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Thierry Henry 국 적: France 포지션:FW 소속팀: Arsenal FC(England) 생년월일:1977년 8월 17일 신체치수:188cm 83kg 팀가입일:1999년 8월 3일 경기데뷔: Premier League v Leicester City (h) 7th Aug 1999 (Won 2-1) 전소속팀:AS Monaco, Juventus
[Bianconeri - Juventus에서의 憂鬱]
98프랑스 월드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앙리는 98/99시즌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이탈리아 최고명문 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을 한다. 유벤투스에서 앙리에게 건 기대는 매우 컸다. 보통 어마어마한 이적료가 나오지 않는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107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앙리를 데려온 것만 봐도 그걸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빠른 스피드를 무기로한 윙어로 플레이했던 앙리는 이탈리아 무대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세리아 특유의 타이트한 수비와 거친 몸싸움은 앙리에게 쉽사리 돌파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결국 앙리는 적응에 실패하고 만다. 앙리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유벤투스의 팬들은 앙리가 적응에 실패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하자 앙리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월드컵때 기록한 3골이 거품이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면서 앙리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결국 유벤투스에서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16경기 출전, 3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잉글랜드의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앙리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유벤투스에서 보낸 6개월은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Good Old Arsenal - 아스날에서의 초창기와 유로 2000]
유벤투스에서 쓰디쓴 좌절을 맛본 앙리에게 있어서 잉글랜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게다가 새로 유니폼을 입게 된 팀은 프랑스 선수들이 주축인 아스날. 아스날의 사령탑인 아르센 벵거 또한 프랑스인이고 벵거는 앙리의 전 소속팀인 AS모나코의 사령탑을 위임했던 경력이 있어 아스날이 가진 조건은 앙리에겐 최고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구를 구사한다는 프리미어리그, 스피디한 축구를 즐기는 앙리에게 있어서 가장 적합한 무대였다.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앙리에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뛸 것을 지시한다. 앙리의 이러한 포지션 변화는 당시 아스날의 주전골잡이였던 아넬카의 이적으로 인한 방편으로 볼 수도 있으나, 원래 스트라이커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타고난 득점감각을 지닌 앙리가 충분히 스트라이커로 변화할 수 있음을 꿰뚫어본 벵거감독의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앙리의 이러한 변화는 성공이었다. 폭발적인 스피드, 타고난 유연성, 완벽한 볼 컨트롤과 바디컨트롤, 완벽한 득점감각. 앙리의 이러한 재능은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갖춘거나 다름없었다. 아스날에서 처음 맞이한 시즌인 99-00시즌 31경기 출전해 17골을 뽑아내면서 프리미어리그 최고 스트라이커 탄생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아스날에서의 이러한 활약으로 앙리는 대표팀에서도 다시 중용되기 시작한다. 유로2000을 앞둔 프랑스 대표팀, 2년 전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이 건재한 프랑스로선 유로2000까지 제패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이었던 르메르감독은 앙리를 공격의 축으로서 중용하기 시작했고 유로2000 무대에서도 앙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앙리는 유로 2000에서 3골을 기록하였으며 그 중 조별예선 덴마크전에서 보여준 득점은 유연성, 개인기, 골결정력의 3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된 환상적인 골이었다. 앙리를 비롯한 아스날의 프렌치 커넥션들은 이 대회에서 종횡무진 활약했고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98월드컵에 이어 유로2000까지 제패하게 된다.
