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이 있을까
메마른 수식이 전하는 투명한 감동의 사랑 이야기
- 2007년 5월 23일 수요일 -
개인적으로 수학을 많이 좋아하는지라(물론 잘 하지는 못한다) 제목만 보고도 관심이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수학박사와 그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젊은 미혼모 가정부, 그리고 가정부의 어린 아들 루트, 이 세 사람이 '수학'과 '야구'를 통해 소통하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서로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하는 세 사람을 통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우정을 느끼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서브 플롯의 역할을 하는 야구 얘기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더구나 일본야구 얘기다 보니 재미없긴 했지만, '수학'에 관한 얘기들은 신비롭고 재밌었다. 딱딱하고 차갑고 냉정하다고만 생각하는 '수'가 사실은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존재였다는 것을, 한번도 주의를 기울인적은 없었지만 수많은 '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으며, 온 우주를 덮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정말로 특별하게 느껴졌다.
수학문제들은 풀다보면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실생활에 별반 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정확히 구해지는 정답을 찾는 일이란 정말 재밌는 일이다.(내가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랬다.)
나에게 박사처럼 80분만 재생되고 바로 삭제되는 기억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박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80분 밖에 기억을 하지 못한다'라는 옷에 붙은 메모를 보며 슬퍼하지만, 그는 다시 '수'에 집중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수를 한없이 풀어가며 사랑해 준다. '수'에 대한 박사의 사랑, 이해, 집중력, 헌신, 인내 등을 보며 기억을 잃은 순간에도 뭔가를 사랑하며 생을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p.30
"자 보라구,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
p.41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
p.164
"그게 직선이야. 자네는 직선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구. 자네가 그은 직선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 그렇다면 두 개의 점을 최단거리로 이은 선분인 셈이지. 원래 직선의 정의에는 끝이 없어. 한없이 뻗어 나가는 선이지. 하지만 한 장의 종이에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고, 자네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선분을 직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꼼꼼하게 끝을 갈아도, 연필심에는 굵기가 있어. 따라서 여기 있는 직선에는 너비가 있지. 즉 넓이가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실제 종이에 진정한 직선을 그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기야."
나는 연필 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밖에 없어."
박사는 자기 가슴에 손을 대었다. 허수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랬던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이 소설에서 서브 플롯의 역할을 하는 야구 얘기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더구나 일본야구 얘기다 보니 재미없긴 했지만, '수학'에 관한 얘기들은 신비롭고 재밌었다. 딱딱하고 차갑고 냉정하다고만 생각하는 '수'가 사실은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존재였다는 것을, 한번도 주의를 기울인적은 없었지만 수많은 '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으며, 온 우주를 덮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정말로 특별하게 느껴졌다. 수학문제들은 풀다보면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실생활에 별반 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정확히 구해지는 정답을 찾는 일이란 정말 재밌는 일이다.(내가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랬다.) 나에게 박사처럼 80분만 재생되고 바로 삭제되는 기억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박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80분 밖에 기억을 하지 못한다'라는 옷에 붙은 메모를 보며 슬퍼하지만, 그는 다시 '수'에 집중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수를 한없이 풀어가며 사랑해 준다. '수'에 대한 박사의 사랑, 이해, 집중력, 헌신, 인내 등을 보며 기억을 잃은 순간에도 뭔가를 사랑하며 생을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p.30
"자 보라구, 이 멋진 일련의 수를 말이야. 220의 약수의 합은 284. 284의 약수의 합은 220. 바로 우애수야. 쉬 존재하지 않는 쌍이지.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지. 아름답지 않은가? 자네 생일과 내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니."
....
p.41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
p.164
"그게 직선이야. 자네는 직선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구. 자네가 그은 직선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 그렇다면 두 개의 점을 최단거리로 이은 선분인 셈이지. 원래 직선의 정의에는 끝이 없어. 한없이 뻗어 나가는 선이지. 하지만 한 장의 종이에 그리기에는 한계가 있고, 자네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선분을 직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날카로운 칼로 꼼꼼하게 끝을 갈아도, 연필심에는 굵기가 있어. 따라서 여기 있는 직선에는 너비가 있지. 즉 넓이가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실제 종이에 진정한 직선을 그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기야."
나는 연필 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밖에 없어."
박사는 자기 가슴에 손을 대었다. 허수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랬던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
p.229
"도중에서 그만두면 정답은 영원히 찾아낼 수 없어."
오가와 요코 - 박사가 사랑한 수식(博士の愛した數式)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