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강한 4인조 갱단의 세상 사는 법...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백혁현200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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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강한 4인조 갱단의 세상 사는 법...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캐릭터 창조에 천부적인 이사카 코타로가 이번에 창조한 것은 은행을 터는 네 명의 갱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락부락한 외모의 마초 컨셉의 갱들과도 다르고, 날렵하고 멋진 외모의 카사노바형 갱들과도 다르다. 하기야 21세기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유유자적 은행을 터는 이들에게 일반적인 은행털이의 컨셉이 어울릴리 만무하다.

 

  “... 고등학교 시절 읽은 책에 ‘닐 아드미라리’(nil admirari)라는 말이 있었다. 원래는 ‘놀라지 않는다’ 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어떤 일에도 감동하지 않는다’ 는 철학적 목표를 뜻한다고 했다. 교노는 그 말을 알게 됐을 때 곧바로 나루세를 떠올렸을 정도다. 나루세야말로 걸어다니는 닐 아드미라리의 견본이다.”

 

  암묵적으로 갱의 리더로 받아들여지는 나루세는 현직 공무원이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천상 아버지이며, 천부적으로 사람들의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혜안도 가지고 있어서 사물이나 상황의 저 너머를 통찰하니, 이 4인조 은행강도단의 수장으로 제격이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로망이야... 우리들이 돈을 훔쳐가도 예금자들한테 돈을 지불하는 건 보험회사야. 안 그래?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이 말이지. 당일 은행원과 손님들이 너무 떨지 않게 신경을 좀 쓴다면, 우리들이 하는 일은 남들한테 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쇼라고 할 수 있지. 말하자면 서커스지, 서커스.”

 

  나루세의 학창시절 친구인 교노는 은행을 터는 와중에도 손님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정도의 수다쟁이이다. 수다와 어울리지 않게 전국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지닌 권투선수였지만 까페를 운영하는 아내에게 연신 핀잔을 듣는다. 수다쟁이답게 허풍도 심하여 입만 열었다하면 궤변인데, 이런 이가 거짓말을 알아채는 나루세와 친구라는 설정이 재밌다.

 

  “유키코의 몸 안에서는 끊임없이 시계가 돌아간다. 무슨 일을 하든 동시 진행으로 시간이 계측된다.”

 

  은행강도단에서 도주를 위한 자동차 운전을 맡고 있는 유키코는 유부녀이다.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이고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시간을 재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아니 몸 자체가 곧 시계인 유키코는 모든 일을 할 때 저절로 시간을 계산해버린다. 허참이 진행하는 가족 오락관에 흔히 등장하는 수다 떨다가 정해진 시간 안에 멈추는 게임에 출연한다면 단연 왕중왕 감이다.

 

  “올바른 것이 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네 명의 인물들 중 가장 어리고 인간보다 동물을 훨씬 상위에 놓는 독특한 가치관을 지닌 구온은 소매치기의 명수다. 은행강도에게 소매치기 능력이 뭐 필요한가 싶지만, 오션스 일레븐(트웰브 아니 이제 떨틴)을 보라 범죄 조직에서 소매치기는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나루세, 교노, 유키코, 구온으로 이루어진 이 4인조 은행강도단은 재미없는 영화를 보러갔다가 그곳에 설치된 폭탄을 계기로, 혹은 이들을 위한 영화 재상연 모임에 참가하는 길에 은행에 들렀다가 난폭한 은행강도단에게 함께 인질로 잡힌 것을 계기로 은행강도단을 조직하게 되었다. 소설은 저들보다 잘 할 수 있다, 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결속된 이들 네 사람의 은행강도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슨 범죄 느와르 소설은 절대 아니다. 소설은 도심 속의 롤러코스터 타기처럼 유쾌하다.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헷갈리지만 나름의 철칙에 전념하는 일상인의 외양을 띠고 있는, 가끔 만나서 은행을 턴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우리들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대리만족이 가능하다.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들의 일상에 엉뚱한 활력을 불어넣어줄만한 서스펜스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