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지네딘 지단이 축구의 기본을 배운 것은 마르세유 뒷골목에서였다. 알제리계 이민 세대인 그는 14살 때 신예 발굴자의 눈에 띄어 학생 신분으로 칸 FC에 입단했다. 이후 칸 소속 선수로 프랑스 프로 축구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7살이었다. 1990-91 시즌까지 그는 주전 선수로 뛰었으나 칸은 팀 성적 부진을 이유로 91- 92 시즌이 끝날 무렵 선수 정리를 단행했고,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단은 칸을 떠나 지롱뎅 드 보르도로 이적했다.
지단을 영입한 보르도는 프랑스챔피언십 우승 후보로 부상했다. UEFA컵 1995-96 시즌에는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리며 이적 이후 팀에 가장 크게 공헌했지만 결승전에서 당시 최강 바이에른 뮌헨에 패하고 말았다. 이 무렵 지단은 이미 전설적인 축구 황제 미셸 플라티니에 비견되는 유망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실제로 지단은 198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볼보이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플라티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지단의 등장은 세계 축구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체코와의 경기에서 그는 프랑스가 2-0으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 선수로 투입되어 두 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단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95-96 시즌 유럽축구선수권대회였다. 에메 자케 감독이 지단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볼 컨트롤과 추진력이 탁월한 미들필더였기 때문이다.
소속팀 보르도와 프랑스 국가 대표팀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1996년 봄 유럽 최강인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고, 결국 시즌 종반에 이적을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해 FIFA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중남미의 강호 리버 플레이트를 꺾으면서 유벤투스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97, 98 이탈리아 시즌에도 그의 승승장구는 이어졌고, 98 프랑스 FIFA 월드컵™에서 고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팀에 우승을 선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파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맞아 FIFA 월드컵™ 출전 사상 첫 2골을 기록하면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2000년 여름에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석권했고, 세계 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3년간 두 차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단은 그로부터 1년 뒤 4720만 파운드(약 84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화제를 낳았고, 계속해서 환상적인 플레이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지단의 연봉은 500만 파운드(약 9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제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세유에서 성장한 지네딘 지단은 14세에 신인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AS 칸의 축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17살이 되기도 전에 성인팀에 합류한 지단은 1990/91 시즌에 이미 주전 선수의 자리를 확고히 했지만 팀은 리그 성적 부진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팀의 강등 후에 지단은 보르도로 이적하여 최고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지단은 '지롱뎅 드 보르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1995-96 시즌에는 보르도를 UEFA컵 결승까지 이끌었다. 아쉽게도 바이에른 뮌헨에 패하기는 했지만, 브로도에서 보여 준 활약상으로 지단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드필더인 미셸 플라티니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실제로 지단은 1984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볼보이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플라티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1994년 국가 대표로 처음 국제 대회에 출전한 지단은 이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레 블뢰(프랑스 대표팀 애칭)'가 체코에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투입된 지단은 천부적인 기량을 발휘해 혼자서 2득점을 올리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국가 대표로서 지단의 최고 전성기는 1995/96 시즌 동안 열린 국제 대회와 이어 영국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였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에메 자케 프랑스 감독은 지단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감독은 지단이 탁월한 기술과 확고한 결단력 등 좋은 선수가 지녀야 할 두 가지 중요 자질을 타고난 선수라고 평했다.
클럽과 대표팀에서 성숙한 기량을 선보인 지단은 곧 유럽 명문 클럽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1996년 여름 그는 마침내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 입단했고, 같은 해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를 꺾으면서 생애 최초로 소속팀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
이후 유벤투스는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1997년과 1998년 연속으로 이탈리아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98 프랑스 FIFA 월드컵™에서 고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팀에 우승을 선사하면서 자신의 우승 경력에 최고의 상을 추가했다.
두 번의 우승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맞아 FIFA 월드컵™ 출전 사상 첫 2골을 기록하면서 지단은 대회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2000년 여름에는 프랑스 팀을 이끌어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석권했고, 세계 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1년 뒤, 지단은 7,300만 유로에 이르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정확한 패스와 가공할 만한 득점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레알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그리고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바이엘 레버쿠젠을 상대로 총알 같은 발리슛을 날려 팀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 이 골은 지단 생에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으며, 그곳에 있던 모든 관중은 축구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지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지단은 최종 연습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월드컵 첫 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의 공백으로 프랑스 대표팀은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년 후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 2004에서 부상에서 회복된 지단은 잉글랜드와의 개막 경기에서 종료 2분여를 남기고 두 골을 득점하여 팀을 패배로부터 구해냈다(2-1). 같은 대회에서 프랑스가 그리스에 고배를 마신 뒤 지단은 전설의 등번호 10번이 주는 부담감과 체력 소진을 이유로 이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가 대표팀의 부름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2005년 여름에 몇 년 만에 가진 첫 오랜 휴식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은퇴 결정을 번복하고 대표팀에 전격 복귀한 지단은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프랑스를 이끌었다. 이제 34세인 지단은 올 여름 자신의 마지막 국제 무대를 영예롭게 만들 것이다.
