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Daisies Sedmikrasky , 1966)

류영주2007.06.10
조회25
데이지 (Daisies Sedmikrasky , 1966)

 

  체코 / 74분 / 감독: 베라 히틸로바

  (★★★★★)

 

  영화가 시작하고 전쟁의 이미지가 나열되고 나면,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두 여자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 그들이 움직이는 이미지는 마치 목각 줄인형-마리오네트-을 흡사연상시키기도 하며, 문이 삐걱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녀들이 나누는 대화도 비현실적이다.

  삶은 지루하고 세상은 썩었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머리 위에 화관이 놓여있다. 다른여자가 그건 왜 썼느냐고 물어보니 "처녀로 보일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이렇게 '마리'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소녀-이트카 세르호바, 이바나 카르바노바-는 세상이 썩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일탈적인 행위를 즐기며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려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다 쫓겨나기도 하고, 남자친구라고 하기에는 한 나이든 남자를 농락해서 돈을 쓰게 하고는 레스토랑에서 게걸스럽게 밥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한 두 소녀는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선다.

  이 영화는 두 명의 '마리'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것이다. 두 '마리'의 막무가내 퍼포먼스는 갈수록 태산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점프 컷, 색깔의 변화, 사운드의 중첩은 그녀들의 막가는 인생을 화려하게 묘사한다. 연속적인 편집과 일관성 공간성의 통일을 일부러 거부한다. 침대 위에서 던진 꽃이 다음 장면에서는 바로 개울 위에 떨어지는 식이다. 흑백으로 진행되다가 컬러로 바뀌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거기에다 시종일관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저속촬영 등 굉장히 다양한 카메라 실험까지 계속된다. 지금으로서는 '일탈'에 대한 묘사라는 측면에서 다소 관습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이러한 묘사와 기법은 무척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 영화의 영화사적 위치는 두 가지 축에 의해 지정된다. 하나는 지정학적, 연대기적인 것으로 1960년대 체코 뉴 웨이브 영화의 주요작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여성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그 두 지표는 그리 멀지 않아서 1960년대 체코라는 정치적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 남성 주류영화에 대해- 마이너한 정체성은 영화의 주제와도 상통한다.

  여성영화라는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속 두 주인공, 두 명의 '마리'에 대한 묘사다. 같은 이름의 두 여자가 등장하는 설정은 대개 대립되는 두 자아(自我)를 가진 하나의 분열적 인격체를 표상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둘이자 하나라는 여성의 연대성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두 여인의 연대성이 발휘되는 대목은 권위적인고 성욕에 눈 먼 남성들- 고루한 사회, 체체, 이데올로기......-을 곯려주는 유쾌한 음모, 그리고 생산적인 활동과는 거리가 먼 수다와 유희이다.

  썩어빠진 세상에 썩어빠진 태도로 임하겠다는 주제는 오늘 날에 와서는 다소 식상한 것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 당시에는 더구나 프라하의 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일탈의 제스츄어만으로도 엄숙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상당한 저항이 될 수 있었다. 미적으로 봤을 때도, 다분히 의도적인 조잡한 몽타주와 이미지 실험은 경직된 스탈린 식 사회주의 미학에 대한 조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