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간 재위 연호-영락 1년(7589-AD392) 이름은 담덕(談德)으로 고국양무열제의 아들이다.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7월 남쪽의 백제를 쳐서 10성을 빼앗고, 9월에 북쪽의 거란(契丹)을 정복하고, 10월에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함락시켰다. 2년 평양에 9사를 창건하였다. 4년 8월 백제와 패수(浿水) 가에서 싸워 격파하고 8천을 포로로 잡았다. 대제 는 비려(碑麗)가 고구려인을 돌려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富山)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鹽水)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 령(營)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가지고 돌아왔다. 6년 대제가 친히 백제를 토벌하여 여러성을 치고 백제 황성을 점령하였으나, 백제천왕은 탈출하여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 하였다. 대제 가 진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고, 장수를 보내어 백제 임시수도인 성횡(城橫)-혹은 악성(岳城)-을 핍박하니 마침내 백제천왕이 항복하고 영원히 변방의 신하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8년 원수를 보내어 숙신(肅愼)의 터전을 돌아보게 하였는데, 가태라곡(加太羅谷) 남녀 삼백명의 포로를 얻어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숙신도 조공하고 고구려를 섬겼다. 9년 연태왕 모용성(慕容盛)이 3만으로 침입하여 신성(新城), 남소(南蘇) 두성을 취하였다. 백제가 서약을 배반하고 식민지 야마토백제과 사통하여 신라(新羅)를 공격하니 신라왕이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10년(7598-AD401) 대제께서 보기병 오만 병사를 보내어 신라를 구원토록 하였는데 종남거성(從男居城)을 지나 신라도읍에 이르러 왜적을 패퇴시켰다. 도망가는 왜구를 따라서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발성(拔城)까지 쫓아가니 임나가라는 항복하였다. 이후 고구려 본토 출신 안라인(安羅人) 사람으로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11년 황이 군사를 보내어 숙군성(宿軍城)을 공격하자 연의 모용귀(慕容歸)가 도망했다. 14(7602-AD405)년 연이 요동성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17년 3월 북연에 사신을 보내어 종족의 은의를 배풀자 북연태왕(北燕太王) 고운(高雲)은 시어사(侍御史) 이발(李拔)을 보내어 보답했다. 18년 황자 거련(巨連)을 태자에 봉하고 7월 동쪽지방에 독산성(禿山城)등 6성을 축조하고 평양 민가를 옮겼다. 22년 10월 대제께서 붕어하였다.
소수림제가 이룩한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활동 전개 비류백제를정복하고 , 한반도의 온조백제와그잔당 왜까지 토벌하고
신라를 구원하고
특히 서기 398년 북위와 토욕(토욕혼-티베트 지방), 서기 404년 후연을 정벌하는 등 동아시아를 고구려의 발 아래 두었으며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고,유라시아통일하고 서쪽유럽
북아프리카그리고 캐나다부근까진출하고 세계통일시킨 전세계유일한 세계를통일한
위대한 대황제이자 한민족 불세출의 영웅 광개토대제 이후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대황천자국(大皇天子國)이 되었음
이때 광게토대제둘째부인 말갈패여왕의 시베리아 세운 말갈연방제국 그건은고구려의힘을보여주는것이다
광개토대제
광게토 대제(廣開土大帝)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황(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皇) 혹은광게토경호태열제)
- 22년간 재위 연호-영락
1년(7589-AD392) 이름은 담덕(談德)으로 고국양무열제의 아들이다.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7월 남쪽의 백제를 쳐서 10성을 빼앗고, 9월에 북쪽의 거란(契丹)을 정복하고, 10월에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함락시켰다. 2년 평양에 9사를 창건하였다. 4년 8월 백제와 패수(浿水) 가에서 싸워 격파하고 8천을 포로로 잡았다. 대제 는 비려(碑麗)가 고구려인을 돌려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富山)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鹽水)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 령(營)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가지고 돌아왔다. 6년 대제가 친히 백제를 토벌하여 여러성을 치고 백제 황성을 점령하였으나, 백제천왕은 탈출하여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 하였다. 대제 가 진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고, 장수를 보내어 백제 임시수도인 성횡(城橫)-혹은 악성(岳城)-을 핍박하니 마침내 백제천왕이 항복하고 영원히 변방의 신하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8년 원수를 보내어 숙신(肅愼)의 터전을 돌아보게 하였는데, 가태라곡(加太羅谷) 남녀 삼백명의 포로를 얻어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숙신도 조공하고 고구려를 섬겼다. 9년 연태왕 모용성(慕容盛)이 3만으로 침입하여 신성(新城), 남소(南蘇) 두성을 취하였다. 백제가 서약을 배반하고 식민지 야마토백제과 사통하여 신라(新羅)를 공격하니 신라왕이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10년(7598-AD401) 대제께서 보기병 오만 병사를 보내어 신라를 구원토록 하였는데 종남거성(從男居城)을 지나 신라도읍에 이르러 왜적을 패퇴시켰다. 도망가는 왜구를 따라서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발성(拔城)까지 쫓아가니 임나가라는 항복하였다. 이후 고구려 본토 출신 안라인(安羅人) 사람으로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11년 황이 군사를 보내어 숙군성(宿軍城)을 공격하자 연의 모용귀(慕容歸)가 도망했다. 14(7602-AD405)년 연이 요동성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17년 3월 북연에 사신을 보내어 종족의 은의를 배풀자 북연태왕(北燕太王) 고운(高雲)은 시어사(侍御史) 이발(李拔)을 보내어 보답했다. 18년 황자 거련(巨連)을 태자에 봉하고 7월 동쪽지방에 독산성(禿山城)등 6성을 축조하고 평양 민가를 옮겼다. 22년 10월 대제께서 붕어하였다.
소수림제가 이룩한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활동 전개
비류백제를정복하고 , 한반도의 온조백제와그잔당 왜까지 토벌하고
신라를 구원하고
특히 서기 398년 북위와 토욕(토욕혼-티베트 지방), 서기 404년 후연을 정벌하는 등 동아시아를 고구려의 발 아래 두었으며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고,유라시아통일하고 서쪽유럽
북아프리카그리고 캐나다부근까진출하고 세계통일시킨 전세계유일한 세계를통일한
위대한 대황제이자 한민족 불세출의 영웅
광개토대제 이후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대황천자국(大皇天子國)이 되었음
이때 광게토대제둘째부인 말갈패여왕의 시베리아 세운 말갈연방제국 그건은고구려의힘을보여주는것이다
광게토대제때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천상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