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2006.6.9)

남상욱200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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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 책을 펴놓고 계속 이런저런 딴 생각, 쓸대없는 공상만 했다. 11시 40분쯤 고대역에서 열차를 탔다. 칙칙한 6호선의 형광등 빛과 구린 냄새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약수역에서 열차를 갈아탔다. 언제나 타는 칸에 탔다. 맨 끝칸.

 

아마도 압구정역에서 탄 사람 같았다. 어느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대각선으로 반대편에 앉아있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하루키의 를 읽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나도 고1때 읽어봤지만, 정말 마약같은 책이다. 사람을 우울하고 슬프게 만든다.

'저 사람, 저런 책 읽으면 밤에 잠 못자고 병적인 생각 많이 하게 될텐데...'

하고 혼자 생각했다.

 

난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의 초록빛의 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약간 들며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난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도 피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서로 쳐다보다가 그녀가 먼저 눈을 책으로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도는듯 했다.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녀는 미소 짓는 것같았다.

 

의 줄거리가 기억이 났다. 책의 내용들이 기억에서 튀어나왔다. 난 순간 그녀에게 말을 건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책을 읽고 있다면, 저 책의 내용에 빠져있다면, 저 여자도 내가 불쑥 말을 건다고 놀라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에겐 학교 중앙도서관의 유리난간에 비친 쇼파의 허상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Nikon F-301로 찍은 신기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 뒷면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 건내주는 거야.'

내가 먼저 내린다면 난 꼭 그러리라 다짐했다. 내리면서 사진을 건내주는 것이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라고 혼자 좋아하고 있을때 열차는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내렸다. 그녀는 내리기 전에 나에기 눈길을 한번 주었다. 열차에서 내려 계단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난 그녀가 입고있는 옷에 신경을 썼다. 청바지를 입었고 흰 T-shirt위에 노란색 그물옷을 입고있었다. 그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열차가 출발했다. 교대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난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힌 사진을 까뮈의 책갈피에 다시 끼워 넣었다.

예전에 미적시험을 앞둔 어느날, 해야하는 공부는 안하고 생각해낸 쓸대없는 이야기. 짧아서 좋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