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새벽편지〃

이정식2007.06.02
조회53
〃사랑밭새벽편지〃

전기밥통

 

우리 집에는서른 살이 넘은

오래된 전기밥통이 있어요

스위치를 꽃으면 전기가 들어온다는 펴시로

빨갠 불이 켜져야 하는데 소식은 없고

밥을 퍼 넣기 전에 미리 보온을 눌러야 하는

그야말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밥통이죠

 

몇 해 전 수리하는 곳을 묻고 물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주인아저씨께서는

"이것 그만 버리세요! 요즘 이런 전기밥통

이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고쳐봐야 쓰지도 않을 것을

괜히 배보다 배꼽만 더 커요!"

 

흰색바탕이나 가냘픈 연분홍코스모스 무느가

아이보리로 퇴색해버렸지만

그래도 사용 후 깨끗이 닦아

잘 보관해 놓았기 때문에 때나 먼지가

조금도 끼지 않아 겉보기에는 새 물건 같답니다.

 

지금으로 부터 32년 전인 1975년 3월29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에

우리부부는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그 날 여고시절에 삼총사라 불리며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명자, 숙례 두 친구가 축하한다면서

부피가 큰 누런 상자를 예식장으로 들고 왔지요

 

아마 요즘 같아서는 귀찮다며 택배로 보낸다든가

간단히 현금으로 전달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맞벌이해야 할 나에게

가장 적당한 물건이라 고심 끝에 결정짖고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선물로

거금을 주고 구입했지요

 

편하고 빠르게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다양한

각종 전기압력밥솥이 대량생산되어

'일제가 좋다, 미제가 좋다

뭐라 해도 서비스 제때, 제때 잘 받으려면

국산이 최고다.' 라며

나 역시 압력밥솥이이나 전기밥솥을 이용하고 있지만

밥알이 삭혀지는지 안 삭혀지는지

뚜껑을 열어 자주 확인해야하는

전기밥통을 결코 버릴 수가 없답니다

 

우리부부의 결혼기념 나이와 똑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따스한 두 친구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느라 바빴던

신혼시절에 편리하게 따스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두 친구와의 잊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이 깊이 배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계옥-

 

겉보기에 번쩍번쩍한 물건들보다

추억이 감긴 손때 묻은 물건들이

더 소중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두고 가까이 함께할수록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법이지요

- 오래된 것이 때론 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