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놓고 말하자면, 이창동 감독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장관을 지냈다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간 이래 대면 인터뷰가 처음인 탓도 있겠거니 싶었지만, 그 또한 좋은 구실은 되지 못했다. 은 물론, 그 전작들을 관통하는 무게감이 버거웠던 것 같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경직됐거나 아량 없이 옹졸한 인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가벼우면서도 진지했던 이창동 감독과의 첫 자리를 공개한다.
무빅 >> 보면서 웃음도 많이 나와서, 실제로 뵈면 감독님도 유머가 많으실 것 같았는데요. 이창동 >> 유머 많아요. 하하! 무빅 >> 말 나온 김에 여쭤보죠. 종찬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유머러스한 면이 있는데, 전작들에는 없던 캐릭터거든요. 원작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었나요? . 이창동 >> 원작에는 없었고요. 라는 단편 속에는, 핵심 플롯이랄까, 아이를 잃고 신앙에 귀의하는, 그리고 용서라는 아주 핵심적인 이야기의 뼈대를 갖고 있고, 나머지는 전면적으로 다 바꿨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캐릭터는 없죠. 는 남편이 화자예요. 많이 다르죠. 근데 아마 종찬이란 인물이 웃음을 많이 유발하는 건, 음, 뭐랄까, 특별히 웃겨서가 아니고 그 인물,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속물의 어떤 그, 좀 절묘한 사실성이라고 그럴까? 그런 게 웃긴 걸 거예요. 겉으로 보기엔 되게 속물이고 뻔뻔스럽고, 뭐, 거의 성가신 스토커처럼 보이잖아요? 근데 그 내면에 있는 인간다움이랄까, 그런 게 유머로 좀 보였으면 했어요.
무빅 >> 송강호 씨가 또 굉장히 잘해주셨죠. 이창동 >> 생각만큼 그런 대사들의 섬세한 것들을 그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했어요. 자기가 느끼지 못하면 표현하기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탁월한 배우죠. 무빅 >> 가 실은, 저희 매체가 창간한 이래로 감독님과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솔직히 좀 말씀드리면, 어쨌거나 그간의 감독님 행보를 보면, 매체를 선별적으로 만나오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저는 있거든요. 이창동 >> 음, 근데, 뭐 그렇진 않아요. 그렇진 않은데, 내가 나가서 뭐 도움이 될까? 그런 게 있고요. 내가 영화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게 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뭐, 수용하는 독자든 관객이든 그들의 몫이지, 작품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는 것은 좋지 않은 짓이죠. 작자는 작품으로만 말하는 건데. 근데 마케팅이라는 것도 영화산업의 또 하나의 축이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이야기해요. 내가 나가봐야 영양가 떨어진다. 중국집에서 주방장이 얼굴 보여주며 나오면 안 되잖아. 자장면 맛 떨어지잖아. 하하!
무빅 >> 저는 영화를 아주 잘, 확 빠져들어서 봤거든요?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와중에, 호칭 존칭 다 빼고 말씀드리자면 “그냥 이창동 영화지, 뭐” 하는 반응도 더러 있었어요. 그 ‘이창동 영화’라는 개념에 대해 감독님은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이창동 >> 글쎄요. 내 영화, 나라는 아이덴티티가 한국영화 또는 크게 봐서 영화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창동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이 뭔지,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봐주는 거 고맙죠. 좋든 나쁘든, 그래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작은 몫이라도 내가 갖고 있다는 얘기니까. 무빅 >> 주요 매체들에 리뷰 나온 것들을 추려봤는데, ‘잔인한 리얼리스트’라는 표현도 있더라고요. 이 그렇게 잔인했나 하는 생각도 덩달아 하게 되는데, 저는 도리어 이를테면 아들의 시체가 발견되는 걸 줌인하지 않고 멀리서 계속 그 상태로 잡고 있는 걸 보고, 그건 잔혹성이나 악취미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이창동 >> 어제도 어떤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그렇게 멀리 떨어져 보는 그 장면이 가장 감정적으로 격한 장면인데,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건 냉정한 거 아니냐.” 거리를 두면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관음증에 기초하고 있잖아요. 남의 비극도 구경하고 싶거든. 근데 그걸 꼭 구경시켜 줘야 하는 거냐. 막 밀치고 들어가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하는 거냐. 오히려 그런 경우는 좀 떨어져서 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렇게 보면 오히려 연민을 갖고 있는 태도죠.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리고 그 저수지 장면 자체가 우리 영화에 드물게 나오는 ‘그림’이 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의 무심한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그 장면의 잔인함을 더 드러낼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장면 자체가 긴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주는 느낌은 있을 수밖에 없죠. 거기에 더 이상 보태고 싶지 않았어요.
