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사회 문제에 별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고 그동안 별로 글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해볼만한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적어보려 한다.
오늘 뉴스를 보다보니 소녀 노숙자가 폭행을 당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화가 난다기 보다는 어이없는 일인데, 문득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만큼은 화가났다.
물론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펴든, 어떤 정치 사상이든 사회에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빈부 격차 문제나 노숙자 문제를 왜 해결하지 못했냐고 모든 책임을 대통령 개인에게 떠넘기는건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누가 대통령이든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통령 노무현과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청와대에서는 주가가 1600 포인트를 넘었다고, 재임중 1000포인트나 올린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란 자화자찬이 넘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사회 전체의 부가 커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부의 고른 분배 보다 더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엄청나게 많아지고 공격적으로 변한 노숙자나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사회의 자살률이나, 교육의 붕괴에 대해서는 정치 철학적 반성이 없는 것인가?
노무현 정부는 올 해 초의 어젠더로 '개헌'을 내세웠다. 나는 다시 한번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의 불안감은 결코 선거직 공직자의 임기가 어긋난 헌법의 내용을 못고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를 서두르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세계화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다. 효율성과 개방성은 이 나라 뿐 아니라 어느 국가에게도 궁극적으로 필요한 키워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못한다고 영원히 불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속도의 차이 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언제까지나 우리 국민이 이와 같이 승자승 독식의 무한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경쟁을 잘 할 수 있느냐만을 놓고 고민하면서 스스로 '효율적인 정부, 일하는 정부'라고 주장할 뿐이었다.
정부가 언제 일을 안한적이 있는가? 국민들이 언제 정부가 게을러서 나라에 불신을 가진적이 있는가?
이 시대의 고민은 일을 적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한 대가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에 있다.
몇년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대답중의 하나는 '좋은 주거'환경을 갖는 것이었다. 드디어 우리 나라가 먹는 문제에서 사는 문제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일부 눈에 띄게 주거 환경이 좋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국민들의 주거 문제가 오로지 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의 실책과 과실이란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접하고서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접근 방법에서 주요 해결 수단을 찾았다.
전체적인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 대신에, 단지 그 '가격'을 잡기 위한 수단이 무엇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위와 같은 사건들 속에서도, 과거 수십년 간 이 사회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어쩌면 더욱 중요한 문제에서 개선된 점은 매우 빈약했다. 입시 교육의 문제, 빈민층에게 밥이 아닌 희망을 주는 문제, 국가 지도층의 인사 문제 등등.
물론 수십년간 방치되다가 이 정부에서 다뤄진 중요한 문제들도 많았다. 행정 수도 및 공공기관 이전 문제, 사립학교법, 보건복지 제도, 사법 개혁, 대통령의 탈권위 등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법 하나의 개정으로 이뤄지느냐 정치 철학적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느냐의 차이란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에 치중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FTA나 다른 제도적 개혁이 이 사회에 자본 축적과 효율성을 더하여 줄지는 몰라도, 덕분에 우리 사회의 젊은 구성원들은 '열심히 안살면 죽거나 도태된다' 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철학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게 되었다.
게다가 심지어, '열심히 살아도 애초에 가진게 없으면 결국 별 볼일 없게 된다.' 라는 명제는 근래들어 더욱 강하게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는다.
대통령도 인간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할만큼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쪽에선 기대치가 높았고, 다른 편에서는 애초에 훼방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자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특정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줄 수 있는 희망과 비젼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비젼 부족은 충분히 실망할만 했다.
다음 대선 후보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 우리 국민 대부분은 노숙자나 입시 교육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 개인은 사회적 문제를 감당할 능력도 없거니와, 남의 일이거나 지나간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대신에 그런 사회적 문제를 고민해 줄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고 정치 지도자이고 정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 조명
개인적으로, 사회 문제에 별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고 그동안 별로 글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해볼만한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적어보려 한다.
오늘 뉴스를 보다보니 소녀 노숙자가 폭행을 당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화가 난다기 보다는 어이없는 일인데, 문득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만큼은 화가났다.
물론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펴든, 어떤 정치 사상이든 사회에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빈부 격차 문제나 노숙자 문제를 왜 해결하지 못했냐고 모든 책임을 대통령 개인에게 떠넘기는건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누가 대통령이든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통령 노무현과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청와대에서는 주가가 1600 포인트를 넘었다고, 재임중 1000포인트나 올린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란 자화자찬이 넘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사회 전체의 부가 커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부의 고른 분배 보다 더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엄청나게 많아지고 공격적으로 변한 노숙자나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사회의 자살률이나, 교육의 붕괴에 대해서는 정치 철학적 반성이 없는 것인가?
노무현 정부는 올 해 초의 어젠더로 '개헌'을 내세웠다. 나는 다시 한번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의 불안감은 결코 선거직 공직자의 임기가 어긋난 헌법의 내용을 못고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를 서두르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세계화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다. 효율성과 개방성은 이 나라 뿐 아니라 어느 국가에게도 궁극적으로 필요한 키워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못한다고 영원히 불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속도의 차이 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언제까지나 우리 국민이 이와 같이 승자승 독식의 무한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경쟁을 잘 할 수 있느냐만을 놓고 고민하면서 스스로 '효율적인 정부, 일하는 정부'라고 주장할 뿐이었다.
정부가 언제 일을 안한적이 있는가? 국민들이 언제 정부가 게을러서 나라에 불신을 가진적이 있는가?
이 시대의 고민은 일을 적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한 대가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에 있다.
몇년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대답중의 하나는 '좋은 주거'환경을 갖는 것이었다. 드디어 우리 나라가 먹는 문제에서 사는 문제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일부 눈에 띄게 주거 환경이 좋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국민들의 주거 문제가 오로지 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의 실책과 과실이란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접하고서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접근 방법에서 주요 해결 수단을 찾았다.
전체적인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 대신에, 단지 그 '가격'을 잡기 위한 수단이 무엇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위와 같은 사건들 속에서도, 과거 수십년 간 이 사회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어쩌면 더욱 중요한 문제에서 개선된 점은 매우 빈약했다. 입시 교육의 문제, 빈민층에게 밥이 아닌 희망을 주는 문제, 국가 지도층의 인사 문제 등등.
물론 수십년간 방치되다가 이 정부에서 다뤄진 중요한 문제들도 많았다. 행정 수도 및 공공기관 이전 문제, 사립학교법, 보건복지 제도, 사법 개혁, 대통령의 탈권위 등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법 하나의 개정으로 이뤄지느냐 정치 철학적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느냐의 차이란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점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에 치중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FTA나 다른 제도적 개혁이 이 사회에 자본 축적과 효율성을 더하여 줄지는 몰라도, 덕분에 우리 사회의 젊은 구성원들은 '열심히 안살면 죽거나 도태된다' 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철학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게 되었다.
게다가 심지어, '열심히 살아도 애초에 가진게 없으면 결국 별 볼일 없게 된다.' 라는 명제는 근래들어 더욱 강하게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는다.
대통령도 인간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할만큼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쪽에선 기대치가 높았고, 다른 편에서는 애초에 훼방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자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특정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줄 수 있는 희망과 비젼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비젼 부족은 충분히 실망할만 했다.
다음 대선 후보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 우리 국민 대부분은 노숙자나 입시 교육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 개인은 사회적 문제를 감당할 능력도 없거니와, 남의 일이거나 지나간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대신에 그런 사회적 문제를 고민해 줄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고 정치 지도자이고 정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가지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