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2월2일이구나... 시간 가는줄 몰랐다. 밖이

윤미숙20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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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2월2일이구나...

시간 가는줄 몰랐다. 밖이 이렇게 추워졌는지도 몰랐다.

요즘 엄마간병때문에 밤낮이 거꾸로 바뀌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아프시다. 정확히는 암이란다.

암...

생각만해도, 입밖에도 내기 싫은 말이다. 꼭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의 이름을 부르기도 꺼려하는 것마냥..

 

사람들이 암이라면 왜이리 정색을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암은 사망원인중에 가장 흔한 병명이다. 암 말기의 경우엔 몇개월의 시안부 인생을 선고받곤 한다. 혹 말기가 아니더래도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지고 고생하는걸 보면 안쓰러워진다.

 

그렇게 무서운 병이..그리고 흔한 병이..우리엄마한테 생길줄은 꿈에도 못했다. 무엇보다 특별한 증상이 없었고..자기자신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심각하게 검사를 해보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학병원에서 받는 정기검진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그래서 더 무서운 병인거같다. 암이란거..

 

처음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된건 혈뇨를 보게되면서였다. 조영검사를 하였다. 신장밑 요관처음부분에 큰 돌맹이 같은게 막고 있어서 신장이 붓고 피가나는 거랜다. 결석일 확률 대 종양일 확률 70:30  당연히 결석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었다. 크기가 좀 커서 당연히 종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또 그렇게 믿고싶었다. 좀더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 ct촬영을 하였다. 의사가와서는 결석이 아닌거 같다며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그때처음으로 엄마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얘길 듣게 됐다. 그 얘기를 전해주는 레지던트 의사의 말투가 매우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려 얄미워졌다.

 

병원에서 다급하게 조직검사 날짜를 잡고 집에 돌아와서는..나는 엄마한테 한마디도 할 수 가 없었다. 엄마..괜찮을꺼야. 엄만 암이 아닐꺼야..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나 조차도 무서웠다. 아직 확실한 진단도 안나왔는데..꼭 엄마가 암에걸려서 죽으면 어떻하나..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한번도 엄마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아니 물론 누구나 한번쯤 상상은 해봤겠지만..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그게 언제가 될지..당장에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엄마가..내가 세상에서 젤루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아직 제대로 효도한번 못해드린것같은데..아니..편하다는 이유로 맨날 짜증만 내고 속만 썩혀드린 것 같은데..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그냥 말도 안돼, 말도 안돼..이 생각뿐이었다. 

하필 그 소식을 엄마랑 나랑만 있을 때 듣게 되서 언니랑 아빠한테 연락이 오는데..전화를 받고도 아무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니는 전화가 먹통인줄 알고 제차 다시 전화를 걸었고 결국 난 문자로 언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는 눈이 퉁퉁붓도록 울어서 안방에 있는 엄마한테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맘이 이런데 당신 자신은 어떠했을까?

의사친구인 효지니한테 다급히 물었다. 암이면 다 죽는거냐고..의학적 상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저 무섭기만 하였다. 다행히 신장암은 신장이 두개라서 일단 하나를 제거해도 살 수 있고 또 전이률도 다른 암보다 낮다고 하였다. 그래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집밖을 나와서 하루종일을 운거 같다.

조직검사가 전신마취를 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전날 차병원에입원을 하였고 의사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알아보는 조직검사 결과는 20분이면 나오기 때문에 양성일 경우엔 1시간이면 수술이 끝나고 악성인 경우엔 6시간 이상의 대수술이 될 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조직검사 결과만 받고 악성인 경우엔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엄마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것이었다. 사방팔방에 연락을 취해봤지만 직접 아는 사람도 없었고 일요일밤이였기때문에 우리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입원하기전에 우리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우나에가서 엄마 때도 밀어드리고 엄마가 먹고싶다는 냉면도 사드렸다. 수술하면 당분간 못할테니깐..그게 정말 당분간이길 바라면서..

나는 머리도 하였다. 기분전환도 할겸..

 

그리곤 월요일.마침내 엄마가 수술방으로 들어가는데..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괜찮을꺼야 엄마 사랑해..그렇게 말해드리고 싶은데 그랬다간 정말 울음 바다가 될거 같아서 계속 천장만 쳐다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 '이따가 봐엄마~'라는 말을 건냈다.

 

신기하게도..엄마가 수술방에 들어가자마자 배가 너무 고팠다. 이 와중에도 내 배는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구나..오래기다리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부랑 간단히 먹고 들어와서는 기다리고있던 언니를 형부와 함께 보냈다. 뭐라도 먹고 오라고..

수술방앞에서 멍하니 기다리다 너무 지루해서 mp3를 가지러 입원실에 올라가는데 어쩌다 손톱이 꺾였다. 아파서 봤더니 손톱이 부러졌다. 원래 접혀도 잘 안 부러지는데..모든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집도의사가 나왔다. 젠장..또 나 혼자 있을때다. 악성이란다. 수술계속할꺼라고..

근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이미 다 된거여서일까??