비밀의 햇볕이 내리쬐는 밀양
무빅 >> 감독님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영화가 딱 끝나면서 이걸 꼭 좀 여쭤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이창동 >> 이렇게 대답할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신론과 무신론을, 어쨌든 절대자를 믿고 안 믿고에 대해 너무 경계를 둔다고 생각해요. 너무 이원론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저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대답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왜냐면 그렇게 따지는 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너 이쪽 편 나 저쪽 편, 이런 걸 구분하는 거거든요.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게 종종 중요할지도 몰라요. 근데 그거는 다른 신앙? 신학적, 철학적 사유 위에서 하는 질문이라고 봐요.
무빅 >> 전도연 씨가 참고가 될 만한 취재 테이프 같은 걸 안 봤다고 하던데. 이창동 >> 전도연 씨는,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종종 인물이나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소스를 제공할 수도 있잖아요? 전도연 씨는 그런 것에 지배당할까봐 좀 피하는 경향이 있죠. 그건 배우로서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무빅 >> ‘전도연 아닌 전도연’을 원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만족하셨는지. 이창동 >> 그건 나도 모르고 자기(전도연)도 몰라요. 하하. 근데 배우 아우라라는 게 상업영화에서는 사실 필요한 거예요. 근데 우리 영화(밀양)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면 위험하죠. 그래서 가능하면 배우의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싶었는데, 전도연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잖아요. 보이지 않는 옷과도 비슷하잖아요. 안 보이는 옷을 벗으라니까 힘들겠죠, 내 주문이. 사실 어려운 문제로 서로 싸운 건데, 저는 충분히 이신애라고 생각해요. 나는 전도연을 잘 못 느끼겠더라고.
무빅 >> 영화 끝나고 힘들고 지친다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는, 신애가 영화 속에서 받은 고통을 사람들이 똑같이 느꼈기 때문에, 영화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지치고 힘들었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봐도 되죠? 이창동 >> 그렇죠, 궁극적으로는. 그리고 나는 극장에 불 켜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영화, 나한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영화는 안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물론 그게 오락의 기능이겠죠. 현실 일탈의 기회를 주는 거니까. 그게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고, 나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남들 다 하니까. 무빅 >> 엔딩도 그런 의미의 흔적을 남기신 건가요?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그것도 예쁜 땅이 아니라 약간 물도 고여 있고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지저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햇빛도 거기에 몇 조각 들어가 있는…. 이창동 >> 관객이 생각한다 그럴까?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여지를 두고 싶었던 거죠. 내가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도 담고 싶었고.
무빅 >> 햇살의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햇살과 구원의 관계는 어떤가요? 이창동 >> 햇볕이라는 게,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햇볕이라는 게 이 영화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영화 제목도, 밀양이라는 공간도 ‘비밀의 햇볕’이고. 아주 단순하게 보면, 비밀스런 하나님의 뜻이겠죠. 신의 뜻이겠죠. 근데 문제는 그게 비밀이라는 거예요. 구원이 있는지 없는지, 구원을 어떻게 찾아야 되는지…. “이게 구원이야~” 이렇게 손에 쥐어주면, 신이겠어요? ‘비밀의 햇볕’이라고 말할 수도 없죠. 그럼 어떻게 찾아야 되지? 작가가 신애한테 구원을 찾아주는 건 아닐 텐데, 절대로. 작가는 절대자 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해석할 뿐이죠. 저도 신애의 삶을 해석해요. 신의 뜻이 어디 있을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본 관객이 하는 거겠죠.
무빅 >> 아까 종교 말씀하셨을 때, 결국은 또 구분적인 사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 중에 자기는 기독교 신자인데 ‘신애가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되더라’고 얘길 하더라고요? 이창동 >> 저는 정말 기독교적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기독교적이라고 보지 않을 것 같아요. 신앙의 초입에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왜냐하면 적어도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니까, 내가 보기에는. 회의 없는 믿음이 어디 있어요? 항상 하나님이 축복만 내려주나? 축복이 안 올 때는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대개 그렇게 반기독교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볼 거라고 말을 해요. 그게 넌센스라는 거죠. 뭐라 그럴까, 굉장히 야만적인… 그런 관점이라고 봐요.
