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33편 - 여호와의 인자하심

배경우200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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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33편 - 여호와의 인자하심

시편 제33편


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14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함에 말은 헛 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ps.

우리가 흔히 얘기해 왔던  ‘생각이 없다’는 말은 사실 앞에 ‘좋은’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좋은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예로,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우리는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데,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좋은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나쁜 생각은 분명히 많이 한 사람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 말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기는 일명 “성경효과” 중의 대표적인 하나는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우리가 똑똑해서 체온이 36.5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잘나서 폐가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선해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은 생각을 비워주신다. 이것은 죄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하나님은 죄를 씻어주시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만 온전히 생각이 비워진다. 우리의 영리함과 지혜로움에서 나온 생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음으로만 그런 생각이 온전히 비워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만 온전히 죄가 비워진다. 이런 성경의 원리는 인간의 논리와 격이 다르므로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차원이 아니다. 모든 것은 “나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이 나로 하여 가능케 하신다”는 원칙에 맞물려 돌아간다. 이해를 해서 믿을 수는 없고,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예다.


그리고 이 믿음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통점 중의 하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들어도 믿음이 생기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믿고 싶은데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공감하는 바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으며 기쁨을 외치는데, 다른 사람은 같은 말을 듣고 힘을 얻으며 화를 낸다.  


하나님의 말씀이 뭐 특별히 사람 기분 좋은 쪽이나 사람 기분 나쁜 쪽으로 쓰여져 있지는 않다. 그런데 반응들은 대부분 그 둘 중 하나다. 이것의 정확한 이유를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것을 전한 통로일 뿐이다. 재밌는 것은, 기분 좋아한 사람은 그 통로 너머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화를 낸 사람은 그 통로한테 괜한 화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그 마음에 어느 정도 심어진 사람은 그 말씀을 전하며 살게 된다. 뭐 저렇게 귀찮을 정도로 전도해대려 그러나하는 생각이 나에게도 없는 건 아니다. 지하철 안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은 공중도덕적 개념에서 틀렸다고 본다. 하지만 그 사람을 이해는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호흡하는 것처럼 그것이 들어오면 또 밖으로 나와야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 말씀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따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그렇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사랑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항상 붙잡고 있어야 한다. 전도를 하며 겪는 모든 문제는 사랑이 없거나 최우선에 있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자를 고치셨고 죄 없는 자가 아닌 죄인들을 구원하신 것 같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사랑해야 하고 악한 자일수록 더욱 더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내 눈에 가장 악하게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 악이 내 마음 한편에 존재하는 악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죄가 없는 예수에게는 판단함과 정죄함이 없었다. 그에게는 오직 용서와 사랑만이 있었다. 상대방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상대방의 악이 커 보일 때, 그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그의 허물을 덮어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노력으로 생겨난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나를 용서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선행이 많으면 덕도 많이 쌓일 것이다. 그 전부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덕이 독이 되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마음을 낮추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마음을 낮추는 것은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자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하나 사랑하지 못한다면 무슨 낯짝으로 복음을 전하겠는가. 사람하나 용서하지 못하면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을 제외하면 마귀다. 마귀도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소망이 있다. 마귀에게 없는 것이 사랑이다.


죄를 짓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고, 회개와 용서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며,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사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 커 보일 때, 그보다 훨씬 더 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하라!


사랑하는 데 있어, 기도와 행위 어느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기도로서 행위를 구하고 행위를 성공적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기도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 계속 그렇게 무한반복을 하다보면 기도가 행위가 되고 행위가 기도가 될 것이다.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점을 바라볼 때만 나타는 증상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라! 그를 믿는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