[King Henry - 살아있는 아스날의 영웅]
아스날에 와서 진정한 스트라이커로 변모한 앙리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기 시작했다. 투톱 파트너 데니스 베르캄프와의 호흡은 완벽해지기 시작했고 이제 잉글랜드의 축구 스타일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쳐 잉글랜드의 축구스타일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 00/01시즌에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리그 득점랭킹 3위에 랭크되었다. 01-02시즌 앙리의 득점 감각은 절정에 달했다. 돌파에 이은 득점, 매끈한 중거리슛 등 다양한 득점 패턴으로 상대의 빈틈이 있으면 언제나 놓치지 않고 골을 뽑아내면서 완벽에 가까운 골 결정력을 과시했다. 앙리의 환상적인 활약과 아스날의 환상적인 팀웍이 맞물리면서 01-02시즌 아스날은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한다. 그리고 앙리는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면서 진정한 스트라이커로 변신한지 3시즌 만에 득점왕에 오른다. 성공적으로 마친 01-02시즌이 끝난 뒤 앙리는 어느새 아스날 서포터들 사이에서 앙리왕(King Henry)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앙리는 아스날의 왕이자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앙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티에리는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파워, 그리고 골센스. 그와는 통하는 게 있어서 어디에 패스를 넣으면 좋을지 100% 이해하고 있습니다." - 데니스 베르캄프
[~ing.. -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좌절과 새로운 시작]
2002년 여름, 월드컵 제패를 위해 앙리와 프랑스 대표팀은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을 방문한다. 많은 축구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우승을 예측했고 프랑스 대표팀 또한 레블뢰가 다시 한번 월드컵의 승자로 기록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의 친선경기에서 지단이 부상을 입은걸 시작으로 악몽은 시작되었다. 세네갈과의 개막전에서 레블뢰는 잇 달은 득점 찬스를 놓치면서 1-0으로 패했고 앙리는 이날 골대를 맞추고 만다. 앙리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난 우루과이와의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앙리는 위험성 짙은 태클을 하면서 퇴장을 당한다. 프랑스의 언론들은 우루과이전 무승부의 요인을 실력 발휘를 해보지 못하고 퇴장당한 앙리에게 돌렸고 앙리를 비난하는 프랑스의 여론은 빗발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별 예선 덴마크전, 앙리는 징계로 인해 조국 프랑스가 2-0으로 덴마크에게 완패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를 종횡무진하려 했던 앙리에게 있어서 2002 한일월드컵은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는 악몽과도 같았다.
월드컵에서의 좌절을 뒤로하고 맞이한 02-03시즌 앙리는 더욱 성숙한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이제 득점뿐만 아니라 패스에도 열을 올리며 어시스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득점, 패스에 이어 프리키커로서의 능력도 보여주면서 그의 플레이가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02-03시즌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에서 좌절하면서 FA컵 우승에 그쳤으나 앙리는 24골 23어시스트라는 타 스포츠에서도 보기 힘든 꿈과 같은 기록을 세우면서 각종 올해의 선수상을 휩쓴다. 그리고 2003년 프랑스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4골을 기록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면서 앙리는 대회 MVP로 선정된다. 파리의 불량소년에서 세계 최정상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티에리 앙리. 앞으로 우리가 앙리를 바라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다다르고 있는 ‘현재진행형’ 선수라는 점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스날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아스날에서 플레이하고 싶습니다." - 티에리 앙리
[ ● 앙리 스페셜 ]
성 명: Thierry Henry
국 적: France
포지션:FW
소속팀: Arsenal FC(England)
생년월일:1977년 8월 17일
신체치수:188cm 83kg
팀가입일:1999년 8월 3일
경기데뷔: Premier League v Leicester City (h) 7th Aug 1999 (Won 2-1)
전소속팀:AS Monaco, Juventus
[Bianconeri - Juventus에서의 憂鬱]
98프랑스 월드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앙리는 98/99시즌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이탈리아 최고명문 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을 한다. 유벤투스에서 앙리에게 건 기대는 매우 컸다. 보통 어마어마한 이적료가 나오지 않는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107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앙리를 데려온 것만 봐도 그걸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빠른 스피드를 무기로한 윙어로 플레이했던 앙리는 이탈리아 무대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세리아 특유의 타이트한 수비와 거친 몸싸움은 앙리에게 쉽사리 돌파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결국 앙리는 적응에 실패하고 만다. 앙리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유벤투스의 팬들은 앙리가 적응에 실패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하자 앙리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월드컵때 기록한 3골이 거품이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면서 앙리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결국 유벤투스에서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16경기 출전, 3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잉글랜드의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앙리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유벤투스에서 보낸 6개월은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Good Old Arsenal - 아스날에서의 초창기와 유로 2000]
유벤투스에서 쓰디쓴 좌절을 맛본 앙리에게 있어서 잉글랜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게다가 새로 유니폼을 입게 된 팀은 프랑스 선수들이 주축인 아스날. 아스날의 사령탑인 아르센 벵거 또한 프랑스인이고 벵거는 앙리의 전 소속팀인 AS모나코의 사령탑을 위임했던 경력이 있어 아스날이 가진 조건은 앙리에겐 최고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구를 구사한다는 프리미어리그, 스피디한 축구를 즐기는 앙리에게 있어서 가장 적합한 무대였다.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앙리에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뛸 것을 지시한다. 앙리의 이러한 포지션 변화는 당시 아스날의 주전골잡이였던 아넬카의 이적으로 인한 방편으로 볼 수도 있으나, 원래 스트라이커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타고난 득점감각을 지닌 앙리가 충분히 스트라이커로 변화할 수 있음을 꿰뚫어본 벵거감독의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앙리의 이러한 변화는 성공이었다. 폭발적인 스피드, 타고난 유연성, 완벽한 볼 컨트롤과 바디컨트롤, 완벽한 득점감각. 앙리의 이러한 재능은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갖춘거나 다름없었다. 아스날에서 처음 맞이한 시즌인 99-00시즌 31경기 출전해 17골을 뽑아내면서 프리미어리그 최고 스트라이커 탄생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아스날에서의 이러한 활약으로 앙리는 대표팀에서도 다시 중용되기 시작한다. 유로2000을 앞둔 프랑스 대표팀, 2년 전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이 건재한 프랑스로선 유로2000까지 제패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이었던 르메르감독은 앙리를 공격의 축으로서 중용하기 시작했고 유로2000 무대에서도 앙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앙리는 유로 2000에서 3골을 기록하였으며 그 중 조별예선 덴마크전에서 보여준 득점은 유연성, 개인기, 골결정력의 3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된 환상적인 골이었다. 앙리를 비롯한 아스날의 프렌치 커넥션들은 이 대회에서 종횡무진 활약했고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98월드컵에 이어 유로2000까지 제패하게 된다.