무빅 >> 정말 제목이 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더라고요. 하하! 이창동 >> 하하하! 일단, 제목이 중요하고요. 왜냐하면 밀양이라는 공간 자체가,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이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이름, 명명한다면 밀양이란 이름이 아니면 안 되죠. 햇볕이 있긴 있는데 그 햇볕의 의미는 비밀인 거예요. 그게 우리 삶의 불가해한 부분이죠. 물론 모든 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거나, 인간의 믿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같지는 않겠죠. 문제는 불가해하다... 쉽게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이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밀양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평범해요. 한국의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같았으면 좀 어려웠을 거예요.
인간의 논리를 넘어서는 감성
무빅 >> 신애에게 더 깊은 고통을 줄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던데. 이창동 >> 내가 뭐, 그렇게 고통 주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닌데? 하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고통 아닌가? 음, 어떤 고통은요, 인간의 논리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고통이 있어요. 설명이 안 돼. 설사 설명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로는 견디지를 못해. 그러니까 어떤 고통의 경우에는 인간이 논리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게 돼 있다고. 근데 그걸 받아들였는데 그것으로부터도 배반당했다고 생각하거나, 그걸로 위안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게 한순간의 허망한 착각이었거나, 이렇게 느껴질 때, 그 이상의 고통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신애의 고통 경우에는 고통의 극한까지 간 거죠. 답이 없으니까. 더 이상의 고통…? 뭘 원하는 거야? 하하하하!
무빅 >> 과연 신애는 기독교를 정말로 믿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도 있어요. 하다하다 안 되니까 기댈 곳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는지. 이창동 >> 그런데 그게, 기독교 신자가 되는 과정으로 보면 흔한 과정입니다. 어떤 고통의 경우에는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애를 잃었다거나, 그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허망한 거예요. 길가의 돌보다도 흔적 없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무화된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다못해 사후에라도 어디선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불멸의 영혼이 있기를 바라게 되죠. 그리고 자기의 고통도 인간의 논리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왜 하필 내가!’ 그러니까 인간의 논리를 넘어선 그 어떤 걸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이건 인간의 논리예요. 근데 그와 함께 동시에 저항감도 생기겠죠. ‘왜!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결국은 그런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어떤 순간에 급속하게 몰입하게 되죠. 기독교 신자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이 초기에는 아주 열혈신자처럼 되다가 빨리 실망하게 돼요. 왜냐하면 그걸로 납득 안 되는 것들이 생기니까.
무빅 >> 신애가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의지할 곳이 절실히 필요한 나머지 “나도 그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자기 감정을 속여서. 이창동 >> 자기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줄 모르고 속였는지도 모르죠. 그런 분석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유보하겠습니다. 허허! 무빅 >> 때 설경구 씨한테 들은 얘긴데, 연출하실 때도 그렇고 말씀하실 때도 그렇고, “음…” “어…” 이러신다면서, 즉석에서 감독님 흉내 연기도 하고 그러던데, 굉장히 장고를 하는 타입이신 것 같아요. 이창동 >> 어, 근데 일단 기본적으로 설경구는 내 악담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하하! 그걸 감안하셔야 되고. 나하고 같이 일한 배우들이 다 내 악담을 해요. 흐흐! 근데 그건 내가 저지른 게 있기 때문에 감수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흐흐. 그런 정도고, 근데 정말 악담을 하고 싶으면 악담을 안 하겠죠.
무빅 >> 하하! 칸국제영화제 말씀도 듣고 싶은데요. 저는 이렇게 좋은 영화라면 반드시 흥행도 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라서, 경쟁부문 진출의 효과가 흥행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창동 >> 저는 국제영화제의 약발이 한국 관객들한테 이미 떨어졌다고 봐요. 오히려 국제영화제 초청되거나 상 받은 영화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거 같아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콤플렉스가 있잖아요. 밖에 나가서 인정받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고. 근데 지금 관객은 오히려 그런 걸 대단하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만큼 성숙해진 거죠. 저는 저널리즘의 호들갑보다는 관객이 더 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영화제 나가서 소개하는 거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세계적으로도 영화산업이 워낙 양극화돼 가지고 워낙 빅 마케팅하는 방식으로 변해버렸잖아요. 영화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이 문제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상품들을 위한 유일한 벼룩시장이 영화제 시장이에요. 영화제 시장에, 그 벼룩시장까지 가지 않는다면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거나 접할 기회조차 없게 되겠죠.
