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최진환200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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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는 푸른 생명의 파도치고, 흐르는 에이번강에는 신을 향한

 

고요한 신비가 꿈틀대는 스트랫퍼드마을은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이 문명을 피한 조그만 마을의 한 외곽에 서 있는

 

홀리트리니티 성당 역시 겸손하리만치 작은 것이었다.

 

마치, 예수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처럼,

 

이 왜소한 성당은 한명의 사제와 단 세명의 수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성당은 숨겨진 마을 스트랫퍼드의 자랑이었다.

 

다른 거대한 성당들처럼 건물이 아름답다거나, 하다못해 유명한

 

그림 한장이라도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이 성당을 이끄는, 이제 갖 중견의 나이를 맞은 듯 보이는

 

한 젊은 사제때문이었다.

 

십여년전에 허름한 이 성당에 사제로 들어온 그는, 다른 여느

 

사제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다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달관한 듯한 성자의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어디선가 나무묘목 한 그루를 가져와

 

허름한 성당의 마당 한 구석에 심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곧 그의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해성사를

 

받아준다는 소문이 마을과 도시에까지 전해지자 곧 성당은

 

고해성사를 원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 덕에 자연의 고요속에 잠들어 있을 법한 스트랫퍼드 마을도

 

이따금 찾아오는 도시의 소식을 끊이지않고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소문은 새롭게 취임한 왕 헨리 8세와 캔터베리의

 

주교인 크램머의 종교개혁의 소식에 묻혀버렸고, 더이상 성당을,

 

그리고 스트랫퍼드 마을을 찾는 사람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잠들어있던 스트랫퍼드를, 그리고

 

홀리트리니티 성당을 깨웠다.

 

정숙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듯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더구나 수년동안 그 누구도 찾지않았던 홀리트리니티 성당의

 

문을 두드린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지난 날 힘 좀 꽤나 썼다는, 하지만 지금은 초로의 늙은이가 되버린

 

한 수사의 인도로 성당에 들어온 그녀는 고해성사를 요청했다.

 

이윽고 사제는 늘상 그랬던 미소를 지으며 기도실에서 걸어나왔고,

 

여자의 고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주님, 예수앞에 당신의 죄를 내려놓으십시오."

 

부드러움을 잃지않는 신부의 목소리가 간간히 햇살만이 하늘거리는

 

성당의 오후를 기분좋게 울리고 있었다.

 

"신부님,, 저는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신부는 평온함을 잃지않으며 말을 연결했다.

 

"계속하세요."

 

"제가 스무살이 갖 넘었을 때, 저희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여자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바람둥이었죠. 본래 그는 허름한 목수의

 

아들이었는데, 집을 나간 아버지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여자들 덕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그는 늘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어쩌면

 

너무 많이 받아와서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네. 어쨌든 그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가 거절한

 

여자도 제법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을의 유지의 부인이었어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몹시 매몰차게 거절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일로 부인은 그에게 깊은 앙심을 품었다고 해요. 어쩌면 그가

 

시달려왔던 그 모든 소문들이 그녀의 입에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질 만큼 말이죠."

 

"어찌보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군요."

 

여자는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지나간 뒤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랬던 그가 내게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봄이었어요. 나는 믿을수없는 그에대해 아무런 마음도 가지지

 

않았죠. 아니, 오히려 조금은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런 그와는 마음과 다르게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아침인사정도, 나중에는 길에서 멈춰

 

이야기 할 정도까지 되었죠. 하지만, 나는 조금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가오는 그가 싫었어요."

 

"그는 불쌍한 사람이었군요.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알고있었나요?"

 

"아니요. 오히려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제 잘못도 있겠죠. 매몰차게 끊지못했던 것 말이에요."

 

"그에게 상처가 될꺼라 생각했군요."

 

"네, 어쩌면요."

 

"어쩔수 없었던 일이 아니겠어요. 당신의 배려가 독이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을테니까요."