[King Henry - 살아있는 아스날의 영웅]
아스날에 와서 진정한 스트라이커로 변모한 앙리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기 시작했다. 투톱 파트너 데니스 베르캄프와의 호흡은 완벽해지기 시작했고 이제 잉글랜드의 축구 스타일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쳐 잉글랜드의 축구스타일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 00/01시즌에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리그 득점랭킹 3위에 랭크되었다. 01-02시즌 앙리의 득점 감각은 절정에 달했다. 돌파에 이은 득점, 매끈한 중거리슛 등 다양한 득점 패턴으로 상대의 빈틈이 있으면 언제나 놓치지 않고 골을 뽑아내면서 완벽에 가까운 골 결정력을 과시했다. 앙리의 환상적인 활약과 아스날의 환상적인 팀웍이 맞물리면서 01-02시즌 아스날은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한다. 그리고 앙리는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면서 진정한 스트라이커로 변신한지 3시즌 만에 득점왕에 오른다. 성공적으로 마친 01-02시즌이 끝난 뒤 앙리는 어느새 아스날 서포터들 사이에서 앙리왕(King Henry)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앙리는 아스날의 왕이자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앙리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티에리는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파워, 그리고 골센스. 그와는 통하는 게 있어서 어디에 패스를 넣으면 좋을지 100% 이해하고 있습니다."
- 데니스 베르캄프
[~ing.. -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좌절과 새로운 시작]
2002년 여름, 월드컵 제패를 위해 앙리와 프랑스 대표팀은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을 방문한다. 많은 축구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우승을 예측했고 프랑스 대표팀 또한 레블뢰가 다시 한번 월드컵의 승자로 기록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의 친선경기에서 지단이 부상을 입은걸 시작으로 악몽은 시작되었다. 세네갈과의 개막전에서 레블뢰는 잇 달은 득점 찬스를 놓치면서 1-0으로 패했고 앙리는 이날 골대를 맞추고 만다. 앙리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난 우루과이와의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앙리는 위험성 짙은 태클을 하면서 퇴장을 당한다. 프랑스의 언론들은 우루과이전 무승부의 요인을 실력 발휘를 해보지 못하고 퇴장당한 앙리에게 돌렸고 앙리를 비난하는 프랑스의 여론은 빗발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별 예선 덴마크전, 앙리는 징계로 인해 조국 프랑스가 2-0으로 덴마크에게 완패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를 종횡무진하려 했던 앙리에게 있어서 2002 한일월드컵은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는 악몽과도 같았다.
월드컵에서의 좌절을 뒤로하고 맞이한 02-03시즌 앙리는 더욱 성숙한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이제 득점뿐만 아니라 패스에도 열을 올리며 어시스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득점, 패스에 이어 프리키커로서의 능력도 보여주면서 그의 플레이가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02-03시즌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에서 좌절하면서 FA컵 우승에 그쳤으나 앙리는 24골 23어시스트라는 타 스포츠에서도 보기 힘든 꿈과 같은 기록을 세우면서 각종 올해의 선수상을 휩쓴다. 그리고 2003년 프랑스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4골을 기록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면서 앙리는 대회 MVP로 선정된다. 파리의 불량소년에서 세계 최정상 스트라이커로 변신한 티에리 앙리. 앞으로 우리가 앙리를 바라볼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다다르고 있는 ‘현재진행형’ 선수라는 점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스날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아스날에서 플레이하고 싶습니다." - 티에리 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