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 현대이발관 아저씨...

이성진200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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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5학년때 구로구 시흥동에서 (현재 광진구 시흥동) 이곳 압구정동으로 이사오고부터의 이야기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압구정동에 가장 내가 단골로 생각하고 있고... 예전 추억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장소이며, 아직도 그 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 곳에 들을 때마다 그리고 그 분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벌써 일흔을 훌쩍 넘어 깊게 패인 주름살과, 신경통으로 인해서 다리를 절고 계시며, 통증으로 인해서 구두를 신지 못하고 운동화를 신고 계시는 정말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아직까지도 그곳은 20년 전의 그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지금은 아니지만, 1987년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전혀 부모님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각자의 학업생활과 친교활동... 심지어는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싸움질까지 하던 시대였다.

 

현재의 초등학교 아이들의 부모님의 각별한 과잉보호로 인해서 아이들의 자립심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떨어지고 아이들 또한 부모님 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 이 때와는 많이 다른 시대였다.

 

나는 남자였고, 남자는 으레 머리를 깎기 위해서는 '이발소'에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자 아이들은 예외없이 '미장원'에 가는 시대였고...

 

이전 시흥에 있는 학교 앞 이발소에서는 '학생이발 800'원이라는 푯말을 붙여놨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론 그 때엔 버스가 60원, 공중전화 20원, 오락기 10원, 짜장면이 500원 하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1997년 압구정동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가장 가까운 이발소는 '현대이발관'이였다. 여느 이발소와 마찬가지로 이발소로 내려가는 입구에 하얀색-파란색-빨간색의 길쭉한 봉 모양의 광고사인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입구로 들어가 어두 컴컴한 지하로 들어가 이발소 문을 열면 그때 당시 학생들이 즐겨 보던 만화책, 그리고 재떨이... 그리고 그 당시 이발소 사장 아저씨가 즐겨피던 솔 담배의 케이스로 만든 재떨이 받침대가 있었다.

그 옆에는 항상 젊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여성잡지책 "여성동아"가 최신호까지 꼼꼼히 꽃혀있었고, 2~3일치의 꾸겨진 조선일보 및 스포츠 조선... 그리고 한켠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컬러 TV와 손님들에게 주기 위한 야쿠르트를 함껏 머금은 오래된 냉장고...

그옆에 나무로된 썩기 일보 직전의 문을 열어보면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모터 옆에 삐딱하게 서 있는 남성용 소변기... 그리고 그곳을 비추는 한줄짜리의 촉수 떨어지는 자그마한 형광등...

그리고 북적거리는 손님들...

아빠손을 잡고 온 어린 유치원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초등학생들과, 안경낀 중/고등 학생들의 피곤해 보이는 눈... 그리고 어느 회사의 중역처럼 보이는 나이 지긋이 들어보이고 머리에 기름칠 하신 양복입은 아저씨...

 

반쯤 가려져 있는 고정식 커튼을 양옆으로 제쳐 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이발의자 좌로 4개 우측에 2개... 면도를 위해서 뜨거운 물을 계속끓여 놓아 한켠에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면도용 칼 4개와 면도를 위한 크림통 그리고 그곳에 꽃혀있는 붓, 또 그 옆에는 따뜻하게 피부를 풀어줄 수건 여러개가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입구쪽에 놓여져 있는 은색 일제 라디오가 쉴새없이 떠들어 댄다.

 

사장아저씨는 항상 솔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고, 밀려드는 손님의 머리를 손질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옆의 의자에는 나이드신 50대의 아저씨가 누워 있고 잠을 자는 듯했다. 그 아저씨의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있는 아가씨쯤 되어보이는 누나들... 이제는 다들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 또 그 옆에는 이발을 마치고 피곤해서 잠들어 있는 아저씨... 신문을 얼굴에 포개어 놓고 두 다리는 머리감는 세면대 위에 올려 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여느 아이들과 같이 돈 1500원을 손에 쥐고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용소야"... 그래... 쿵후소년 용소야 이야기다. 소림사가 아닌 대림사에서 싸움의 기술을 습득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출생의 비밀을 캐는 스토리의 만화... 그때당시 약 1개월이나 2개월마다 이발소를 들를 때마다 새로나오는 연재를 보는 그 재미는 이 이발소를 들르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한참을 만화를 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부르신다. 난 정말 이발을 싫어해서 머리가 잔뜩 길어졌을 때에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서 이발소를 찾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이발소에 오게되면 분주한 그곳 모습에... 그리고 만화책을 보는 재미에... 그리고 이발 후에 야쿠르트 한병을 얻어먹을 수 있는 쏠쏠함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중학교에 가서도...

고등학교로 진급을 하게 되어서도...

이 이발소는 계속 사람이 붐볐고... 장사도 잘되었다.

 

하지만 사회의 분위기는 이 좋은 이발소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

퇴폐 이발소의 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발소 보다는 미용실을 찾게 되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머리스타일에 잔뜩 신경쓰며, 젊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대거 포진한... XXX헤어 스튜디오 등의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이발소를 찾아오는 연령대는 차츰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단골들이 주로 찾아오는 동네 이발소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직원은 원래 사장아저씨, 나이든 아줌마, 그리고 머리가 노란색인 이발사 아저씨, 그리고 젊어보이는 그렇지만 좀 요염한 아가씨 누나 이렇게 4명 이었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다보니, 자연스레 식구들도 줄게 되고 이제는 사장 아저씨만 할아버지가 된 채 혼자 계시게 되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이발소로 향하였다. 이발소를 제외한 주위의 상가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빵집도 두어번 바뀌었고, 양복점이며 수입제품집 등... 새로 생기거나 이름을 바꾼 곳이 한 두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이발소'는 그때 그 간판 그대로 남아있다.

