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존심만능주의

장기영200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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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출근길...

 

발디딜틈 없는 만원버스에서 막 탈출해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려던 내 귀에

으르렁 거리는 사자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미 지각도 한참 지각이었지만 소리의 근원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는 얼마나 걸었을까?

지나가던 구경꾼들이 왠 낯선 두 남자를 둘러싼채 싸움 구경에 신이났다.

 

그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떡하니 한자리 잡고 앉았다.

옆사람에게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엇갈려 걷던 두 남자가 본의 아니게 어깨를 부딪혔는데

벌써 한시간째 이 모양 이 꼴이란다.

 

서로 죄송하다고 한마디면 진작에 끝났을 일을

앞뒤 안가리고 멱살부터 움켜줬으니 안면몰수 쌍욕이 이리도 자연스러울 수 밖에...

 

이게 다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기는 법만을 가르쳐왔다.

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만이 승리의 정도인양 끊임없이 각인시켜 왔다.

 

당연히 대화와 타협은 순진무구한 바보들의 전유물 쯤으로 전락했고

나아가 자신을 굽히는 것은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처럼 쉬쉬해왔다.

 

세상이라는 학교가 가르쳐준 엉터리 생존법 덕에

우리는 하나, 둘

자존심 빼면 시체인, 쓸떼없이 강인한척 하는 자존심 매니아들이 되버렸다.

간단히 말해 외강내유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

 

허나 그 잘난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남자다운 배포도 좋고 뻔한 허풍도 떄로는 귀엽게 봐줄수 있다.

단,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법을 배우고 나서의 이야기다.

 

곧이 곧대로 고함만 지르면 뭐든 해결될 줄 아는 아둔한 허깨비...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어둑어둑한 밤, 가로등을 형광등 삼아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멍청하게 땅만 보고 걷다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한 장정과 어깨가 부딪혔다.

 

고개를 90'로 조아리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따발총이 되버린 내게

눈알을 있는데로 부라리며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떠는 이 남자...

 

어, 이건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이럴땐 어쩌면 좋지?

 

- 070608 PM10:53 -

Written by. JKY