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이대희2007.06.01
조회1,120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행복의 건축, 또는 건축에서 얻는 행복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건축은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식당, 투겐트하트 하우스, 체코 브르노, 1930년.

 

집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 집은 정체성의 수호자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소유자들은 밖으로 떠돌던 시절을 끝내고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다. 일층의 판석들은 노령과 나이든 우아함을 이야기한다. 반대로 부엌 진열장의 규칙성은 위협적인 느낌은 주지 않는 질서와 규율의 모범이다. 커다란 미나리아재비가 인쇄된 매끈한 탁자보가 덮인 식탁은 그 옆의 엄격해 보이는 코크리트 벽 때문에 더 장난스러워 보인다. 층계를 따라 걸려 있는, 달걀과 레몬을 그린 작은 정물화들은 일상적인 것들의 복잡함과 아름다움으로 관심을 유도한다. 창턱 유리 항아리에 꽂힌 수레국화는 우울의 흡인력에 저항하도록 힘을 보태준다. 위층의 텅 빈 좁은 방은 회복을 꿈꾸는 생각들이 부화하는 공간이다. 천장은 크레인과 굴뚝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초조한 구름들을 향해 열려 있다.

이 집이 그 거주자들의 수많은 병을 치료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방들은 행복의 증거를 보여준다. 이 행복에 건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했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가장 고귀하고 적절한 건물:

임레 스테인들, 의사당, 부다페스트, 1904년.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신작 '행복의 건축' 이 나왔다. 그동안 사랑, 문학, 여행, 철학, 불안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면서도 유쾌한 시선이 담긴 글쓰기를 해왔던 드 보통은 이번에는 건축의 영역에 발을 내디딪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알랭 드 보통의 시선에서 이야기되는 건축은 건축 전문가들만의 관심사에 머무는 전문적인 건축사 책이나 어려운 이론서일 리는 없다.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공간, 그 공간을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구축해내는 건축에 대해 지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주는, 드 보통의 강점이 건축이 테마인 '행복의 건축' 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오후, 알랭 드 보통은 비가 퍼붓던 친구와의 약속이 어긋나 두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 그는 런던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위치한 맥도널드 웨스트민스터 지점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혼자 무뚝뚝한 표정으로 식사하는 사람들, 강렬한 조명, 냉동 프라이가 기름통에 가라앉는 소리, 카운터 직원들의 주문 받는 소리로 어수선한 그곳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잊으려면 계속 먹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때 키가 큰 금발의 핀란드 십대들 서른 명 가량이 우르르 몰려 들어와서는 왁자지껄 떠들고 노래를 부르는 통에 더 앉아 있기 힘들어진 그는 그곳을 나와 햄버거 가게 바로 옆 광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안개 낀 런던 하늘 속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드 보통은 호기심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내부에는 봉헌촛불들이 너울거리고, 향냄새가 나고, 웅얼거리는 기도소리가 들렸다. 본당 회중석 한가운데 천장에는 10미터 높이의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바깥 세계의 소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외와 정적이 들어앉았다. 방문객들은 어떤 집단적 꿈에 빠져든 듯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죽였다, 그곳에서는 독특한 종류의 친밀감이 거리의 익명성을 삼켜버렸다. 인간 본성의 모든 면을 표면으로 불러낸 것 같았다. 성당 안에 있으니, 바깥에서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여러 가지 것들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천사가 당장이라도 구름을 뚫고 내려와 창으로 들어오면서 황금나팔을 불며 라틴어로 말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불과 40미터 떨어진 햄버거 가게에서라면 미친 소리로 들렸을 개념들이 지고의 의미와 장엄을 얻게 된 것이다. 건축 작품 하나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

맞은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몬주익 통신탑, 바르셀로나, 1991년.

 

공학이 우리에게 우리가 살 집의 모양을 규정해줄 수도 없고, 다원적이고 공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선례나 전통을 찾을 수도 없다면, 우리는 모든 스타일적 대안들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명료하게 답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동시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심지어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왜 '공간' 이란 주제에 매달렸을까?
알랭 드 보통은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을 토대로 '행복의 건축'을 시작한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두스는 자신이 평생토록 머물던 성당의 내부구조나 외관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만큼 정신세계와 내면에 치중했다고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기왕에 그 공간이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루고 아늑하다면 심리적 성소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는 관념을 받아들인다면, 드 보통이 건축이라는 낯설고 까다로운 주제를 들고 나타난 이유를 쉽게 수긍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이다. 아름다운 건축에 밥 한 끼나 백신과 같이 내세울 만한 실리적 장점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제프리 바와나 루이스 칸이 지은 건물 안에서도 아내와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혼하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태피스트리라고 할 만한 베네치아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덕분에 마음이 고양되었다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으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건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으며,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이라는 건축의 독특한 위치로 말미암아 행복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외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또한 거기에서 행복과 기쁨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건축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드 보통의 논지는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

 

이야기하는 건물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알프레트 메셀, 베르트하임 백화점, 베를린, 1904년.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엑토르 기마르, 카스텔 베랑제, 파리, 1896년.

히자스 카스투리, 컨벤션 센터, 푸트라자야, 2003년.

포스터 앤드 파트너즈, 세이지 아트 센터, 게이츠헤드, 2005년.(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일단 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우리 주위의 가구와 집에서 살아 있는 형태를 암시하는 것들을 부족함 없이 찾을 수 있다. 주전자에는 펭귄이 있으며, 탕관에는 건장하고 자존심 강한 인물이 있으며, 책상에는 우아한 사슴이 있으며, 식탁에는 황소가 있다.

