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허상 속 서열’에서 깨어나야

장헌2007.05.27
조회159

           

           군대 ‘허상 속 서열’에서 깨어나야

 

 


동네 달리기 2등에서 비롯된 서열


  “마지막 주자는 너야”

  그러니까 15년 전 정도, 나는 종종 ‘동네 올림픽’이라고 해서 동네 남자 아이들이 모여 두 팀을 짠 뒤 100m, 오래달리기, 멀리 뛰기, 축구 등의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곤 했다. 지는 팀이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사는 그런 룰이 있었기에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드래프트제는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간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자신 있던 것은 달리기였는데, 동네 2등으로 비공식적으로 랭크되어 있었기에 항상 동네 1등인 친구와 상대팀 오래달리기 마지막 주자였다. ‘언제까지 2등일 수는 없어’하고 힘껏 달리곤 했지만 단 한 번도 나는 1등인 친구를 앞선 적이 없다. 그래서 이내 마음속으로 달리기 서열을 정해버렸다. 나 자신도 그랬으니, 아마 동네 친구들은 더했을 것이다.

  군대 문화의 영향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찾는 글에서 갑자기 웬 ‘어릴 적 달리기’ 이야기이냐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났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대에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요리를 했다는데, 그러면서 남자 사이에는 사냥을 잘 하는 순으로 서열이 정해졌다고 한다. 남자의 경우 성장 과정에 따라  주먹 실력(그러니까 싸움 순위), 운동(주로 축구나 농구)실력, 공부 실력, 대학 학벌, 지위와 경제력 등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매긴다’가 아니라 ‘매겨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남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 속의 서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이 자신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그런 서열을 항상 감안하며 행동하기 때문이다. 서열은 곧 너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 쪽에 일방적으로 힘을 몰아주는 것이기에 둘 간의 자유로운 소통에는 당연히 방해가 된다.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서로를 이해하며 합리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런 장막을 떼어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남자는 그런 장막이 오히려 더 고착화가 되는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군대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 글에서는 남자 간의 서열매기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군대 문화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제안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군대에 관해 목소리를 내지 않던 여자들도 군대에 영향 받는 남자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 필수적임을 말해보고자 한다. 글을 보는 이가 남자라면 전자를, 여자라면 후자를 유심히 읽어주었으면 꽤 감사할 것 같다.



이상한 상식, 이상한 이분법


  남자들은 20대 초 중반이 되면, 다른 일은 제껴 두고 군대를 어서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군대에서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 는 ‘이상한’ 상식 앞에서 남자들은 속속 입영 절차를 밟게 된다. 내가 왜 그것을 이상한 상식이라고 규정 하냐면 내 경험상으로는 그건 몇 가지 예는 만족할 수 있을 뿐이지, 군대를 갔다 온 모든 남자에 해당되는 법칙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전역을 한 남자들은 처음 보는, 그리고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남자 앞에서 거침없이 “너 군대 갔다 왔냐”고 묻는다. 일병 쯤 된 동기들은 휴가를 나와 “힘들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이등병인 후배들은 힘이 빠져서 “앞길이 막막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남자는 입영 후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을 거쳐 그 단계에 걸 맞는 역할을 하게 되며 각자의 서열에 알맞은 사고를 하게 되고, 그런 행동, 말 (앞서 말한 예와 같은)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는 2년을 국가에 빼앗겼다는 보상 심리가 더해져, 그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내 찾게 된다.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관문, 첫 번째 검증을 끝냈다고 판단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국가로부터 ‘남성성’을 얻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사고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데, 자신을 ‘남성성’을 획득한 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군대를 가지 않은, 그리고 군대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무리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지 않은 이에 대한 일종의 분노의식은 몇 년 전에 대선에서 이회창 아들 사기 병역 면제 사건에서 다수의 예비역들이 분개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군대를 가지 못하는 이에 대한 분노 의식은 여자 단체에서 소원을 낸 예비역 공무원 가산점 제도 불가에 극구 반대하는 것으로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언급한 것들은 지나치게 공적인 사례에 불과하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례들이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의 넘치는 개성을 보고, “군대 갔다 와서 철들어라”고 못을 박는 다수의 예비역. “군대도 가지 않는 이들이 특권을 누리려 한다” 며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의 존재 근거자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나는 토론이나 논쟁이 벌어질 때 빈번히 이분법적 구도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양상이 군대 문제처럼 단순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가령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나눌 때에도 온건 보수냐 리버럴 좌파냐 등으로, 최소한 수평선 10 눈금만치의 간격을 두고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배치시켜 놓고 논한다. 그런데 군대 문제만큼은 군대를 갔다 왔냐, 못 갔다 왔냐로 나뉘어 후자의 경우에는 아예 이 논쟁거리, 군대 문화에 대하여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위치에서 제외되는 것을 자주 확인하곤 했다. 이는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보상을 ‘어떤 식 으로든’ 누리고자 해서 발생되는 현상이라고 추측된다. 군대 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세 가지로 말해보고자 한다.