[ ● 지단 개인기 후 마무리 ]
이름:Zinedine Zidane
국적:프랑스
생일: 1972년 6월 23일
신장: 185 cm
체중: 80 kg
포지션: MF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ESP)
국제 경기 득점: 19 (통계일: 2002년 5월 27일)
국제 경기 출전: 74 (통계일: 2002년 5월 27일)
국제 경기 데뷔: 체코공화국 (1994년 8월 17일)
프로필:
지네딘 지단이 축구의 기본을 배운 것은 마르세유 뒷골목에서였다. 알제리계 이민 세대인 그는 14살 때 신예 발굴자의 눈에 띄어 학생 신분으로 칸 FC에 입단했다.
이후 칸 소속 선수로 프랑스 프로 축구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7살이었다. 1990-91 시즌까지 그는 주전 선수로 뛰었으나 칸은 팀 성적 부진을 이유로 91- 92 시즌이 끝날 무렵 선수 정리를 단행했고,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단은 칸을 떠나 지롱뎅 드 보르도로 이적했다.
지단을 영입한 보르도는 프랑스챔피언십 우승 후보로 부상했다. UEFA컵 1995-96 시즌에는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리며 이적 이후 팀에 가장 크게 공헌했지만 결승전에서 당시 최강 바이에른 뮌헨에 패하고 말았다. 이 무렵 지단은 이미 전설적인 축구 황제 미셸 플라티니에 비견되는 유망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실제로 지단은 198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볼보이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플라티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지단의 등장은 세계 축구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체코와의 경기에서 그는 프랑스가 2-0으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 선수로 투입되어 두 골을 터뜨리며 2-2 무승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단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95-96 시즌 유럽축구선수권대회였다. 에메 자케 감독이 지단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볼 컨트롤과 추진력이 탁월한 미들필더였기 때문이다.
소속팀 보르도와 프랑스 국가 대표팀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1996년 봄 유럽 최강인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고, 결국 시즌 종반에 이적을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해 FIFA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서 중남미의 강호 리버 플레이트를 꺾으면서 유벤투스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97, 98 이탈리아 시즌에도 그의 승승장구는 이어졌고, 98 프랑스 FIFA 월드컵™에서 고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팀에 우승을 선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파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맞아 FIFA 월드컵™ 출전 사상 첫 2골을 기록하면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2000년 여름에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석권했고, 세계 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3년간 두 차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단은 그로부터 1년 뒤 4720만 파운드(약 84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화제를 낳았고, 계속해서 환상적인 플레이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지단의 연봉은 500만 파운드(약 9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제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세유에서 성장한 지네딘 지단은 14세에 신인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AS 칸의 축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17살이 되기도 전에 성인팀에 합류한 지단은 1990/91 시즌에 이미 주전 선수의 자리를 확고히 했지만 팀은 리그 성적 부진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팀의 강등 후에 지단은 보르도로 이적하여 최고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지단은 '지롱뎅 드 보르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1995-96 시즌에는 보르도를 UEFA컵 결승까지 이끌었다. 아쉽게도 바이에른 뮌헨에 패하기는 했지만, 브로도에서 보여 준 활약상으로 지단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드필더인 미셸 플라티니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실제로 지단은 1984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볼보이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플라티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1994년 국가 대표로 처음 국제 대회에 출전한 지단은 이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레 블뢰(프랑스 대표팀 애칭)'가 체코에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투입된 지단은 천부적인 기량을 발휘해 혼자서 2득점을 올리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국가 대표로서 지단의 최고 전성기는 1995/96 시즌 동안 열린 국제 대회와 이어 영국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였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에메 자케 프랑스 감독은 지단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감독은 지단이 탁월한 기술과 확고한 결단력 등 좋은 선수가 지녀야 할 두 가지 중요 자질을 타고난 선수라고 평했다.
클럽과 대표팀에서 성숙한 기량을 선보인 지단은 곧 유럽 명문 클럽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1996년 여름 그는 마침내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 입단했고, 같은 해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를 꺾으면서 생애 최초로 소속팀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
이후 유벤투스는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1997년과 1998년 연속으로 이탈리아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98 프랑스 FIFA 월드컵™에서 고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팀에 우승을 선사하면서 자신의 우승 경력에 최고의 상을 추가했다.
두 번의 우승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맞아 FIFA 월드컵™ 출전 사상 첫 2골을 기록하면서 지단은 대회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2000년 여름에는 프랑스 팀을 이끌어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석권했고, 세계 축구 대표팀 감독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1년 뒤, 지단은 7,300만 유로에 이르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정확한 패스와 가공할 만한 득점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레알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그리고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바이엘 레버쿠젠을 상대로 총알 같은 발리슛을 날려 팀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 이 골은 지단 생에 최고의 역작이라 할 수 있으며, 그곳에 있던 모든 관중은 축구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지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지단은 최종 연습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월드컵 첫 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의 공백으로 프랑스 대표팀은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년 후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 2004에서 부상에서 회복된 지단은 잉글랜드와의 개막 경기에서 종료 2분여를 남기고 두 골을 득점하여 팀을 패배로부터 구해냈다(2-1). 같은 대회에서 프랑스가 그리스에 고배를 마신 뒤 지단은 전설의 등번호 10번이 주는 부담감과 체력 소진을 이유로 이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가 대표팀의 부름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2005년 여름에 몇 년 만에 가진 첫 오랜 휴식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은퇴 결정을 번복하고 대표팀에 전격 복귀한 지단은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프랑스를 이끌었다. 이제 34세인 지단은 올 여름 자신의 마지막 국제 무대를 영예롭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