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이정희200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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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앨 알아요?"
"음.. 글쎄요, 이사온지 얼마 안되서 마주친적은.."

"아니, 제 말은 그 애를 알겠냐는 말이예요. 뭐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런저런거 말이예요."

"아뇨. 얼굴도 모르는걸요."

 

"궁금하지 않아요?"

"뭐가요?"

"왜 집에만 있는지."
"아뇨, 그다지. 남에 일엔 관심이 도통 없어서요."

 

"사실 그쪽이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서 그렇지, 다른 주민들은 다 나한테 물어요. 그 애가 누구냐고. 그게 또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니까요? 나를 만나면 내 안부나 근황부터 묻지않고 눈을 마주치면 하는소린 그거예요 '앞집여자 무슨 일 있어요?' 그때마다 남에 일에 관심 많은 할일 없는 사람들한테 대고 '일 없으니까 댁들이나 잘 하셔요!' 하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그렇다 해도 아파트 주민이라는게, 참 오묘한 관계잖아요. 만나면 인사하고 일단은 웃어주지만 단둘이 한 엘리베이터에 탄다는거. 그거 참 곤란하죠. 한층 한층 올라갈 적 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고 할까나요? 인사는 했으니 무언가 말은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넘어가는일은 쉬운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때 마다 엘리베이터는 또 왜그리 느리게 움직이는지."

"아, 불편하시겠어요."

 

"그럼요! 어찌나 불편하던지! 정말, 그때마다 느끼는건데 계단을 자주 이용해야겠더라구요!"

"그래도 16층에 사시는데, 계단은 힘들지 않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청년이랑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거구요."

"아참. 죄송해요."

 

"아니예요, 원레 사람들이란 자신에게 흥미롭지 않은 사건들은 한귀에 흘려버리는 법이니까요. 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그냥 왠지 당신이 그집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까 다른사람에겐 싫었던게 왠지 하고싶어지네요. 뭐랄까. 등이 가렵다고 긁어달라는 사람 등을 손톱 끝으로 슬금슬금 나뭇잎 스치듯 쓸어내리면서 가려워 못참겠다는 사람들의 절규를 들으며 희열을 느낀다고 할까요? 그치만 당신은 오히려 가렵지 않다니 때가 떨어지도록 긁어주고 싶네요. 이정도면 딱 반항끼 어린 학생의 심리정도밖에 안되는거죠. 사실 앞집 여자를 이십대 중반이 넘은 아가씨이다, 혹은 서른이 넘은 노처녀나 과부일거라고들 하는데, 다들 그 여자 얼굴을 못봐서 하는 소리지, 사실 학생이예요. 그것도 열 여덟살. 놀랍지 않아요? 열 여덟살밖에 안된 여자가 집에 혼자살고, 게다가 학교도 안가는지 집밖으론 도통 나오질 않으니. 다들 그 나이 때면 여기저기 놀러나가고 싶어할텐데 말이에요."

 

"그랬어요? 전 전혀 몰랐던 예기들에다 그 집에 여자가 살고있다는 것 조차 몰르고 있었네요."

 

"청년이 좀 무심해 보이긴 해요. 여자친구도 없죠? 그럴것 같았어. 내가 척 보면 척이거든요. 딱 학생만한 또랜데, 어떻게 둘이 잘 연결해 주고 싶기도 하네요. 호호. 주책없는 맞선 주도 할머니 같은 소리죠? 사실 내가 이런 말 하는것도 다 청년 좋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그 학생이 얼마나 착하고 이쁜지 청년은 모르죠? 내가 우리 동내에서 그 학생이랑 제일 말을 많이 해 본 사람으로써 아는데, 얼굴도 그정도면 참하게 생겼고 조용조용하고 말도 예쁘게 하는게, 딱 청년같은 남자 있으면 빨리 시집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라니까요? 마치 엄마라도 된 심정으로 말이예요. 뭐, 사실 내 나이도 생각보다 꽤 어려요. 스물 세살이거든요. 몰랐죠? 그래도 소개팅 맞선에서 주선자의 나이따위는 상관 없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내가 학생을 청년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은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예요. 그 학생 힘든일이 많았거든요."

 

"그건 뭐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인데요, 뭐.."

"근데 그 학생은 우리가 격는 것 보다 조금 더 힘든일이었어요."

"힘들다는건 상대적이지 않아요, 절대적인거지."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청년이 내 예길 끝까지 듣고나면 이해할꺼예요. 사실 이건 불과 몇개월 전에 일이거든요. 학생이 처음부터 혼자 살았던건 아니었어요. 남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죠."

 

"아, 듣던중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근데 아파트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요. 남학생이 같이 있었는지."

 

"남자도 학생이었군요."

 

"분명 나도 남 학생이 그 집을 들락날락 하는걸 몇번이나 보았고,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던 학생을 본 아주머니도 있었구요. 근데 아무도 기억을 못해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그쪽은 기억하시는데 다른 분들은 기억 못한다는게 이상하긴 하네요. 어째서 그런걸까요?"