복종만 하다가 이제 배제하게 돼


첫 번째, 관습을 바꾸지 않으려 하는 자세가 고착화 된다. 더 크게 말하면 부당하게 서열이 형성되는 것, 서열에 따른 무조건 적인 복종이 생긴다. 어느 분대장(1개 소대, 20명의 병사를 총괄하는 병장)이 한 일병보고 어떤 문제에 관한 가벼운 입장 차이가 났을 때 “내가 너 후임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했다. 신기했던 것은 그 모습을 보며 200명에 달하는 훈련병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것이다. 애초에 군대를 올 때부터 이곳은 서열이 확실한 곳이니 내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기에, 나도 시간이 흘러 선임병(고참)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 하고 미리 체념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 분대장의 모습은 1년 6개월 후의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며 말이다. 관습을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면 본인에게만 해가 되는 것을 깨우쳤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게 ‘남자들끼리만’ 모인 군대에서는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서열이 정해지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서열을 인식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한 무조건 적인 복종을 할 뿐.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남자들이 사회에 나간 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두 번째, 군대를 갔다 온 것이 남자의 필수 명제로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남자는 고대에 사냥을 했던 존재였다. 남자로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것, 이를테면 장애인이나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병역특례요원 등은 사냥에 참석하지 않은 자로 분류되어 사냥에서 얻은 고기를 함께 얻을 수가 없게 된다. 남자 셋만 모이면 군대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들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정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꺼내는 것이 아니다. 어찌 몇 십 년 산 사람들끼리의 공통분모가 단지 그것밖에 없겠는가.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함으로서, ‘남성성’을 획득한 이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뜻하지 않게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내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여자에 대한 배제 의식이 형성된다. 남자는 군대에서 후임을 굴리는 법, 자신의 의견대로 하게 하는 법을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되는데, 다른 남자들도 그 과정을 거치므로 별 무리 없이 그 방법이 사회에서도 통하게 된다. 그런데 남자와는 다른 자유로운 환경에서 2년을 보낸 여자들에게 권위와 복종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인데, 이는 어떤 단체의 대표를 맡긴다든지, 체력이나 정신력이 중요한 부분을 맡긴다든지, 지방 근무를 한다든지 하는 것을 결정할 때 여자는 그 후보 선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군필자’들을 온전한 남자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남자와 여자 자신들을 어딘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그런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 의식 자각과 유지가 필요해


각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적인 대안만 내놓기로 한다. 첫 번째 문제, 관습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습을 바꾼 예를 드는 편이 가장 나을 듯 하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군대 내무반 사회내의 권위적일 수밖에 없는 문화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꼈는데 그래서 그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바꾸어 보려고 했다고 한다, 맞기수(같은 직급)들과는 부드러운 관계를 지속해오다가 이제 분대장 급에 달하는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60만에 달하는 군대 사회 전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20명 이내로 이루어지는 분대 내에서의 개혁은 가능하다. 친구는 남자들끼리만 있으니 형성되어 있던 욕을 일상용어처럼 사용하는 분위기를 개선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친구가 최소한 맞 기수들과 유한 사이를 유지했고 후임들로부터 어느 정도 두터운 신망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선임들의 욕설이 줄어드니 후임들은 선임들에게 약간 설득력 있는 요청, 가령 주말에 이러이러 하니 저러저렇게 하자는 류, 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1년 이상을 문제의식을 유지한 채 참았지만, 그러한 1년은 분명히 가치가 있었다. 이후로 들어왔던 후임들은 욕설이 사라진 내무반 분위기를 접하며 살았으니 자연스레 그 다음에도 그것을 권장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의 대안을 말해보자. 나는 처음에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며 남자는 서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했으나,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 오히려 인위적으로라도 한 발 짝 물러서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보다 남자를 만날 때 군대이야기에 민감한 것은 그것이 곧 서열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화제를 꺼내기 전에 대화를 하는 상대의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훈련을 통해서, 그런 문제를 조금씩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가장 빠르고 편한 화제인 군대이야기로 그런 불편함을 덜고자 할 수도 있겠지만, 아는 바와 같이 군대에서의 삶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에 그걸 꺼리는 사람도 있고, 빨리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현역이 아닌 남성들에게 소외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오히려 여자들의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홉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면, 상대방은 나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고자 할 것이다. 특히 그 약점이 사회적으로 알게 모르게 인정되는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 한겨레 21보도에 따르면 남자의 80%가 여자가 군대를 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자의 체력적인 약세를 감안한 것이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남자만 군대를 갔다 왔야 앞으로도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식의 표출로도 볼 수 있다. 여자 사이에서도 군대다녀온 자와 안 다녀온 자를 나누어서 남자를 지레 짐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도리어 여자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까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만 성인이 되는 것이기에 나의 교제 대상이 된다는 의식을 버리고, 그냥 같은 남자다는 생각. 그리고 군대가 있는 이상 남자는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겠구나, 라는 생각. 2년간의 사냥이 끝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사냥을 하지 않은 이에게 물릴 수도 있구나 라는 자각, 그리고 적절한 체력과  정신력 보강으로 사회에서의 사냥에 대비할 수 있다.


달리기, 사냥에서 생긴 서열은 기억으로만


  달리기 경주가 15년 지난 지금, 그 당시의 기억만 있을 뿐 더 이상의 패배감 등은 남아있지 않다. 단지 그 때 그랬을 뿐. 군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2년 동안 군대가 주는, ‘허상 속 서열’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녕 사회가 군대와 같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군대와 달리 사회는 남녀(여남)성비만 해도 반반이다.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다면, 즉 2년 간 사냥을 했다면, 이제 음식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고기를 여자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사냥을 하면서 생긴 서열이 동네에 와서 불을 피우고 한데 모여 잔치를 하며 춤을 추는 데에도 남아 있겠는가. 남북 분단, 4개 강국에 따른 샌드위치 신세에 따라 한국은 현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사력 6위이다. 60 만 명이나 되는 군 체제 전체에 변화의 물결이 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이다. 하지만 그런 구조 안에서 대안을 모색해가는 것도 결국에는 개개인의 몫이다. '군대를 통해 사회생활을 배워간다‘는 인식보다는 ’군대를 통해 올바른 사회생활을 배워간다‘는 의지를 지닌 이들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