 

여자는 그 날이 생각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잠시동안 있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그는 내게 고백을 했어요. 꽃 한송이 들고

 

서있는 그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해요.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당연히 그를 거절했어요.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지만 내게 그런 그는 더욱 부담스러워질 뿐이었죠. 그러자

 

그도 자신이 어떤 소리를 듣는지 아는 듯 이내 고개를 떨구더군요.

 

그리고 기억에 남을 한마디를 했어요."

 

"...무슨 말이었나요?"

 

"진심이었다고."

 

"..."

 

"그렇게 하루는 지났어요. 하지만 누군가 우리 둘이 있던 것을

 

보았나봐요. 이내 마을에는 우리에 대한, 특히 저에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이 퍼져나갔어요. 왜곡된, 너무나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말이에요."

 

끔찍한 기억이 다시금 찾아오는게 괴로운 듯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해할 수 없어요. 그리고 화도 났죠. 단지 그가 벌여놓은 문제에

 

괜히 나만 이렇게 마음상하게 되는게 화가 나기도 했구요. 점점

 

소문은 커져나갔고, 더이상 저는 그 마을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두 발을 딛고 사는게 힘들어질정도가 되었죠.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나봐요. 어느 날 밤,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용서를 구하더군요."

 

"그래서.. 그 용서를 받아주었나요?"

 

"아니요. 오히려..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해버렸어요."

 

"..."

 

"단지 화가나서 이성을 잃고 말했던 것인데.. 그가 진심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어요. 그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하더군요. 단순히 소문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 후로 그를 볼 수 없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그에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래서 그를 죽였다고 말한거군요."

 

"하지만, 몇년전에야 그의 어머니의 입에서 그가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죠. 목을 맨 그를 그의 친구들이

 

발견해서 겨우 목숨만을 건졌다고 하더군요. 몇일간을 병상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않던 그는 얼마 지나지않아 집을 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그가 어느 수도원에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찾아갔을땐

 

이미 그 수도원을 나간 후였지요..."

 

"...그 후로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나요?"

 

"네.. 하나님께서 제 죄를 용서해주실까요?"

 

신부는 잠시의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곧 그는 본연의 사역을

 

생각하는 듯 입을 열었다.

 

"신께서 당신을 용서했을 뿐더러 그도 당신을 용서했을겁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그의 영혼은 안식을 얻지 못하겠죠. 비록

 

신이 아무리 자애롭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신부는 잠시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만 곧 평소와 같이

 

평온한 목소리로 나긋이 말을 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죄에 대한 해방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지요.."

 

아무 말도 없이 신부의 말을 듣던 여자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지요.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

 

신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곧 말을 이었다.

 

"마당에 심은 나무를 보셨습니까? 훌륭한 나무지요. 그 옛날

 

한 소녀가, 물론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사랑했던 나무의

 

한 부분이었던 나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체가 되버린 나무지요.

 

하지만 아직도 그 나무의 밑둥엔 그녀가 꺽을 때 깊이 남긴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

 

"20여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나무는 한 땅의 한 부분에 책임을

 

지고있단 말입니다. 늦었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날의 기억이 부분이 아닌 전부가 되어버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신부는 자신의 목에 남은 상처를 매만지더니 곧 말을 이었다.

 

"그 날, 내 목숨을 진실을 위해 동아줄에 걸었을 때, 이미 나는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비난하던 그들도 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찾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왔다는 것을 곧 깨달았지요. 당신은 지금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지요. 하지만.."

 

신부는 이미 자리를 정돈하며 일어서고 있었다.

 

"기억하세요. 후회란 아쉬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한 인정입니다."

 

신부는 문을 열며 마지막 사제로서의 말을 했다.

 

"이제 편하게 돌아가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셨고,

 

어쩌면 그 남자를 구원하실지 모르는 일이요."

 

"아멘."

 

걸어나가던 신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 진심을 믿겠소?"

 

그리고는 곧 다시 걷던 걸음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