 

"그 질문에 답을 하자면 좀 긴 예기가 될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네요. 뭐, 이야기에 흥미 있으시다면 잠깐 들어오셔도 되요."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실례할께요. 주민분들과 이렇게 대화하기는 처음이라서요. 아니 평소에도 사람들이랑 대화를 잘 안하는데 어떻게 그쪽 이야기 듣는건 좀 재미 있는것 같아서 말이죠."

 

"아, 그게 바로 제가 그 학생과 예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해요. 워낙 어릴적 부터 사람들을 좋아했던지라, 처음 본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거든요. 들어오세요. 조금 지저분 하지만."

"아니예요. 깔끔한걸요. 저희집에 비해선 양반이죠 뭐."

 

"우리집 보고 이런말 하시는걸 보면 그 집에 가면 아주 놀라 뒤집어 지실지도 모르겠네요. 그 학생 집은 벽지며 가구며 등이며 죄다 연한 분홍빛이거든요. 게다가 깔끔은 또 얼마나 깔끔한지 그 집에 가면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는 죄다 우리집으로만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그 학생이 정리하난 무지하게 잘 하거든요. 제가 처음 그 집에 초대 받았을 때도 엄청 놀랐으니 말이예요."

 

"그렇군요. 아 근데 아까 그 학생과 남학생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참, 죄송해요. 내가 말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서.. 어디까지 이야기 했죠? 아, 남학생이랑 같이 살았다고. 같이 살긴 했죠. 다른 주민들 처럼 자주 집밖으로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말이예요. 근데 사람들은 항상 그렇잖아요. 평범하게 아무런 일 없이 사는 사람들한텐 처음엔 관심도 없다가 후에 말이 돌기 시작하고 무언가 다르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주의깊게 관찰하고, 뭐 그런것들 말이예요. 그 둘이 항상 같이 다닐땐 그냥 평범한 학생이구나 한거죠. 그러다가 점차 그 집에 문이 열리는게 줄어드니까 사람들이 아차 한거죠. '저 집 사람은 생각해 보니까 본적이 없다.'고 결론 지은거죠.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게 참 웃기는 동물이죠. 평범한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으면서 소란스러운 사람들에게만 집중을 하고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면서 더 헐뜯고 망치고. 제가 그래서 그 집 학생에 대해 주민들이 아무리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는 거예요. 절대 그냥 단순히 귀찮아서 그랬던건 아니라구요."

"아, 사실 여태까지 내용으로 봐선 귀찮은 걸로만 알았는데, 그것뿐만은 아니었군요."

 

"뭐, 하려던 이야긴 그게 아니고, 그집 학생 같이 살던 남학생한테 배신을 당했죠. 뭐, 그냥 연애중인 커플이 헤어진 일이라고 쉽게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좀 차원이 다른일이었어요."

"남자가 바람을 폈나요?"

"차원이 다른 일이라니까요. 그 남학생이 여학생이 아버지가 떠나기 전 데려온 고양이를 죽여버렸거든요."

"아버지가 준 고양이라 배신감에 그랬던걸까요?"

"아뇨, 그집 학생에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었을 뿐이지, 아버지가 준 고양이라는 것에 대해선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징그럽도록 싫어해요. 나도 아직까지 그게 왜 그 학생이 미치게 된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학생이 정신병이 있나요?"

"아뇨. 정신병이 있는건 아니예요. 흔히 사랑을 정신병이라고 표현하진 않으니까요. 그저 사랑에 미친것 뿐이죠. 그집 여자가 나에게 처음 한 말이 이거였어요. '미치도록 싫은데 미치도록 좋아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모든 수식어을 붙여놓아도 사랑이라는 얼굴 붉어지는 단어를 사용해도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막연한 어떠한 감정이라고만 해둘꼐요. 그치만 이게 정확히 싫은지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둘 다 아니었어요.'라고. 그리고 이말을 남학생에게 했다고 하더군요. "

 

"자, 잠깐만요. 이게 배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죠?"

"남학생이 그 예기를 듣고 고양이를 죽였거든요. 그것이 고양이를 죽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죽었고 그 학생은 아무 말 없이 고양이가 죽는걸 지켜 보았다고 하더군요."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네요."

"그렇긴 해요. 하지만 한가지 중요한건. 고양이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잘 믿고 따랐다는거예요. 여자가 배신을 당했다기보단 고양이가 배신을 당한것이었죠."

"이상하네요. 고양이가 배신을 당했는데 그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던 여자가 미치게 되었다니. 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걸요."

 

"저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 그냥 그렇구나 하는거예요."

 

 

"말씀 감사했어요. 처음으로 주민분이랑 이렇게 예기해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다음번에 또 기회되면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요. 다음에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저도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 해서. 그럼 안녕히 가시구 좋은밤 보내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뵈요."

 

 

 

 

 

 

"아참, 혹시 해서 말하는데요. 청년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 집 학생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모두 이해하면서 살겠어요. 사건이나 사고, 일어난 일들에 관해서는 정확히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게되는 경우는 삶에 있어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 중 열 손 가락 안에도 꼽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인생에서 힘들더라도 각자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거니까요."

 

 

 

 

 

 

 

 

 

+

그냥 말도안되는걸 끄적여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