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그득한 운동장에..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엔 솜사탕을 쥐고서,1반 2반 3반 4반...9반 10반..그중에 배정받은 반 나무표지판 앞으로 길~게 줄 서 있던 기억..큰 가방 매고 이제 학교 간다고 촐랑거리던 철없던 코흘리게 시절.. 이제는 "국민학교"라는 단어 보다는.. "초등학교"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 누군가에게 "나 국민학교 입학했었어" 라고 얘길하면.. 당연하다는 듯 '니가??' 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즈음에 국민학교라는 타이틀이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학교 정문 앞에도 새로운 학교명들로 속속들이 바뀌던 시절이였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 나는 4학년때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그 당시 삐삐나 폰을 가지고 다니던 아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시절이라..전학을 가게 되면 영영 이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었다.그나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 한두명과는 집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었고..전학 간 학교 아이들과 지내느라 그 전 친구들의 기억은 그냥 어렴풋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정도였으니.. 그래도 지금의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을 추억할때마다.. 조금 답답한 구석이 없지않아 있었더랬다.. 기억도 엉성하거니와.. 연락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싸이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먼 기억속의 인물들을 찾는다고 바빴고..서로 반가워하며 안부인사와 오랜만의 만남을 가지는 것도 봤었는데.. 얼마 전, 학교클럽이라며 싸이에서 초대가 온 것을 보고 반가운 맘으로수락을 해놓고.. 동창생들 목록을 보는데.. 낯설지 않은 친구들 이름 이 보였었다..반심반의 한 마음으로 방명록에 글을 적어놓고 기다렸는데..3명 중.. 2명에게 반가운 메세지를 받았다..그 둘은 나란 아이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친구의 이름까지도 물어와주었다. 그 시절의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은..친구가 전학간다고.. 아이들이 깜짝송별회를 해주겠다며비밀리에 파티 진행을 하다가 나에게 다 걸려버렸던 재밌는 기억..롯데리아에서 파티를 해주며.. 삐뚤빼뚤한 필체로 미니카드에 써주었던 친구들의 메세지들.. 나는 사실 그 시절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그 카드들을 버리지 못하고 다 간직해두며 이따금씩 꺼내어 보곤 했었는데..막상 이렇게 성인이 되어 쪽지나 방명으로 만난 것 뿐인데도..너무너무 설레이고.. 두근두근거리는 기분까지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만난 나와 아이들은..아무 계산없이 웃으며 친해졌고 백원짜리 동전 하나.. 오백원짜리가 주머니에 있는 날엔..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부유하고 참 즐겁게 놀곤 했었다.그땐 정말..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하지 않으며..해가 지기전까지는 우리들 세상이였던.. 지금에와서 추억해보면 참 아련하고 기분좋아지는 추억들.. 아마도 이제는 다 커버린 상태에서 만나게 된 우리이기 때문에 커가면서 느꼈던 세상의 이면의 모습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사람들이 코흘리개 시절이라 말하는, 아련한 추억속의 그 옛날 동화같은, 이제는 다 커버린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코흘리개 시절, 동화같은 친구를 만났다.
흙먼지 그득한 운동장에..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엔 솜사탕을 쥐고서,
1반 2반 3반 4반...9반 10반..
그중에 배정받은 반 나무표지판 앞으로 길~게 줄 서 있던 기억..
큰 가방 매고 이제 학교 간다고 촐랑거리던 철없던 코흘리게 시절..
이제는 "국민학교"라는 단어 보다는..
"초등학교"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
누군가에게 "나 국민학교 입학했었어" 라고 얘길하면..
당연하다는 듯 '니가??' 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즈음에
국민학교라는 타이틀이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학교 정문 앞에도 새로운 학교명들로 속속들이 바뀌던 시절이였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 나는 4학년때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삐삐나 폰을 가지고 다니던 아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시절이라..
전학을 가게 되면 영영 이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나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 한두명과는 집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었고..
전학 간 학교 아이들과 지내느라 그 전 친구들의 기억은
그냥 어렴풋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정도였으니..
그래도 지금의 나이가 되어 어린 시절을 추억할때마다..
조금 답답한 구석이 없지않아 있었더랬다..
기억도 엉성하거니와.. 연락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싸이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먼 기억속의 인물들을 찾는다고 바빴고..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인사와 오랜만의 만남을 가지는 것도 봤었는데..
얼마 전, 학교클럽이라며 싸이에서 초대가 온 것을 보고 반가운 맘으로
수락을 해놓고.. 동창생들 목록을 보는데.. 낯설지 않은 친구들 이름 이 보였었다..
반심반의 한 마음으로 방명록에 글을 적어놓고 기다렸는데..
3명 중.. 2명에게 반가운 메세지를 받았다..
그 둘은 나란 아이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친구의 이름까지도 물어와주었다.
그 시절의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은..
친구가 전학간다고.. 아이들이 깜짝송별회를 해주겠다며
비밀리에 파티 진행을 하다가 나에게 다 걸려버렸던 재밌는 기억..
롯데리아에서 파티를 해주며..
삐뚤빼뚤한 필체로 미니카드에 써주었던 친구들의 메세지들..
나는 사실 그 시절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카드들을 버리지 못하고 다 간직해두며
이따금씩 꺼내어 보곤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성인이 되어 쪽지나 방명으로 만난 것 뿐인데도..
너무너무 설레이고.. 두근두근거리는 기분까지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만난 나와 아이들은..
아무 계산없이 웃으며 친해졌고
백원짜리 동전 하나.. 오백원짜리가 주머니에 있는 날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부유하고 참 즐겁게 놀곤 했었다.
그땐 정말..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하지 않으며..
해가 지기전까지는 우리들 세상이였던..
지금에와서 추억해보면 참 아련하고 기분좋아지는 추억들..
아마도 이제는 다 커버린 상태에서 만나게 된 우리이기 때문에
커가면서 느꼈던 세상의 이면의 모습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사람들이 코흘리개 시절이라 말하는,
아련한 추억속의 그 옛날 동화같은,
이제는 다 커버린 친구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