 

그 지하로 가는 계단을 걸어 이발소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갔다. 예전 그대로의 어두컴컴한 조명... 그리고 원형의 유리 재떨이... 그런데 솔담배곽으로 만든 재떨이 받침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 2003년 6월 자의 여성동아 잡지... 고현정 이혼사실과 이미경 폐암 투병기(지금은 고인이 되셨다.)가 메인 타이틀로 겉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고... 그 옆에 책장은... 책들이 시커멓게 변해서 쌓여 있었다... TV와 냉장고는 하나도 변한게 없이 그대로 였다. TV는 좋지 않은 노이즈 잔뜩 깔린 화면을 보여주며... 쉴새없이 화면을 바꾸었다. 이발하는 방으로 통하는 커텐도 그대로 였고 그 안에 사장님 아저씨와 이발이 끝나가는 듯한 상태의 손님이 앉아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이발을 마치고 나가자... "여기와서 앉아"하시는 사장님 말씀... 예전과 다른... 떨리며 힘이 없으신 목소리였다. 지금쯤이면 백발이 되어 있으셔야 하는데... 염색을 하셨다 보다... 머리가 새까맣다... 하지만 연로의 모습은 그의 움직임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다리를 절고 계시며,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하루종일 자리를 지키시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실 그 분의 모습...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쳐 지가가며... 예전에 왕성했던 그 때의 그곳이 오버랩 되었다.

울컥하는 마음... 하지만 애써 참고 의자에 앉았다.

 

"오늘 날씨가 좋지? 벌써 여름이 시작된게야..."

"네 그러네요. 이번 여름은 빨리 시작되는 거 같아요. 꼭 이번엔 장마도 없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슨소리야... 월말에는 장마가 시작된대..."

"네... 이젠 더워지니까... 머리도 짧게 깎았으면 해요..."

 

20년전 보았던 이발 준비의 모습이 하나도 변한게 없었다.

 

"다리는 좀 어떠세요? 차도가 있나요?"

"뭐 신경통인데... 이러고 사는거지..."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병원에 가서 원인을 알고 치료를 하면 좋을 텐데...

 

"근데 왜 꼭 장마가 오면 수해를 입은 지역이 꼭 또 수해를 입어, 도데체 이런일이 왜 반복되야 하는 거지?"

"나라가 치수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정권이 돈을 딴데다 써서 그런거야... 나쁜 X들..."

"그러게요..."

 

역시... 이번에도 결론은 정권 탓이다...

 

오늘 이발하는 아저씨의 보습을 거울을 통해 하나하나 세밀하게 봤다. 예전처럼 신속하지는 않지만 정성은 더 있으신 거 같다.

이발이 어느정도 진행되자 아저씨가 하얀 가루를 내 머리에 바르신다.

 

"이 가루는 왜 머리에 바르는건가요?"

"이거? 그래야 머리가 하얗게 보이니까... 세밀하게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다듬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럼 이 가루는 베이비 파우더로 만든 건가요?"

"이거? 밀가루지, 밀가루야. 다른 가루랑은 달리 몸에 해롭지 않아... 몸에 좋은거지..."

 

난 이 가루가 밀가루라는 사실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발을 다 마칠 때쯤... 면도칼로 가위로 손질이 되지 않는 부분을 손질해 주셨다...

 

'... 머리를 감아 달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없이 약 10초 정도 지나니... 수건을 내 목에 둘러주신다... 그리고 바로 물을 틀어주시는 것 아닌가....

 

'... 앗차! 실수... 먼저 빨리 말씀드릴걸....'

 

안그래도 신경통으로 고생하시는 아저씨게 머리까지 감겨달라고 할수는 없는일... 하지만 잠깐의 머뭇거림은... 아저씨게 짐을 실어드리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힘없이 나오는 물... 하지만 순간 온수기의 도움탓에 따뜻했고...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실때의 그 모습... 바로 내가 초등학생때... 중학생때... 바로 그 손으로 감겨주시는 것이었다.

 

두어차례 머리를 물로 행궈주시고 나서... 손으로 내 얼굴에 비눗기를 없애려고 쓰윽하고... 문지를때에 그 감촉... 열 두세살때의 내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 느낌... 눈물이 왈칵 솟았다...

 

머리를 말리고 나서... 아저씨게 돈을 드리며...

 

"병원이라도 가 보세요... 빨리 나으셔야지요..."

"이젠 나이 먹을만큼 먹었는데... 괜찮아... 이러다 말겠지..."

"그럼 건강하세요... 저 갈께요..."

"들어가... 어... "

 

무언가 한마디 더 여쭈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떠한 말씀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이 그분 마음에 지금 와 닿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추억의 장소... 시간이 멈추어린 그 장소를... 다음 몇달 후에 또 올 것을 기약하면서... 문을 나섰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상가 밖으로 나가니...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 그리고...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인도와 까맣게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그 너머 보이는 드문드문한 모던 스타일의 행인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문득 하늘을 봤다. 구룸 한점 없이 깨끗한 하늘... 하지만 시원하단 느낌보단 여름이 왔다는 신호인양...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내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현대이발관 아저씨...

정말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꼭 영화한편을 보는 그 느낌... 그리고 그 가운데 서있는 주인공의 체험...

바로 그곳이 지금도 빙글빙들 돌아가는 하양-빨강-파랑의 이발소 표지판의 현대 이발관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