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표현처럼 정말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느즈막한 저녁에 그곳에 도착했다. 묘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기사 아저씨의 조언을 받아 도착한 그곳은 공동묘지라는 을씨년스러운 느낌보다는 그를 뛰어넘는 어떤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지금껏 자유의 근본적 존재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다. 또한 '차가운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이랍시고 낭만주의자들이 흩뿌려놓은 것들을 어설프게 이해함으로서 지구상에 뿌려진 피의 양을 대체고 가늠하고 있는 편이다. 또는 '자유'라는 낱말이 현실속에서 만들어 낸 온갖 작위들을 혐오했다. 해서, 자유에 대한 막연하고 맹목적인 시각이 갖는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재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 땅은 정말로 내가 밟고 있는 땅인가. 혹은 적어도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는 이 시대의 공기는 정말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숨쉬게하는 공기인가. 이렇게 누군가 묻는다면 현재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셔터는 만근처럼 무거웠다. 사진을 찍으러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번처럼 한컷 한컷을 고통스럽게 끊어 본 적은 없었다. 역사가 뭔지도, 5.18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먹고대학생이 건방지게 터뜨린 플래시 세례에 아마도 편히 쉬고 있었을 그들은 무덤속에서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손으로는 구도를 잡기위해 고정쇠를 열심히 돌리고 있던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했다. 사진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리얼리티가 주는 진실을 나는 딱 절반만 믿고 있었지만 비오는 저녁 직접 묘비의 일대 광장 앞에 우두커니 섰던 바로 그 중압감은, 우리의 역사와 나의 역사는 이미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나게 반추하게 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찍히는 대상과 나는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진정한 현실이었다. 어느덧 사진을 찍는 나의 팔과 다리는 긴장감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떨림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유, 아니 적어도 자유스럽게 보이는 시대적 분위기는 민주주의라는 타이틀 아래 이제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권리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마치 일상에서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자유는 본래 자연으로 부터 부여되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누가 모르는가. 현재 민주주의라 불뤼는 자유의 일부 양태는 목숨바쳐 항거한 열사들의 넋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투사들, 그리고 군사독재체제의 전복이란 그저 현대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 아이콘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저항정신. 민주투사. 이 얼마나 막연한 우상심리의 일면인가.
비오는 날임에도 그들의 묘비앞에 활짝 개어있는 국화의 빛깔이 도리어 주는 서글픔을 느껴보지 못하고는, 그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현실에로 끄집어 올려준 그것의 숭고한 가치를 알수는 없었다.
비오는 5월 - 518 구묘
소설의 표현처럼 정말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느즈막한 저녁에 그곳에 도착했다. 묘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기사 아저씨의 조언을 받아 도착한 그곳은 공동묘지라는 을씨년스러운 느낌보다는 그를 뛰어넘는 어떤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지금껏 자유의 근본적 존재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다. 또한 '차가운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이랍시고 낭만주의자들이 흩뿌려놓은 것들을 어설프게 이해함으로서 지구상에 뿌려진 피의 양을 대체고 가늠하고 있는 편이다. 또는 '자유'라는 낱말이 현실속에서 만들어 낸 온갖 작위들을 혐오했다. 해서, 자유에 대한 막연하고 맹목적인 시각이 갖는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재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 땅은 정말로 내가 밟고 있는 땅인가. 혹은 적어도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는 이 시대의 공기는 정말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숨쉬게하는 공기인가. 이렇게 누군가 묻는다면 현재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셔터는 만근처럼 무거웠다. 사진을 찍으러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번처럼 한컷 한컷을 고통스럽게 끊어 본 적은 없었다. 역사가 뭔지도, 5.18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먹고대학생이 건방지게 터뜨린 플래시 세례에 아마도 편히 쉬고 있었을 그들은 무덤속에서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손으로는 구도를 잡기위해 고정쇠를 열심히 돌리고 있던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했다. 사진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리얼리티가 주는 진실을 나는 딱 절반만 믿고 있었지만 비오는 저녁 직접 묘비의 일대 광장 앞에 우두커니 섰던 바로 그 중압감은, 우리의 역사와 나의 역사는 이미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나게 반추하게 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찍히는 대상과 나는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진정한 현실이었다. 어느덧 사진을 찍는 나의 팔과 다리는 긴장감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떨림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유, 아니 적어도 자유스럽게 보이는 시대적 분위기는 민주주의라는 타이틀 아래 이제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권리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마치 일상에서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자유는 본래 자연으로 부터 부여되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누가 모르는가. 현재 민주주의라 불뤼는 자유의 일부 양태는 목숨바쳐 항거한 열사들의 넋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투사들, 그리고 군사독재체제의 전복이란 그저 현대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 아이콘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저항정신. 민주투사. 이 얼마나 막연한 우상심리의 일면인가.
비오는 날임에도 그들의 묘비앞에 활짝 개어있는 국화의 빛깔이 도리어 주는 서글픔을 느껴보지 못하고는, 그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현실에로 끄집어 올려준 그것의 숭고한 가치를 알수는 없었다.
비는 계속 눈물처럼 내렸다.
이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