베를린의 알프레드  메셀의 베르트하임 백화점 지붕에서는 피곤하고 회의적인 눈이 우리를 내다보고 있으며, 파리의 카스텔 베랑제는 위로 들어올린 곤충 다리가 지키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 컨벤션 센터에는 호전적인 딱정벌레가 웅크리고 있으며, 게이츠헤드의 세이지 아트 센터에는 고슴도치 비슷한 생물이 도사리고 있다.



"건물은 말을 한다. 그것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해 말을 한다. 건물은 민주주의나 귀족주의, 개방성이나 오만, 환영이나 위협, 미래에 대한 공감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한다."


건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추상적인 사물의 의미를 짚어내는 일과 관련되기에 의미가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자신의 해박한 미술사적 지식과 직관력을 바탕으로 추상 조각과 사물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의 시선이 열리기만 한다면, 주변의 가구와 집에서 구체적 의미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영감을 얻고 나면 샐러드 사발은 샐러드 사발에 불과하다는 이전의 산문적 믿음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샐러드 사발에도 희미하게나마 완전성, 여성성, 무한성 등 의미 있는 연상들이 머문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둥, 아파트 건물 같은 실용적인 물체를 볼 때도 우리 삶의 중요한 주제에 관한 추상적인 표현을 찾게 될 것이다.
이야기하는 건물이라는 개념 덕분에 우리는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겉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키며 살고 싶은 가치의 문제를 건축적 난제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


무표정의 차가운 건물에서 감정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드 보통은 어떤 건물이 어떻게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감탄하는 건물은 결국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귀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상찬한다. 즉 이런 건물은 재료를 통해서든, 형태를 통해서든, 색채를 통해서든, 우정, 친절, 섬세, 힘, 지성 등과 같은 누구나 인정하는 긍정적 특질들과 관련을 맺는다.
결국 건축이나 디자인 작품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번영에 핵심적 가치를 표현한다는 사실, 우리 개인의 이상이 물질적 매체로 변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리처드 노이트라, 에드가 J. 카우프만 하우스, 팜 스프링스, 1946년.

 

현대에 와서 이상화는 공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매력적인 것으로 부각되었다. 20세기 중반 리처드 노이트라가 캘리포니아에 지은 강철과 유리 건물에 사는 부르주아 부부들도 가끔 과음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건물은 그들에게 정직과 편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건물은 그들에게 정직과 편안에 관해, 억제로부터의 해방과 미래에 대한 믿음에 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또 그 소유자들의 울화나 직업적인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그들의 노여움이 사막의 밤에 메아리쳤을 때) 그들이 마음속에서 갈망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주었을 것이다.



건축에 대한 시각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건물은 우리에게 결여된 특질들을 집중된 형식으로 표현한다.

 

취향 뒤에 놓인 심리적 기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꿀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그냥 무시해 버리는 태도는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이 결여되어 있기에 저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하고 물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열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박탈감은 이해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건물에서 이야기와 미덕을 끌어내어 설명함으로써, 딱딱하고 생동감 없게 느껴지던 건축에 인간적 활기와 친화력을 불어 넣었다.
건물을 다른 시선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은 사람들에게 드 보통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외부 환경에 취약한 존재이며, 좋은 건축으로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이 마을 전체를, 더 나아가 도시 전체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존 우드 1세가 계획한 바스 언덕이나 제임스 크레이그가 구상한 뉴타운은 그전에는 허허로운 벌판에 불과했던 곳을 상상력과 추진력만으로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이다. 이 아름다운 변화의 현장에서 자금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드 보통은, 택지개발 회사에 사라질 운명인 들 위에 어떤 집이 세워질 것인지 물어보라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우리의 취향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원래 바라던 것 너머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의 훌륭한 건물은 그 자신의 규모나 건축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된다.
그러기에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은, 오히려 도시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여름날 아침 취리히에서 남쪽 알프스로 가는 기차를 타고 출발한 여행객은 처음에는 굽이치는 초원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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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허공을 건너 작은 구름을 통과한다. 아주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듯 활달하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모습이라, 누군가 기도나 예배로 놀란 가슴을 달래려 했다면 괜한 호들갑으로 눈총을 받았을 것 같다. 기관차가 이런 초자연적인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환경에서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다리 덕분이다. 아주 육중하면서도 또 아주 섬세한 다리다. 어떤 오점이나 불순물로도 더럽힐 수가 없다. 마치 신들이 허공에서 떨어뜨린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로베르 마야르, 잘기나토벨 다리, 사어스, 1930년.

이삼바드 브루넬, 클리프턴 현수교, 브리스톨, 1864년.

로베르 마야르의 잘기나토벨 다리와 이삼바드 부르넬의 클리프턴 현수교는 힘을 갖춘 구조물이다. 또 둘 다 위태로운 절벽을 가로질러 우리를 안전하게 운반해주기 때문에 존경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 둘 가운데 마야르의 다리가 더 아름답다. 대단히 유연하게, 힘 하나 안 드는 것처럼 자기 의무를 이행하기 때문이다.


건축을 공부하거나 실제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행복의 건축'이 익히 알고 있는 얘기를 정리한 책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분명 건축의 영역에서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드 보통은 아웃사이더로서 건축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건축 이야기를 능숙하고 유려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건축을 소외된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보통 사람들이 즐겁게 향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위치로 끌어당겼다. 
'행복의 건축' 을 통해 독자들은 건축에서 중요한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들(워드성의 앞과 뒤는 왜 다를까?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빌라 사부아에 가구가 없는 이유는?)부터 건축의 주요 미덕들(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이론과 실제를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을 통과하면 건축조차도 친숙하게 일상으로 내려와 앉는 것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알랭 드 보통의 힘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

 

행복의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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