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참 말하기 어려운것이 하나 있다... 내 부모..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이 넘어 중반을 항해 하고 있다... 나이 스물때.. 난 대학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정해준 직장을 다녀야 했다..소위 말하는 현장일.. 그리고 군 전역후 하루 쉬고 다시 아버지가 그 전에 정하여둔 직장에 다녔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었는 모양이다.. 그렇게 2년여 정도 흐르고... 이것은 아니지 싶어 그 직장을 나와 공부에 전념을 하였다. 그러나 부딪히는 아버지와 언쟁.. 내 인생은 내가 설계 합니다..라고 문을 박차고 나와서는 내 맘데로 생활을 했다.. 야간 아르바이트 하면서 낮에는 컴퓨터와 영어를 청강하였고.. 그리고 방송통신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 와중에 내 부모 특히 내 아버지라는 분께서는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돈과 왜 멀쩡한 놈의 xx가 일은 안하고 공부만 하느냐.. 다그치며 심지어는 그 나이에 난 맞기 까지도 했었다.. 그렇게 내 학위를 받고.. 그렇게 내 삶을 설계하며 모 기업의 구매부쪽과 경영 기획실로 예전과는 좀 다른..그런 규모의 회사에서 소위 상장 더욱이 국내 몇대 기업중 하나인 기업에 입사를 하고.. 그럭저럭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내 평생의 반쪽도 그 당시에 만났었던 거 같다.. 하지만.. 이미 내 급여 통장은 아버지 손에 들어가 있었고.. 난 사원 주택에서 생활하며...급여에서 10여만원 외에는 만질 수 없었다.. 장남이고..내 어머니께서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양 늘 날 설득 하셨다..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다가.. 난 내 평생의 반쪽과 결혼 하겠으니...결혼 자금좀 달라 했었다..후후 바보 같은 생각 이었다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없단다...없으니 본가에 들어와 살란다.. 당시 본가는 22평 빌라...그것도 지하..휴~~] 결국 난 사내 대출을 이용하여 우린 25평의 3층 빌라로 부모님 모시고 살기로 했다.. 그것은 내 평생의 가장 큰 실수다.. 난 자식이 아니다.. 내 아내와 내 아이가 3살 될때까지..봐온 남편과..아빠의 모습은.. 할아버지의 줏어온 자식 아니..어쩌면 노예 취급을 당한 모습 외엔 없었던거 같다.. 내 아내가 묻는다.. 오빠는 이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당시 나에겐 경제권이 없었다.. 내 아버진 내 아내에게 내 급여에서 딱 30만원만 제하고 나머지는 다 가지고 가셨다..뭐 했을까? 가계의 빛이 참고로 우리집은 굉장히 많다..물론 그 빛 청산도 않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않있다 군대 다녀오고 또 얼마 안가서 아버지가 소개해준 생산직의 자릴 마다하고 나갔으니.. 그만큼 아버지란 분은 내게 실망을 많이 하셨을 꺼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이건 아니지 싶다. 결국 ... 난 내 부모에게 출가를 한다고..말씀 드리고.. 내 식구들...과감히 내 식구들이라 말하고 싶다...만 데리고.. 300만원을 대출 받고.. 25만의 세를 내면서 살고 있다.. 보증금 300만원의 월셋방... 낡은 18평짜리 아파트..그것이 나와 내 가족이 첨 가져본 우리들만의 보금 자리다.. 내 아이는 이제 4살인데.. 가끔씩 자다가 놀라서 깨는 건 여전히 있다.. 내 부모가 내 아이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간간히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한 욕설.. 그것은 내 아이에게 살면서 들어야 할 가혹함이고..놀라야 할 이유가 된다.. 내 아이가 자다가 밤중에 깨서 우리방으로 울면서 온다..] 그리곤 할버지가 왔어....라고...엉엉 대성통곡하면서 온다.. 그럴때마다.나와 내 아내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두 둔에 미안한 눈물이 가득하다.. 내 하나밖에 없는 내 여동생.. 내가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픈 동생이 있었다.. 하지만..그 친구는 결혼해서 따로 살림을 내고는 내 부모의 말만 듣는다.. 이미 난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얘길 했는지 모르겠지만...천하의 불효자요,,못된놈이고.. 내 아내는 정말 나쁜 xx가 되어 있었다..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결국 난 내 동생과 말하는 것도 포기 했었다.. 그렇게 우린 가족이란 이름들을 다 등지고..