를 거듭한 롯데는 호세와 재계약했다. 호세는 올해 외야 수비까지 보겠다며 일찍부터 몸을 만들었고 체중을 쫙 뺀 채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이 사단을 일으켰다. 그만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만 것. 지난해 시즌 막판에도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고생을 했던 호세에게 부상 재발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개막전에서 제외된 호세는 개막 일주일 후에야 1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예전의 그 호세가 아니었다. 아킬레스건 탓에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한 채 상체로만 스윙을 했고 파워는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5월6일 사직 삼성전에서 8회 오승환을 상대로 정타를 때려냈으나 타구는 뻗지 못했다. 오승환은 맞는 순간 홈런인줄 알고 마운드에서 주저앉았지만 타구는 힘없이 떨어져 중견수 박한이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⑩ 마수걸이 홈런이 작별 홈런으로
2007년 5월10일 문학구장. SK에게 0-1로 뒤진 롯데의 3회 공격이었다. 1사 1루에서 호세가 타석에 들어섰다. SK 투수는 사이드암 이영욱. 볼카운트 0-1에서 던진 이영욱의 139km 직구가 바깥쪽으로 높게 형성됐다. 실투였다. 호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잡아당겼다. 비거리 125m짜리 우중월 홈런. 올 시즌 23경기만의 첫 홈런이었다. 마수걸이 홈런을 친 호세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수걸이 홈런이 작별 홈런이 되고 말았다. 호세는 바로 다음날, 퇴출 통보를 받았다. 타율 0.256·1홈런·12타점. 의심의 여지없는 퇴출 성적이었고, 호세도 담담히 퇴출을 받아들였다. 이날 호세가 인천 밤하늘에 쏘아 올린 홈런포는 역대 최고령 홈런(42세8일)으로 남았으며, 호세의 최고령 출장기록도 이날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호세의 한국시계는 멈췄고 출장기록도 이제는 명이 다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고 이제는 한국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여러 추억들은 야구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롯데팬들, 퇴출 호세에 "사랑해요, 고마워요" 플래카드
그는 갔어도 팬들의 가슴속과 뇌리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13일 LG와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외야 한 켠에 지난 11일 전격 퇴출된 '검은 갈매기' 호세(42)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놔 눈길을 끌었다. 롯데팬들은 플래카드에 호세의 홈런 세리머니 사진과 함께 'Te Amo, Gracias!, Saludos~ Y besos'(사랑해요 고마워요! 안녕, 키스)라고 스페인어로 적어 놓고 한국무대를 떠난 호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마디로 호세는 롯데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플래카드였다. 호세는 떠났지만 호세와 함께 지난 날들은 롯데팬들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무대에 진출한 호세는 그동안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다운 뛰어난 방망이 실력을 보여주며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2001년 한 시즌 최다 4구 128개라는 신기록. 62경기 연속출루 신기록. 더욱 놀라운 대기록은 출루율이 무려 0.503 ... 한국프로야구 사상 초유로 출루율 5할이 넘었다. 앞으로도 출루율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것이다. 한국판 배리 본즈 '펠릭스 호세' 이젠 한국프로야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