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아나운서를 좋아하는 사람들 보세요!

이윤석200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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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아나운서를 좋아하는 사람들 보세요!


 

 

손석희라는 사람 인기가 꽤 많다. 특히 여자들에겐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다. 열에 아홉은 그의 외모 때문이다. 아무리 그의 멋진 말솜씨니, 진행솜씨니, 탁월한 식견이니 등등 하는 구실을 갖다 붙여도, 솔직히 그의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대대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손석희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뭐랄까, 그저 방송에서 "얼굴 하나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 편견이 깨진 것은 훗날 그가 문화일보에 연재한 칼럼 가운데 하나를 읽고부터였다.

 

마침 코미디언 김미화가 무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직후에, 이른바 "전문성" 운운 하는 논란이 일자 김미화가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손석희씨가 아니잖아요" 하며 억울함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김미화의 말은 자신도 전문 언론인에 비하면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격미달 운운하며 시작 전부터 깎아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변이었다.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손석희는 자신이 미국 체류 중에 제시 벤튜라라는 프로레슬러가 미국의 주지사로 당선된 후, 임기 중에 종종 이런저런 레슬링 경기에 초대손님 격으로 얼굴을 내밀기도 하는 가십 거리를 만들어내면서, 그래도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박수 속에 퇴임한 일화를 언급한 뒤에, 맨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김미화 씨, 사실 알고 보면 나도 모르는 게 더 많다." 이 한 마디 때문에 내가 갑자기 손석희의 "팬"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해 느끼고 있던 일종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는 출근길에 나오는 방송에서 그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의 "영입 0순위"로 꼽혔다는 유명 방송인이고, 더군다나 최근에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자 "가장 신뢰할 만한 방송인"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보니, 우리나라에도 그야말로 월터 크론카이트 같은 "국민 앵커"가 한 사람 나오나보다 싶어서 기대하던 차에, 오늘 갑자기 MBC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 그야말로 놀랍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출판사에 다니는 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석희 같은 사람은 왜 책을 안 낼까? 이전에 연재한 칼럼만 갖고도 그럭저럭 재미있는 에세이집 하나 나오겠다" 어쩌구 떠들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손석희도 이전에 책을 한 권 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후에 우연히 아름다운가게에 들렀다가 라는 에세이집을 보고 호기심에 사다 놓은 적이 있었다. 읽어 보아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막상 그가 방송을 떠나려는 (물론 본인은 MBC를 떠나는 것이지, 현재 진행 중인 방송은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지만.) 마당이 되어야 읽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유명인사"가 되고 나면 이런저런 허접스레기 같은 에세이집을 한 권씩 내게 마련이다. 그 대부분은 과연 본인이 썼는지도 의심스러운 것들이며, 내용의 함량 미달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개 어느 정도 얼굴이 팔린 사람(스타)이거나, 혹은 얼굴을 팔아야 하는 사람(정치가, 각종 선거 후보)이 되면 그때마다 책을 한두 권씩 펴내게 마련이다. 이런 게 그래도 좀 "진솔한" 내용이라면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한 개인 기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기과시용" 혹은 "홍보용"으로 펴낸 것이다보니 신뢰할 만한 내용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93년에 나온 "손석희 아나운서의 삶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도 이런 류의 "저자의 유명세에 기대어" 나온 에세이집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90년대 초의 이른바 "MBC 사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은 유년시절의 회고담과 방송국 초년병 시절의 회고담, 그리고 파업과 구치소 시절의 회고담과 어딘가에 기고했음직한 칼럼 몇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히 아주 재미있거나, 아주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손석희의 "열혈 팬"이라면 흥미롭게 생각할 만한,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한 몇 가지 정보(가령 그의 아버지는 육사 7기생으로 5. 16. 직전에 예편했다가 이후 사업 실패로 부도가 나서 구치소 생활을 했으며, 손석희 자신은 어린 시절 도벽이 있었고,  군 복무 시절에 부산에서 깡패들을 연행해 삼청교육대로 넘기는 "사회정화" 작전에 동원된 적이 있으며, 방송 말고 평소 생활에서는 입이 곱지 못하고 오히려 '걸진' 편이며, 파업으로 구속된 직후에 태어나서 이름을 '민주'라고 지었다 해서 유명해진 그의 둘째 딸은 어른들의 반대로 결국 호적상 이름은 '구민'으로 짓고 부모끼리만 '민주'라고 부르며, 몇 번인가 잡지 인터뷰를 했다가 선정적인 제목이 붙어 보도되는 바람에 이후로도 잡지 인터뷰라면 질겁을 하고, 파업 당시 투입된 사복경찰에 의해 연행될 당시 아무도 자기에게 달려들지 않았기에 사옥 앞에 대기 중인 닭장차까지 혼자 걸어갔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특히 그는 9시 뉴스 앵커를 처음 맡았던 시절에 모 여성지의 주선으로 다른 경쟁사(KBS)의 9시 뉴스 앵커(여성인 S씨라니, 아마도 신은경이 아니었을까?)와 일종의 대담 인터뷰에 응한 뒤, 훗날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전혀 엉뚱하게 나온 그 기사 때문에 누군가 "아, 나 그거 봤어"라고 하면 두고두고 얼굴을 붉혔다고 하는데, 어쩌면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아, 나 봤어!"라고 아는 척을 하면, 한때나마 자신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펴낸 책을 상기하며 또다시 얼굴을 붉히지는 않을까.

