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상.[슈퍼피포] 필리포 인자기!

정성원2007.05.27
조회737















필리포인자기 스페셜!~~!

인자기 스페셜~!~!`1
스포츠/레져/취미 >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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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상.[슈퍼피포] 필리포 인자기!















필리포인자기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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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상.[슈퍼피포] 필리포 인자기!한글이름: 필리포 인자기
영문이름: Filippo Inzaghi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3/08/09
포지션: FW
키: 181Cm
몸무게: 74Kg
등번호 : 9




- "골 에어리어 안에서, 그는 믿겨지지 않는 본능으로 골을 넣는다."

인자기가 데뷔했던 팀인 피아첸자의 前감독 지지 카니(Gigi Cagni)의 이 평가만큼 인자기를 정확히 설명하는 표현은 없다. 드리블을 못해도, 몸싸움에 약해도 그가 매시즌 꾸준히 10골 이상을 기록하고 96-97시즌엔 24골로 Serie-A 득점왕을 차지했던 것은 바로 소위 말하는 '동물적인 골감각'을 지녔기에 가능했다.

'동물적인 골감각'이란 순간적으로 패스 줄기를 읽어내고 상대 수비의 위치를 파악해 가장 골을 넣기 쉬운 곳으로 달려갈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인자기가 가진 장점인 공간활용능력과 순간 스피드, 그리고 쉴새없이 상대방 진영을 뛰어다니는 적극성이 그의 '동물적인 골감각'을 완성케했다. 때문에 프랑스 대표팀 수비의 핵 마르셀 드사이조차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공격수로 인자기를 거론한다.

한마디로 흔히들 인자기를 가리켜 '주워먹기의 황제'라 비하하는 사람들은 심하게 말해 축구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드리블만 잘하는 것은 동네축구에서나 통하는 것일 뿐... 환상적인 패스는 '어떻게 주느냐'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어디서 받느냐'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제대로 받을 줄 아는 능력'은 현대축구의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필수적이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북부의 피아첸자에서 태어난 '슈퍼피포' 인자기는 고향팀인 피아첸자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레페와 베로나 등지에서 임대생활을 거치며 골잡이로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베로나와 피아첸자에서 보냈던 2시즌의 Serie-B 생활 동안 28골을 넣은 인자기의 가능성을 파악한 파르마는 즉시 그를 데려오지만, 60일간의 기나긴 부상을 당해버린 인자기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채 2골이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기고 96-97시즌엔 에르난 크레스포(Hernan Crespo)와 엔리코 키에사(Enrico Chiesa)의 영입에 밀려 약체 아탈란타로 팀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아탈란타에서의 1년은 인자기의 축구 인생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이적료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지안루이지 렌티니(Gianluigi Lentini)와 호흡을 맞춘 96-97시즌, 그는 무려 24골을 퍼부으며 경쟁자였던 빈첸조 몬텔라(Vincenzo Montella)를 2골차로 따돌리고 득점왕에 올랐다.

이런 인자기에게 여러팀들이 달려들었고, 유벤투스는 1000만$의 이적료에 인자기를 영입했다. 기대에 걸맞게 그는 첫시즌이었던 97-98시즌에도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합쳐 24골을 기록해 빅클럽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선수임을 증명해냈다. 그런 공로로 그는 98'월드컵대표로도 뽑히는 영광을 누렸지만, 교체멤버로 2경기에 출장하는데 만족해야했다.

98-99시즌과 99-2000시즌에도 팀내 득점1위를 차지하며 간판 골잡이로서 명성을 드높인 인자기는 유로2000에서는 디노 조프(Dino Zoff) 감독의 퍼스트 초이스 스트라이커로 낙점받으며 2골을 기록하는 등 이탈리아 대표팀에서의 입지도 서서히 굳혀 나갔다.

2000-2001시즌은 그에게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시즌이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경기에서는 4경기에 나와 7골을 기록하는등 지오반니 트라파토니(Giovanni Trapattoni)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는 계기가 됐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팀 득점의 대부분인 5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선탈락하는 쓴잔을 마셨고,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것을 시작으로 몇일후에 있었던 레체와의 리그 경기에서도 후반 종료 직전에 결승골이 될수도 있었던 페널티킥을 실축해 모든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그후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버린 인자기는 유벤투스 입단 이후로 가장 적은 1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시즌 막바지에 가서는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주전자리를 내주기까지 했으며 결국 시즌이 종료한 뒤에는 약 4000만$의 이적료에 유벤투스의 숙명의 라이벌 AC밀란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약간의 우려도 있었지만 AC밀란에서 인자기는 골감각을 회복했다. 불운하게도 키에보전에서 상대 골키퍼와 충돌하면서 꼬박 4개월간 그라운드를 떠나야했지만 후반기에 복귀한 이후로는 연일 골을 쏘아대면서 부진에 허덕이던 AC밀란에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안겼다. 서포터들로부터 'AC밀란 시즌MVP'에 선정된 그의 기록은 20경기/10골. 개인적으로는 6시즌 연속 10골 이상 행진을 이어갔다.

But...

2002'월드컵에서도 죽고 못사는 절친한 친구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함께 최전방 주전 투톱으로 활약할 것이 기대됐던 인자기는 대회개막을 몇일 앞두고 또다시 부상을 당해버리고 말아 첫경기였던 에콰도르전에 결장해야하는 운명을 맞았다. 크로아티아전 후반 교체출장, 멕시코전 선발 출장 후 교체가 인자기가 2002'월드컵에서 남긴 유일한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