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이신애''란 인물의 발견!! 최고다.

이민경2007.05.29
조회468

2007.5.28.

 

친구들이랑 부산극장에서 '밀양'을 봤다.

 

이전부터 보려고 했었는데, 아침에 칸 여우주연상 소식까지

 

듣고나니, 우와 어쩜 이런 일이 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에 들어섰다.

 

초반부는 약간은 지겹기도 했다. 정적인 분위기.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온 여자의 주변 사람들 챙기기.

 

사투리 속 그녀의 깍쟁이 같은 서울말은 다분히 튀었다.

 

그리고 드디어. . .아들의 유괴와 사망. 내가 기다리던 부분.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었다. 사망을 기대하는 내가.

 

그녀의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는 내가.  

 

꺽꺽대며 끊임없이 눈물을 솟구치는 그녀가 소름끼쳤다.

 

사형수와의 면담을 계기로 자신을 파괴하는 그녀.

 

장로였나. 성관계를 유혹해서 잔디밭에 누워, 눈꺼풀을 뒤집으며

 

'잘 보이냐고' 외치는 이신애. 두려웠다.

 

소리치고, 남의 창에 돌을 던지고, 교회에서 책상을 내리치고,

 

음반테이프를 훔쳐, 교회 모임을 방해하던 그녀.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울려퍼질 땐 통쾌하기까지 했다.

 

환청에 시달리는 그녀. 전화통을 붙들고 헛소리를 하는 그녀.

 

송강호와의 약속을 어겨놓고, 버젓이 나타나 나랑 자고 싶냐고

 

실실 웃음을 쪼개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

 

사과를 잘라먹던 그녀의 목에 핏대가 섰을 땐,

 

일부러 목구멍에 사과를 밀어넣고 질식해 자살하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 .손목에 그어버린 칼자국. . .

 

피흘리는 팔목을 붙잡고 '살려주세요'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고.

 

그녀가 울 때 나도 울고야 말았다. 

 

병원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파란색 원피스를 걸치고,

 

미용실에서 유괴범의 딸과의 만남.

 

반쯤 자른 머리로 뛰쳐나와, 자기집 마당에서 거울보며 머리 자르고.

 

마당을 비추는 햇빛. 뒹굴거리는 잘려진 머리카락.

 

영화가 마치고도 자리에서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감정적으로 너무나 지쳐버렸다.

 

뭐니뭐니해도 전도연이 연기한 '이신애'란 캐릭터.

 

대단하다. 대단하다란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TV나 뉴스에선 종교와 관련된 인간의 구원을 떠들어대지만,

 

영화 내내 기독교 찬양의 헛된 구호들이 넘치지만,

 

'이신애'란 인물이 이 영화의 선물인 거 같다.

 

한숨 돌리고. . . 송강호의 캐릭터. . .친구들은 저런 남자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고, 힘들 때 옆에 있으니 참 좋겠다고 얘기했지만,

 

난 조금은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았다.

 

나이 39이 되도록 혼자인 그. 너무나 속물적이고 현실적이고,

 

거짓 피아니스트 간판을 만들어 그녀에게 선물하던 그. 

 

늘 신애의 곁을 지켜주지만, 난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환상 속의 신애만을 보는 건 아닐까??

 

힘든 그녀를 안고 같이 울어주는 다정함이 아니라,

 

참한 여자와 함께 드라이브,식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 

 

그녀에게 끊임없이 접근하지만, 단순한 육체관계를 원하지도 않고.

 

다방 아가씨와 농담하다가도, 그녀를 보러 나가고.

 

농촌 총각은 아내를 얻고 싶은 걸까. . .뭔가 찜찜한 그의 태도.

 

그래도 신애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의 작은 소망에

 

조금씩 맘이 흔들렸다. 아, 저 남자는 결코 여자를 버리진 않겠군.  

 

능글능글. 적당히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그 여유가 좋았다.

 

그리고. . .종교적인 문제는 참 뭐라말하기 그렇지만. . .

 

난 기독교적 신을 믿지 않기에. 유일신 사상은 무섭다.

 

모 아니면 도. 천국 아니면 지옥. 구원을 외친다.

 

자신의 힘으로, 내 두발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식이 아니고,

 

나와 함께하면, 나에게 의지하면, 살아나갈 수 있다는 식이다.

 

나약함을 종용하는 거 같아서 싫다.   

 

여튼. . .신애의 감정을 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내 아들 죽인 유괴범을 하나님 당신이

 

어떻게 먼저 용서할 수 있냐고 하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와 회개면 다 된다는 식의

 

교회 등장인물들의 태도 또한 그녀에겐 상처였을 듯.

 

나 힘들어요, 내 아들이 죽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리 태연하죠?

 

라고 외치는 그녀의 몸부림, 절규들. . .

 

크나큰 고통 앞에, 사람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힘들었기에. . .주위의 따뜻함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그리 쉽게 교회에 빠져들지도, 자신을 망치지도 않았을 듯.

 

낯선 고장에 내려와서, 단 하나인 아들도 잃고, 단 혼자서!!

 

그녀는 엄마가 없었던 걸까. 불쌍한 딸을 안고 울어줄 엄마가.  

 

따뜻함을 기대하고 달려간 송강호에게서 실망하고 돌아선 그녀를

 

난 정말이지 이해할 수 있다. 

 

후아. 대단한 영화. 그렇지만 보는 사람을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뇌리에 벼락같이 꽂히는 영화. 계속 기억에 남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