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서 고생해봐야 해" 라는 말은 남자라면 한번 씩은 다들 들어봄직한 말이다. 군대를 가면 당연히 고생을 해야되고 그 고생이야 말로 군대의 정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생각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받아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군대는 고생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군대는 현재의 죽권국가라는 개념의 국제체제 하에서 자기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필요악이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이라는 헌법상 '주적'의 존재와, 휴전은 했지만 아직 정전이 되지 못한 전쟁 중이라는 사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군대에 강제로 보내는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슬픈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고생"은 군대의 정체이자 목적이 아니며 단지 그릇된 제도 및 의식으로 인한 악습이며 국가의 경제적 한계에서 오는 군생활의 부작용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들어 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이 아직 한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나는 공익근무요원이다.
사람들은 흔희 공익요원들에게 군인이 빠졌다느니, 고생을 더 해야 한다는 등의 소리를 많이 한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군대가 고생하는 곳이라는 의식의 반영이자 나는 그러한 종류의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군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병역의 의무를 기피한 것도 아니며 국가의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를 위해 무상에 가까운 봉급으로 복무를 하는 나에게 사회와 국가는 군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국가 및 사회는 현역 군인들에게 상식이하의 환경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하는 것에 대하여 끝없이 반성하고 미안해 할 필요가 있지, 공익근무에게 그들이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았다고 말할 권리는 일말도 없다. 하지만 국가는, 혹은 국가의 대리인인 병무청 및 공익들의 소속 기관은 마치 공익은 혜택을 받은 집단이기에 국가(혹은 그 대리인)를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현역 군인들과 같은 경험과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그런 고생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노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미안해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으며 근무지에서 부당한 대우를 참을 필요도 없다.
흔히 현역 군인과의 형평성 문제를 말한다. 만약 국가가 현역 군인들과의 형평성에 대해 생각을 한 것이라면 국가는 공익근무제도라는 편리한 제도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군대에 있는 사람들이 질병을 안고도 적절한 조치와 치료를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어 사회에서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며 국가를 위하여 일하게 만드는 국가가,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너희들은 현역 군인에 비하여 고생을 덜하니 잘못된 착취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식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
공익근무는 소속기관에서 거기서 근무하는 다른 직원들과 비슷한 수준의 대우와 권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마치 군인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하찮은 존재를 대하는 듯한 업무 내용, 관리자의 행위 및 언사 등의 괄시 및 소외를 당하는 것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복무단축 현황에서의 국가의 입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형평성을 고려하기 위해 사회복무제도로 전환될 공익근무의 기간을 현역의 그것에 비해 길게 한다는 것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건 비단 한 두개의 잘못된 기관에서의 공익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전체에서 공익근무요원에게 보이는 부당한 처사 및 태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군인들보다 고생을 덜 한다는 그 핑계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억업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어불성설의 논리가 더 이상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공익요원 스스로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까지하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공익근무가 혜택받은거라고 할 수 있는가
"군대 가서 고생해봐야 해" 라는 말은 남자라면 한번 씩은 다들 들어봄직한 말이다. 군대를 가면 당연히 고생을 해야되고 그 고생이야 말로 군대의 정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생각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받아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군대는 고생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군대는 현재의 죽권국가라는 개념의 국제체제 하에서 자기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필요악이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이라는 헌법상 '주적'의 존재와, 휴전은 했지만 아직 정전이 되지 못한 전쟁 중이라는 사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군대에 강제로 보내는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슬픈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고생"은 군대의 정체이자 목적이 아니며 단지 그릇된 제도 및 의식으로 인한 악습이며 국가의 경제적 한계에서 오는 군생활의 부작용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들어 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이 아직 한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나는 공익근무요원이다.
사람들은 흔희 공익요원들에게 군인이 빠졌다느니, 고생을 더 해야 한다는 등의 소리를 많이 한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군대가 고생하는 곳이라는 의식의 반영이자 나는 그러한 종류의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군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병역의 의무를 기피한 것도 아니며 국가의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를 위해 무상에 가까운 봉급으로 복무를 하는 나에게 사회와 국가는 군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국가 및 사회는 현역 군인들에게 상식이하의 환경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게 하는 것에 대하여 끝없이 반성하고 미안해 할 필요가 있지, 공익근무에게 그들이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았다고 말할 권리는 일말도 없다. 하지만 국가는, 혹은 국가의 대리인인 병무청 및 공익들의 소속 기관은 마치 공익은 혜택을 받은 집단이기에 국가(혹은 그 대리인)를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현역 군인들과 같은 경험과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그런 고생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노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미안해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으며 근무지에서 부당한 대우를 참을 필요도 없다.
흔히 현역 군인과의 형평성 문제를 말한다. 만약 국가가 현역 군인들과의 형평성에 대해 생각을 한 것이라면 국가는 공익근무제도라는 편리한 제도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군대에 있는 사람들이 질병을 안고도 적절한 조치와 치료를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어 사회에서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며 국가를 위하여 일하게 만드는 국가가,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너희들은 현역 군인에 비하여 고생을 덜하니 잘못된 착취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식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
공익근무는 소속기관에서 거기서 근무하는 다른 직원들과 비슷한 수준의 대우와 권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마치 군인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하찮은 존재를 대하는 듯한 업무 내용, 관리자의 행위 및 언사 등의 괄시 및 소외를 당하는 것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복무단축 현황에서의 국가의 입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형평성을 고려하기 위해 사회복무제도로 전환될 공익근무의 기간을 현역의 그것에 비해 길게 한다는 것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건 비단 한 두개의 잘못된 기관에서의 공익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전체에서 공익근무요원에게 보이는 부당한 처사 및 태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군인들보다 고생을 덜 한다는 그 핑계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억업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어불성설의 논리가 더 이상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공익요원 스스로 사회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까지하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