무빅 >> 등급 문제도 여쭤보죠. 15세 관람가가 나왔는데, 워낙 센 코드들이 들어 있는지라, 솔직히 저는 15세는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창동 >> 등급은요, 분명한 규정과 기준에 따라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가능하면 없애죠. 18세 이하 관객이 얼마나 오겠어요. 무빅 >> 흐흐! 예를 들어서 자해하는 장면 때, 거기다 카메라를 들이댔었다면 18세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걸 감안해서 직접적으로 안 보여주고, 그런 걸 의도한 컷들도 혹시 있는 건 아니었나 해서요. 이창동 >> 전혀 없어요. 저는 18세 이하 관객들, 생각도 안 합니다. 왜냐면 나 자신도 뭐, 썩 권할 만한 영화는 아니잖아요? 하하하! 무빅 >> 저는 많이들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하하하! 이창동 >> 아니, 18세 이하 청소년들한테. 무빅 >> 음, 아무래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게, 감독님이 이거야말로 반드시 관객들이 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여기시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결국 의 메시지는, 혹은 의도는 ‘구원과 용서’인 거냐…. 이창동 >> 용서와 구원의 문제도 들어 있지만, 저는 거기에서만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용서니 구원이니 하는 것도 인간이 살아가려고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질문이거든요. 좀 폭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삶이라는 것,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는 거니까. 자기 삶을 해명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 용서라는 개념이죠. 내가 괴로우니까 용서라는 개념이 필요한 거예요. 증오하기엔 너무 괴롭거든. 무빅 >> 음, 증오가 괴로워서…? 이창동 >> 네. 증오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자존심 상한다. 용서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예요. 자기 삶을 사는 문제라고. 누구나 고통을 받게 돼 있어요. 고통은 예상하거나 설계할 수 없어요. 그런 것이 닥쳤을 때 어떻게 살 거냐 하는 거거든요. 그걸 이겨내는 방식으로서의 용서를 가져온 건데, 종교도 그래서 필요한 거죠. 용서라는 게 교리적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깝게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논리로 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기의 필요에 배반당하면 또 신을 미워하게 돼요.
무빅 >> 그런 의미에서 파악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생각하실 순 없었겠네요. 아까 이 영화의 제목이 이 아니면 안 됐던 게 판명된 것처럼. 이창동 >> 유일신이라는 게, 불교에는 신이 없잖아요. 그리고 용서 구원의 문제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종교니까. 용서가 종교의 태생이거든요. 또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용서라는 문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같지만, 그게 또 집단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종군위안부 같은 문제도 같은 거죠. 지금도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이나, 한국 사회 안에서도 그게 생기잖아요 이런 문제가 인간 존재를 들여다보는 굉장히 본질적인 화두인 것 같아요.
고통을 말하는 이창동
무빅 >> 전작들에도 그런 본질적 화두가 있었을까요? 이렇게 듣지 않고는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이창동 >> 용서라는 화두로 보지는 않았죠. 나름대로 같은 경우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소통이라는 문제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고. 같은 경우는 시간…. 어차피 한 작품에서 모든 얘기를 다 할 순 없죠. 무빅 >> 그래도 관통하고 있는 건 결국 고통인 것 같아요, 고통! 이렇게 맥을 잡고 고통을 대입해 보니까 다 들어맞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창동 >>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무빅 >> 고통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이런 인터뷰 자리도 감독님께는 일종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아닐까 싶어요. 허허! 이창동 >> 네네, 정말로.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네? 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 설명하게 하는 상황, 그게 참 싫어요. 그렇게 설명 다 해버릴 거면 영화 만들 이유가 없잖아. 그죠? 그리고 의 경우에는 왜 이렇게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안 지켜지는지…, 깜짝 놀랐어요. 왜 때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했던 식으로, 그냥 뭐, 다 터져버렸어. 절름발이가 범인이야! 허허허, 심지어 절름발이는 끝까지 못 잡아. (스포일러 기사들이) 그 얘기까지 다 한 거 같아. 무빅 >> 이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일러는 뭘까요? 유괴된다는 건 이미 아닐 것 같고, 죽는다는 것도 아닐 거 같고. 이창동 >> 나는 약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줄거리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 안 하는가 보지. 장르영화는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나 보죠. 관객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은데…. 무빅 >> 이제 얼추 여쭤보고 싶었던 것, 듣고 싶었던 것들은 잘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창동 >> 오늘 인터뷰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무빅 >> 다행입니다. 칸에 잘 다녀오시고, 좋은 소식 보내주세요. 이창동 >> 고맙습니다. |
[밀양 Secret Sunshine] 이창동 감독 인터뷰
이창동 감독-구원과 용서? 그렇게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깨놓고 말하자면, 이창동 감독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장관을 지냈다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간 이래 대면 인터뷰가 처음인 탓도 있겠거니 싶었지만, 그 또한 좋은 구실은 되지 못했다. 은 물론, 그 전작들을 관통하는 무게감이 버거웠던 것 같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경직됐거나 아량 없이 옹졸한 인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가벼우면서도 진지했던 이창동 감독과의 첫 자리를 공개한다.
