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시크리터리- 매들린 올브라이트 자서전 / 올브라이트 지음

이문경20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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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시크리터리- 매들린 올브라이트 자서전 / 올브라이트 지음 - 사진은 2007. 3. 현재 올브라이트 모습. 미국에서 비공개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모임에 참가후, 6자 회담 수석대표인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수상을 만나고 오는 모습으로, 60이 넘은 현재에도 국제정치무대의 막후에서 적극 활동중이다.  (뉴시스 보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부장관 출신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자서전이다. 유태계 혈통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인이었던 그녀는 체코가 공산화되자 외교관이자 민주주의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10여세에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명문여대 웰즐리를 졸업하고, 신문재벌의 아들과 결혼한다.

 

마흔 다섯살의 어느날, 그녀의 남편은

 

"우리 결혼은 끝났어. 나는 당신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

 

라고 선언하고 그 날로 집을 나갔다고 한다.

 

39세까지 세아이의 엄마로 자원봉사외에 공직에 참여할 기회라곤 전혀 없었던 매들린은 그러나 무려 17년에 걸쳐 국제정치에 대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었고, 드디어 컬럼비아대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그녀의 지도교수였던 브레진스키 교수(훗날 선임 국무장관이 된 인물)에게 인정을 받아 나이 40에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혼의 충격을 거쳐 잠시 방황했으나, 뒤늦은 나이지만 공직생활과 교수생활을 통해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자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사회적 자아와 뜻을 펼치기 위한 여정에 헌신함으로써 마침내 클린턴 행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유엔미국대사를 거쳐 국무장관에 임명되어 맹활약을 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엄청난 언론재벌이었던 남편의 경제력과 이혼하기전까지 헌신적으로 그녀의 활동을 도와주었던 외조가 절대적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델라웨어 주지사인 미너여사는 고졸의 미혼모로 극빈층에 속해 있으면서 아이들 양육과 트럭운전을 하면서 뒤늦게 야간대학을 진학해 시청 말단 직우너으로 일하면서 주지사의 눈에 띄어 결국 60대에 주지사가 되기도 했는데, 이에 비해 매들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여건이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의 강력한 후원과 외조가 매들린의 성공의 기반이 된 점을 제외하더라도, 그 시대의 부르조아 여성으로서 파티나 호화유람선 여행이나 쇼핑에만 탐닉하지 않고 자기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한 것이 그녀를 그 위치에까지 이르게 하는데 또하나의 요인이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매들린이 유엔 대사 및 국무장관에 임명된 이후 그녀 특유의 남다른 대담함으로 각국을 누비며 한 활약상은 상당한 배짱을 지닌 여자란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버마에 가서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났을때의 일화는 기억에 남았다. 단 한번의 만남임에도 진실한 친구를 얻은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매들린은 회고하고 있는데, 필경 수지여사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 그런 것 같다...그리고 특별히 매들린이 탁월함으로 꼽는 여성은 역시 힐러리 클린턴이다.

 

힐러리의 탁월한 국제정치적 식견과 약자에 대한 관심과 합리적이고 적극적 접근법과 총명함, 헌신, 열정 그리고 대중 연설에 있어서의 카리스마등에 대해 상당히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중국 여성대회에 참석해 힐러리가 여성인권신장을 위해 완벽한 원고로 출중한 연설을 해내는 것을 보고 마담 티타늄(대처가 철의 여인으로 불린 것에 비견해 매들린에게 붙여진 별명)이라 불릴 정도였던 매들린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과연 힐러리가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이 될 지, 매들린 자서전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흥미롭게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