 

미국의 명 앵커 월터 크론카이트는 약 20여 년간 CBS 저녁뉴스의 앵커로 재직하며 케네디 대통령 피격 속보부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심지어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전 특별 보도까지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연달아 보도한 미국 방송계의 살아있는 역사나 마찬가지다. 은퇴한 지 오래인 그가 아직까지도 미국인들에 의해 "가장 신뢰할 만한 방송인"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공인"으로 인기를 누리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그는 결코 방송 중에 특정 사건에 대해 자기만의 "논평"을 내리길 거부했으며, 심지어 같은 방송국에서 라디오로 별도의 "논평" 프로그램을 진행하라는 제안도 거절했다.

 

단 그가 20여 년 동안에 그런 자기 소신을 굽힌 적은 두어 번뿐이었는데, 그중 한 번이 바로 본인이 직접 베트남까지 찾아가 전황을 살펴본 이후에 내보낸 "베트남전 반대 특별 방송"이었던 것이다. 이 방송에서 월터 크론카이트는 베트남 전쟁이 완전 교착상태에 접어들었으며, 미국에겐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한 직후,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방송 중에 사견을 언급한 바 없습니다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후, 존슨 정부에 베트남전을 더 확대시키지 말고 "협상"을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방송을 본 존슨 대통령은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공보담당 보좌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크론카이트를 잃었으니, 미국 여론의 절반을 잃어버린 셈이군." 몇 달 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물론 크론카이트 자체가 아주 진보적이거나, 아주 객관적인 사람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보수적인 성향이었고, 무엇보다도 미국적인 가치관의 철저한 신봉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방송의 생명이 "공정성"과 "객관성"에 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 방송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것이다. 반면 그의 후임자였던 댄 래더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고, 여러 건의 특종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결국 성급한 태도와 돌출 발언으로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다가 결국 부시 대통령에 얽힌 오보 사건으로 인해 불명예 퇴진을 당하고 말았다.

 

손석희를 감히 월터 크론카이트에 비기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래도 나로선 그가 우리나라에서 크론카이트 못지 않은 "언론계의 양심"이자 "거물"로 활동하며, 계속 그 자리에 남았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방송인으로 어느 정도 이름을 얻고 얼굴을 판 다음에는 곧장 정치판으로 건너가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나아가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는 천편일률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너무나도 짜증스러웠기 때문에,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국민 앵커"이자 "국민 방송인"으로 끝까지 남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손석희 정도의 지명도와 신뢰도를 지닌 방송인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나운서가 무슨 코미디 프로에 고정출연하고, 이런저런 쇼 프로에 나와 각종 개인기를 선보이는 것이 마치 그들의 "본분"인 것마냥 여겨지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손석희의 팬이 아닌 나로서도 그의 퇴진 소식은 여전히 충격적이고 또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