무빅 >> 보면서 웃음도 많이 나와서, 실제로 뵈면 감독님도 유머가 많으실 것 같았는데요. 이창동 >> 유머 많아요. 하하! 무빅 >> 말 나온 김에 여쭤보죠. 종찬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유머러스한 면이 있는데, 전작들에는 없던 캐릭터거든요. 원작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었나요? . 이창동 >> 원작에는 없었고요. 라는 단편 속에는, 핵심 플롯이랄까, 아이를 잃고 신앙에 귀의하는, 그리고 용서라는 아주 핵심적인 이야기의 뼈대를 갖고 있고, 나머지는 전면적으로 다 바꿨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캐릭터는 없죠. 는 남편이 화자예요. 많이 다르죠. 근데 아마 종찬이란 인물이 웃음을 많이 유발하는 건, 음, 뭐랄까, 특별히 웃겨서가 아니고 그 인물,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속물의 어떤 그, 좀 절묘한 사실성이라고 그럴까? 그런 게 웃긴 걸 거예요. 겉으로 보기엔 되게 속물이고 뻔뻔스럽고, 뭐, 거의 성가신 스토커처럼 보이잖아요? 근데 그 내면에 있는 인간다움이랄까, 그런 게 유머로 좀 보였으면 했어요.
무빅 >> 송강호 씨가 또 굉장히 잘해주셨죠. 이창동 >> 생각만큼 그런 대사들의 섬세한 것들을 그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했어요. 자기가 느끼지 못하면 표현하기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탁월한 배우죠. 무빅 >> 가 실은, 저희 매체가 창간한 이래로 감독님과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솔직히 좀 말씀드리면, 어쨌거나 그간의 감독님 행보를 보면, 매체를 선별적으로 만나오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저는 있거든요. 이창동 >> 음, 근데, 뭐 그렇진 않아요. 그렇진 않은데, 내가 나가서 뭐 도움이 될까? 그런 게 있고요. 내가 영화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게 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뭐, 수용하는 독자든 관객이든 그들의 몫이지, 작품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는 것은 좋지 않은 짓이죠. 작자는 작품으로만 말하는 건데. 근데 마케팅이라는 것도 영화산업의 또 하나의 축이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이야기해요. 내가 나가봐야 영양가 떨어진다. 중국집에서 주방장이 얼굴 보여주며 나오면 안 되잖아. 자장면 맛 떨어지잖아. 하하!
무빅 >> 저는 영화를 아주 잘, 확 빠져들어서 봤거든요? 좋다는 사람들이 많은 와중에, 호칭 존칭 다 빼고 말씀드리자면 “그냥 이창동 영화지, 뭐” 하는 반응도 더러 있었어요. 그 ‘이창동 영화’라는 개념에 대해 감독님은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이창동 >> 글쎄요. 내 영화, 나라는 아이덴티티가 한국영화 또는 크게 봐서 영화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창동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이 뭔지,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봐주는 거 고맙죠. 좋든 나쁘든, 그래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작은 몫이라도 내가 갖고 있다는 얘기니까. 무빅 >> 주요 매체들에 리뷰 나온 것들을 추려봤는데, ‘잔인한 리얼리스트’라는 표현도 있더라고요. 이 그렇게 잔인했나 하는 생각도 덩달아 하게 되는데, 저는 도리어 이를테면 아들의 시체가 발견되는 걸 줌인하지 않고 멀리서 계속 그 상태로 잡고 있는 걸 보고, 그건 잔혹성이나 악취미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이창동 >> 어제도 어떤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그렇게 멀리 떨어져 보는 그 장면이 가장 감정적으로 격한 장면인데,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건 냉정한 거 아니냐.” 거리를 두면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저는 반대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관음증에 기초하고 있잖아요. 남의 비극도 구경하고 싶거든. 근데 그걸 꼭 구경시켜 줘야 하는 거냐. 막 밀치고 들어가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하는 거냐. 오히려 그런 경우는 좀 떨어져서 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렇게 보면 오히려 연민을 갖고 있는 태도죠.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리고 그 저수지 장면 자체가 우리 영화에 드물게 나오는 ‘그림’이 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의 무심한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그 장면의 잔인함을 더 드러낼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장면 자체가 긴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주는 느낌은 있을 수밖에 없죠. 거기에 더 이상 보태고 싶지 않았어요.