나서야 우리 가족의 평화가 왔다고 생각 했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내 아버지란 사람은 우리집에 왔다..휴~~ 절망이다..이웃이 들릴 정도로..내 아버지란 사람은 고함을 치고.호통을 치고.. 이욕 저욕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의 욕을 하시고는 돌아가셨단다.. 왜..돈을 안주냐고....휴~~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 전화를 받고는 난 두려웠다.. 결국..내 다니느 회사까지 찾아 오셔서는...무슨 빛받으러 온 사람처럼.. 협박하시고.. 갖은 욕하시고.. 문자로 하루에 심하면 30여개 가까이 욕설에 비방에 협박까지.. 그렇게 난 망가지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그런 와중에도 아이와 나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내 아내가 고맙고 감사하다... 결국 세번의 회사 방문으로 급기야 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좋다던 회사 그만 두고 한달정도를 쉬면서 세상을 두려워 했었고..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숱하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 주게 되었다.. 그리곤 어디선가 자기네 회사로 와달라고 전화가 왔지만.. 선뜻 나서질 못했다..다시 반복이 될까봐서.. 한달을 쉬면서도 지속적인 협박과...돈으로 달레고..그러다 돈을 못드리게 되면 이젠 동생네도 같이 나에게 달려 든다.. 밤마다 꿈에서 쫓기는 꿈을 꾸고.. 내 아이는 자다가 놀라서 울고.. 내 아내는 그런 아이와 그런 남편을 지키면서 밤잠 재대로 못자고..아이방과 우리방을 왔다갔다. 결국 난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적하였고.. 다시 우린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겁이 나서..아직도..우린 동사무소에 신고를 할 수가 없다.. 뭔가에 꽉 막혀 있는 이 느낌.. 지금 내 아내와 내 아이는 해맑은 웃음으로..특히 이사오고 나서는 내 아이가 밤에 자다가 울면서 깨는 일이 드믈어 졌다.. 우린..남들이 보면 부러워 할 정도의 닭살이다.. 그런 우리의 해맑은 모습들을 다시 앗아 갈까봐서.동사무소 신고도 못하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오열과 울분을 토하고 싶다.. 내 아내와 내 아이에게 좀더 괜찬은 아빠가 되어야 할텐데...
내 부모 이야기..
나에게는 참 말하기 어려운것이 하나 있다...
내 부모..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이 넘어 중반을 항해 하고 있다...
나이 스물때..
난 대학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정해준 직장을 다녀야 했다..소위 말하는 현장일..
그리고 군 전역후 하루 쉬고 다시 아버지가 그 전에 정하여둔 직장에 다녔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었는 모양이다..
그렇게 2년여 정도 흐르고...
이것은 아니지 싶어 그 직장을 나와 공부에 전념을 하였다.
그러나 부딪히는 아버지와 언쟁..
내 인생은 내가 설계 합니다..라고 문을 박차고 나와서는 내 맘데로 생활을 했다..
야간 아르바이트 하면서 낮에는 컴퓨터와 영어를 청강하였고..
그리고 방송통신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 와중에 내 부모 특히 내 아버지라는 분께서는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돈과 왜 멀쩡한 놈의 xx가 일은 안하고 공부만 하느냐..
다그치며 심지어는 그 나이에 난 맞기 까지도 했었다..
그렇게 내 학위를 받고..
그렇게 내 삶을 설계하며 모 기업의 구매부쪽과 경영 기획실로
예전과는 좀 다른..그런 규모의 회사에서 소위 상장 더욱이 국내 몇대 기업중 하나인
기업에 입사를 하고..
그럭저럭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내 평생의 반쪽도 그 당시에 만났었던 거 같다..
하지만..
이미 내 급여 통장은 아버지 손에 들어가 있었고..
난 사원 주택에서 생활하며...급여에서 10여만원 외에는 만질 수 없었다..
장남이고..내 어머니께서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양 늘 날 설득 하셨다..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다가..
난 내 평생의 반쪽과 결혼 하겠으니...결혼 자금좀 달라 했었다..후후
바보 같은 생각 이었다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없단다...없으니 본가에 들어와 살란다..
당시 본가는 22평 빌라...그것도 지하..휴~~]
결국 난 사내 대출을 이용하여 우린 25평의 3층 빌라로 부모님 모시고 살기로 했다..
그것은 내 평생의 가장 큰 실수다..
난 자식이 아니다..