이젠 오히려 암이라고 말하면서도 담담한 나를 보면서 친구들이 더 이상해 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사람이란게 그런가보다. 첨엔 무조건 인정하기 싫었었는데..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아직은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진정 이게 암이래도 가망없다는 소리 듣기전에는 살 수 있는 것이다. 방법이 있는 것이다. 난 엄마가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살게끔하면 되니까. 완전히 가망이 없어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난 아깝게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힘내서 더욱 정신 바짝차려서 엄마 간호하고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독해지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이게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소중한걸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되면 인간이 느끼게되는 감정의 변화라는게..

 

전에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내 오랜 연인이랑 잘 되지 못한것이 너무 맘 아파서 많이도 울었는데..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오는 슬픔은..정말 또다른 차원의 슬픔이다. 사랑때문에 아파했던것이 사치인것처럼 느껴질만큼..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고 한다. 그 얄밉던 의사가 우리가 너무도 듣고 싶어하던 명확한 대답을해줘서 이번엔 참 방가웠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알고싶어하는 병기..흔히 말하는 1기,2기,3기,4기는 일주일뒤에나 나온다고 한다. 그에따라 항암치료여부가 결정되고.

 

낮 12시쯤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저녁 8시가 다 되서야 나오셨다.  

수술당일과 다음날까지만 해도 계속 토하시고 게다 수술중에 장기마비가 와서 이상한 호스까지 끼고 너무 아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맘이 아팠는데..손하나까딱 못하시고 개미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입술이 마르니 물로 적셔달라는 엄마를 거즈로 적셔주면서..열이 나는 엄마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면서..너무 많은 닝겔때문에 자꾸만 차는 소변주머니를 비워주면서..항상 내가 아프면 날 간호해주시던 엄마가 이 지경이 될때까지 난 뭐하고 있었나하는 생각에 더더욱 맘이 아팠다.

 

그런데..그것보다도 정말  젤~루 내가 맘이 아팠던건..

엄마한테 수술들어가기전에 왜 2005년1월에 건강검진에서 경미하지만 세뇨관확대의 증상이 보이니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고를 무시했냐고..엄마가 미련한거였다고 엄마를 나무랬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때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는데..엄마 수술받는 중에 생각해보니까..그때바로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급속히 좋지 않아서..특히 울 식구 모두 그러한 원인을 엄마한테로 돌리고 그 후로 계속 엄마 미워하고 잘해주지도 않고..그랬던게..그래서 엄마가 말도 못했었구나..병을 키울 수 밖에 없었겠구나 란 생각이 드니까..정말 엄마한테 너무너무 미안해졌다. 내가 그렇게 못된 딸이였구나..하고.

 

다행히 엄마는 많이 좋아지셨다. 이젠 주사도 많이 줄고 식사도 조금씩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좋은 변화가 하나 생겼다. 엄마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 아빠역시 엄마랑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이번일을 계기로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알수가 있었다. 처음 엄마 소식 들었을 때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시며 아무 말씀 못하시는 아빠를 보면서..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시던 아빠가 직접 물수건을 빨아서 엄마 열 떨어트려야한다고 소매 걷어부치시고 간호하시는 모습을 보면서..저게 사랑말고 뭐라표현하리요..란 생각이 들었다. 맨날 왠수지간이라곤 하지만 실은 천생연분이였던 것이다. 저래서 결혼을 해야하는거구나..란 생각이 들정도로.

언니말처럼..이번일을 계기로 소원해졌던 엄마, 아빠의 사이도 회복되어지고 우리가족에게 부족했었던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찾아주시려고 우리에게 우리가 감당할만한 시련을 주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거라면 지금 내 몸이 힘든거, 여태 맘 고생 했던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그리 신실한 크리스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역시 사람은 위기에 닥치면 종교적이 된다고 했던가?

단순히 친구들의 힘내, 괜찮을꺼야라는 문자보다 기도할께!란 말이 훨씬 내게 힘이 됨을 알았다. 왠지 그 기도가 정말 효과가 있을거란 믿음이 생겨서 인가보다. 절에다니는 사람은 부처님께, 성당, 교회에 다니는 사람, 그냥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럴때만이라도 울 엄마를 위해 기도해준다고 얘기해준다면 정말 많이 힘이될 거 같다..

 

이제 남은건 엄마 간병 잘 하는 것과..

다음주 월요일에 나온다는 병기에대한 결과..

더이상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설마설마했던 것이 예상과는 빗나갔었지만..더이상은 아니였음 좋겠다.

1기가 아니라면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언니는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이상 울고 짜는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 잘 보살펴 드릴 수 있도록 더 건강해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은..엄마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감사하다. 평소엔 잘 몰랐던 엄마의 존재를 알게하시려고 하늘에서 내리는 조금은 버거운 선물인가 보다. 앞으론 정말 엄마한테 잘할거다..

이 글 읽고 있을 그대들도..있을때 잘해라. 어머니께..부모님께. 

 

오늘은 엄마한테 수술전부터 해드린다고 약속했던 쿠키나 구워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