비밀의 햇볕이 내리쬐는 밀양
무빅 >> 감독님은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영화가 딱 끝나면서 이걸 꼭 좀 여쭤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이창동 >> 이렇게 대답할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신론과 무신론을, 어쨌든 절대자를 믿고 안 믿고에 대해 너무 경계를 둔다고 생각해요. 너무 이원론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저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대답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왜냐면 그렇게 따지는 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너 이쪽 편 나 저쪽 편, 이런 걸 구분하는 거거든요.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게 종종 중요할지도 몰라요. 근데 그거는 다른 신앙? 신학적, 철학적 사유 위에서 하는 질문이라고 봐요.
무빅 >> 전도연 씨가 참고가 될 만한 취재 테이프 같은 걸 안 봤다고 하던데. 이창동 >> 전도연 씨는,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종종 인물이나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소스를 제공할 수도 있잖아요? 전도연 씨는 그런 것에 지배당할까봐 좀 피하는 경향이 있죠. 그건 배우로서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무빅 >> ‘전도연 아닌 전도연’을 원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만족하셨는지. 이창동 >> 그건 나도 모르고 자기(전도연)도 몰라요. 하하. 근데 배우 아우라라는 게 상업영화에서는 사실 필요한 거예요. 근데 우리 영화(밀양)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면 위험하죠. 그래서 가능하면 배우의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싶었는데, 전도연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잖아요. 보이지 않는 옷과도 비슷하잖아요. 안 보이는 옷을 벗으라니까 힘들겠죠, 내 주문이. 사실 어려운 문제로 서로 싸운 건데, 저는 충분히 이신애라고 생각해요. 나는 전도연을 잘 못 느끼겠더라고.
무빅 >> 영화 끝나고 힘들고 지친다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는, 신애가 영화 속에서 받은 고통을 사람들이 똑같이 느꼈기 때문에, 영화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지치고 힘들었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봐도 되죠? 이창동 >> 그렇죠, 궁극적으로는. 그리고 나는 극장에 불 켜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깨끗하게 잊어버리는 영화, 나한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영화는 안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물론 그게 오락의 기능이겠죠. 현실 일탈의 기회를 주는 거니까. 그게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고, 나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남들 다 하니까. 무빅 >> 엔딩도 그런 의미의 흔적을 남기신 건가요?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그것도 예쁜 땅이 아니라 약간 물도 고여 있고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지저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햇빛도 거기에 몇 조각 들어가 있는…. 이창동 >> 관객이 생각한다 그럴까?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여지를 두고 싶었던 거죠. 내가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도 담고 싶었고.
무빅 >> 햇살의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햇살과 구원의 관계는 어떤가요? 이창동 >> 햇볕이라는 게,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햇볕이라는 게 이 영화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영화 제목도, 밀양이라는 공간도 ‘비밀의 햇볕’이고. 아주 단순하게 보면, 비밀스런 하나님의 뜻이겠죠. 신의 뜻이겠죠. 근데 문제는 그게 비밀이라는 거예요. 구원이 있는지 없는지, 구원을 어떻게 찾아야 되는지…. “이게 구원이야~” 이렇게 손에 쥐어주면, 신이겠어요? ‘비밀의 햇볕’이라고 말할 수도 없죠. 그럼 어떻게 찾아야 되지? 작가가 신애한테 구원을 찾아주는 건 아닐 텐데, 절대로. 작가는 절대자 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해석할 뿐이죠. 저도 신애의 삶을 해석해요. 신의 뜻이 어디 있을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본 관객이 하는 거겠죠.
무빅 >> 아까 종교 말씀하셨을 때, 결국은 또 구분적인 사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 중에 자기는 기독교 신자인데 ‘신애가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되더라’고 얘길 하더라고요? 이창동 >> 저는 정말 기독교적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기독교적이라고 보지 않을 것 같아요. 신앙의 초입에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왜냐하면 적어도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니까, 내가 보기에는. 회의 없는 믿음이 어디 있어요? 항상 하나님이 축복만 내려주나? 축복이 안 올 때는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대개 그렇게 반기독교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볼 거라고 말을 해요. 그게 넌센스라는 거죠. 뭐라 그럴까, 굉장히 야만적인… 그런 관점이라고 봐요.
