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이영주200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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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 (2007) 감독 : 장윤현     하늘 위를 날던 진이, 땅으로 내려오다     이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장윤현 감독의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된 영화는 장윤현 감독의 이다. 그 영화가 특별히 감동이었다거나 인상이 깊었다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그냥 끌렸다. 이미지에. 그리고 그 영화로 브라운관의 어설픈 조연 탤런트 전도연은 영화배우가 됐다. 그리고 얼마 전 칸느영화제는 전도연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어설픈 조연에서 드라마 한편으로 깜찍한 요정은 되었으나 여전히 배우라는 타이틀을 내걸기엔 뭔가 하자가 있어 보이는 송혜교가 장윤현 감독을 만나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황진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지는 매력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무수히 많은 황진이들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황진이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만큼 황진이란 인물은 매력적이면서도 가변적인 인물이다. 여성이기에 소위 객관적인 역사라고 불릴 만한 기록에 남길 일이 없었고, 하기에 구전에 구전을 거듭하며 때로는 팜므파탈이었다가 때로는 예인이었다가 또 때로는 지고지순한 멜로여인이 될 수 있던 인물,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할 인물이기 때문에, 2007년 이 시점에서 어떤 황진이가 나올까, 궁금함이 생겼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첫 번째 이유에 대한 대답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송혜교는 원래 예뻤지만, 스크린 속 송혜교는 더욱 예뻤다. 그리고 우려했던 연기의 미진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꽤나 다중적인 인물인 황진이를 그럴듯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를 가져봄직 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한 대답은 매우 모호했다. 무수히 많은 황진이들 중 가장 최근, 작년 텔레비전 드라마의 황진이가 가장 기억에 또렷했기에 아마도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관객들이 하지원의 황진이와 송혜교의 황진이를 끊임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원의 황진이가 예인으로서의 황진이가 정점까지 가기 위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면, 송혜교의 황진이는 그쪽 방면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황진이가 어떻게 조선팔도의 양반들을 쥐락펴락하는 명기가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은 별당아씨 진이가 송도 기생 명월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정치적 배경에 쏠려 있다. 하기에 지금껏 많은 황진이들이 숱한 여성관객들에게 흩뿌리고 다녔던 롤모델로서의 매력은 한참 떨어진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어쩌면 시대를 잘못 만나 기생이 된 너무나 평범한 여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천출이 아니었더라면, 송혜교의 황진이는 여염집 규수로 잘 자라다가 또 여염집 안방마님으로 자리잡았을 인물이다. 만약 그 시기가 조선 봉건시대가 아니었다면 사랑하는 남자와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게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참 매력없는 황진이에게 맥이 빠질 만도 하다. 더구나 송혜교의 황진이는 꽤나 전형적인 멜로를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세상을 호령했던 황진이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몇 시간이 흐른 뒤 영화 속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생각을 고쳐 먹는다. 그래, 신화로 굳어져 가던 황진이가 땅에 안착했군. 이것만으로도 새로운 황진이의 탄생이라 할 수 있겠어.   이 세상에는 무수한 영웅들이 있었다. 그들은 물론 빼어났다. 그러나 개인의 빼어남만으로 영웅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영웅을 만든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반드시 있다. 지금껏 숱한 황진이들이 개인의 빼어남(능력이든 노력이든)에 초점을 맞추며 범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신화의 꼭대기로 황진이를 인도했다면, 장윤현과 송혜교의 황진이는 그러한 영웅, 절세가인 역시 시대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그리 크게 흥행하지 않을 거란 예감은 들지만, 굳이 이 영화의 성취를 찾자면 이 점이 아닐까?   그러나 전형적 멜로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불친절하게 생략해버린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멜로영화이긴 하나 너무나 건조하게 느껴졌던 것은 주인공 황진이든 그의 연인 놈이든 어느 인물에게도 할애하지 않은 감정묘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황진이들과 송혜교의 황진이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이유는 가상인물인 놈이의 존재인데, 그 둘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하면서 그 둘의 사랑을 이렇게 불친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보여줄 게 너무 많았고 그래서 비약과 생략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보아온 무수한 사랑과는 아주 다른 괜찮은 사랑이야기가 탄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