내 아내와 내 아이가 3살 될때까지..봐온 남편과..아빠의 모습은..
할아버지의 줏어온 자식 아니..어쩌면 노예 취급을 당한 모습 외엔 없었던거 같다..
내 아내가 묻는다..
오빠는 이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당시 나에겐 경제권이 없었다..
내 아버진 내 아내에게 내 급여에서 딱 30만원만 제하고 나머지는
다 가지고 가셨다..뭐 했을까?
가계의 빛이 참고로 우리집은 굉장히 많다..물론 그 빛 청산도 않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않있다 군대 다녀오고 또 얼마 안가서
아버지가 소개해준 생산직의 자릴 마다하고 나갔으니..
그만큼 아버지란 분은 내게 실망을 많이 하셨을 꺼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이건 아니지 싶다.
결국 ...
난 내 부모에게 출가를 한다고..말씀 드리고..
내 식구들...과감히 내 식구들이라 말하고 싶다...만 데리고..
300만원을 대출 받고..
25만의 세를 내면서 살고 있다..
보증금 300만원의 월셋방...
낡은 18평짜리 아파트..그것이 나와 내 가족이 첨 가져본 우리들만의 보금 자리다..
내 아이는 이제 4살인데..
가끔씩 자다가 놀라서 깨는 건 여전히 있다..
내 부모가 내 아이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간간히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한 욕설..
그것은 내 아이에게 살면서 들어야 할 가혹함이고..놀라야 할 이유가 된다..
내 아이가 자다가 밤중에 깨서 우리방으로 울면서 온다..]
그리곤 할버지가 왔어....라고...엉엉 대성통곡하면서 온다..
그럴때마다.나와 내 아내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두 둔에 미안한 눈물이 가득하다..
내 하나밖에 없는 내 여동생..
내가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픈 동생이 있었다..
하지만..그 친구는 결혼해서 따로 살림을 내고는 내 부모의 말만 듣는다..
이미 난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얘길 했는지 모르겠지만...천하의 불효자요,,못된놈이고..
내 아내는 정말 나쁜 xx가 되어 있었다..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결국 난 내 동생과 말하는 것도 포기 했었다..
그렇게 우린 가족이란 이름들을 다 등지고..나서야 우리 가족의 평화가 왔다고 생각 했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내 아버지란 사람은 우리집에 왔다..휴~~
절망이다..이웃이 들릴 정도로..내 아버지란 사람은 고함을 치고.호통을 치고..
이욕 저욕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의 욕을 하시고는 돌아가셨단다..
왜..돈을 안주냐고....휴~~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 전화를 받고는 난 두려웠다..
결국..내 다니느 회사까지 찾아 오셔서는...무슨 빛받으러 온 사람처럼..
협박하시고..
갖은 욕하시고..
문자로 하루에 심하면 30여개 가까이 욕설에 비방에 협박까지..
그렇게 난 망가지기 시작했다..
내 아내는 그런 와중에도 아이와 나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내 아내가 고맙고 감사하다...
결국 세번의 회사 방문으로 급기야 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좋다던 회사 그만 두고 한달정도를 쉬면서 세상을 두려워 했었고..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숱하게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 주게 되었다..
그리곤 어디선가 자기네 회사로 와달라고 전화가 왔지만..
선뜻 나서질 못했다..다시 반복이 될까봐서..
한달을 쉬면서도 지속적인 협박과...돈으로 달레고..그러다 돈을 못드리게 되면
이젠 동생네도 같이 나에게 달려 든다..
밤마다 꿈에서 쫓기는 꿈을 꾸고..
내 아이는 자다가 놀라서 울고..
내 아내는 그런 아이와 그런 남편을 지키면서 밤잠 재대로 못자고..아이방과 우리방을 왔다갔다.
결국 난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적하였고..
다시 우린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겁이 나서..아직도..우린 동사무소에 신고를 할 수가 없다..
뭔가에 꽉 막혀 있는 이 느낌..
지금 내 아내와 내 아이는 해맑은 웃음으로..특히 이사오고 나서는
내 아이가 밤에 자다가 울면서 깨는 일이 드믈어 졌다..
우린..남들이 보면 부러워 할 정도의 닭살이다..
그런 우리의 해맑은 모습들을 다시 앗아 갈까봐서.동사무소 신고도 못하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오열과 울분을 토하고 싶다..
내 아내와 내 아이에게 좀더 괜찬은 아빠가 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