무빅 >> 정말 제목이 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더라고요. 하하! 이창동 >> 하하하! 일단, 제목이 중요하고요. 왜냐하면 밀양이라는 공간 자체가,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이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이름, 명명한다면 밀양이란 이름이 아니면 안 되죠. 햇볕이 있긴 있는데 그 햇볕의 의미는 비밀인 거예요. 그게 우리 삶의 불가해한 부분이죠. 물론 모든 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거나, 인간의 믿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같지는 않겠죠. 문제는 불가해하다... 쉽게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이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밀양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평범해요. 한국의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같았으면 좀 어려웠을 거예요.
인간의 논리를 넘어서는 감성
무빅 >> 신애에게 더 깊은 고통을 줄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던데. 이창동 >> 내가 뭐, 그렇게 고통 주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닌데? 하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고통 아닌가? 음, 어떤 고통은요, 인간의 논리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고통이 있어요. 설명이 안 돼. 설사 설명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로는 견디지를 못해. 그러니까 어떤 고통의 경우에는 인간이 논리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게 돼 있다고. 근데 그걸 받아들였는데 그것으로부터도 배반당했다고 생각하거나, 그걸로 위안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게 한순간의 허망한 착각이었거나, 이렇게 느껴질 때, 그 이상의 고통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신애의 고통 경우에는 고통의 극한까지 간 거죠. 답이 없으니까. 더 이상의 고통…? 뭘 원하는 거야? 하하하하!
무빅 >> 과연 신애는 기독교를 정말로 믿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도 있어요. 하다하다 안 되니까 기댈 곳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는지. 이창동 >> 그런데 그게, 기독교 신자가 되는 과정으로 보면 흔한 과정입니다. 어떤 고통의 경우에는 초월적인 존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애를 잃었다거나, 그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허망한 거예요. 길가의 돌보다도 흔적 없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무화된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다못해 사후에라도 어디선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불멸의 영혼이 있기를 바라게 되죠. 그리고 자기의 고통도 인간의 논리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왜 하필 내가!’ 그러니까 인간의 논리를 넘어선 그 어떤 걸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이건 인간의 논리예요. 근데 그와 함께 동시에 저항감도 생기겠죠. ‘왜!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결국은 그런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어떤 순간에 급속하게 몰입하게 되죠. 기독교 신자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이 초기에는 아주 열혈신자처럼 되다가 빨리 실망하게 돼요. 왜냐하면 그걸로 납득 안 되는 것들이 생기니까.
무빅 >> 신애가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의지할 곳이 절실히 필요한 나머지 “나도 그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자기 감정을 속여서. 이창동 >> 자기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줄 모르고 속였는지도 모르죠. 그런 분석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유보하겠습니다. 허허! 무빅 >> 때 설경구 씨한테 들은 얘긴데, 연출하실 때도 그렇고 말씀하실 때도 그렇고, “음…” “어…” 이러신다면서, 즉석에서 감독님 흉내 연기도 하고 그러던데, 굉장히 장고를 하는 타입이신 것 같아요. 이창동 >> 어, 근데 일단 기본적으로 설경구는 내 악담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하하! 그걸 감안하셔야 되고. 나하고 같이 일한 배우들이 다 내 악담을 해요. 흐흐! 근데 그건 내가 저지른 게 있기 때문에 감수해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흐흐. 그런 정도고, 근데 정말 악담을 하고 싶으면 악담을 안 하겠죠.
무빅 >> 하하! 칸국제영화제 말씀도 듣고 싶은데요. 저는 이렇게 좋은 영화라면 반드시 흥행도 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라서, 경쟁부문 진출의 효과가 흥행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창동 >> 저는 국제영화제의 약발이 한국 관객들한테 이미 떨어졌다고 봐요. 오히려 국제영화제 초청되거나 상 받은 영화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거 같아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콤플렉스가 있잖아요. 밖에 나가서 인정받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고. 근데 지금 관객은 오히려 그런 걸 대단하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만큼 성숙해진 거죠. 저는 저널리즘의 호들갑보다는 관객이 더 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영화제 나가서 소개하는 거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세계적으로도 영화산업이 워낙 양극화돼 가지고 워낙 빅 마케팅하는 방식으로 변해버렸잖아요. 영화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이 문제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상품들을 위한 유일한 벼룩시장이 영화제 시장이에요. 영화제 시장에, 그 벼룩시장까지 가지 않는다면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거나 접할 기회조차 없게 되겠죠.
