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술 먹고 한밤중에 들어오셔서 고만고만한 삼남매를 잠을 깨워 나란히 앉혀놓고 설교하시던 모습과 매일 같이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삼남매를 부지런히 가르치시고 아파트 주변을 세 바퀴 씩 뛰게 만드시는 모습 이었다. 두살 터울의 동생들과 싸움이라도 할라치면은 장녀인 내가 모든 잘못의 책임이 있다며 대표 선수로 맞아야 했고, 아이의 사소한 거짓말이나 지각 따위는 용납하지 않으셔서 종아리에는 늘 회초리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초적이고 파쇼였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엄격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던 터라 가까이 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집에 있다가도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인사만 하고 쌩 하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우리집의 불문률 중 하나는 모든 식구가 같이 모여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서로 바쁘다 보니 하루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 위해서는 새벽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 3 때 수능을 앞두고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그 아침밥이 먹기 싫어서 먹기 싫다고 숟가락을 들지 않았더니 집안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식은 공부 잘해도 필요없고 시험도 볼 필요가 없다며 학교도 가지 말라고 말도 못하게 맞으며 혼났다. 수능 시험 일주일 전이었다. 사춘기 때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워서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고 혹여 말이라도 시키시면 속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내 이놈의 집구석이 싫어서라도 꼭 서울 가리라, 반드시 집을 탈출하리라고 곱씹어 맹세했었다. 그랬던 아버지였기에, 장성한 딸이 다른 집 딸들처럼 아버지 팔짱도 끼지 않고 애교도 없다고 투덜거릴 때 나는 당신이 한 업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가슴 속에 쌓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벽을 높여만 갔다. 밤톨같던 딸은 어느새 학생이 되더니 여자가 되었고, 이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버지의 속박에서 영원히 탈출하게 됐다. 결혼식장에서 굳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입장하면서도 나는 내내 헤실댔다. 훌쩍이는 어머니와 만감이 교차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도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방글방글 안녕을 외치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찾은, 이제 친정이 되어버린 집에서 저녁상을 마주했다. 모락모락 더운 김이 나는 밥 속에는 점점이 새파란 완두콩이 박혀 있다. 완두콩을 무척 좋아해 대학 시절 자취하면서도 유일하게 완두콩만은 밥을 해 먹었던 나는 반가움에 묻는다. 엄마, 완두콩 밥 했네. 응. 니 아버지가 사오셨더라.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욱 하고 치민다. 아버지가? 그래. 잠깐 나간다고 나가시더니 봉다리 들고 오셨더라. 밥술을 뜨며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아버지에게 묻는다. 완두콩 사오셨대매요? 아버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신다. 너 좋아하잖냐. 애비가 너 좋아하는 건 다 안다. 눈물이 핑 도는 나는 아버지가 볼까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목이 메어 차마 밥알을 넘길 수가 없다. 목이 뜨끔뜨끔한 게 자꾸만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어졌다. 바보같은 딸은 철모르는 어린 시절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았던 청년시절을 거쳐 이제 머리를 얹었다. 내 인생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도 함께 살아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고서야 바보같은 딸은 아버지의 인생을 깨닫는다. 당신 만의 인생이 아니라 온 가족이 어깨에 얹혀 있었던 그 삶을...
아버지와 완두콩
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술 먹고 한밤중에 들어오셔서
고만고만한 삼남매를 잠을 깨워 나란히 앉혀놓고
설교하시던 모습과
매일 같이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삼남매를 부지런히 가르치시고 아파트 주변을 세 바퀴 씩
뛰게 만드시는 모습 이었다.
두살 터울의 동생들과 싸움이라도 할라치면은
장녀인 내가 모든 잘못의 책임이 있다며
대표 선수로 맞아야 했고,
아이의 사소한 거짓말이나 지각 따위는 용납하지 않으셔서
종아리에는 늘 회초리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초적이고 파쇼였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엄격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던 터라
가까이 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집에 있다가도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인사만 하고 쌩 하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우리집의 불문률 중 하나는
모든 식구가 같이 모여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서로 바쁘다 보니 하루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 위해서는
새벽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 3 때 수능을 앞두고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그 아침밥이 먹기 싫어서 먹기 싫다고 숟가락을 들지 않았더니
집안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식은
공부 잘해도 필요없고 시험도 볼 필요가 없다며
학교도 가지 말라고 말도 못하게 맞으며 혼났다.
수능 시험 일주일 전이었다.
사춘기 때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워서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고
혹여 말이라도 시키시면 속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내 이놈의 집구석이 싫어서라도
꼭 서울 가리라, 반드시 집을 탈출하리라고
곱씹어 맹세했었다.
그랬던 아버지였기에,
장성한 딸이 다른 집 딸들처럼 아버지 팔짱도 끼지 않고
애교도 없다고 투덜거릴 때 나는
당신이 한 업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가슴 속에 쌓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벽을 높여만 갔다.
밤톨같던 딸은 어느새 학생이 되더니
여자가 되었고, 이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버지의 속박에서 영원히 탈출하게 됐다.
결혼식장에서 굳은 아버지의 팔을 잡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입장하면서도
나는 내내 헤실댔다.
훌쩍이는 어머니와 만감이 교차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도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방글방글 안녕을 외치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찾은,
이제 친정이 되어버린 집에서 저녁상을 마주했다.
모락모락 더운 김이 나는 밥 속에는
점점이 새파란 완두콩이 박혀 있다.
완두콩을 무척 좋아해 대학 시절 자취하면서도
유일하게 완두콩만은 밥을 해 먹었던 나는
반가움에 묻는다.
엄마, 완두콩 밥 했네.
응. 니 아버지가 사오셨더라.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욱 하고 치민다.
아버지가?
그래. 잠깐 나간다고 나가시더니 봉다리 들고 오셨더라.
밥술을 뜨며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아버지에게 묻는다.
완두콩 사오셨대매요?
아버지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신다.
너 좋아하잖냐. 애비가 너 좋아하는 건 다 안다.
눈물이 핑 도는 나는
아버지가 볼까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목이 메어 차마 밥알을 넘길 수가 없다.
목이 뜨끔뜨끔한 게 자꾸만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어졌다.
바보같은 딸은
철모르는 어린 시절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았던
청년시절을 거쳐
이제 머리를 얹었다.
내 인생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도 함께 살아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고서야
바보같은 딸은
아버지의 인생을 깨닫는다.
당신 만의 인생이 아니라 온 가족이 어깨에 얹혀 있었던
그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