무빅 >> 등급 문제도 여쭤보죠. 15세 관람가가 나왔는데, 워낙 센 코드들이 들어 있는지라, 솔직히 저는 15세는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창동 >> 등급은요, 분명한 규정과 기준에 따라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가능하면 없애죠. 18세 이하 관객이 얼마나 오겠어요. 무빅 >> 흐흐! 예를 들어서 자해하는 장면 때, 거기다 카메라를 들이댔었다면 18세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걸 감안해서 직접적으로 안 보여주고, 그런 걸 의도한 컷들도 혹시 있는 건 아니었나 해서요. 이창동 >> 전혀 없어요. 저는 18세 이하 관객들, 생각도 안 합니다. 왜냐면 나 자신도 뭐, 썩 권할 만한 영화는 아니잖아요? 하하하! 무빅 >> 저는 많이들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하하하! 이창동 >> 아니, 18세 이하 청소년들한테. 무빅 >> 음, 아무래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게, 감독님이 이거야말로 반드시 관객들이 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여기시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는데, 결국 의 메시지는, 혹은 의도는 ‘구원과 용서’인 거냐…. 이창동 >> 용서와 구원의 문제도 들어 있지만, 저는 거기에서만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용서니 구원이니 하는 것도 인간이 살아가려고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질문이거든요. 좀 폭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삶이라는 것,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는 거니까. 자기 삶을 해명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 용서라는 개념이죠. 내가 괴로우니까 용서라는 개념이 필요한 거예요. 증오하기엔 너무 괴롭거든. 무빅 >> 음, 증오가 괴로워서…? 이창동 >> 네. 증오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자존심 상한다. 용서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예요. 자기 삶을 사는 문제라고. 누구나 고통을 받게 돼 있어요. 고통은 예상하거나 설계할 수 없어요. 그런 것이 닥쳤을 때 어떻게 살 거냐 하는 거거든요. 그걸 이겨내는 방식으로서의 용서를 가져온 건데, 종교도 그래서 필요한 거죠. 용서라는 게 교리적으로 가장 분명하고 가깝게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논리로 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기의 필요에 배반당하면 또 신을 미워하게 돼요.
무빅 >> 그런 의미에서 파악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생각하실 순 없었겠네요. 아까 이 영화의 제목이 이 아니면 안 됐던 게 판명된 것처럼. 이창동 >> 유일신이라는 게, 불교에는 신이 없잖아요. 그리고 용서 구원의 문제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종교니까. 용서가 종교의 태생이거든요. 또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용서라는 문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같지만, 그게 또 집단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종군위안부 같은 문제도 같은 거죠. 지금도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이나, 한국 사회 안에서도 그게 생기잖아요 이런 문제가 인간 존재를 들여다보는 굉장히 본질적인 화두인 것 같아요.
고통을 말하는 이창동
무빅 >> 전작들에도 그런 본질적 화두가 있었을까요? 이렇게 듣지 않고는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이창동 >> 용서라는 화두로 보지는 않았죠. 나름대로 같은 경우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소통이라는 문제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고. 같은 경우는 시간…. 어차피 한 작품에서 모든 얘기를 다 할 순 없죠. 무빅 >> 그래도 관통하고 있는 건 결국 고통인 것 같아요, 고통! 이렇게 맥을 잡고 고통을 대입해 보니까 다 들어맞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창동 >>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무빅 >> 고통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이런 인터뷰 자리도 감독님께는 일종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아닐까 싶어요. 허허! 이창동 >> 네네, 정말로.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네? 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 설명하게 하는 상황, 그게 참 싫어요. 그렇게 설명 다 해버릴 거면 영화 만들 이유가 없잖아. 그죠? 그리고 의 경우에는 왜 이렇게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안 지켜지는지…, 깜짝 놀랐어요. 왜 때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했던 식으로, 그냥 뭐, 다 터져버렸어. 절름발이가 범인이야! 허허허, 심지어 절름발이는 끝까지 못 잡아. (스포일러 기사들이) 그 얘기까지 다 한 거 같아. 무빅 >> 이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일러는 뭘까요? 유괴된다는 건 이미 아닐 것 같고, 죽는다는 것도 아닐 거 같고. 이창동 >> 나는 약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줄거리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 안 하는가 보지. 장르영화는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나 보죠. 관객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은데…. 무빅 >> 이제 얼추 여쭤보고 싶었던 것, 듣고 싶었던 것들은 잘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창동 >> 오늘 인터뷰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무빅 >> 다행입니다. 칸에 잘 다녀오시고, 좋은 소식 보내주세요. 이창동 >> 고맙습니다. |
송지환 기자 200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